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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의 3가지 종류(test, trial, temptation)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17.03.06|조회수3,091 목록 댓글 1


시험의 3가지 종류(test, trial, temptation)

성경을 읽다보면  우리를 혼돈시키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험"에 대한 것입니다.

 

야고보서에서 보면 시험을 만나면 기뻐하라고 하지만.....

곧바로 뒤이어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시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의문을 가져옵니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만 기뻐해야하는데...

하나님이 하시지 않는 일을 기뻐하라고 하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창세기에서 보면..

마치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시지 않으신다는...

야고보서의 말씀에 대조적으로 보이는 말씀이 있는데..... 

바로 그 말씀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를 시험하셨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이 하지 않으신다고 하신 시험을...

이 말씀속에서 보면...하나님이 직접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혼동시키는 이 단어..시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실...

한국성경으로 보면..

이것저것 모두가..시험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영어성경으로 이 말씀을 읽으면..

좀 더 그 뜻이 명백해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바로 개별적인 3가지 종류로..

그 뜻을 명백히 차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시험(Test)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에게 부딪혀진 상황과 환경과 상관없이..

언제나 온전하게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늘 순종하는 견고한 믿음의 소유자인가?

아니면...

상황속에 흔들리고 요동하는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인지 또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자인지를 확인하시기 위해..

우리를 기꺼이 시험하십니다.

 

이 시험을 거쳐..

우리는... 물론...

우리 자신의 믿음의 성장과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시험은...

우리의 믿음의 수준과 견고함의 정도를 증명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기 위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이삭을 받치라고 명령하심으로써..

그의 믿음과 마음을 시험하셨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또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공급해 주시면서...

그들이...그들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있는지를 보시기 위해...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지 말것을 명령하심으로써..

그들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이들은...

그들을 공급하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고..

안식일에도 만나를 거두기 위해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물론 그들은 만나를 거두지 못한체..

하나님께서 금하신 헛된 노력을 통해..

그들의 불신만을 증명해 보였을 뿐입니다..

그들은 시험에서 낙방했습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시험(Test)은...

우리의 믿음의 정도와 수준을 증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기꺼이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말 그대로의...시험을 의미합니다. 

 

 

[창22: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16:4]"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두번째....시험(Trial, Sufferings)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시험중에서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환난을 만나면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하나님의 주권아래서...

우리에게 허락되는 시련과 훈련과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시험이 의미하는 시련과 환난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과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험은...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인내와 연단과 소망 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환난과 고통과 시련중에서..

우리는 인내를 배웁니다.

이 인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고...신뢰하는 믿음의 기초위에 세워집니다.  

그리고

이 인내라는 성령의 열매는...

우리의 죄인된 성품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지켜줍니다.

이 인내의 성품이 강건하게 되면...

이 인내는....

마치...

합금이...뜨거운 불속에서..자신의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금으로 순결하게 변화되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거룩하지 못한 성품을 제거하는...

연단의 과정에서 굳세게 견딜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연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결함을 그대로 투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연단의 과정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변화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한 소망을 붙잡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Trials)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그 이유와 목적은..

우리에게 재앙이나 멸망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요..

진정한 장래와 소망과 비젼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험(Tria)에 부딪히면...기뻐해야 합니다.

시험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에는..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약1:2~4]"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롬5:3~4]"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세번째... 시험(Temptation)

 

여기서 말하는 시험이라는 단어는...

유혹 또는 미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시험은...

우리를 파괴시키고....멸망시키고자 하는...

사탄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넘어뜨리기 위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사탄이 우리를 유혹한다고 해도...

그 유혹에 넘어가기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며...

우리가 미혹되고 유혹되어 넘어지는 동기가 되는 것은..

거의 우리 자신의 욕심때문입니다.

 

사실...요즘엔 사기꾼들이 극성을 부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기꾼들이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해도..

그들의 속임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돈을 소유하기를 갈망하는...

돈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가지고 잇는 사람들 뿐입니다.

왜냐면...

어떤 사기꾼들의 유혹에도..

돈에 욕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들의 속임에 흔들리거나 넘어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우리 마음에 있는 갖가지 욕심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유혹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가득찬 이 욕심에 이끌리고 미혹되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과 세상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그리고...하나님을 저버리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그리고 이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인 사망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파괴시키는 사망은..

하나님의 목적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케 변화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합니다.

우리를 기꺼이 파괴시키고 멸망시키려는 것은 바로 사탄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육신의 정욕에 집착했습니다.

그들은 배고품과 갈증이 생길 때마다..

그들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욕심에 매달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욕심을 채워주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그리고...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은...어려움과 고통을 만날 때마다..

오히려...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힘과 공급을 간구해야 햇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신의 굶주린 육체를 더욱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자신의 욕심에 미혹되어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시험은...

우리를 파멸시키고 멸망시키려는...

사탄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지는 도구로...

우리의 욕심에 집착하게 하여...

하나님을 저버리도록 유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약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Test)하십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가운데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우리의 믿음이 어느정도인지..확인하시고 나타내보이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험(Trial, Suffering)가운데서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험을 즐겅 받아야 합니다.

왜냐면....

거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믿음안에서 인내하게 하여..

우리를 연단하고..

결국...살아있는 소망이 되신 하나님을 붙들도록 도전합니다..

이 시험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온전한 목적을 이루도록 인도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험(Temptation)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면..하나님은..우리를 멸망과 파괴로 이끄시기 위해..

어느누구도..기꺼이 시험하시지 않으시는 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험은 사탄의 목적을 성취하는 도구입니다.

우리에게 욕심을 자극하고..

우리 스스로..자기 자신의 욕심에 미혹되도록 부추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죄를 짓고..

하나님과 단절되는 죽음과 사망으로..

우리를 몰아가서 파괴시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Test)하실 때...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시험(Trial, suffering)입니까?

아니면...

사탄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시험(Temptation)입니까?



◈시험의 유익    눅4:1~13  



▲성경에 나오는 '시험'은 크게 3가지의 뜻을 갖고 있다.

①유혹temptation, ②고난, 시련suffering, trial ③테스트test이다.

혹자는 이 3가지를 따로 떼서, 서로 다른 것으로 해석하는데,

비록 원어가 서로 다를 때도 있겠지만, 저는 이 세 개가 ‘비슷한 말’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아침=새벽=여명이다. 각 자 조금씩 다른 뜻이지만, 서로 비슷한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경구절에 있어서 ‘시험’이란 단어는 그 어떤 의미로 쓰였든지

유혹이자 고난이며 동시에 테스트’로, 광의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옳다고 본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시험temptation도 위 3가지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베드로서에 나오는 시험, 또는 시련suffering, trial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고난이지만, 동시에 (배도의) 유혹이며, 동시에 (승진) 시험인 것이다.



◑1. ‘시험’에 관한 편견 버리기


①잘 되는 일도 시험이다. 

‘시험’이라고 하면, 어려운 일 당하는 것만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험은 일이 잘 풀리는 것이 사실상 더 큰 시험이다.


‘건강한 것은 복, 병든 것은 시험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건강할 때 시험에 더 잘 드는 면도 있다. 자만, 방종, 낭비한다.


곧 어떤(모든) 사건도 시험이 될 수 있다.


②시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예수님도 시험당하셨다.

시험이 없어야 좋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신앙생활 수준이 높아지면 시험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질병이나 사업 관계로 시험당하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③기도해도 시험 당한다.

예수님도 40일동안, 그것도 금식으로 기도하시고 시험 당하셨다.

‘기도 안 했구만...!’ 이 아니다.


물론 기도 안 할 때, 시험에 잘 빠진다.

그래서 예수님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예수님도 40일 금식기도 하시고, 마귀가 찾아왔다.

기도생활해도 시험은 온다. 더 큰 시험이 올 때도 있다.

이 시험을 이김으로써 더 큰 승진, 은혜, 상급을 주기 위한 test이다. 


그러므로 시험 당하는 사람을 무조건 ‘기도 안 해서’로 판단하지 말고,

또한 시험 당할 때, 그것을 승리하면 주시는 상급을 바라보아야 하겠다.


④성령에게 이끌리셔서 시험받는다.

성령의 인도함 받는 사람은 시험 없는 줄로 생각하지만, 그건 잘못이다.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에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시험이 있었다. 

초대교회가 성령 충만 했지만, 스데반과 야고보가 죽고 핍박을 당하면서

많은 시험을 당했다. (그 고난의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더 큰 축복 받았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교회도 시험 받는다.


그러므로 ‘저 이는 왜 저렇게 고난이 많을꼬?’ 라고 의아할 필요 없다.



◑2. 시험의 유익


▲Test로서의 시험

시험이 무조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험을 보면서, 자기 능력을 확인하게 된다. 합격하기 위한 시험이다.

운동선수는, 자기가 정말 잘하는 것인지,

시합에 나가서 시험해 봐야 알 수 있고, 시합에서 이기면 상도 받는다.  


예수님은 광야의 시험을 통해서, 앞으로 일생을 다 계획을 세우신다.

떡에, 인기에, 권력에 절대 절하지 않기로 다짐하신 것이다.

특별히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까지 다 계획을 세우신다.(아래 설명 나옴)

또 공생애의 전략적인 준비도 마치셨다.


▲시험을 통해 교리가 정립되다

초대교회가 성령 충만했지만 스데반, 야고보죽고 핍박을 당하면서

많은 시험을 당했다.

그 시험과 싸우면서 새로운 기독교 위상을 정립하고,

교리와 신앙을 정립하게 된다.


짧은 시간(몇 십 년)만에 기독교의 교리가 확정되었다.

그래서 2천년 동안 그 복음, 교리가 지금까지 전래되어 왔다.


지금도 우리가 모든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초대교회를 돌아가는데

거기에 진정한 교회의 모델, 표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초대교회는 많은 핍박과 어려움과 시험이 있었다. 

그 시험 속에서 기독교가 진리로, 교회가 의로 나타나고 증명되었다.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서 확실히 드러났다.

그러므로 시험은 있어야 한다.


시험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 바로 그것이 시험이다. 

개인과 교회도 각종 시험을 끊임없이 거치면서

신앙이 순수해지고,

교리가 정립되어지고,

기독교의 진리와 정통성을 이어나갈 것이다.

시험을 통해서!



◑3. 예수님의 시험


▲예수님 시험의 초점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었다. 십자가를 질 것이냐, 말 것이냐?

십자가 외에 다른 길은 없느냐?

-3가지 마귀의 시험은 궁극적으로 이런 것이었다.

십자가를 택하지 말고, 쉽고 편한 길을 택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작전계획을 확정하신다. 십자가를 지시기로!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기로 결정을 하신 시간이다.

바로 예수님의 일생의 계획표를 세우시는 시간이었다.

여기서 완전한 준비가 이루어졌고, 그 이후 생애는 실천해 나가신 것이었다.


▲예수님의 3가지 시험

①첫째 시험 - 돌로 떡을 만들어라

예수님도 주리셨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로 떡 만들어 먹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왜 굶고 있느냐?”의 시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느냐?”의 시험이다.


②둘째 시험 - 절하라 (누가복음에서는 이것이 둘째)

한 번만 절하면, 천하만국을 보여주고, 그것을 준다고 약속했다.

우리가 천하만국을 얻어야 하지만, 마귀와 타협해서 얻으려 하면 안 된다.


예수님은 마귀와 타협을 버리고,

대신에 십자가 지심으로, 결국 천하만국을 얻을 전략을 짜셨다.


③셋째 시험 -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굉장하다 생각하면서 추앙할 것 아닌가!

예수님은 인기주의, 화려한 기적주의 길을 택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조용히, 누룩의 비유, 씨 뿌리는 비유와 같이,

조용하고도 천천히 하나님 나라 일을 이루어 가셨다.


이것은 성전꼭대기에 세우고 마귀가 한 말임과 동시에

십자가 달리셨을 때 예수님은 똑같은 유혹의 말씀을 들으셨다.

‘네가 능력이 있으면 내려와 봐라, 그러면 믿겠노라!’ - 이것은 거짓말이다.

표적을 구하는 사람은, 표적만 보고 돌아간다. 여전히 안 믿는다.


기적과 희한한 일을 통해서,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수는 없다.

예수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일을 버리고

십자가 지는 일을 택하셨다.


▲마치는 말

①우리는 모두 시험을 당한다.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시험을 이길 때, 천사가 와서 수종든다. 그의 앞길이 환하게 보인다.


그러므로 시험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하나님이여 이 시험을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것이다. 


②시험을 통해서 기독교의 교리, 교회의 순결성

모든 것이 정립된다.


③예수님 시험의 핵심은 ‘십자가’ vs ‘경제, 명예, 권력추구’에 있었다.

오늘날도 우리 성도들에게 시험은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에 손쉬운 ‘떡, 인기, 권세’를 택하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회피하는 것은 시험에 지는 것이다.


 

 

◑때려야 커 진다

 

어느 시골에 갔더니, 어떤 할머니가 밭에서 고구마 농사를 하면서 

멀쩡한 고구마를 호미로 긁어서 표면에 상처와 흠집을 내고 있었다.

농사에 경험이 없는 도시인이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다.

그런데, 그렇게 호미로 고구마 알(씨)에 긁어서 상처를 내야

나중에 '고구마 알이 커진다'고 한다.

 

강원도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할머니는 애꿎게도 멀쩡한 호박 열매를 몽둥이로 때리고 계셨다.

"왜 그러세요, 할머니?"

"호박은 때려야 커지는거여!" 

 

왕고구마, 왕호박은 그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긁어서 상처를 내고, 사정없이 때려서 멍을 만들어야 커지는 것이다.

자연의 원리가 그렇다... 

 

 

 

◑“시험”이란 말의 번역상의 문제



“유혹”(temptation, 페이라스모스, 한글성경에는 주로 ‘시험’으로 번역)이란 말은

신약성경에 약 21회 나타난다.

그 중 20회의 경우는 trial(시련), test(테스트), ordeal(고난) 등의 의미를 갖는다.


반면에 1회의 경우에 “죄에의 유혹”(temptation to sin)을 의미하는데, 딤전 6:9이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따라서 광야에서 예수님이 마귀에게 당하신 것은 temptation(유혹)보다는,

test(테스트), ordeal(고난)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유혹을 받은 자도 되겠지만, 시련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 성경엔 ‘유혹’대신에 ‘시험’으로 번역하고 있으므로 잘 번역한 것임)

<요아킴 예레미아스 「신약신학」새순출판사, p. 119.


▶사람이 감당할 “시험”의 의미

“사람이 감당할 시험(페이라스모스)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 영어성경은 “시험(페이라스모스)”을 “유혹”(temptation)으로 번역하고 있다.

반면 한글성경은 “시험”(고난의 뉘앙스)으로 번역했다.  

요아킴 예레미아스의 주장이 맞다면, 한글 성경이 번역이 잘 된 것이다.

문맥상 고전 10:13절 말씀은 유혹(temptation)도 되지만,

시련(ordeal)이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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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상목 | 작성시간 17.03.0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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