고전 11:1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섬김의 기본적인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섬김이란 곧 생명을 나누는 것을 말한다. 그 복음의 핵심을 예수님은 음식을 나누면서 말씀하신다. 섬김이란 자신의 살과 피를 생명의 양식으로 나누며 죽음까지 동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식사는 식사예법 이상이며,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하는가 하는 문제 이상이다. 식사는 곧 하나님 말씀의 실천이며, 하나님 말씀의 연속이다. 그것은 곧 생명 나눔이며, 예수님의 삶을 계속 재현하는 행위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니라(눅 l4:12~l4)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식사를 잘못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느덧 기독교인들이 기득권층이 되었다. 최소한 수준이 되는 사람들끼리만 모이고 있고, 수준이 되는 장소에서 수준이 되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으며, 이번에는 누가 냈으니 다음에는 누가 내야 한다는 것쯤은 대충 알고 헤어진다.
식사는 곧 하나님 말씀의 실현이다. 식사는 곧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에 가장 기초가 되는 단위이며, 하루에도 두 번 또는 세 번씩 가장 빈번하게 반복되는 기도의 응답이므로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순간이다. 무엇을 먹고 있는가? 예수께서 식사 중에 빵을 가지시고 '이것은 내 몸이다, 잔을 가지시고 이것은 내 피다' 라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 이해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렇다! 그들이 먹는 것은 예수님의 몸이요 피다. 예수님은 자기의 몸과 피를 제자들과 나누는 삶을 살아왔다. 제자들은 3년 동안 자기들의 스승께서, 사람들에게 단순히 떡이 아니라, 단순히 잔이 아니라 당신의 몸과 피를 나누어주는 삶을 사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선언을 이해하는 데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바로 이것이라는, 진리의 실체가 전율처럼 몸과 피 속에 충격처럼 흐르는 순간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먹는 문제는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 문제는 하나님 말씀과 관계가 있다. 우리가 먹고 있는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의 몸과 피이다. 다시 한번 베드로의 고백을 상기해 보자.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일았삽나이다.(요 6:68~69).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영생의 말씀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공통점을 찾아내야 한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요, 또한 영생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바로 그분이 유월절 식사에서 자신의 몸을 떼어 주며, 먹으라고 하신다. 그 순간 제자들에게는 떡을 먹는 문제와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곧 생명이요 삶이라는 진리와 만난 순간이었다. 그 사실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실감나게 느껴졌는지, 또는 한참 후에야 깨달아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로 그것은 분명 진리와 만난 순간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떡이요, 말씀이요, 생명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본이다.
어떻게 먹고 있는가? 분명 유월절 식사이므로 먹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 날의 하이라이트는 먹는 것보다는 예수님의 떡을 떼는(breaking) 동작과 잔을 붓는(pouring) 동작이었다. 떡은 예수님의 몸이요, 잔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한다. 그런데 그 떡 즉 예수님의 몸이 떼어졌고, 잔 즉 예수님의 피는 쏟아졌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행동을 반복하라고 명령하신다.(do this in remembrance of me, 눅 22:19, NIV). 단순한 행위의 반복을 말씀하신 것은 물론 아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삶의 반복이다. 죽음의 순간에 가장 생명과 가까운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당시 제자들은 그 말씀을 잘 이해했고 그대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 세대부터이다.
오늘날의 성찬식은 먹는 것이 주가 되어 있다. 그것을 받아먹음으로 해서 어떤 역사가 일어날 것처럼 가르친다. 그러나 사실 성찬식의 내용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며, 성찬식의 형식은 떡을 떼고 잔을 붓는 동작이다. 성찬식은 단순한 의식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 즉 살과 피를 나누는 삶을 가장 함축적으로 기억하면서 죽을 때까지 연습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같이 나도 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확인하고, 연습하는 것이 성찬식의 내용이며 형식이다.
하지만 오늘날 떡과 잔을 받아먹음으로 어떠한 효력을 발휘하는 식의 성찬식이 되어버림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이 살과 피를 나누는 사람들이 아니라 먹어 버리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된 것이며, 주는 자가 아니라 받는 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생명의 떡이다. 떡이 없으면 인생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님이 없는 세상도 멸망할 수밖에 없다.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암 8:11~13)
지금 북미에서는(한국도 마찬가지) 먹을 양식이 없어 비극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먹을 양식이 너무 많아 비극이 생기고 있다. 못 먹어서 생기는 병보다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이 많아졌다. 먹기 위해 힘을 쓰기보다는 먹지 않기 위해서 힘을 쓰며, 너무 먹어 비대해진 몸의 살을 빼기 위해서 돈을 쓰고 있다. 한 끼 양식을 먹는 것에 대한 고귀성을 상실한 것이 기독교 영성에 가장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정상적인 음식만을 먹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먹어서는 안 될 잘못된 것을 먹으면서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다. 마약은 젊은이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학력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인간을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문제가 먹을 것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들이 아니라 오히려 먹을 것이 너무 풍부해서 생기는 죄악들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먹을 것의 문제가 아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영적 기아 현상이다. 인간은 떡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을 간단히 생각하거나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주어진 모든 교회와 부모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이 사실을 무시할 때, 그들은 비틀거리며 다른 것을 찾아 나설 것이다. 잘못된 것을 먹을 것이다. 먹을 것이 가장 풍부한 시대에 먹는 문제로 가장 많은 혼란을 겪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먹는 일은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며 가장 영향력이 큰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생명의 떡이요, 일용할 양식이다. 오늘날 가장 바람직하게 먹는 것은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며 먹는 것이며, 인간은 떡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사는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문화와 언어와 인종과 종교적인 편견의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님의 화해와 용서를 이 땅에 몸으로 이루신 역사적인 분이다. 사실 그 일은 십자가상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그분의 삶을 통해서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당신의 몸을 찢고, 피를 흘리되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떡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것을 유월절 식사에서 친히 모범을 보이시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어 버리는 자들이 되지 말고 자기의 몸과 피를 나누는 자들이 될 것을 말씀하셨다.
성찬식은 예수의 삶과 죽음이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이 땅에서 시대를 초월하여 반복되기를 요청하는 명령이며, 또한 연습이다. 가장 엄숙하고, 함축적이며, 실천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는 영적 기근의 때가 왔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 없이 세상적으로 먹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먹는 문제는 심각해진다. 오히려 먹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문제 외에 잘못 먹어 생기는 문제까지 먹는 문제는 더욱더 심각해졌다. 먹을 것을 먹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는 세대가 영적인 기근을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배고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크게 들리지는 않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호소를 들어야 한다. 심지어 자신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영적인 열망을. 끝.(허천회 지음 / Reader Leader /쿰란출판사)에서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