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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자지자명(自知者明)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9.09.01|조회수129 목록 댓글 0

자지자명(自知者明)

자기를 아는 사람은 총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自 : 스스로 자(自/0)
知 : 알 지(矢/3)
者 : 놈 자(耂/4)
明 : 밝을 명(日/4)

출전 :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33章


이 성어는 노자 도덕경 33장에도 나오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다른 사람을 아는 자는 지혜로운 것뿐이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것이다.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다른 사람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데 불과하지만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어야 진정한 강자이다.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하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사람이다.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자신이 자리할 곳을 잃지 않는 자가 오래 가고, 죽어서도 잊히지 않는 자가 진정으로 장수하는 사람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어서 어떠한 사람이든지 다 잘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역사상 뛰어난 지도자들은 다른 사람을 잘 알고 잘 맡기는(知人善任)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을 잘 알고 잘 맡기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것을 잘 할 수 있다면 훌륭한 지도자라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알 수 있어야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도(道)를 이룬 사람들을 제외하면 똑똑한 사람이 매우 적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데 남들이 자기를 이해 못한다고 한다. 자신을 아는 현명함(自知者明)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또 힘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정말로 강한 사람인 것이다.

자기 처지를 알고 만족함을 아는 사람이 정말로 부유한 사람인 것이며, 자기 분수를 지키며 자기가 해온 일이 후세(후손)에 잊혀 지지 않는 것일 오래 사는 일이라는 것이다.

논어 안연(顔淵) 편에는 극기복례라는 말이 나온다.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감이 인이 된다. 하루라도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 인을 행함은 자기를 말미암은 것이니 어찌 다른 사람에게 말미암겠는가?”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이 극기(克己)가 바로 자승(自勝)이다.

송(宋) 나라 때의 고승 보제(普濟)선사는
“나 말고 누가 나를 괴롭히겠는가?”라는 말을 했다.

나를 괴롭히는 것도 나, 나를 망치는 것도 나다. 내시반청을 하려면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하고 자신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내시반청을 할 수 있다.


⏹ 자지자명(自知者明) : 자신을 아는 게 밝은 사람이다

내시반청(內視反聽)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말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상군(商君)열전에 나온다.

反廳之謂聰, 內視之謂明, 自勝之謂强. 虞舜有言曰; 自卑也尙矣.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 합니다. 순 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내시반청(內視反聽) 중에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 한다(自勝之謂强)’는 대목은, 세상 무슨 일이든 안일과 나태, 탐욕에 흐르기 쉬운 자기 자신을 이겨야만 이루어낼 수 있다.

자신을 이기는 것에 대해서는 노자 도덕경 33장에도 나온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로울 뿐이지만 자신을 아는 자라야 명철하다.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센 데 불과하지만 자기를 이기는 자라야 진정한 강자이다.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족함을 아는 게 진정한 부자이며 억지로 행하는 자는 특정한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자신이 자리할 곳을 잃지 않는 자가 오래 가고, 죽어서도 잊히지 않는 자가 진정으로 장수하는 사람이다.

이 장의 제목은 변덕(辯德), 덕이란 무엇인가를 논한 대목이다. 남을 아는 것은 상대적 분별이지만 스스로를 아는 것은 절대적 자각이다. 여기 나오는 知가 일반적인 앎이라면 智는 똑똑함 지혜로움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논어 안연(顔淵) 편에는 극기복례라는 말이 나온다. 안연이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감이 인이 된다. 하루라도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 인을 행함은 자기를 말미암은 것이니 어찌 다른 사람에게 말미암겠는가?”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이 극기(克己)가 바로 자승(自勝)이다.

송나라 때의 고승 보제(普濟)선사는 “나 말고 누가 나를 괴롭히겠는가?”라는 말을 했다. 나를 괴롭히는 것도 나, 나를 망치는 것도 나다.

내시반청을 하려면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하고 자신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내시반청을 할 수 있다.


⏹ 자기를 이기는 것, 그것이 어렵다

무예는 인간 투쟁의 발현체다. 거친 자연 속에서 살아 남아야 했고, 그보다 더 독한 인간들과의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인간은 무예를 수련했다.

혼자 살아남기 힘들어 둘이 되었고, 그 보다 더 힘든 상대를 뛰어 넘기 위하여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공동체 안에서도 끊임없는 경쟁에 시달려 가며 오로지 몸으로 승부하기 위하여 무예는 수련되었다.

이러한 전투적인 무예가 공동체 안에서는 살생의 위협을 제거하고 순위를 결정짓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경기 혹은 스포츠가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무예의 본질에 충실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목숨까지 제압한다면 그것은 공동체 전투력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극한의 움직임을 만들되 살상은 가능하면 자제하는 방식이 바로 경기와 스포츠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몸짓은 더 부드러워지고 유쾌해지면서 놀이와 춤을 비롯한 신체 여가활동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모든 공간이 투쟁의 현장이었으며, 경쟁의 연속이었다. 누군가를 이겨야만 더 높은 곳으로, 더 강한 곳으로 들어 갈 수 있었기에 결코 쉽게 승부가 나는 법이 없었다.

상대보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높이 뛰고, 더 멀리 가야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올림픽의 구호가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 경쟁의 공간에서는 오로지 1등 혹은 우승자만 기억될 뿐이다.

그러나 1등의 기쁨은 잠시다. 언제든지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 그 1등을 뛰어 넘어 또 다른 1등으로 기억되곤 한다. 1등은 늘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다. 영화로운 과거를 추억하듯 지나가버린 1등은 한없이 초라해진다.

우리가 가끔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말 중에 상당부분이 왕년의 무용담과 연결된 것이다. 지나간 추억은 한없이 달콤하고 현실이라는 낭떠러지 앞에 앉아 있는 우리의 삶은 늘 초라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상대는 이겼지만, 자기 자신은 이겨내지 못했기에 발생한 일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상대는 온갖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제압할 수 있지만, 정작 자기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하며 천천히 자라나는 자만심이나 만용 등은 욕망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물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노자(老子)가 쓴 도덕경(道德經) 제33장에는 변덕(辯德)이라 하여 ‘덕이란 무엇인가’를 논한 문장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것이 지혜라면,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이다.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남을 이기는 것이 힘있는 것이라면, 자기를 이기는 것은 정말로 강한 것이다.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만족을 아는 것이 부유한 것이고, 억지로 행하는 것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그 본래의 자리를 잃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이고, 죽지만 멸망하지 않는 것이 수를 누리는 것이다.

세상살이를 하면서 누구는 덕이 있네, 없네라고 뒷담화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부덕하네 어쩌네 하며 읍소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자승자강(自勝者强)의 마음을 풀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니, 세상 모든 것이 삐딱하게 보이고 자신만 초라해져 보이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한 인(仁)의 본질도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하여 자기 자신의 마음 속을 극복하고 본연의 모습인 예(禮)로 돌아 가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 예(禮)라는 것이 복잡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주 단순하게 풀어 보면 상대에 대한 적극적이 배려에서 출발한다. 만약 그것에 거추장스러운 꾸밈이 들어가면 예는 힘들어지고 어려워지게 된다.

나도 힘들고 예를 받는 상대도 힘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의 본모습을 제대로 알고 이겨내지 못하면 예도 힘들어지게 된다.

누군가보다 앞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법을 먼저 이해하고 풀어가면 덕(德)도, 인(仁)도 갖춰질 것이며, 자연스럽게 예(禮)도 챙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도 그리 긴 삶은 산 것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을 이기는 일은 참으로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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