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전 읽기

[사람과운명]이순(耳順)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9.05.05|조회수1,492 목록 댓글 0


 

귀가 순해진다는 뜻으로, 나이 60세의 비유적인 표현이다.

 

: 귀 이

: 순할 순

 

 

만년에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회고하였다.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三十而立(삼십이립)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

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순(耳順)은 위의 글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에서 그대로 딴 것이다. 한자의 뜻대로 풀이하면 귀가 순해진다가 된다.

 

공자가 나이 15세의 지학(志學), 30세의 이립(而立), 40세의 불혹(不惑), 50세의 지천명(知天命)을 거쳐 60세에 이르러 도달한 경지가 바로 이순(耳順)이고, 다음이 최종의 경지인 70세 때의 종심(從心)이다.

 

보통 40세 때의 불혹까지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완성을, 50세 때의 지천명 이후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하늘의 원리, 곧 유교의 최고 덕목인 성인의 도[聖人之道]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이순(耳順)은 학자에 따라 소리가 귀로 들어와 마음과 통하기 때문에 거슬리는 바가 없고, 아는 것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어지는 것, 또는 말을 들으면 그 미묘한 점까지 모두 알게 된다거나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한다는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이해한다는 점만은 공통적이다. 이렇듯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바로 60, 즉 이순이다. 예순 살, 육순(六旬)과 같은 뜻이다.

 

한자말에는 나이를 달리 일컫는 말들이 있다.

* 10: 沖年(충년)

* 15: 志學(지학)

* 20: 弱冠(약관)

* 30: 而立(이립)

* 40: 不惑(불혹)

* 50: 知天命(지천명)

* 60: 耳順(이순)

* 70: 古稀(고희), 從心(종심)

* 77: 喜壽(희수)

* 88: 米壽(미수)

* 99: 白壽(백수)

* 100: 上壽(상수), 期願之壽(기원지수)

 

 

이순(耳順)의 자세가 필요하다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는 공자가 나이별로 자신의 정신적 경지를 말한 대목이 있다. 이 중 하나가 이순(耳順)이다. 그는 나이 육십이 되자 이런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귀가 순해졌다는 말이다.

 

물론 이 단어의 속뜻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있다. 대단히 현학적인 풀이도 적지 않다. 나는 소박하게 귀에 거슬리지 않다정도로 해석하고 싶다. 결국 공자의 말은 그가 예순 살이 되자 남이 공자 자신에 대해 거슬리는 말을 해도 크게 마음 상하지 않더라는 소리가 아닌가.

 

사람은 너나할 것 없이 칭찬이나 긍정적 평가를 듣고 싶어 하고, 비난이나 비판, 부정적 평가는 듣기 싫어한다. 흔히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리고 양약은 입에 쓰다고 하면서 남의 비판이나 부정적 의견을 경청하라고 한다. 옳은 말인데, 실제 비판을 받으면 우선 감정적으로 반발하는 게 사람들의 대체적 반응이다.

 

인류 역사를 봐도 처음에는 비판이나 반대 의견을 경청하던 현명한 군주나 지도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아첨과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지혜로운 충신이나 훌륭한 조언자를 내치고 종국에는 망해버린 사례가 많다. 정치 지도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친구의 우정 어린 고언이나 스승의 객관적인 평가를 악의적인 것으로 여기고 외면했다가 뼈저리게 후회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순(耳順)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공자(孔子)조차 60살이 돼서야 다다른 경지이니 보통 사람들에게 그런 수준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최고의 엘리트 집단에도 반드시 악마의 변호인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뛰어난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 의사 결정을 할 때조차 이른바 집단사고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런 집단사고는 구성원들 사이에 강한 응집력을 보이는 집단에서 더 자주 저질러진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논의할 때 만장일치에 도달하려는 분위기가 워낙 강하다 보면 이런 함정에 덜컥 빠지고 만다. 다른 대안들을 현실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억압되어 결국 불합리하거나 비현실적인 결정이 이루어진다. 그 집단 외부에서 보면 이게 정말 그 대단한 엘리트들이 모여서 결정한 게 맞나라고 의아해 할 정도로 어이없는 결정도 나온다.

 

바로 여기에서 악마의 변호인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해결책을 찾으려는 사안에 대해 일부러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을 꼭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악마의 변호인이 하는 일은 모두가 찬성할 때 의도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들은 주어진 문제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시킨다. 또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지 모색하도록 분위기를 이끈다. , 안일하게 한군데로 금방 쏠리는 분위기에 제동을 걸어 다양한 시각에서 사안을 검토하게 만드는 것이다.

 

규모가 크거나 권력이 막강한 집단일수록 그 지도자의 측근이나 하위자로서는 지도자의 의견이나 판단에 대해 비판은 물론이고 다소 다른 의견조차 제시하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위계성이 중시되는 문화에서는 여간 간이 크지 않고서는 그런 용기를 내기가 더더욱 어렵다.

 

이래저래 지도자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지도자에게 들어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언론을 비롯한 외부 전문가나 집단이 가하는 지극히 합당한 비판이나 지적도 외면당한다. 우선 지도자 자신이 거슬린다는 정서를 갖고 대하니 타당한 비판과 대안이 지닌 당초의 선의나 합리성은 아예 증발해 버리는 셈이다.

 

고위 지도자나 최고 권력자의 의사 결정, 예컨대 어떠한 직위에 누구를 앉히는가 하는 인사 문제나 중요한 정책 판단은 엄청난 영향과 파급효과를 지닌다. 지도자 스스로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한 나라 역사의 수레바퀴를 뒷걸음질하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순(耳順)은 단지 개인의 인격 수양에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지도자, 특히 국가 정치 지도자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지도자인가는 그가 얼마나 이순적 자세를 지니려고 노력하는가 하는 잣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한 개인의 인격의 성숙도를 말해주는 이순(耳順)은 어떠한 지도자의 리더십의 수준도 보여줄 수 있다.

 

이순(耳順) 지향적 자세는 단지 한 처세술로서가 아니라 유연한 사고와 실체적 포용력을 길러줄 기본적 방책(方策)이라고 보인다. 요즘 우리나라 최고 정치 지도자들의 이런저런 행태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다.

 

 

()는 상형문자로 귀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한문에서는 귀라는 뜻 이외에도 ~할 뿐이다, 혹은 ~할 따름이다 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는 귀, 오관(五官)의 하나, ()한 모양, , 귀에 익다, 듣다, 곡식이 싹나다 등의 뜻과 팔대째 손자()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귀와 눈 또는 남들의 주의를 이목(耳目), 겉귀의 드러난 가장자리 부분을 이개(耳介), 귀와 코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이비(耳鼻), 귀에 생기는 병을 진찰 치료하는 의술의 한 분과를 이과(耳科), 귓바퀴를 이각(耳殼), 귀동냥으로 얻은 학문을 이표(耳剽), 몹시 떠들어서 귀가 먹먹함을 이괄(耳聒), 귀로 들음을 이령(耳聆), 귀가 먹음을 이색(耳塞), 귓바퀴가 뺨에 붙은 부분을 이근(耳根), 귀로 소리를 듣는 능력을 이력(耳力), 귀에 입을 대고 하는 말을 이어(耳語), 듣기만 하여서 알게된 학문을 이학(耳學), 귓속이 곪아 앓는 병을 이통(耳痛), 귀가 먹어 들리지 않음을 이롱(耳聾), 나이 60세를 이르는 이순(耳順), 참맛을 모른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단지 귀로 듣기만 하고 넘겨짚어 관찰을 할 줄 모름을 이식(耳食), 귀 눈 입 코를 아울러 이르는 이목구비(耳目口鼻), 귀로 듣고 눈으로 봄을 이문목견(耳聞目見),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이시목청(耳視目聽), 담에도 귀가 달렸다는 이속우원(耳屬于垣), 귀로 듣고 눈으로 봄으로써 일어나는 욕심을 이목지욕(耳目之欲), 귀로 듣고 눈으로 봄 즉 틀림이 없다는 이이목지(耳而目之) 등에 쓰인다.

 

()은 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머리 혈(; 머리)와 음()을 나타내는 (, )이 합()하여 이루어졌다. (, )은 시내, 시내의 흐름을, ()은 머리나 얼굴의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물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순리에 따라 흐른다는 데서 순하다를 뜻한다. ()은 선후 따위 관계로 정해지니 배열, 차례, 순서, 순번 등의 뜻으로 순하다, 유순하다 좇다, 도리에 따르다, 순응하다, 가르치다, 교도하다, 잇다, 이어받다, 제멋대로하다, 편안하다, 안락하다, 화하다, 화순하다, 물러나다, 피하다, 바르다, 옳다, 귀여워하다, 차례, 순서, 도리, 도리에 따르는 사람, 실마리, 단서, 아름다운 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순할 완(),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거스릴 역()이다. 용례로는 정해진 차례를 순서(順序), 차례로의 위치나 차례 순서를 순위(順位), 성질이 온순하여 까다롭지 않고 화평함을 순탄(順坦), 도리에 순종함을 순리(順理), 고분고분 따름을 순종(順從), 아무 탈없이 일이 잘 되어 가는 상태를 순조(順調), 순하게 부는 바람을 순풍(順風), 부드럽게 대응함을 순응(順應), 바르게 돌아오는 차례를 순차(順次), 하늘의 뜻을 따름을 순천(順天), 차례로 연기함을 순연(順延), 순조로운 항행을 순항(順航), 천리에 따르는 자는 오래 번성함을 순천자존(順天者存), 아무 일 없이 잘 되어 감을 순차무사(順次無事), 천명에 순종하고 인심에 응함을 순천응인(順天應人), 돛이 뒤에서 부는 바람을 받아 배가 잘 달리는 모양을 순풍만범(順風滿帆),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소리 지른다는 순풍이호(順風而呼) 등에 쓰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