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붕와해(土崩瓦解)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산산이 깨어진다는 뜻으로, 사물이 여지없이 무너져 나가 손댈 수 없이 됨을 가리키는 말이다.
土 : 흙 토(土/0)
崩 : 무너질 붕(山/8)
瓦 : 기와 와(瓦/0)
解 : 풀 해(角/6)
(유의어)
와해토붕(瓦解土崩)
사분오열(四分五裂)
출전 : 사기(史記) 주보언열전(主父偃列傳)
토붕와해(土崩瓦解)는 흙더미가 무너지고 기왓장이 부서진다는 말로, 일이나 물건이 산산이 흩어져 수습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짐을 뜻한다.
1529년, 중종의 정국 운영이 난맥상을 빚자 대사간 원계채(元繼蔡) 등이 상소문을 올렸다.
요지는 이렇다. "나랏일이 토붕와해(土崩瓦解)의 상황인데도 임금이 끝내 깨닫지 못하면 큰 근심을 자초한다. 임금이 통치의 근본은 잊은 채 자질구레한 일이나 살피고, 번잡한 형식과 세세한 절목은 따지면서 큰 기강을 잡는 일에 산만하면, 법령이 해이해지고 질서가 비속해진다. 밝은 선비가 바른말로 진언해도 듣지 않다가 큰일이 닥쳐서야 비로소 후회한다. 이는 고금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이렇게 일반론으로 운을 뗀 후, 이어 임금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전하는 즉위 초에는 정성으로 덕을 닦고, 세운 뜻도 굳었다. 하지만 근년에는 일마다 고식적인 것을 따르고, 구차한 것이 많다. 본원(本源)이 한번 가려지면 백 가지 일이 다 그릇되고 만다. 전하께서 엄하게 다스리려 해도 요행으로 은혜를 얻은 자들이 인척의 힘을 빌려 못된 짓을 한다. 또 간언을 올리면 성내는 뜻을 드러내므로 진언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다. 이틈을 타 인연을 맺은 무리들이 요행을 바라는 버릇을 더욱 제멋대로 행하니, 이래서야 나라 꼴이 되겠느냐고 했다."
토붕와해(土崩瓦解)는 흙, 즉 지반이 무너져서 기와가 다 깨진다는 뜻이다. 서락(徐樂)은 한무제(漢武帝)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토붕(土崩)과 와해(瓦解)를 구분했다. 그는 천하의 근심이 토붕에 있지 와해에 있지 않다고 보았다.
토붕(土崩)은 백성이 곤궁한데도 임금이 구휼(救恤)하지 않고, 아래에서 원망하는데도 위에서 이를 모르며, 세상이 어지러운데도 정사가 바로서지 않아, 나라가 어느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말한다.
와해(瓦解)는 권력자가 위엄과 재력을 갖추고도 제 힘을 믿고 제 욕심만 채우려다 제풀에 꺾여 자멸하고 마는 것이다. 사기(史記) 주보언열전(主父偃列傳)에 나온다.
지반이 무너지거나 구들장이 꺼지면, 지붕마저 내려앉아 기왓장이 산산조각 난다. 지반이 탄탄한데 지붕이 주저앉는 경우는 드물다.
근본과 기강이 서고 백성이 제자리를 잡고 있다면 와해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바닥이 통째로 주저앉는 토붕의 경우는 손쓸 방법이 없다.
집이 무너져 가는데 문패나 바꿔 다는 미봉책(彌縫策)이나, 위기의 본질을 외면한 채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고식지계(姑息之計)로는 상황을 돌이킬 수가 없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의 끝 부분에는 반고(班固)가 사마천과 가의(賈誼)의 진나라 황제에 대한 기술에 대하여 다시 논평을 가한 부분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실려있다.
秦之積衰 天下土崩瓦解,
진나라는 이미 오랫동안 쇠퇴하여, 천하가 흙더미 무너지는 듯하고, 기왓장이 부서지는 듯 하였으니,
雖有周旦之材 無所復陳其巧 而以責一日之孤 誤哉.
주공(周公)과 같은 인재가 있다 해도, 그 재주를 펼칠 것이 없었을 것이므로, 하루동안의 왕을 책망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俗傳 秦始皇起罪惡 胡亥極 得其理矣.
사람들에게 전하여 지기를 진시황이 모든 죄악을 일으켰으며, 호해는 그 죄악이 극에 달했다고 하는데 이 말은 이치에 맞는 말이다.
復責小子 秦地可全 所謂不通時變者也.
그런데 가의와 사마천이 오히려 자영을 책망하면서 진나라의 옛땅을 보전할 수 있었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시대의 변화를 통찰하지 못한 것이다.
⏹ 토붕와해(土崩瓦解)
地震(지진)은 글자로만 보면 땅이 흔들린다는 뜻으로 크게 위험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구 내부의 강력한 에너지가 지표로 전달될 때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땅이 갈라지면서 불길이 치솟고 쓰나미가 몰려와 큰 피해를 준다.
최근의 일본 쿠마모토나 에콰도르의 지진으로 양국서 700백여 명의 사망자가 났다.
이같이 땅이 찢어지고 무너지는 것이 土崩(토붕), 그 결과로 땅위의 집 기와가 산산히 조각나는 것이 瓦解(와해)다.
어떤 조직이나 사물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四分五裂(사분오열),
支離滅裂(지리멸렬),
七零八落(칠령팔락)도 같은 뜻의 성어다.
기와가 깨지는 것보다 당연히 땅이 갈라지는 것이 피해가 더 크다.
중국 前漢(전한)의 7대 武帝(무제)때 郎中(낭중) 벼슬에 있던 徐樂(서락)이 상소문에서
국가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토붕에 있지 와해에 있지 않습니다
天下之患在於土崩(천하지환재어토붕)
不在於瓦解(부재어와해)
고 말했다.
토붕은 백성들이 폭정에 견딜 수 없어 무리지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고 와해는 정권 내부에서 일어나는 권력다툼이니 곤궁한 민초들을 잘 구휼하는 것이 앞서야 한다고 진언했다.
‘史記(사기)’의 平津侯主父(평진후주보) 열전에 실려 있다.
劉安(유안)이 저술한 책 ‘淮南子(회남자)’에는 더 오래된 역사를 기술하면서 글자대로 인용하고 있다.
殷(은)나라 마지막 왕 폭군 紂王(주왕)의 학정에 못 이겨 군사를 일으킨 周(주)의 武王(무왕)이 牧野(목야)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무왕이 왼손에 황금도끼를 잡고 오른손에 흰 깃발을 들고 지휘를 하자, 주왕의 군대는 기와가 부서지듯 도주했고 흙더미 무너지듯 항복하고 말았다
武王左操黃鉞(무왕좌조황월)
右執白旄以麾之(우집백모이휘지)
則瓦解而走(즉와해이주)
遂土崩而下(수토붕이하)
태족훈(泰族訓)에 나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