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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운명]계명구도(鷄鳴狗盜)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9.05.01|조회수59 목록 댓글 0

계명구도(鷄鳴狗盜)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으로, 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요긴하게 쓸모가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鷄 : 닭 계(鳥/10)
鳴 : 울 명(鳥/3)
狗 : 개 구(犭/5)
盜 : 훔칠 도(皿/7)

(유의어)
계명구도지도(鷄鳴狗盜之徒)
계명지객(鷄鳴之客)
함곡계명(函谷鷄鳴)

출전 : 사기(史記)의 맹상군전(孟嘗君傳)


이 성어는 작은 재주가 뜻밖에 큰 구실을 한다는 뜻이며, 사대부가 취하지 아니하는 천한 기예(技藝)를 가진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 개 흉내를 내는 식객의 도움으로 여우 가죽옷을 훔쳐서 위기를 모면하고, 닭 우는소리를 흉내를 내는 식객의 도움으로 관문(關門)을 무사히 통과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때는 중국의 전국시대였다. 당시 중국은 여러 나라로 나뉘어져서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그 중 齊나라에 맹상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맹상군은 당시 齊나라 선왕(宣王)의 막내 동생으로 대단히 현명한 사람이었다. 특히 맹상군은 뛰어난 인재를 자기 밑에 두기 좋아했다.

정치학에 뛰어난 사람, 경제학에 뛰어난 사람, 각종 기예가 출중한 사람 등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기 밑에 두었다.

그런 소문은 듣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와서 자기 재주를 뽐냈는데 그러는 중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었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맹상군 밑에 있기를 원했다.

맹상군은 흔쾌히 그 사람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실제 그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었다.

맹상군의 부하들이 그 사람을 내쫓으라고 했으나 맹상군은 “나는 그 사람의 거짓말 기술을 산 것이다” 라며 거부했다.

이렇듯 맹상군이 재주가 있는 사람이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받아주다 보니 그가 거느린 식객이 3000명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날 맹상군 앞에 한 특이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맹상군에게 좋은 팔찌가 있으니 사달라고 부탁했다. 황금으로 만든 아주 귀한 팔찌였다.

맹상군은 흔쾌히 그 팔찌를 천냥을 주고 샀다. 팔찌를 비밀 창고에 넣어 놓고 생각해 보니 예전에 어디선가 많이 본 팔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집을 나와 볼일을 보러 가는데 아까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 아까와 똑같이 생긴 팔찌를 가져와서 “아까 그 보물은 원래 쌍팔찌입니다. 아까 것은 수컷이고 이번 것은 암컷입니다. 같이 짝지어 놓으면 더욱 가치 있을 것입니다.” 하는 것이다.

맹상군은 이번에도 역시 천냥을 주고 팔찌를 샀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좋은 보물을 얻었다 싶어서 좋아하며 비밀 창고를 여는 순간 맹상군은 깜짝 놀랐다.

조금 전에 놓아두었던 팔찌가 없어진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볼일이 있어 나중에 찾아보기로 하고 다시 집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아까 그 사람이 다시 맹상군 앞에 나타났다. 아까와 똑같은 팔찌 하나를 더 사라고 하는 것이다.

맹상군은 이제야 그 사람이 처음부터 맹상군 집에 있던 팔찌를 훔쳐 자신에게 되팔았다는 것을 알았다.

맹상군은 “2천냥을 돌려주면 그 팔찌를 사주겠네.” 하니 그 사람이 “제 몸값이 2천냥입니다. 저를 식객으로 받아 주십시오.” 하는 것이다. 맹상군은 껄걸 웃으며 그 사람을 식객으로 받아줬다.

또 어느날 맹상군이 길을 가는데 골목 뒤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렸다. 맹상군과 부하들은 놀라서 어서 피하자고 했다. 그런데 골목에서 나오는 것은 개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맹상군이 그 사람에게 다시 개짖는 소리를 내보라고 하니 정말 똑같이 내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쥐, 닭, 말, 고양이 등 모든 울음 소리를 다 똑같이 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다. 맹상군은 그 사람도 역시 자신의 식객으로 받아줬다.

때는 전국시대 말엽이어서 전국 최고의 강국은 후에 통일 국가를 이루는 진(秦)나라였다.

秦나라의 소왕(昭王)은 맹상군이 재주가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고서 자신 밑에 두고 싶어했다.

그래서 맹상군에게 秦나라의 대신을 맡길 테니 자기 나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맹상군은 여러 번 거절했으나 강대국 왕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결국 秦나라로 가게 되었다. 여러명의 식객들과 같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정말 귀중한 여우 털 코트인 호백구(狐白裘)도 가지고 갔다. 암 여우 천 마리를 잡아야 하나가 만들어진다는 정말 귀한 물건이었다.

아무튼 BC 299년 맹상군은 많은 무리들을 이끌고 秦나라에 도착했다.

秦나라 왕은 맹상군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와 이야기해 보니 정말 뛰어난 인재이기에 승상으로 임명하고 나라의 국정을 맡겼다.

하지만 기존 秦나라 대신들이 그것을 좋아라 할 리가 없었다. 秦나라 대신들은 맹상군이 제(齊)나라 사람이니 분명 齊나라에 유리하도록 국정을 이끌 것이라 말하여 맹상군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고자 했다.

진소왕도 결국 설득되어 맹상군을 승상에서 내치게 되었다. 하지만 맹상군이 다른 나라에 갈 경우 그 나라가 크게 번영하게 될 것이 뻔하니 집에 감금해 놓았다. 맹상군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맹상군 밑에는 별별 재주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염탐을 잘 하는 식객이 조정을 살피고 와 맹상군에게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될 것이니 빨리 피해야 한다고 일러줬다. 하지만 갇혀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맹상군의 식객들은 자신들의 재주를 모두 발휘해 맹상군이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결국 알아낸 방법은 단 하나 진소왕이 아끼는 애첩인 연희(燕姬)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진소왕은 연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연희가 부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이다.

맹상군은 갖은 금은보화를 연희에게 보내어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연희는 들은 척도 안했다.

연희는 이런 보물은 나에게도 얼마든지 있다고 필요 없다고 했다. 다만 맹상군이 가져와 진소왕에게 선물했던 여우털 코트 호백구를 자신에게 준다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호백구는 암 여우 천마리를 잡아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여우 천마리를 잡을 수도 없고 당시 최강대국 진소왕에게 선물한 것을 다시 달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자신이 호백구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는 팔찌를 훔쳐 팔았던 그 도둑이었다.

맹상군과 다른 부하들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秦나라 왕의 보물 창고에는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 있다고 하며 호백구를 찾아 나갔다.

하룻밤이 지나고 그 도둑은 천부적인 재능을 살려 호백구를 훔쳐오는 데 성공했다.

맹상군은 좋아라 하고 바로 연희에게 호백구를 보냈다. 연희는 기뻐서 맹상군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날 밤 여지없이 진소왕은 연희를 찾아왔다. 연희는 자신과 잠자리를 하고 싶으면 맹상군을 돌려보내라고 부탁했다. 진소왕은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맹상군과 그 부하들은 준비해 두었던 마차를 타고 최대한 빨리 秦나라 국경을 빠져나가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秦나라는 철저한 법치국가였다. 어떠한 관문도 통행증이 없이 통과가 불가능 했다.

하지만 맹상군 밑에는 문서위조 전문가도 있었니다. 문서위조 전문가가 만든 가짜 통행증은 아무런 의심없이 관문을 통과하게 해주었다.

한편 진소왕은 잠자리에 들고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맹상군을 보내 주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진소왕은 바로 추격병을 보내 맹상군을 다시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맹상군을 확실히 잡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秦나라 밖으로 나가려면 함곡관(涵谷關)이라는 관문을 지나야 하고 함곡관은 새벽닭이 울기 전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무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맹상군 일행은 열심히 달려 함곡관에 도착했다. 하지만 때는 한밤 중 함곡관은 굳게 닫혀있었다.

어떻게 할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맹상군에게 갑자기 동물 소리 전문가가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수많은 식객 중 동물소리 전문가를 찾아내 불러왔다. 동물소리 전문가는 자신 있게 나와서 꼬끼오~~~ 닭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듣고 함곡관 주변 모든 닭들이 새벽이 온 줄 알고 다같이 울었다. 함곡관 문지기도 깜짝 놀라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눈 비비면서 성문을 열었다.

역시 가짜 통행권을 보여주고 무사통과하여 결국 맹상군 일행은 무사히 秦나라 밖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계명구도(鷄鳴狗盜)는 보통 군자가 배워서는 안 될 하찮은 기술쯤의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반대로 별 쓸모없이 보이는 기술도 필요할 때는 중요한 기술이 된다는 뜻도 된다.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재주란 재주가 있으면 누구든 받아들였던 맹상군이었기에 남들이 보았을 때 쓸데없는 재주도 자신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재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염옹(冉雍)이 詩로 이를 찬탄했다.

明珠彈雀 不如泥丸.
명주탄작 불여니환.
아름다운 구슬로 새를 쏘느니 보다는, 진흙으로 만든 탄환으로 쏘아야 한다.

白璧療飢 不如壺餐.
백벽료기 불여호찬.
옥이 아무리 보배라고 하지만 굶주린 배를 채우려면, 음식을 먹느니만 못하다.

狗吠裘得 鷄鳴關啓.
견폐구득 계명관계.
개소리를 내어 백호구 가지고 왔으며, 닭소리를 내어 함곡관 관문을 열게 했다.

雖爲聖賢 不如彼鄙.
수위성현 불여피비.
비록 성현이라 할지라도, 그 두 선비처럼 짐승소리는 내지 못했으리라.

細流納海 累塵成岡.
세류납해 누진성강.
그러므로 알라, 시냇물은 흘러서 바다가 되고, 티끌을 모여서 큰 언덕을 이루는도다.

用人惟器 勿陋孟嘗.
용인유기 물누맹상.
사람의 개성을 존중해야 사람을 쓸 줄 아는 것이니, 사람들이여 맹상군을 천하다고 하지 마라.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나온다.

이렇게 닭 울음소리와 도둑질로 맹상군 일행을 위험에서 구해 준 사람들을 당시 다른 식객들은 학문도 없고 당당함도 없는 사람이라며 비웃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깊은 학문도 없이 비천한 잔재주만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계명구도지도(鷄鳴狗盜之徒)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를 줄여 계명구도라 한다.

정치 비판적인 글을 많이 썼던 송(宋)나라의 정치가이자 문인이며,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은 독맹상군전(讀孟嘗君傳)에서 맹상군을 기껏해야 계명구도의 무리들이나 거느린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世皆稱孟嘗君能得士.
士以故歸之, 而卒賴其力,
以脫於虎豹之秦.
세상 사람들은 맹상군은 선비를 얻었으며, 선비들은 이 때문에 그에게 귀복하였고 마침내 그들의 힘에 의지하여 호랑이나 표범 같은 진나라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嗟乎. 孟嘗君特鷄鳴狗盜之雄耳. 豈足以言得士.
오호라! 맹상군은 다만 닭 울음소리나 내고 개처럼 개구멍으로 들어가 도둑질이나 하는 무리의 우두머리였을 뿐이다. 어찌 선비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不然擅齊之强得一士焉.
宜可以南面而制秦,
尙取鷄鳴狗盜之力哉.
그렇지 않았다면, 제나라의 강성함을 가지고 제대로 된 선비 한 사람을 얻어 남면(南面)하여(왕이 되어) 진나라를 제압했어야 마땅한 일이었을 텐데 오히려 닭 울음소리나 개처럼 개구멍으로 들어가 도둑질이나 하는 방법을 빌리다니.

鷄鳴狗盜之出其門,
此士之所以不至也.
닭 울음소리나 내고 개구멍으로 도둑질을 하는 자들이 그의 문하에서 나온 것이 바로 참된 선비들이 그에게 오지 않은 까닭이었던 것이다.


⏹ 계명구도(鷄鳴狗盜)

전국 시대의 제후들은 각기 부국강병을 이룩하기 위하여 인재를 모으는 데 힘을 기울였지만 제후들뿐 아니라 당시의 유력한 귀족들도 그 신분에 따라 인재를 모으기에 광분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전국의 사군(四君)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 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 공자 무기(無忌),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黃歇) 네 사람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맹상군이었다. 맹상군은 선왕의 막냇동생이며 위왕의 손자이다. 그의 문하에는 식객(食客)이 3천 명이나 되니 그의 명성은 제후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진나라 소왕이 맹상군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경양군(涇陽君)을 인질로 보내놓고 맹상군 보기를 원하였다. 맹상군이 진나라에 가려고 하자 그의 식객들은 모두 반대하여 가지 말라고 간하였으나 맹상군은 기어코 진나라에 가려 하였다.

식객 가운데 소대(蘇代)가 또 만류하며 말하였다. “오늘 아침 제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무로 만든 인형과 흙으로 빚은 인형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무인형이 말하기를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당신은 장차 부서지고 말 거야.’라고 하니 흙으로 빚은 인형이 말하기를 ‘나는 흙에서 태어났으니 부서지면 곧 흙으로 돌아갈 뿐이지, 이제 비가 내리면 당신은 떠내려가서 그칠 곳을 알지 못할 것이야.’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호랑이 같은 나라이온데 군께서 가려고 하시니 만일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군께서는 흙인형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입니다.”

맹상군은 소대의 의미 깊은 말을 듣고 진나라로 가는 것을 중지하였다.

제나라 민왕 25년 다시 진나라에서 맹상군을 보내달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맹상군은 마침내 진나라에 들어갔다. 진의 소왕은 즉시 맹상군으로 진나라 정승을 삼으려고 하였다.

소왕의 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맹상군은 현명하나 제나라의 일족(一族)입니다. 그가 진나라의 정승이 된다 해도 반드시 제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진나라를 뒤로 미룰 것이니 진나라로선 위태로운 일입니다.”

소왕은 그럴듯하게 생각하여 정승으로 삼으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맹상군을 가두었다. 어진 사람을 등용하지 않을 경우 죽여 없애는 것이 당시 제후들의 일반적인 관례였다. 우선 가둬 놓고 계략을 써서 죽이자는 것이 진나라의 계획이었다.

맹상군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었다. 맹상군은 서둘러 사람을 시켜 소왕이 가장 총애하는 여인에게 뇌물을 보내고 자신의 석방 운동을 벌이게 하였다.

그러자 그 여인이 말하였다. “석방해주는 대가로 맹상군이 가진 흰 여우 갖옷(狐白裘)을 나에게 주시오. 그렇게 한다면 맹상군을 석방하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맹상군은 단 한 벌의 호백구(狐白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여우 겨드랑이의 흰털만을 모아 만든 가죽옷으로 한 벌 만드는 데 1천 마리의 여우가 필요하였다. 값이 천 금이나 되는 천하에 오직 하나뿐인 진기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진나라에 들어와서 이미 소왕에게 바쳤기 때문에 호백구는 다시 없었다.

맹상군은 크게 근심하여 널리 식객들에게 좋은 방법을 물었으나 모두가 묵묵부답이었다. 그런데 제일 말석에 개의 흉내를 내어 도둑질을 잘하는 자가 나서며 말하였다. “제가 호백구를 구해오겠습니다.”

그는 드디어 밤에 개처럼 진나라 궁중의 보물창고에 들어가 전날 소왕에게 바쳤던 호백구를 가지고 왔다.

그것을 진왕의 총희에게 바치자 그 여인은 맹상군의 일을 소왕에게 말하여 풀려나게 해주었다.

옥에서 풀려난 맹상군은 즉시 말을 달려 귀국길에 올랐다. 통행증을 고쳐 이름과 성을 변경하여 관소를 통과하려고 하였다. 맹상군이 말을 채찍질하여 국경 지대인 함곡관에 도착하니 그때는 밤중이었다.

이윽고 소왕은 맹상군을 석방한 것을 후회하여 그를 찾았으나 이미 떠나고 없었다. 즉시 사람을 시켜 역마를 달려 그를 뒤쫓아 잡아오도록 명령하였다.

맹상군은 밤중에 관에 도착하였으나 진나라 법에 닭이 울어야 관을 통과시키게 되어 있었다.

맹상군은 뒤쫓아오는 자가 염려되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식객 가운데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있어 그가 닭 울음소리를 흉내내자 그 소리를 듣고 닭들이 모두 울었다.

이에 맹상군은 통행증을 보이고 무사히 관을 통과하였다. 통과한 지 잠시 뒤에 진나라의 뒤쫓는 자가 관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맹상군이 관을 통과한 뒤였기 때문에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맹상군은 이 두 사람들 때문에 위기일발의 죽을 고비를 넘길 수가 있었다.

일찍이 맹상군이 이 두 사람을 빈객으로 대우하자 다른 빈객들은 모두 이 두 사람과 함께 있기를 부끄럽게 여겼다.

그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위기에 부딪혔을 때에는 결국 이 두 사람이 그를 구출하였다. 그 뒤부터는 빈객들이 다 탄복하였다.

뒤에 제의 민왕은 송(宋)나라를 멸망시키고 더욱 교만해졌으며 진나라, 초나라 사람들의 헐뜯는 말을 듣고 맹상군을 제거하려 하였다.

이에 맹상군은 신변의 위험을 느껴 위나라로 갔다. 위의 소왕(昭王)은 그를 정승으로 삼으니 그는 진나라, 조나라와 연합하여 연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제의 민왕은 수도인 임치를 버리고 거(莒)로 도망하여 그곳에 있다가 죽으니 제의 양왕(襄王)이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양왕이 즉위하자 맹상군은 스스로 제후의 한 사람으로 독립하여 중립을 지켰으며 그가 죽자 양왕은 그에게 맹상군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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