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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무언불수(無言不讐)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9.09.01|조회수108 목록 댓글 0

무언불수(無言不讐)

말하지 않으면 원한 맺을 일이 없다는 말이다.

無 : 없을 무(灬/8)
言 : 말씀 언(言/0)
不 : 아닐 불(一/3)
讐 : 원수 수(言/16)

출전 : 시경(詩經) 대아(大雅) 억편(抑篇)


이 성어는 시경(詩經) 대아(大雅) 억편(抑篇)에 나오는 구절이다. 춘추전국시대 위무공(衞武公)이 이 시를 지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날마다 곁에서 외우게 하여 스스로 경계하게 하였다 한다.

억편(抑篇)은 12장인데 그 중 6장의 내용을 보자.

無易由言, 無曰苟矣。
쉽게 말을 내지 마라, 구차히 하지 말지어다.

莫捫朕舌, 言不可逝矣。
내 혀를 잡아주는 이가 없는지라, 해 버린 말은 가서 잡을 수 없느니라.

無言不讎, 無德不報。
어느 말에도 대답이 없지 아니하며, 어느 덕에도 보답하지 않음이 없으니라.

惠于朋友, 庶民小子。
친구를 사랑할 지며, 백성과 젊은이를 사랑할지어다.

子孫繩繩, 萬民靡不承。
자자손손 끊임없이 번성하여 만백성이 받들지 않음이 없으리라.

⚪賦也라 易는 輕이오 捫은 持요 逝는 去요 讐는 答이오 承은 奉也라
⚪부라. 이는 가벼움이고 문은 잡음이고, 서는 감이고, 수는 답함이고, 승은 받듦이라.

⚪言不可輕易其言이니 蓋無人爲我執持其舌者라 故로 言語由己하여 易致差失하니 常當執持요 不可放去也라 且天下之理 無有言而不讐하며 無有德而不報者하니 若爾能惠于朋友庶民小子면 則子孫繩繩하여 而萬民이 靡不承矣라하니 皆謹言之效也라
⚪말하기를, ‘말을 가볍고 쉽게 하지 말지니 대개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그 혀를 잡아주는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말이 내 몸에서 말미암아 차질을 이루기가 쉬우니 항상 마땅히 잡아두고 가히 함부로 뱉지 말아야 하니라. 또 천하의 이치가 말을 함에 답하지 않음이 없으며, 덕을 둠에 갚지 않는 자가 없으니 만약에 네가 능히 붕우와 서민과 소자들에게 은혜롭게 한다면 자손이 이어지고 이어져 만민이 받들지 않음이 없으리라.’고 하니, 다 말을 삼가는 효력이라.


⏹ 다음은 허권수 교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의 무언불수(無言不讐) 글이다.

요즘은 통신기기가 발달해 이전보다 종이에 글씨를 직접 써서 보내는 편지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통신량은 훨씬 더 많이 늘어났다. 휴대전화 통화, 휴대전화 문자, 카카오톡 등등의 방법을 이용한 통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방법은 달라졌지만, 통신의 원리는 한 가지다. 서로 만날 수 없는 사람에게 소식이나 정보를 제공하고 교환하는 것이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예법이란 서로 오가는 것을 존중한다(禮尙往來)’는 말과 같이 남의 편지에 답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고등학교 재학 중에 한문 문법에 대해 질문하는 편지를 한문을 잘한다고 이름난 학자 다섯 분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만 답장이 왔다. 그 뒤에 또 편지를 올려도 곧바로 답장이 왔다.

편지만 주고받다가 10년쯤 지나 만나 뵙고, “어찌 저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의 편지에 답장을 다 해주십니까?”라고 여쭈었더니, 답변인즉 “나는 나에게 편지하는 사람에게 답장해 주지 않은 적이 없네”라고 하셨다.

대단한 정성이라고 감동하고 그 뒤 따라서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여러 가지 핑계로 다 되지 못하고 있다.

요즈음은 통신이 빈번한데 통신의 예절은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어떤 초등학교 교장이 필자가 펴낸 변변찮은 책을 한 권 얻으려고 여러 번 전화했다. 그때마다 아주 다급한 일이 있었고, 책은 서고 밑에 쌓여 있어 꺼내려면 몇 시간을 작업해야 할 판이라 상당 기간 지체됐다.

나중에는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했고, 주변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까지 부탁을 했다. 그러나 정작 책을 보낸 뒤에는 받았다는 전화 한 통 없었다.

이런 유사한 경우가 허다하다. 번역 일을 맡겨 놓고는 아침 저녁 전화하다가 부쳐 보내고 나면 다시는 연락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짧게나마 답장을 하든지, 자주 하던 전화를 한 번만 더 해서 받았다고 하면 되지 않겠는가?

요즈음 젊은이들 가운데는 편지나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또 답장을 하지만, 상대방이 물었던 내용, 알고 싶어 하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할 말만 하고 마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대학교수라는 사람도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정보통신이 극도로 발달한 현대사회라고 예절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 맞는 예절이 더더욱 필요하다. 최신 기기로 바꾸면서 예절 없는 마음도 예절 있는 마음으로 바꾸기를 바란다.

시경(詩經) 억편(抑篇)에 ‘덕이 있으면 갚지 않음이 없고, 말이 있으면 응답하지 않음이 없다(無德不報, 無言不讐)’란 구절이 있다. 누가 말을 하거나 편지를 하면 응답이 있어야 의견이 교환된다.


⏹ 덕은 칭찬받는 나다

칭송받을 행위를 하고 그것을 모두에게 인정받는 모양이 바로 한자 덕(德) 자다. 가장 칭송받는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도(道)에 맞춰 사는 것이다. 결국 도가 흥한 게 덕인 것이다.

덕이 복잡하지만 단순한 이유가 그 글자 속에 들어있다. 덕은 남에게 칭송받을 일을 한 '나'다. 그래서 덕 자는 일찍이 은혜라는 뜻으로 쓰였다.

시경에 무언부수 무덕불보(無言不讐, 無德不報)라 했다. 말하지 않으면 원한 맺을 일이 없고, 덕이 없으면 보답을 받을 일이 없다는 의미다. 쉽게 함부로 한 말은 원한을 사고, 공덕을 쌓으면 보답을 받는다는 것이다.

말과 덕은 이처럼 상대적인 개념이다. 덕이란 사거리를 걷는 행위, 실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흔히 박덕(薄德)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게 한다. 행동은 적고 말만 많은 것이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 했지만, 그게 한 번인 경우이지 매번 말로만 그친다면 어떨까? 모두가 그 답을 잘 안다.

묘하게 도와 덕은 다른 이들에게 박수 받는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아마 그래서 도와 덕을 붙여 도덕이라 하는 것은 아닐까?

두 자를 붙여 쓰면 두 가지 동영상이 잇따라 연상된다. 도는 제사장이 신에게 승리를 고하는 제사를 지내러 가는 모습, 그리고 이어서 광장 수많은 군중이 양편에 도열해 길 가는 제사장에게 환호를 다하는 모습이다. 결국 덕은 도가 흥한 모습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도는 개인 스스로 수양하는 것이라면, 덕은 그 수양을 인정받는 것이다 싶다. 그래서 도를 따르면 덕이 높아져 눈이 빛나게 큰 길을 갈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갑골자를 보면 그 의미가 와닿는다.

정치적 의미를 덕이 가지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군중이 환호를 받는 게 정치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덕을 왕도의 최고 덕목으로 본다.

德何如卽可以王矣?
덕이 어떠해야 왕이 될 수 있습니까?

保民而王 莫之能禦也.
백성을 보호해 왕이 되면 누가 그 왕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현대 정치에서 덕은 더욱 의미가 깊다.덕,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칭송을 받아야 선거에 이긴다.

덕이 부족한 정치인에게 꼭 해주고 픈 말이 있다. 한나라 유향의 말이다.

德無細, 怨無小(덕무세, 원무소)
덕은 많고 적음을 구분하지 않고, 원한은 크고 작음을 구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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