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은 후에 성령세례를 받은 사례가 있는가? 그러므로 물 세례와 성령 세례를 서로 별개의 체험으로 볼 수 없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성령을 받고 그 내적인 실제를 물세례를 통해 외적으로 인치는 것이 성경이 제시한 규범적인 패단이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는 세례의 참된 의미가 퇴색되어 실제 상황에서 물로 세례를 받는 것과 성령을 체험하는 것 사이에 심각한 괴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참된 믿음과 회개 없이 형식적으로 세례를 받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많은 교인들이 옛 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세례의 근본 의미를 삶 속에서 전혀 실천하며 살지 않기에 성령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영적으로 무력하고 피폐한 삶을 살아간다. 우리에게 긴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신앙의 정도로 돌이키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 세례의 의미를 회복하여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려고 할 때 우리는 성령의 생수의 강에 잠기는 성령 세례의 실체를 누리게 될 것이다. 믿은 후에 성령 세례를 받은 사례가 있는가? 이 정도로 성령 세례에 대한 논쟁이 마무리되면 좋으련만 오순절 교회의 입장을 옹호하는 이들은 결코 여기서 물러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제자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오순절 후에도 믿은 후 2차적으로 성령을 받은 사례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느냐고 반박할 것이다. 정말 성경에서 그런 분명한 예를 찾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사도행전 19장에 기록된 에베소에서 있었던 사건이 그것의 확실한 증거라고 말할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라고 물으니 그들이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라고 대답하였다. 곧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다(행19:6). 얼핏 보이기에는 그들이 믿은 후 2차적으로 성령을 받은 것 같지만 문맥 속에서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된다. 에베소에 있었던 제자들은 온전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받은 자들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구원의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여전히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던 자들이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세례를 요한이 증거한 이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믿음과 세례와 성령 받음이 한 묶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의 복음을 믿을 때 성령을 받는 아주 정상적인 사례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본문을 조금만 주의 깊게 읽고 전후 문맥만 살펴 보아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을 놓쳐버리고 단지 이것을 믿은 후 2차적으로 성령을 받은 분명한 사례로 보는 것은 몰지각한 성경 해석이다. 얼마나 많은 부흥사와 설교자들이 본문을 가지고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라며 교인들을 몰아세우는가? 에베소의 제자들은 분명히 오순절이 지난 지 오랜 후에 존재했던 이들이지만 지금처럼 대중교통이나 매체가 발달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했던 자들이었다. 여기서 누가가 특별히 이 사건을 기록한 목적은 믿은 후 성령을 받는다는 사실을 말하려 함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새 시대가 도래했고 신약 교회가 탄생하였으나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옛 것을 따르던 남아 있던 무리가 마지막으로 신약교회로 편입되는 특별한 의미를 띤 사건에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사도행전 10장에도 기록되어 있다. 가이사랴에 있던 고넬료라는 백부장에게 성령이 임하신 사건이다. 누가는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기록하였다. 후에 환상을 통해 깨우침을 얻은 베드로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으로 찾아가 그의 온 식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들 위에 성령이 임하셨다(10:44) 여기서도 고넬료가 믿은 후에 성령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한 이로서 구약의 성도와 같은 경건한 이임에는 틀림없으나 아직 신약적인 의미에서 온전히 믿는 자라고 볼 수 없다. 그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했다. 그는 역사적으로는 오순절 후에 살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 새 시대의 은총에 참여하지 못했다. 개인적 신앙의 역사 속에서는 아직 오순절을 맞이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오순절 너머에 있던 구약 성도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경건과 신앙은 구약 성도들에게도 임했던 성령의 은혜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믿은 후 성령을 받은 유일한 사례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과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복음을 아주 상세하게 증거하였다.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들을 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다. 여기서도 분명한 것은 말씀을 들음으로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이 동시적이라는 점이다. 박영돈 교수(고려신학대학원)/‘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한국교회 성령운동, 무엇이 문제인가’(IVP)에서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사건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그 분의 합법적인 백성으로 받아들이셨다는 사실을 만방에 특별히 이방인들을 개처럼 여긴 유대인들에게 전시하고 시위하는 중대한 의미를 띠고 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성령을 주심을 통해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약 교회의 정식 구성원으로 받으셨다는 것을 친히 확증하시지 않고는 이방인들을 경멸하고 상종하지 않으려는 유대인들의 지독한 배타의식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 배타주의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베드로마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해 성령이 부득불 환상까지 동원하여 그를 깨우치셔야만 했다는 씁쓸한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에베소에 있던 제자들이나 고넬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거나 믿을 때 성령을 받았다. 그들의 성령 체험은 믿은 후 2차적으로 성령 세례를 받는 성경적인 근거가 결코 될 수 없다. 오히려 믿을 때 성령을 받는 정상적인 사례에 속한다. 사도행전에서 제시한 성령 체험의 규범적인 패턴과 꼭 들어맞는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교회 앞에서 고넬료에게 성령이 임하신 사건을 보고하면서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라고 말했다. 이것이 사도행전이 제시한 성령 체험의 정상적인 패턴이다.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던 제자들을 제외하고 오순절 후에 복음을 듣고 믿은 이들은 이 규범을 따라 성령을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천명이 예수님을 믿었고 그 후에는 5천명이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여기서 그들이 믿을 때 성령을 받았다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누가가 제시한 규범을 따라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은 것을 당연한 사실로 전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믿은 후 성령을 받은 유일한 사례 그런데 사도행전 8장에는 이 규범에서 벗어난 사례가 딱 한 군데 있다. 그것은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신 사건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직분자 중에 하나였던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복음을 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행8:12). 이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가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셨다(행8:17). 이 사건은 믿음과 성령 받는 것이 분리된 유일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