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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Holy)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17.02.15|조회수100 목록 댓글 1


거룩(Holy)


‘당신은 거룩한가?’라는 질문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귀기울여야 할 엄숙한 질문이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한 히12:14의 말씀에 의지하여 우리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진지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참된 거룩은 무엇일까? 참된 거룩이 우리들에게 왜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거룩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은 무엇일까? 하는 주제를 놓고 생각해 보자.
앞 장에서 교리적 측면에서 접근하여 숙고하였다면, 이제는 좀 더 실천적이고 실제적인 관점에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어떤 사람이 참되고 실천적인 거룩을 소유한 자인가?
참되고 실천적인 거룩이 무엇일까? 성경의 증거들을 통해서 알아보자.               

(1)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생각을 마음에 품는 습성을 가진 자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판단은 성경에 기록되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등이 적혀있다.
그 성경대로, 그 분의 판단에 합치하여 생각하고 결정하고 판단하는 성향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나고 성화의 길을 가는 자임이 분명하다.

(2) 죄를 미워하고 피하며 알려진 모든 계명을 지키려 애쓰는 자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처럼, 죄에 대한 미움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을 실망시키거나 슬프게 하는 것을 두려워 하며 온 마음으로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 즉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시119:128).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고자 분투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평강과 능력을 받을 뿐 아니라, 그분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형상을 본받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그의 용서하심처럼 다른 이를 용납하고자 하고, 그의 낮아지심과 같이 낮아지고자 하고, 진리의 신실한 증인으로 사신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애를 쓰는 삶이다.
그리스도의 영의 열매가 이들에게서 나타나며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는다.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세월을 아끼며 더 많은 죄로부터 돌아설 것이다.

(4) 온유함, 오래참음, 양선과 인내와 친절한 성품을 추구하고 혀를 다스리는 자
많이 용납하고 많이 감당하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는 더디다.

(5) 자기부인과 절제하는 자
육신의 정욕을 죽이고 애착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색욕을 억제하고 정욕을 제한하기를 힘쓰며 스스로 조심하는 자이다(눅21:34, 고전9:27).

(6) 사랑과 형제 우애에 힘쓰는 자
세상 사람들의 사랑과 대접의 원리는 그리스도인의 원리는 다르다. 거룩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말했으면 하는 대로 말하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한다'.
남을 사랑하고 남을 향한 거짓말과 비방과 속임수와 부정직을 혐호한다.
거룩한 이는 외적인 행실과 품위로 자기 신앙을 더 빛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변해간다.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이나 고전 13장에서 말씀하는 내용들이 당신에게는 그저 정죄의 말씀이란 말인가? 이는 참으로 복된 말씀이요 가르침이거늘!

(7) 타인을 향한 자비와 박애의 정신으로 대하는 자
성화의 과정중에 있는 자는 할 일없이 빈둥거리거나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다.
선을 베풀고 유익을 주기 위해서 주변의 영육간의 궁핍함과 비참함을 돌아본다.
선행과 구제를 이야기할 뿐 아니라, 실제로 행동하는 자이다.

(8) 순전한 마음을 추구하는 자
우리를 죄악으로 이끄는 것들을 두려워하고 유혹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쓴다. 악의 모양을 가진데서 피하며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고자 노력한다.

(9)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벌받을 것이 두려운 상태에서만 나타나고 그렇지 않을 때는 게으름을 피우는 노예근성과 같은 두려움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총독의 자리에서도 정직하게 행하였던 느헤미야와 같다(느5:15).

(10) 겸손한 자
마음을 낮은 데 두고 항상 다른 이를 자기보다 낫게 여긴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악을 발견하고 죄에 대한 자각을 하며 주께도 사람에게도 겸손히 행한다.

(11) 삶의 모든 의무에서 신실한 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골3:23) 부지런하며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긴다(롬12:11).
좋은 남편과 좋은 아내, 좋은 부모와 자녀, 좋은 상사와 부하, 선한 이웃과 친구, 착한 국민이 되기 위해서 애쓰는 자의 모습이다.
주께서는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제자들에게 엄중히 물으셨다(마5:47).

(12) 영적 사고방식을 갖기 위해 힘쓰는 자
마음의 생각과 우선순위를 장차 오는 삶에 가장 먼저 두고, 하늘의 시민권자처럼 살며 본향을 향해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 기도와 성경을 통해서 한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교제를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위에 제시한 대략적인 특징들은 거룩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들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죄가 있다.
우리는 사망의 몸과 함께 지내며 죄악과 늘 싸우게 된다.
옛사람이 사사건건 방해하고 뒤로 물러나게 하려고 유혹한다.
그러나 성화중에 있는 자는 곤란한 중에도 계속해서 성을 중건하였던 것과 같이 매일 매일 노력한다.
성화는 어느날 갑자기 무르익어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사역임을 잊지 말라.
끊임없는 죄와 전쟁속에서 그리스도를 머리삼아 매일 앞으로 전진한다.
참된 거룩은 위대한 실재이다. 우리 모두에게 보이도록 드러나며 알수 있고 느낄 수 있게 되는 실재이다.


2. 실천적 거룩이 왜 중요한가?


거룩이 우리의 죄를 없애는가? 우리를 구원하는가? 죄책을 덮고 속량해 주는가? 하나님께 진 빚을 갚는가?
아니다. 거룩은 이런 일을 하나도 할 수 없다. 아무리 탁월한 성도라 하여도 ‘무익한 종’일 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세마포와 믿음만이 우리의 유일한 의이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자랑이다. 우리의 행위는 그 나라 갈 때까지 결점투성이이다.
그 어느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거룩이 그토록 중요한가? 왜 우리는 거룩해야만 하는가?

(1)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마5:20에 말씀하신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하라고 명하셨고(마5:48) 사도바울과 베드로 또한 말씀하고 있다(살전4:3, 벧전1:15~16)

(2)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위대한 이유와 목적중의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목적은 우리를 살게 하고 구원하시기 위하여이다.
그러나 이 뿐만 아니라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으시다고 성경은 또한 말씀한다(엡5:25~26, 딛2:14, 엡1:4, 딤후1:9, 히12:10).

(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의 믿음을 가졌다는 유일하게 바른증거이다
선행이 우리를 죄없이 하지 못하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지만 선행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며 참된 믿음으로부터 솟아나는 열매이며 분명한 증거라고 성공회 종교강령 12조는 가르친다.

(4)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유일한 증거이다
요14:15에서 주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한다.
주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 당하시고 죽음 당하심을 알면서,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면서, 주를 사랑한다 하면서 어찌 죄와 짝할 수 있겠는가?

(5) 하나님의 참된 자녀된 유일하고 건전한 증거이다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가 부모를닮듯이 하나님의 자녀또한 하나님을 닮는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8:39).
우리의 말과 행위와 삶을 통해서 우리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우리가 누구의 자녀인지 보여지게 된다.

(6) 거룩이야말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가장 좋은 길이다
우리의 삶은 주변인들에게 해를 주거나 유익을 준다.
우리의 삶은 무언의 설교가 되어 아름다운 영향력을 줄 수 있다. 거룩의 삶은 신앙을 아름답게 하는 무게와 힘이 있다.
우리의 영혼을 더욱 주께 가까이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거룩의 명분은 충분하다.

(7) 지금 누리는 위로가 거룩에 많이 좌우된다
죄는 슬픔과, 거룩은 행복과, 성화는 위로와 연결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안녕과 선행을 밀접하게 해놓으셨다.
주께 받은 칭의로 인하여 우리는 진리의 빛의 위대함과 위로를 받는다.
우리 자신의 위로를 위하여서도 거룩은 반드시 필요하다.

(8) 이땅에서 거룩하지 않으면 천국을 준비할 기회가 없다
천국은 거룩한 곳이요, 거룩한 분이 거하시는 곳이다. 모든 거룩한 자들이 천국에 함께 있다.
우리가 거룩해지지 않고 죽는다면, 천국에서 어떻게 편하고 행복하겠는가?
성도가 천국에서 누리는 행복과 즐거움은 거룩한 자들의 것이다.
이 땅에서 지금 여러분이 경망스럽고 세상에만 집착하고 탐욕스럽게 산다면 그곳에 있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룩한 성도들과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의 거룩한 삶을 어디에서 준비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거룩에 대한 몇 가지 적용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1) 당신은 거룩합니까?
매주 교회에 가는지, 세례를 받았는지, 성찬에 참여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책상 위에 경건서적이 있는지, 거룩해지고 싶은 의향이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의 것, “당신은 거룩합니까? 아니면 거룩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실상은 이름만 가진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우리의 삶과 마음을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안에 엄중한 질문을 불러일으키고 기도의 자리로 나가면서 거룩에 대한 열정을 품어야 하지 않겠는가?
구원받은 성도라면, 구별된 백성이라면 우리는 좁고 협착한 길로 가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과 지식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성품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2) 거룩의 중요성에 대해 얼마나 느끼는가?
주님의 백성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질문해본다.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은혜안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죽은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성령 하나님과 함께하는 위대한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사역이 우리의 것이라고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성화를 깎아 내리는 것은 은혜의 방편이 아니다.
믿음과 행함은 피로 맺어진 친구임을 잊지 말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이라고 푸념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게으름과 나태함을 가리는 구실과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라면, 이와 더불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이라고도 동시에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3. 거룩해지기를 열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드리는 권면


당신이 만약 거룩해지고 싶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싶다면 그리스도와 더불어 시작해야 한다.
주님은 거룩의 뿌리요 시작이다. 거룩해지는 유일한 길은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하는 것이다.
스스로 거룩해 지려 하다가는 더큰 죄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기 전까지는 우리의 성화 사역에 벽돌 한 장, 돌 하나도 쌓이지 않을 것이다.
거룩은 혈통으로도, 부모의 유전으로도 될 수 없다. 스스로 될 수 없다.
거룩은 참 포도나뭉게 접붙여진 가지에서 맺히는 열매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이루어간다. 주 안에 거하고 열매를 많이 맺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문제들)

1. ‘참되고 실천적인 거룩’을 정의하고 열거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2. 참되고 실천적인 거룩함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3. 참되고 실천적인 거룩은 무엇을 증거하는 표시인가?
4. 거룩한 삶의 시작점은 무엇인가?


J. C. Ryle 저/성결(Holiness)/기독교 문서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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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상목 | 작성시간 17.02.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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