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莫無可奈)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다는 뜻으로, 그대로를 살펴보면 어찌할 수 없음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고집이 너무 세거나 무조건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경우에 주로 쓴다.
莫 : 없을 막(艹/7)
無 : 없을 무(灬/8)
可 : 없을 가(口/2)
奈 : 어찌 내(大/5)
(유의어)
막가내하(莫可奈何)
무가내하(無可奈何)
무가여하(無可如何)
불가내하(不可奈何)
출전 : 사기(史記) 卷122 혹리열전(酷吏列傳)
이 성어는 사기(史記) 卷122 혹리열전(酷吏列傳)에 나오며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흉노족과의 잦은 전쟁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궁핍해졌고 터전을 잃은 일부 농민들은 도적으로 변해서 약탈을 일삼게 되었다.
도적의 수는 많게는 수천 명의 무리도 있어 혼란이 가중되므로 나라에서는 군대를 보내어 도적들을 토벌해 수천 명에 또는 만여 급을 베기도 했다.
몇 년 뒤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잡았지만 흩어져 달아난 졸개들은 또다시 무리를 이루어 산천의 가파른 곳에 기대어 관병에게 맞서고 언제나 무리를 지어 살아 어쩔 도리가 없었다.
數歲, 乃頗得其渠率, 散卒失亡, 復聚黨阻山川者, 往往而群居, 無可柰何。
그래서 침명법(沈命法; 도둑을 숨겨 주는 자를 사형에 처하는 법)을 만들어 이렇게 말했다. “도둑떼가 일어났는데도 발견하지 않거나 발견하더라도 전원을 체포하지 못하면 2000석의 고관에서 말단 관리까지 모두 사형에 처한다.”
於是作沈命法, 曰群盜起不發覺, 發覺而捕弗滿品者, 二千石以下至小吏主者皆死。
(史記/ 卷122 酷吏列傳)
이러한 법이 제정된 뒤로 하급 관리들은 처형될까 두려워 도적이 있어도 감히 적발하려 하지 않았다. (막무가내는 순순 우리말의 성어라고도 한다)
⏹ 막무가내(莫無可奈)
도무지 어찌할 수 없음, 고집불통
황소고집, 쇠고집이란 말이 있다.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고집이 있는 사람이다.
물론 옳은 방향으로 나간다면 소신이 굳은 사람으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조금도 융통성이 없이, 주변의 충고도 묵살하고 앞으로만 나간다면 고집불통(固執不通)의 황소가 된다.
고집이 세며 완고하고 우둔하여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아니하는 무뚝뚝한 사람을 일러 벽창호라고도 한다.
평안북도 벽동(碧潼)군과 창성(昌城)군의 험한 산골에서 자라난 크고 억센 소 벽창우(碧昌牛)가 변한 말이다. 이들 소는 땅이 척박하고 차가운 지역의 돌투성이에서 농사를 지을 때 앞으로만 나가는 돌파력이 큰 도움이 된다.
벽창우와 닮은 사람은 어떨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로만 나간다면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다. 필히 일을 망치고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막무가내(莫無可奈)다. 같은 말은 아니지만 뜻이 통하는 성어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온다.
열전(列傳) 70편 중에 공정하게 법을 다스린 순리(循吏)에 비해 엄격하고 혹독한 법 집행으로 악명이 높았던 혹리(酷吏) 12명을 따로 열전을 두고 소개한다.
법에 의하긴 했지만 중앙집권적 권력 강화에 동원돼 가차 없이 냉혹하고 방자하게 집행했던 장탕(張湯), 왕온서(王溫舒), 질도(郅都) 등이다.
유방(劉邦)이 한(漢)나라를 세우고 6대에 걸쳐 100여년이 지나 무제(武帝)때가 되자 안으로는 강력한 왕권을 뒷받침하는 혹리들이 나타났다.
거기다 밖으로는 영토 확장으로 북방의 흉노(匈奴)와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백성들의 생활은 궁핍해졌고 터전을 잃은 일부 농민들은 도적이 되어 약탈을 일삼게 되었다.
조정에서 진압군을 보내 우두머리를 잡았지만 ‘다시 반란군은 험한 산천을 끼고 언제나 무리를 지어 대항하므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復聚黨而阻山川者 往往而郡居無可奈何).’ 무가내하(無可奈何)로 나오는데 뜻은 같다.
신념을 관철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항상 혼자의 의견보다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일을 해나가야 실패가 적다. '나만 따르라'고 앞장선 사람이 일을 망치면 도무지 만회할 길이 없다. 그런데도 사회 곳곳에 독불장군이 버티고 있으니 시끄럽다.
⏹ 고마운 벽창우가 고약한 벽창호로
꽉 막혀서 융통성이 없고 고집이 세며, 완고하고 우둔하여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사람,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 같은 이런 사람을 벽창호라고 합니다.
벽창호는 험한 산지가 대부분인 압록강변 평안북도 벽동(碧潼)군과 창성(昌城)군 지방의 크고 억센 소를 가리키던 벽창우(碧昌牛)에서 온 말입니다.
땅이 척박하고, 음력 7월이면 추워져 4월이나 돼야 날이 풀릴 만큼 추운 곳이라지요. 힘센 소가 아니면 돌밭을 갈 수 없고, 그러면 사람들이 끼니를 이어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고마운 벽창우가 고약한 벽창호로 된 것과 비슷한 예가 또 있는데,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그것입니다.
원래 맹렬하고 억척스러우며 강인한 성격의 함경도 사람을 이르던 것인데, 자기 이익을 위해 추잡하게 다투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입니다. 막무가내(莫無可奈)도 한번 고집하면 융통성이 없어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벽창호나 막무가내나 문제는 꽉 쥐면 놓지 않는 고집(固執)이지요. 자기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버티는 고집은, 좋게 보면 신념 있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겠으나, 좁은 식견으로 자기 생각만 관철하려는 고지식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를 낮추고 귀를 여는 것, 소통과 신뢰의 조건입니다.
⏹ 막무가내(莫無可奈)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음
어찌할 수 없다는 뜻인 막무가내(莫無可奈)는 고집이 세거나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경우에 주로 쓴다. 출전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혹리열전(酷吏列傳)이다.
중국 한 무제 때 전쟁으로 살기가 힘들어진 농민들이 여러 곳에서 봉기했다. 조정에서는 진압군을 보냈지만 반란군은, 대규모로 험한 산천을 끼고 고을에 자리 잡고 굳게 막아 지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復聚黨而阻山川者 往往而郡居無可奈何).
이 글에서 보다시피 원래는 무가내하(無可奈何)라고 했다. 막가내하(莫可奈何), 무가여하(無可如何), 불가내하(不可奈何)도 같은 뜻이다.
장자 인간세(人間世)편에서는 공자가 초왕의 명으로 제 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섭공자고(葉公子高)에게 충고를 하면서 불가내하(不可奈何)라는 말을 한다.
공자는 천하에 경계해야 할 것이 천명, 의리 두 가지라고 했다.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천명이며, 신하로서 군주를 섬기는 것은 의리이니,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섬기는 자는, 애락의 감정을 쉽게 바꾸지 않고,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달아, 마음을 편히 하고 천명을 따르니 이는 덕의 지극함이다.”
自事其心者, 哀樂不易施乎前, 知其不可奈何而安之若命, 德之至也.
그러니 안위를 따지지 말고 사자로 가라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