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석기 말기 부터 청동기 초기까지 한반도 남부 사람들은 동해 바닷가에서 고래 사냥을 즐겨 했음.
이들 한반도 사람들은 고래의 이동을 따라 동해안 연안을 지속적으로 이동했으면 , 결국 캄카차 반도를 지나 알류산 열도를 지나 알래스카 까지 이동했음. 그 곳 까지 이동하여 고래 사냥을 했음.
한반도 남부 사람들의 이동에 따라 동아시아와 신대륙간의 교통로가 발견되어 장기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왕래가
되었음. 한반도 사람들은 알래스카에 정착하여 그 곳에서 살다가 그 곳 현지 사람들에게 동화 되었음.
한반도 사람들이 알래스카와 알류산 열도 등지에 이동한 고고학적인 흔적이 있었음.
청동기 와 철기 유물이 알류산 열도 등지와 알래스카에 발견되었고, 온돌로 지어진 집 흔적도 알류산 열도와 알래스카
연안등지에 발견되어 미국 고고학자들과 러시아 학자들을 멘붕 시켰음.
특히 알류산 열도의 어느 섬에서는 10세기 경에 만들어진 철제 칼이 발견되었음.
선사시대 말기부터 고래 사냥으로 발견된 알래스카부터 만주, 한반도로 이어진 이동통로는 장기간 한반도와 만주쪽의 사람들중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경제적 목적으로 이용되었음.
고구려와 부여쪽 사람들은 물론이요 발해 사람들까지 알래스카 등지를 방문했음.
한국쪽 사람들의 방문이 자주는 아니자만, 그 쪽 방면으로 지속적으로 방문하자, 시베리아 와 알래스카 쪽 사람들도 한반도 북부와 만주 발해를 방문하여 무역활동을 했음.
만주의 발해 유적에 시베리아와 무역했던 흔적이 여러 차례 있었음. 심지어 청나라와 러시아와의 국경 조약을 맺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은 네르친스크 지역보다 더 북쪽에 발해의 유적이 발견되어 발해의 북쪽 영역이 어디 까지인지 논란이 있었음.
발해 사람들은 러시아 사람들 처럼 담비 가죽을 신라와 당나라에 팔았기 때문에 담비 가죽을 얻기 위해서도
시베리아쪽 사람들과 무역 활동을 했으며 직접 알래스카까지 갔을 것이라 추측함.
알래스카까지 이어진 교통로는 발해 멸망 이후에 단절되었음.
발해 멸망 이후에 만주에 공백이 생겼고, 많은 발해인들이 요나라와 고려 등지에 흩어지면서
만주와 시베리아, 알래스카로 이어진 무역로가 단절되었다고 보아짐.
소수의 발해인들은 거란인들의 박해를 피해 시베리아 등지로 이주했고, 일부는
아예 알류산 열도는 물론이로 알래스카까지 이주했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모름.
[당시 발해가 멸망 이후에 발해 통치하에 있었던 일부 말갈족들은 거란의 가혹한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만주에서 오호츠크 해를 건너
사할린으로 들어가 살았고, 일부는 훗카이도 북부까지 들어가 살았음. 나중에 혼슈 북부에 있었던 아이누족들이 일본애들의
압박에 못이겨서 훗카이도 남부 쪽으로 도망쳤으면 기존에 거기에 있있던 아이누족과 연합하여 훗카이도 북부를 물론이요 사할린 남부까지 진출하자, 그곳에 살고 있었던 발해계 말갈족들은 아이누족의 공격에 대부분 죽거나 일부는 살아 남아 사할린 북부로 도망쳤음. 그리고 그 곳의 소수 민족으로 살아 남아 다른이름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러시아인에 의해서 멸종 당함.}
발해 멸망 이후에 동아시아와 알래스카 등지로 연결된 교통로가 단절됨에 따라 17세기 후반에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걸쳐서
알래스카등지를 다시 발견할 때까지 수백년 동안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
2. 삼국시대에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열도로 이주했지만, 대신에
일본 열도의 사람들도 삼국시대에 한반도로 이주했음.
비록 한반도 사람들보다야 규모면에 작았지만, 어째든 일본인들도
한반도 남부로 이주했음.
가야와 신라가 세워지기 전인 변한 시절부터 경상도 남부로 큐슈 등지에 살았던 야요이인과 죠몬인들이 이주했고
그 흔적이 남아 있음. 심지어 신라 세워지기 전인 경주에 있었던 사로국에 까지
큐슈의 야요인들이 대거들어와 살았음. 6세기 초까지 큐슈의 아요이인들이
수백년동안에 꾸준이 유입되었음.
야요이인들은 청동기 말기 시절에 한반도 남부로 이주한 고조선쪽 사람들 때문에 이들의 압력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일본 열도로 도망친 한반도 남부 원주민들의 후손들임.
이들은 죠몬인들을 정복하거나 혼혈했으니 바다 건너 들어오는 중국쪽, 동남아시아쪽 사람들도 혼혈함.
이들은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변한 시절부터 경상남도 김해 부산 울산 , 경주 등지로 역이민 했으면
가야와 신라 시절에도 꾸준히 역이민했음.
특히 고구려 광개토 태왕의 가야 출병과 백제 신라의 압박으로
인구가 크게 부족한 가야 입장에서는 큐슈 등지로 건너오는 아요이인들의 이민을 대거
받아 들여서 인구 문제를 해결했다. 가야는 인구가 크게 부족하여 젊은 여성들까지도
군복을 입혀서 군인으로 써 먹기 까지 했음. 그 흔적이 가야 무덤에 발견되기 까지 했음.
혼슈 쪽 특히 오사카 등지에 살았던 왜인들(야요이인들)은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까지 전라남도 쪽으로
대거 이주했음. 백제의 정치적 파동(동성왕과 무령왕이 일본에서 백제로 귀국 하는 사건) 때문에 오사카 등지에 살았던 백제인과 그 후손들이 본국 백제로 다시 돌아감에 따라서
이들 백제인(지배인)을 따라 야요이인(피지배인들)들도 대거 따라감. 이들중 일부는 공주 부여쪽에 정착해서 살았지만,
대다수는 무슨 이유인가 전라남도쪽에 정착해 살았음. 백제계 왜인들은 본국으로 와서
전라남도에 정착해 살았고, 죽을때에 고향(왜국)의 방식으로 매장함. 지속적으로 왜국쪽으로
사람들이 온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일회성으로 온 것이라 왜국에서 전라남도로 들어온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지인들에게 동화 되었음. 나주 영암 목포 광주 등지에 발견된 일본식 무덤들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도 다 이런 이유였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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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raven 작성시간 22.02.18 1번 참고문헌이 있을까요? 더 찾아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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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코스모스 방안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2.18 KBS1 '다큐공감' '한반도에서 알래스카까지! 고래의 길을 가다' 편 2014년 11월 1일 방송.
배재대 손성태 교수 구글, 유튜브로 검색하세요.
손성태 교수의 일부 말이 맞지만, 과장된 면도 많아요.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러 보내세요. -
답댓글 작성자raven 작성시간 22.02.19 코스모스 방안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