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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상사병(相思病)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9.06.24|조회수138 목록 댓글 0

상사병(相思病)

서로 생각하는 병이라는 뜻으로, 남자와 여자 사이에 못잊어 그리워하며 고민하는 나머지 생기는 병을 말한다.

相 : 서로 상(目/4)
思 : 생각 사(心/5)
病 : 병 병(疒/5)

(유의어)
화풍병(花風病)
회심병(懷心病)

출전 : 동진(東晉)의 간보(干寶)가 지은 수신기(搜神記)


이 성어는 동진(東晉)의 학자이자 문인인 간보(干寶)가 지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오는 말이다.

宋人哀之, 遂號其木曰, 相思樹, 相思之名, 起於此也.
송(宋)나라 사람들이 슬피 여겨 그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라 하였는데, 상사(相思)란 말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송(宋)나라 말기 강왕(康王)은 성격이 포악하여 간(諫)하는 신하는 모조리 죽이고 주색에서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광적으로 탐닉하였다. 심지어 부하의 부인까지도 넘보았다.

강왕의 시종 한빙(韓憑)에게는 절세미인의 부인 하씨가 있었다. 강왕은 한빙의 아내 하씨를 강제로 능욕한 뒤 후궁으로 삼았다.

한빙이 곁에 있는 한 마음이 편하지 못함을 알고 강왕은 한빙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고 나서 변방 지역에서 낮에는 변방을 지키고 밤에는 성을 쌓는 성단(城旦)의 무거운 형벌에 처하였다.

이때 한빙의 아내 하씨는 남편을 못잊어 ‘비는 그칠줄 모르고 강은 크고 물은 깊으니 해가 나오면 마음이 좋을 것이다’라고 짧은 편지를 보냈는데 아쉽게도 전달되지 못하고 강왕의 손에 들어갔다.

이 편지를 본 강왕의 신하 소하(蘇賀)는 ‘당신을 그리는 마음을 어찌 할 길 없으나 방해물이 많아 만날 수 없으니 죽고 말 것을 하늘에 맹세한다’라고 그럴 듯 하게 해석하여 강왕에게 보고했다.

얼마 후 한빙은 아내를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자살하였다. 한빙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하씨가 성 위에서 투신 자살을 했는데 ‘임금은 사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만 나는 죽는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바라건대 제 남편 한빙과 합장(合葬)해 주십시요’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 유언에 화가 난 강왕은 하씨의 유언을 받아 줄 리가 없으며, 의도적으로 무덤을 서로 떨어지게 장사(葬事)지냈다.

그러자 그날 밤부터 나무 두 그루가 각각의 무덤 끝에서 자라기 시작하더니 10일 후에는 큰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위로는 가지가 서로 얽히고 아래로는 뿌리가 서로 맞닿았다. 나무 위에서는 한 쌍의 원앙새가 서로 목을 안고 슬피 울었다.

이것을 듣는 사람들이 다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은 원앙새를 죽은 한빙 부부의 넋이라고 보았고, 송(宋)나라 사람들은 그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라고 불렀으며, 이때부터 상사병(相思病)이라는 말이 퍼졌다.

상사병은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맺어지지 못한 사랑을 말할 때 쓰이는데, 지금은 변하여 괴롭고 견디기 힘든 혼자만의 짝사랑을 말할 때 상사병에 걸렸다고 한다.

여기서 상사수(相思樹)라는 나무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를 더 보고 가자. 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한 말의 문인인 채옹(蔡邕)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삼년동안 옷을 벗지 못하고 간호해 드렸다.

마지막에 병세가 악화되자 백일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피다가 돌아가시자 무덤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侍墓)살이를 했다.

그 후 옹(邕)의 방 앞에 두 그루의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어 성장하더니 결(理)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한 그루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으로 효성이 지극함을 나타냈으나 현재는 남녀 사이 혹은 부부애가 진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연리지(連理枝)라는 말인데 처음에는 지극한 효심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후대에는 이 말이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쓰였는데 백낙천(白樂天)의 장한가(長恨歌)에 나온다.

백낙천이 태어났을 때는 대당제국(大唐帝國)의 영화가 차츰 기울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것은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 때문이었다. 양귀비에 빠진 현종이 정치에 뜻을 잃었던 것이다.

둘의 로맨스가 워낙 유명했으므로 그는 시(詩)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것이 유명한 장한가(長恨歌)다. 생전에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언약했다고 하는데 여기에 연리지(連理枝)가 등장한다.

당(唐)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시(詩) 장한가(長恨歌)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이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위 시(詩)의 비익조(比翼鳥)는 날개가 한쪽 뿐이어서 암컷과 수컷의 날개가 결합되어야만 날 수 있다는 새로서 연리지(連理枝)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 상사병(相思病)

서로 생각하는 병으로, 남녀간에 사랑하면서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그리워한 나머지 생기는 병이다. 연병(戀病), 화풍병, 회심병이라고도 한다.

동진(東晉)의 간보(干寶)가 지은 수신기(搜神記) 11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진다.

전국시대 송(宋)나라 강왕(康王)은 성이 대씨(戴氏)고, 이름은 언(偃)이다. 문공(文公)의 9세손으로, 형인 척성군(剔成君)을 내쫓고 자립하여 군(君)이 되었다. 나라를 세운 지 11년부터 스스로 왕이라 불렀다.

일찍이 동쪽으로는 제(齊)나라를 물리치고 서쪽으로는 위(魏)나라를 물리쳤으며, 남쪽으로는 초(楚)나라를 물리치고, 등(滕)나라를 멸망시키는 등 교만하게 한 시대를 횡행했다.

하나 주색(酒色)을 좋아해 신하들이 간언으로 말리면 곧 활을 쏘아 죽여 버렸다. 제후들이 모두 걸송(桀宋; 포악한 군주인 하나라 걸왕에 비교)이라 불렀다

이런 강왕의 시종 중에 한빙(韓憑)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부인이 절세미인이었다. 강왕은 강제로 한빙의 부인을 데려와 후궁으로 삼고 한빙에게 없는 죄를 만들어 성단(城旦)의 형(변방에서 낮에는 도적 지키고 밤에는 성을 쌓는 인부 일을 하는 형벌)에 처했다.
​宋康王舍人韓憑娶妻何氏, 美, 康王奪之。憑怨, 王囚之, 論為城旦。

한빙의 아내는 남편을 못 잊어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비가 많이 내려 강은 넓어지고 물은 깊어졌는데, 해가 뜨면 마음을 먹을 것입니다(其雨淫淫, 河大水深, 日出當心).”

그런데 이 편지는 전달되지 못하고 왕의 손에 들어갔다. 왕이 좌우에 편지의 뜻을 묻자, 소하(蘇賀)라는 신하가 대답했다. “비가 많이 내린다는 말은 근심하고 그리워한다는 뜻이고, 강이 넓어지고 물이 깊어졌다는 말은 서로 내왕을 할 수가 없다는 뜻이며, 해가 뜨면 마음을 먹는다는 말은 죽을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其雨淫淫, 言愁且思也. 河大水深, 不得往來也, 日出當心, 心有死志也).”

얼마 후 한빙이 자살했다. 하씨는 은밀히 자기 옷을 너덜너덜하게 만들고서, 왕과 함께 누대에 올랐을 때 아래로 몸을 던졌다. 좌우에서 급히 붙잡았으나 옷자락만 끊어지고 사람은 아래로 떨어졌다.

띠에는 다음과 같은 유언이 적혀 있었다. ‘왕은 사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지만 첩은 죽는 것을 행복으로 여깁니다. 시신을 (한빙과)합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王利其生, 妾利其死, 愿以尸骨賜憑合葬).’

화가 난 왕은 사람을 시켜 무덤을 서로 바라보도록 만들게 하고 말했다. “너희 부부의 사랑이 끝이 없다면 무덤을 하나로 합쳐 보아라. 그것까지는 내가 막지 않겠다(爾夫婦相愛不已, 若能使冢合, 則吾弗阻也).”

그날 밤 두 그루의 개오동나무가 각각의 무덤 끝에 나더니, 열흘도 안 되어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몸체가 구부러져 서로에게 다가가고 아래로는 뿌리가 서로 맞닿았다(連理枝).

그리고 나무 위에는 한 쌍의 원앙새가 앉아 하루 종일 떠나지 않고 서로 목을 안고 슬피 울었다. 송나라 사람들이 다 슬퍼하며 그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라고 이름 지었다. ‘상사’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남인(南人)들은 이 새가 바로 한빙 부부의 넋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수양(睢陽)에는 한빙성(韓憑城)이 있고, 그 노래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宿昔之間, 便有大梓木, 生於二冢之端, 旬日而大盈抱, 屈体相就, 根交於下, 枝錯於上. 又有鴛鴦, 雌雄各一, 恒栖樹上, 晨夕不去, 交頸悲鳴, 音聲感人. 宋人哀之, 遂號其木曰相思樹. 相思之名, 起於此也. 南人謂, 此禽卽韓憑夫婦之精魂. 今睢陽有韓憑城, 其歌謠至今猶存.

상사수는 홍두수(紅豆樹)라고도 한다. 이 나무의 열매인 홍두(紅豆)는 상사자(相思子)라고도 하며, 중국의 고대 문학작품에서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거나 친구간에 보고 싶어하는 정을 표현하는 데 많이 쓰였다.

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당나라 왕유(王維)의 시 상사(相思)를 들 수 있다.

紅豆生南國, 春來發幾枝.
홍두는 남쪽 나라에서 자라는데, 봄이 오니 가지들이 새로 돋았네.

願君多采擷, 此物最相思.
그대 이 열매를 많이 따 가져가시게, 이것이 그리움을 가장 돋우는 물건이라오.

한편, 심리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상사병을 독립된 질병으로 보기보다는 우울증이나 슬픔, 절망 등과 관련된 증상으로 다루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뇌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그것을 독립된 질병으로 이해하고, 여러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으로 그 원인과 치료법을 찾으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이성을 그리워하여 생기는 마음의 병 상사병(相思病)

사람을 그리워하여 마음에 든 병이 상사병(相思病)이다. 동성끼리 병이 들 정도로 그리워하기는 드물 것이고 이성끼리라도 사랑으로 생긴 병이지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생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키소스(Narcissos)는 그를 연모한 요정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아 자신만을 사랑하는 벌을 받았다.

조선 송도(松都)서 뛰어난 용모에 시서화에 능했던 황진이(黃眞伊)는 짝사랑한 이웃집 총각이 까맣게 타서 죽자 충격을 받아 기생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모두 상사병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생긴 일이다.

상사(相思)라는 말의 연원은 오래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송(宋)나라 말기의 임금 강왕(康王)은 외치에 능력을 보였으나 주색이 문제였다. 그것을 신하가 간하기라도 하면 활을 쏠 정도로 안하무인이었다.

강왕이 시종 한빙(韓憑)의 절세미인인 부인 하씨(何氏)를 능욕하고 후궁으로 삼았다. 변방에 내쳐진 한빙은 부인을 그리워하다 자살했고 후궁 하씨도 왕과 함께 누대에 올랐다가 남편과 합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투신했다.

화가 난 왕은 유언을 무시하고 일부러 무덤을 서로 바라보게 사이를 벌려 놓았다. 그날 밤 각 무덤에 나무가 생기더니 열흘 뒤에는 아름드리가 되었고 몸체가 구부러지면서 뿌리가 맞닿았다.

나무 위에는 원앙새 한 쌍이 온 종일 목을 안고 슬피 울었다. ‘송나라 사람들은 슬퍼하며 그 나무를 상사수라 불렀다(宋人哀之, 遂號其木曰相思樹).’

동진(東晋)의 역사가 간보(干寶)가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수신기(搜神記)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부부끼리 연인끼리 서로가 그리워하지만 맺어지지 못한 사랑이 지금은 짝사랑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이 병에 걸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정식 병으로 보지 않고 강박장애나 조울병, 우울증 등의 범주에 속한다고 한다.

조선의 시조 한 편을 보자. ‘사람이 사람을 그려 병드단 말가/ 사람이 언마 사람이면 사람 하나 병들일랴/ 사람이 사람 병들이는 사람은 사람 아닌 사람.’

생몰년 미상의 안연보(安烟甫) 작품인데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원인 제공자를 원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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