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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자료-
고려는 콜롬부스배 만한 배를 5백년 먼저 만듦.
( 서양과학이 동양을 앞선것은 1730년대 부터 - 서양 학자들 주장
그 전에는
즉 산업혁명 전에는
동양과학이 서양보다 높았음)

기록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이 건조한 대선(大船 - 큰배) 은 그 길이가 36.6m 에 무게만도 250∼280톤에 이르렀다 한다.
이는 15∼16세기경 콜룸부스가 항해한 배의 규모 인데
이미 5∼6백년전에 고려에서 만든 실력 에 비추어 고려의 해상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배위에서 말이 달릴만 했다고도 한 것이다.
당시 고려의 배에는 대선, 과선 등의 군함에서 순찰선인 순선, 행정지도선인 관선, 소나무로 만든 큰 배인 송방, 막선 등 매우 다양하다
일본의 「소우기」 기록에 따르면 고려의 배, 그 중에서도 과선은 철로 뿔을 만들어 적을 부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에 비추어보면 거북선이 바로 고려군함을 원형으로 하여 개발된 것 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배에는 세계최초로 대포를 설치 하였다.
'1019년 고려전함이 화약을 넣어 공격한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일본 소우기).
이렇게 보면 중국이 4대 발명품으로 자랑하는 것중에
이미 한국이 원조이자 종주국으로 밝혀진 인쇄술과 더불어
'화약'도 한국이 최초로 발명했다는 새로운 사실 도 밝혀진 셈이다.
이후에 나온 거북선도 3층 구조인데
고려배의 건조방식과 대포설치를 이어받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고려배는 한선(韓船 - 한국배) 기능 보유자인 이원식이 밝힌 대로 바닥이 평평하며 배의 앞뒤가 부드러운 유선형으로 굽어져 올라간 형상이다.
그리고 밑바닥에 돌을 두어 15˚의 기울기에도 원상회복이 가능하게 했고
배나무 펌프를 설치하는 등 고도의 과학 을 동원했다.
이러한 해양국 고려의 면모가 있었기에 활발한 해상교역이 가능했고
문화와 예악, 보화, 각종물자 등이 늘 오갔고 화려하고도 풍요로운 사회가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서긍은 고려의 객관 ( 여행객이 묵는 여관)이 궁궐만 했다고 하여 활발했던 국제무역 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이규보는 자신의 시(詩) 가운데
고려배가 베트남 등은 물론이고 대식국(아라비아), 마팔국(인도), 섬라곡국(태국) 등지까지 오갔다 고 했다.
사실 오늘날 한국을 가리키는 영문자 'KOREA'도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를 보고 부르던 말에서 유래된 것 이다.
해상제국 백제의 해양활동과 장보고의 청해진 시대를 이어받은 고려다.
그래서 고려배도 그 조선술과 전통을 이어받는다.
이에 힘입어 해상왕국 고려는 3개월만에 9백척을 건조했다 고 한다.
지금도 전하고 있는 고려의 청동거울 중에는 항해 중인 고려배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렇듯 갈래갈래 있는 파편들과 앞서 언급된 기록들을 모으고 연구하여
고려배에 관한 기록과 원형복원 작업을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고려의 해상력을 다시 밝히는 한편 해양대국을 꿈꾸는 21세기 한국의 미래의 본보기로 삼아 나가야 할 것이다.
퍼온곳: http://203.230.168.66/~kangjb56/문화유산/고려배.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