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영광이란 무엇인가?
신약 성경을 읽다보면 “영광”이라는 말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눅 2:20)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눅 9:31)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
상기 구절의 영광이 각기 다른 의미인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광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떻게 구분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 영광(榮光)은 하나님만의 광채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영광”이라는 용어는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역사에만 적용됩니다. 그 의미는 쉽게 말해 하나님께 도저히 가까이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함이나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찬란한 광채가 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간혹 인간이나 물건에도 영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앞뒤 문맥만 잘 살피면 금방 하나님의 영광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영광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예를 구약과 신약에 각각 하나씩 들어보겠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을 때에 그분의 영광의 광채가 그 얼굴에 반사되어서 백성들이 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출 34:30) 또 예수님이 베드로를 비롯해 제자 셋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랐을 때입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 17:1,2)
하나님의 영광은 빛으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사 4:5) 구름과 연기와 화염의 빛을 “그 모든 영광”이라고 합니다. 구름이나 연기로도 그 영광을 드러내었다는 뜻입니다.
결국 영광이란 하나님의 임재를 실제로 느꼈을 때의 인간 인식의 총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분의 실체가 임재하면 그 앞에 설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은 더럽고 추한 것과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불’이라는 표현도 사실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이 죽지 않고도 당신을 인식할 수 있는 형태나 상황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18,19)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자 원했지만 직접 그분을 보고 살 자가 없기에 바위틈에 숨게 하고 당신의 모든 선한 형상으로 모세 앞에 지나게 했습니다. 모세가 본 것은 얼굴이 아니라 그분의 등이었습니다.(23절) 말하자면 인간이 본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모든 선한 형상입니다. 그분의 얼굴이 아니라 등입니다.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모세의 얼굴에 반사된 광채도 단순히 그분을 인식토록 만든 수단으로써 빛이 동원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 나타나시든 하나님이 당신을 드러내고 싶으면 인간이 그분의 임재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끔 하십니다. 그래서 A. Richardson 이라는 신학자는 “영광이란 하나님의 지상(地上) 임재(臨在)를, 주로 빛으로 나타나는, 인간이 인식한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Bengel은 더 명료하게 “영광은 하나님의 신성이 드러나는 것이다”(The Glory is the Divinty manifests.)라고 정의했습니다.
영광은 바로 하나님 자신
그러나 영광을 단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할 수 있는 빛 같은 물리적 현상에만 제한시켜 이해해선 많이 부족합니다. 영광은 그분의 속성 전체를 망라한다고 봐야 합니다. 쉽게 비유하면 이러합니다. 아주 의로운 사람이나 특정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만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우리말로 ‘아우라’라고 표현하듯이 왠지 모르게 뒤에서 빛이 나는 것 같고 큰 권위가 느껴집니다. 실제로 빛이 나거나 물리적 힘이 작용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쌓아온 그 모든 성품이나 실력, 나아가 그 인격체 자체가 아우라인 것입니다.
사람에게서도 이러할진대 정말로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분과 교제, 동행한 체험이 있다면 그분에게서 느끼는 아우라는 인간의 언어로는 도무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영광이라는 한 단어로 밖에는 말입니다. 영광은 그분의 임재는 물론 동행하심을 직접 겪고 난 이후에 그분 전체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래서 영광은 하나님에게만 속하지만 곧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 간섭하셔서 그들로 당신을 알게 했던 그 모든 신앙체험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렘 2:11)
이스라엘이 당신께서 간섭하신 내용을 제대로 안다면 도무지 우상을 숭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시 8:1)
하늘 위에 영광을 두셨으니 하늘의 별빛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쉽게 설명하기 위한 비유입니다. 동일 내용을 평행구절로 반복하는 것은 히브리어의 대표적 수사법입니다. “주의 이름”과 ”주의 영광“은 동의어입니다. 주의 이름 즉, 그분의 모든 속성을 온 땅과 온 하늘, 우주 만물에 드러내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 6:13) 여기서 영광은 그분의 그분다우심, 그분의 모든 속성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지지 않는다.(immortal)”(롬 1:23)고 형용했습니다.
요컨대 영광은 하나님 당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서 고귀한 성품, 권세, 힘 등이 다 없어져도 여전히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당신의 품성, 권위, 능력 등이 다 합쳐져서 겉으로 드러나는 아우라 즉, 영광이 사라지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Calvin은 “우리가 그분을 알 때 그분의 영광을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은?
비록 영광이 하나님 당신이라고 말할 수 있어도 구체적으로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반드시 빛, 구름, 연기 같이 물리적 양상을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종교적 관념으로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의 백성과 당신 사이에서 반드시 지정의적 반응이 수반되는 영적 교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자가 그분의 영광을 맛보면 반드시 1) 그분의 그분다우심에 대한 경외감과, 2)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그분 앞에 서게 되는 겸비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광을 보고 지각할 수 있는 경로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창조와 그 피조물에 드러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 1:20)
아름답고 위대한 자연을 바라볼 때에 분명히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또 그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운행되는 모습을 볼 때에 그분의 숨결을 들을 수 있습니다. 창조와 창조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신 후에 심히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뜻대로 완벽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인간은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는데, 당신의 영광스런 속성을 인간에게도 부여했다는 뜻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 1:17)
하나님에게만 적용될 영광을 인간도 일부 갖고 있기에 인간을 숭배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할 수 있고 이 땅을 그분 대신에 다스려야 할 책임을 맡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는 둘째 대상은 예수님과 그 십자가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9,14,17)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다 드러내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어 죄인을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표현합니다. 외적으로는 비천한 모습으로 죽으셨기에 찬란한 광채가 나는 상태와는 전혀 반대이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온전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독생자를 죽이시더라도 죄인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구원하시겠다는 뜻은 도무지 인간의 생각과 다른 오직 그분만의 성품이기에 영광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또 그 구원의 은혜를 맛본 자는 그분에 대한 경외감과 자신에 대한 겸비함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는”(눅 24:26)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스승의 참혹했던 십자가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자 부활하신 예수님이 당신의 죽음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풀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또 그래서 예수님은 죽기 전날 밤에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1)라고 시작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 때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눅 21:2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의 시련을 견뎌낸 성도들에게는 독생자의 영광으로 덧입히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1)
천국에서 부활한 성도는 영광스런 육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골 3:4) 부활한 성도도 주님과 함께 강림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창조와 재림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그 십자가는 성령의 간섭으로 신자의 영이 거듭나야 비로소 그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신자 속에 내주하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영과 교통함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자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리는 중에, 아니 평소에도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는 중에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이 바로 내 앞에 서있다는 인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인생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위대한 능력, 신비한 섭리, 완전하신 인도, 또 장래에 보여주실 비전 등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절로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엎드리게 됩니다. 외적 예배의 형태를 갖춘다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심령이 완전히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또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으로 자신의 심령과 삶에 가득 채워지기를 소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 뜻대로 순종하여 그분의 일에 쓰임 받고 싶어지며 실제로 그렇게 실천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사역에 함께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신자가 그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온전하고도 절대적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자연히 그분에 대한 경외와 소망과 믿음과 사랑이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장하게 됩니다.
반드시 거창한 종교적 의식이나 업적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은 그분의 뜻이 세상에 구현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했듯이 사탄의 미혹된 영혼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여 죄에서 구원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뿐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보려고만 해도, 하나님 외의 어떤 다른 존재나 대상을 경배해선 안 됩니다. 특별히 사람들과 자신을 높이는 그 어떤 것이라도 완전히 제거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언제나 질투의 하나님으로 다가옵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 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니라.”(출 34:14)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당신만의 십자가 사랑으로 사랑하셨기에 절대적 배타적 사랑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신자는 무엇을 먹든 마시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 요리 문답 1항대로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영광의 구체적 예들
지금껏 설명 드린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근본 개념을 갖고서 질의하신 세 구절의 구체적 의미를 살펴봅시다.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눅 2:20)
본문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그분의 그분다우심을 온전히 실감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객관적 사실만 수긍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놀라운 권세를 보고 들으면서 그 분을 향한 경외심으로 충만해졌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목자들은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했습니다. 또 천사가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며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나아가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라고 찬송했습니다. 그래서 그 천사들의 말대로 베들레헴에 가서 보니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아 강보에 안고 있음을 목도했습니다.(2:8-19) 이 모두가 환상이나 공상이 아니라 실제 체험이었을 뿐 아니라 그러는 와중에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권세에 온전히 붙들려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밤중에 천사가 나타나서 찬란한 빛 가운데서 메시아 탄생에 대한 예언을 합니다. 또 그 예언을 보증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천군이 내려와 웅장한 찬양을 합니다. 헨델의 메시아 합창곡보다 더 장엄하고 경건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또 그 예언대로 실제로 일어났으며 아기 예수를 보는 순간 틀림없이 천사의 예언대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평강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에게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올려 드릴, 즉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눅 9:31) 본문의 영광도 같은 의미입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할 때에 실제로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휘어져 광채가 나더니 무든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29,30절)였습니다. 성경에 구체적 묘사가 없지만 베드로를 비롯한 세 제자가 본 것은 천국의 영광이었습니다. 지상세계와 전혀 다른 광채와 위엄이 아름답게 눈앞에 펼쳐졌던 것입니다.
변화산 기사의 첫 머리는 “이 말씀을 하신 후에 팔일 쯤 되어”(28절)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대로 실현되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려고 산에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27절)라는 말씀입니다. 제자 중 일부가 죽기 전에 천국의 영광을 볼 수 있다고 말했으니 세 제자가 본 것은 실제 천국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장엄했으면 베드로가 산 밑으로 내려가기 싫다고 말했을까요?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제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한 내용입니다. 그 기도의 시작이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영광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도 동일한 사역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이 진리의 영인 성령을 통해 복음의 비밀 깨닫게 되고, 또 성삼위 하나님이 하나가 된 것 같이 하나가 되며, 비록 세상에서 미움을 받으나 진리로 이겨내며, 하나님이 당신을 세상에 보낸 것 같이 저들도 세상으로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신 것입니다. 또 세상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제자들을 볼 때에 아버지의 이름과 당신의 십자가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하면서 기도를 마쳤습니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3-26)
요컨대, 하나님의 영광은 당신께서 인간 앞에 당신다우심을 직접 나타내실 때에 인간이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장엄함과 거룩함을 말합니다. 그분의 현현(顯現)은 천사나 빛과 구름 같은 가시적 매개체를 통해, 혹은 말씀과 기도 같은 신자와의 불가시적인 영적교통을 통해 드러납니다.
어떤 경로가 되었던 그분을 실제로 만나 그분의 마음을 읽게 된 신자는 그분을 향한 사랑과 소망으로 충만해집니다. 또 마땅한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며 그분 뜻대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것 외의 어떤 반응도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그분의 영광을 실제로 본 것도 아닙니다.
Q :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인가요?
A : 와우. 정말 좋은 질문이네요. 왜냐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안 그래요?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매우 정의하기가 어려워요. 제가 한 번 해보도록 하죠.
하나님의 영광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보다 더 본질적으로 널리 쓰여 있는 진리를 성경에서 찾을 수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원하시고, 그렇게 느끼기 원하시고 그렇게 행동하기 원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영광스러우신 만큼 영광스럽게 보이게 하라는 거죠. 우리는 그분께 영광을 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밝게 빛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그러니까 우리 삶의 목적은 사람들이 우리를 잘 알게 되었을 때에 그들이 '하나님은 영광스러우시군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존은 영광스러워요!'가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스러우십니다!'라고 말이죠.
이게 뭘까요? 저는 하나님의 영광은 그 분의 무한한 가치가 대중에 선포되는 것(going public)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하나님의 무한한 가치, 무한한 본질적인 하나님의 귀중함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피조물 가운데서 공개적으로 드러났을 때(going public), 하늘(천국)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할 것이고 인간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미쁘심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제가 '영광'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이사야 6장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거기서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무엇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 무엇이 '거룩'이라는 단어라고 생각하셨겠지만, 그들은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무엇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하며, (하나님의 거룩이) 온 땅에 가득차고 공개적으로 드러날 때에 그것을 '영광'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거룩하심의 비추임(radiance)입니다.
그분의 다채롭고 무한하신 귀중함과 소중한 완벽하심에 대한 비추임(radiance)입니다.
...........................................................................**.......................................................**................................
영광의 의미
♥ 들어가며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이라 말씀하시고는, 그 영광을 제자들도 보기 원하신다 하셨습니다(요17:24).
그 영광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영광(榮光)의 어원
1) kabod(히: 카-보-드)
'무게, 중요성, 가치있는 것'의 의미에서, '영광'을 가리키게 되었다(창49:6;출16:7;레9:6,민14:10;신5:24).
2) doxa(헬: 돜사)
'의견, 인정'의 의미에서, '영광'을 가리키게 되었다(마4:8,6:29;막8;38,10:37;눅2:9,4:6;요1:14,2:11)
3) Glory(영: 글로리)
일반적으로 사물이나 인간의 뛰어난 것, 선미한 것, 빛나는 것 등을 의미하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나타나심, 임재의 의미이고, 하나님 찬양에 있어서 씌어진다(사35:2;마6:29).
2. 영광의 의미
하나님의 완전성, 탁월성, 임재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씌어지는 용어로, 하나님의 존재나 성품이 물리적인 현상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출16:7,24:15-18,40:34-35;왕상8:11)을 의미한다. 때로 인간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마4:8,6:29).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을 통하여 세상에 아버지의 독생자로서 영광을 나타내보이심(요1:18,3:35,5:20,17:24)
2)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력을 행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계시되었다(요11:4,40,17:4)
3) 명예나 존경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요7:18,8:50,54)
3.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존재 양식으로서의 영광으로, 하나님이 나타나고 표현되는 것을 가리킨다(요17:5,1:1,2).
1) 하나님은 시내산과 성막위에 머문 구름에 의해 친히 그 임재를 보여주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셨다(출24:16,40:35). 피조물인 인간은, 이 하나님을 직접 볼 수가 없으므로, 다만 그 영광을 간접적으로 우러러 본다(출33:17-23).
2)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시고(요1:14,18),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참된 모습)'이시다(히1:3).
3)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력을 행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계시되었다(요11:4,40,17:4).
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요12:23)과 부활(롬6:4) 그리고 승천(행1:9, 구름)은 죄에 대한 승리로서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
영광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장차 입게 될 것을 대망하는 하나님의 은사이다(롬5:2). 이러한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성도는, 무슨 일에 있어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권하고 있다(고전6:20,10:31).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5.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이유
1)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10:31;롬11:36;시73:24-26;요17:22-24 ->소요리문답 1번).
2)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셨다"(요17:4).
3) 성경에 거듭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6.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1) 믿음의 생활(롬4:20;빌2:11;고후1:20) 2) 복종과 섬김의 생활(마20:28;고후9:13).
3) 봉사하는 생활(벧전4:10,11). 4) 착한 행실의 생활(마5:16;벧전2:12).
5) 능력있는 생활(시29:1) 6) 이웃을 사랑하는 생활(롬15:7)
7) 전도의 생활(갈1:23,24;행21:20)
6.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
1) 예배를 드림으로(롬12:1) 2) 회개를 통하여(수7:19;행11:18).
3) 감사함으로(고후4:15) 4)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계19:7).
5) 찬양으로(시150:6;사43:21) 6) 고난을 받음을 통하여(벧전4:15,16;마5:10-12)
7)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마15:31;눅5:25) 8) 무엇을 하든지 영광을 돌린다(고전10:31)
♥ 나가며
'영광'이란 헬라어 독사(doxa)는 의견, 인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리서"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는 말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정합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식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린다."는 말을 잘못이지만 자신의 기쁨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면 권장할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의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요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