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견선여갈(見善如渴)
착한 일을 보기를 마치 목마른 것 같이 하라는 뜻이다.
見 : 볼 견 善 : 착할 선 如 : 같을 여 渴 : 목마를 갈
주(周)나라 무왕(武王)을 도와 건국 초기의 국정 설계에 참여한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은 “선한 일을 보면 목마른 것같이 하고, 선한 일이면 모름지기 탐을 내라.”고 권면했다. 見善如渴 善事須貪. 견선여갈 선사수탐.
그렇다. 선(善)이란 아주 작은 씨앗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열매는 세월과 함께 자란다. 보답을 바라고 선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작은 선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면 뿌린 자가 그 열매를 거두어 들이는 게 자연섭리요 우주법칙인 것이다.
물론 선한 일은 큰 일만 한다고 빛이 나는 것은 아니다. 한(漢)나라의 소열황제(昭烈皇帝)가 임종을 맞아 후계에게 내린 조칙은 시사적이다. “선이 작다고 해서 하지 않아선 안되며, 악이 작다고 쉽게 해선 안된다.” 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물이선소이불위 물이악소이위지.
무엇을 보고(見) 어떻게 하라는 성어는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유명한 것이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견위수명(見危授命), 최영(崔瑩) 장군의 좌우명 견금여석(見金如石) 등 모두 좋은 말이다.
서리 내린 것을 보고 얼음 얼 것을 아는 견상지빙(見霜知冰)은 사소한 것을 보고 변화를 감지한다는 견미지저(見微知著), 견소왈명(見小曰明)과 뜻이 통한다.
여기 좋은 의미의 성어 하나 더 추가하면 선한 일을 앞에 두고선(見善) 목마른 것같이 하라(如渴)는 이 말을 들 수 있다. 좋은 일을 적극 권장하는 말이다.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책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실려 전하는 말이다.
가유십도(家有十盜)에서 나왔던 대로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때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을 지낸 문신 추적(秋適)이 아동들의 학습을 위해 중국 고전에 나온 선현들의 말을 모두 19편으로 나눠 수록했다.
마음을 밝게 하는 보물과 같은 거울이라는 뜻으로 한문 초학자가 천자문(千字文)을 배운 다음 동몽선습(童蒙先習)과 함께 기초과정의 교재로 사용했다. 이 말은 제일 먼저 나오는 계선편(繼善篇)에 실려 있는데 여기엔 착한 자에게는 복이 오고 악한 자에게는 화가 미친다는 의미의 금언들이 등장한다. 부분을 보자.
중국 고대(古代) 주(周)나라의 명신 강태공(姜太公)이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太公曰 見善如渴 聞惡如聾. 태공왈 견선여갈 문악여롱. 又曰 善事須貪 惡事莫樂. 우왈 선사수탐 악사막락.
태공이 말하기를 선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을 보듯이 하고, 악한 일을 듣거든 귀머거리처럼 하라. 또 말하기를 선한 일은 모름지기 탐낼 것이요 악한 일은 즐겨하지 말라.
태공(太公)의 이름은 상(尙)으로 주(周)나라 초기의 명신(名臣) 현자(賢者)이다. 위수(渭水)가에서 자신을 알아줄 임금을 만나기 위해 때를 기다리며 곧은 낚시질을 했다고 전한다. 늘그막에 주나라 문왕(文王)에게 발탁돼 주나라가 은나라를 대신해 천하의 주인이 되는데 크게 공을 세웠다.
선한 일을 눈앞에 보거든 마치 목마를 때 물을 보면 단숨에 물을 벌컥 마시듯이 주저하지 말고 행하고, 악한 말이나 남의 단점과 험담을 듣거든 귀머거리처럼 못 들은체 하라는 말이다.
세상에는 남의 장점이나 칭찬의 말을 듣고 얘기하기 보다는 남의 단점이나 험담에 대해 듣고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보통 우리 속인(俗人)들의 속성(屬性)이다.
요순(堯舜) 시대에 허유(許由)라는 사람은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강물에 내려가 자기 귀를 씻었고 그 강가에서 소를 몰고 가던 소부(巢父)라는 사람은 그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이지 않겠다고 소를 끌고 다른 데로 가버렸다는 고사(故事)가 있다.
이렇듯 악한 말이나 남의 단점이나 험담의 말을 들었을 때는 못들은 체하여 그 말에 동조하거나 그 말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옮긴 남의 험담이나 단점의 말은 비수가 되어 다시 자기 가슴으로 날아와 뜻밖의 화를 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주자(朱子)는 “선(善)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바람의 빠름과 같이 하라”고 했다. 이렇듯 선행(善行)을 함에 있어서는 생각에 머물거나, 크고 작음을 가리거나, 이해관계를 따지거나, 뒤로 미루거나 하지 말고, 목마를 때 물을 본 것처럼 즉시 행하는 강력한 실천적 의지가 절대 필요한 것이다.
내 자신에게 이렇게 명(命)하자. 선행(善行)은 주저하지 말고 그대로 행하라. 악한 말, 남의 단점이나 험담은 남을 죽이고 나를 죽이니 귓가에 스치는 바람처럼 그대로 흘려보내라. 선한 말, 남의 장점이나 칭찬은 남을 살리고 나를 살리니 적극적으로 하라. 이것이 바로 선덕(善德)을 쌓는 일인 것이다.
爲善最樂 道理最大. 위선최락 도리최대.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것이요, 도리가 가장 큰 것이다.
이 글은 앞의 글에 붙여 太公曰 見善如渴 聞惡如聾, 爲善最樂 道理最大. 태공왈 견선여갈 문악여롱, 위선최락 도리최대. 로 보기도 하는데 후한(後漢) 동평왕(東平王) 유창(劉蒼)이 한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동평헌왕창전(東平獻王蒼傳)에 나온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유창은 후한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경서(經書)를 좋아하고 지혜와 아량이 있었다. 유창은 박학다재(博學多才)하여 형인 명제(明帝)는 그를 매우 사랑하여 즉위하자 표기장군(驃騎將軍)에 임명했다. 명제는 외출할 때나 순시할 때마다 동생을 데리고 다녔다.
유창은 건무(建武) 15년 동평공(東平公)에 봉해졌고 17년에는 동평왕이 되었다. 유창은 지위가 매우 높았지만 교만하거나 사치를 몰랐다. 또 여색을 탐하는 귀족들의 풍습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동한(東漢)초의 태평성세를 이루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영평 11년 동평왕 창이 황궁으로 왔다. 오래간만에 총애하던 동생과 만나니 명제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명제는 동평왕에게 물었다. “집에서 무엇을 즐기고 있는가?”
창이 말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 蒼曰 爲善最樂(창왈 위선최락)
중국의 아동용 학습서인 증광현문(增廣賢文)에도 爲善最樂, 爲惡難逃(위선최락 위악난도)로 소개됐다.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요, 악을 짓고 나서는 도망칠 수가 없다’는 의미다. 줄여서 위선최락(爲善最樂)이라고 한다.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인생에서 최고의 즐거움이다’는 뜻이다.
후세 사람들은 창을 호례자(好禮者), 예를 좋아하는 이라고 평했다. 공자(孔子)가 ‘가난한 속에 즐거워하며 부자가 되어 예법을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고 한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논어 학이편)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미약빈이락 부이호예자야
조선 영조(英祖) 임금 때 좌의정(左議政)을 지낸 이사관(李思觀)은 남돕기를 좋아하였다. 그가 충청도에서 고을살이를 하고 있을 때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순행을 하다가 주막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는데, 어떤 허술한 시골 선비 한 사람이 가족을 이끌고 들어서는데 보니, 등에 업힌 여자아이가 추위에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자기 고을 백성인 듯싶어 말을 건넸더니, 서산(瑞山)에 사는 김한구(金漢耈)로 살기가 어려워 서울 친척을 찾아가는 길이라 하였다. 이사관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자기가 걸치고 있던 수달피 갖옷을 벗어 그 아이를 덮어 주고 나섰다.
이런 일이 있은 뒤 12년이 흘렀다.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貞聖王后)가 승하(昇遐)하고, 두 번째 왕비로 뽑힌 처녀가 바로 이사관의 도움을 받았던 그 여자 아이로 정순왕후(定順王后) 김씨(金氏)였다.
영조가 하루는 왕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물었다. “어렸을 때 집이 몹시 가난하였다고 들었는데,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은 없었소? 내가 왕비 대신 후한 보답을 내릴까 하오.”
왕비는 평소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사관의 일을 아뢰었다. “별로 생각나는 사람은 없고, 이사관이란 분이 주막집에서 벗어 준 갖옷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임금님을 모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이사관은 크게 발탁되고, 몇 년 후에는 정승이 될 수 있었다.
이 성어는 제일 먼저 나오는 계선편(繼善篇)에 실려 있다고 했는데 계선(繼善)이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착한 본성을 이어나간다는 뜻이다. 하늘은 원래 그 자체로 선한 것이기 때문에 하늘의 모습을 이어받은 인간 또한 그 선함을 이어나가야 함을 나타내는 말이 계선(繼善)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계선편(繼善篇)에서 나온 이 말은 결국 선한 일은 목이 마른 자가 물을 갈망하듯이 하되, 악한 일은 절대로 듣지도 말고 하지도 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선함을 행하고 악한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에게 태공(太公)이 선을 따르게 하기 위해 한 말인 것 같다.
明心寶鑑(명심보감) 1. 繼善篇(계선편) : 착한 일을 계속하라
子曰 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 자왈 위선자 천보지이복 위불선자 천보지이화. 공자께서 가로되,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주시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아주느니라.
漢昭烈 將終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한소열 장종 칙후주왈 물이선소이불위 물이악소이위지. 한나라의 소열황제가 임종할 무렵 후주에게 조칙을 내려 가로되, 선이 작다고 해서 아니 하지 말며, 악한 일이 작다고 해서 하지 말라.
莊子曰 一日不念善 諸惡 皆自起. 장자왈 일일불념선 제악 개자기. 장자 가로되, 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지 않으면 모든 악한 것이 저절로 일어나느니라.
太公曰 見善如渴 聞惡如聾 又曰 善事須貪 惡事莫樂. 태공왈 견선여갈 문악여롱 우왈 선사 수탐 악사 막락. 태공이 가로되, 착한 것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을 보듯이 하고, 악한 것을 듣거든 귀머거리 같이 하라. 또 가로되, 착한 일은 모름지기 탐내어 하고, 악한 일은 즐겨하지 말라.
馬援曰 終身行善 善猶不足 一日行惡 惡自猶餘. 마원왈 종신행선 선유불족 일일행악 악자유여. 마원이 가로되, 일생동안 착한 일을 행하여도 착한 것은 오히려 부족하고 단 하루동안 악을 행할지라도 악은 그대로 남아 있느니라.
司馬溫公曰 積金以遺子孫 未必子孫 能盡守, 사마온공왈 적김이유자손 미필자손 능진수 積書以遺子孫 未必子孫 能盡讀, 적서이유자손 미필자손 능진독 不如 積陰德於冥冥之中 以爲子孫之計也. 부여 적음덕어명명지중 이위자손지계야. 사마온공이 가로되, 돈을 모아 자손에게 넘겨준다 하여도 자손이 반드시 다 지킨다고 할 수 없으며, 책을 모아서 자손에게 남겨 준다 하여도 자손이 반드시 다 읽는다고 볼 수 없으니,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음덕을 쌓아 자손을 위한 계교를 하느니만 같지 못하느니라.
景行錄曰 恩義廣施. 경행록왈 은의광시. 人生何處不相逢 讐怨莫結. 인생하처부상봉 수원막결. 路逢狹處 難回避. 노봉협처 난회피. 경행록에 가로되,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어라. 세상을 살다보면 어느 곳에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길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
莊子曰 於我善者 我亦善之, 장자왈 어아선자 아역선지, 於我惡者 我亦善之. 어아악자 아역선지 我旣於人 無惡人 能於我 無惡哉. 아기어인 무악인 능어아 무악재. 장자 가로되, 나에게 착한 일을 하는 자에게도 내 또한 착하게 하고, 나에게 악한 일을 하는 자에게도 내 또한 착하게 할 것이다. 내가 이미 남에게 악하게 아니하였으면 남도 나에게 악하게 함이 없느니라.
東岳聖帝垂訓曰 一日行善 福雖未至 禍者遠矣. 동악성제수훈왈 일일행선 복수미지 화자원의. 一日行惡 禍雖未至 福者遠矣. 일일행악 화수미지 복자원의. 行善之人 如春園之草 不見其長 日有所增, 행선지인 여춘원지초 부견기장 일유소증, 行惡之人 如磨刀之石 不見其損 日有所虧. 행악지인 여마도지석 부견기손 일유소휴. 동악 성제가 내린 가르침에 가로되, 하루 착한 일을 행할지라도 복은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화는 스스로 멀어진다. 하루 악한 일을 행할지라도 화는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복은 스스로 멀어진다. 착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에 풀과 같아서 그 자라나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로 더하는 바가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서 갈리어서 닳아 없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날로 이지러지는 것과 같으니라.
子曰 見善如不及 見不善如探湯. 자왈 견선여부급 견부선여탐탕. 공자 가로되, 착한 것을 보거든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이 하고 악한 것을 보거든 끓는 물을 만지는 것과 같이 하라.
▶ 見(견)은 회의문자로 见(견)은 간자(簡字)이다. 안석궤(几; 책상)部는 사람을, 目(목)은 눈을 뜻한다. 見(견)은 눈의 기능으로, 보는 일을 말하는데, 이쪽으로 부터 보는 것을 視(시), 저쪽으로 부터 나타나 보이는 것을 見(견)으로 나누어 썼다. 見(견)은 보다, 보이다, 당하다, 견해 등의 뜻과 뵙다(현), 나타나다(현), 드러나다(현), 보이다(현), 소개하다(현), 만나다(현), 현재(현), 지금(현) 등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타날 현(現), 볼 시(視), 뵐 근(覲), 볼 관(觀), 뵐 알(謁), 나타날 현(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숨을 은(隱)이다. 용례로는 보고서 깨달아 앎을 견해(見解), 듣거나 보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을 견문(見聞), 남에게 거절을 당함을 견각(見却),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남의 일을 보고 배워서 실지로 연습하는 것을 견습(見習), 사물을 관찰하는 입장을 견지(見地), 남에게 미움을 받음을 견오(見忤), 얼른 스쳐 봄을 별견(瞥見), 분실이나 유실을 당함을 견실(見失), 책망을 당함을 견책(見責),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한다는 견금여석(見金如石),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견문발검(見蚊拔劍),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견위수명(見危授命), 항상 잊지 않음을 이르는 견요어장(見堯於墻),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견물생심(見物生心), 나라의 위급함을 보고 몸을 바친다는 견위치명(見危致命) 등에 쓰인다.
▶ 善(선)은 회의문자로 양(羊)처럼 순하고 온순하며 부드럽게 말(口)하는 사람을 나타내어 '착하다'를 뜻한다. 옛날 재판에는 양 비슷한 신성한 짐승을 썼다. 신에게 맹세하고 한 재판이란데서 나중에 훌륭한 말이 훌륭함, 좋다의 뜻이 되었다. 善(선)은 착하다, 좋다 훌륭하다, 잘하다, 옳게 여기다, 아끼다, 친하다, 사이좋다, 착하고 정당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 등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악할 악(惡)이다. 용례로는 착한 것과 악한 것을 선악(善惡), 선량한 마음이나 착한 마음을 선의(善意), 좋은 길로 올바르게 인도함을 선도(善道), 착하고 어진 벗을 선우(善友), 깨우치고 이끌어서 착하게 되도록 만듦을 선화(善化), 친절하게 잘 대접함을 선대(善待), 착하고 바른 덕행을 선덕(善德), 착한 마음을 선심(善心), 이웃 또는 이웃 나라와 사이 좋게 지냄을 선린(善隣), 잘 막아냄을 선방(善防), 착하고 어짐을 선량(善良), 좋은 방법으로 알맞게 처리함을 선처(善處), 착하고 어진 행실을 선행(善行), 유종(有終)의 미를 거둠을 선종(善終),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을 개과천선(改過遷善),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라는 선남선녀(善男善女), 착한 행실을 권장하고 악한 행실을 징계함을 권선징악(勸善懲惡), 잘한 뒤에 처리한다는 선후처치(善後處置) 등에 쓰인다.
▶ 如(여)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계집 녀(女; 여자)部와 말을 뜻하는 口(구)로 이루어졌다. 여자가 남의 말에 잘 따른다는 뜻이 전(轉)하여 같다의 뜻으로, 또 음(音)을 빌어 若(약)과 같이 어조사로 쓰인다. 如(여)는 법의 실상이란 뜻으로 같다, 같게하다, 어떠하다, 미치다, 닿다, 좇다, 따르다, 가다, 이르다, 당연히 ~하여야 한다, 맞서다, 대항하다, 비슷하다, 어찌, 가령, 만일, 마땅히, 곧, 이것이, ~과, ~와 함께, 보다, ~보다 더, 이에, 그래서, 말을 잇다(=而) 등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지금 또는 현재를 여금(如今), 위와 같음을 여상(如上), 한결같게를 여일(如一), 어떤 대상이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보통의 뜻으로 쓰는 여천(如千),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 또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여하(如何), 벤 듯이 아픔을 여할(如割), 얼마 되지 아니함을 여간(如干), 한결같음을 여상(如常), 사실과 꼭 같음을 여실(如實), 변함이 없음을 여여(如如), 오른쪽에 쓰인 내용과 같음을 여우(如右),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음을 여좌(如左), 모든 일의 실답지 않음이 환영과 같음을 여환(如幻)일이 뜻대로 됨을 여의(如意), 옛날과 같음을 여구(如舊), 이러함을 여사(如斯), 이렇게 또는 이와 같음을 여시(如是), 옥같이 깨끗함을 여옥(如玉), 이와 같음 또는 이렇게를 여차(如此), 저와 같음을 여허(如許),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를 여혹(如或), 시키는 대로 실행되지 못할까 하여 마음을 죄며 두려워함을 여공불급(如恐不及), 비록 적은 것일지라도 천금을 얻은 것과 같이 흡족하게 여김을 여득만금(如得萬金), 천금을 얻은 것 같다는 여득천금(如得千金), 얇은 얼음을 밟는다는 여리박빙(如履薄氷),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여원여소(如怨如訴), 한 판에 찍어 낸 듯이 조금도 서로 다름이 없다는 여인일판(如印一板),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몹시 불안하다는 여좌침석(如坐針席) 등에 쓰인다.
▶ 渴(갈)은 형성문자로 渇(갈)은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曷(갈)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渴(갈)은 목마르다, 갈증이 나다, 서두르다, 급하다, 갈증 등의 뜻과 물이 잦다(걸), 물이 마르다(걸)의 뜻과, 물이 거슬러 흐르다(할) 등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마를 고(枯)이다. 용례로는 몹시 바쁘게 골몰함을 갈골(渴汨), 몹시 애타게 구하는 것을 갈구(渴求), 목이 마를 듯이 몹시 급함을 갈급(渴急),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간절히 바람을 갈망(渴望), 굶주려 위태로운 목숨을 갈명(渴命), 몹시 열심히 들음을 갈문(渴聞), 오랫동안 가물어서 물이 마름을 갈수(渴水), 목마르게 동경 또는 사모함을 갈앙(渴仰), 매우 사랑함 또는 몹시 좋아함을 갈애(渴愛), 젖먹이에게 일과성으로 나타나는 수분 결핍에 의한 발열을 갈열(渴熱), 장례 기일을 기다리지 않고 급히 하는 장례를 갈장(渴葬), 목이 말라 물이 먹고 싶은 느낌을 갈증(渴症), 붓에 먹물을 많이 묻히지 않고 글씨를 쓰는 일을 갈필(渴筆), 가뭄 때 농민들이 비를 몹시 기다림을 갈민대우(渴民待雨),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는다는 갈불음도천수(渴不飮盜泉水),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는 갈이천정(渴而穿井), 목이 마른 자는 무엇이든 잘 마신다는 갈자이음(渴者易飮)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