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이라는 뜻으로, 가장 비참하고 견디기 힘든 슬픔과 고통을 나타내는 말이다.
斷 : 끊을 단(斤/14)
腸 : 창자 장(月/9)
之 : 갈 지(丿/3)
哀 : 슬플 애(口/6)
단장지애(斷腸之哀)는 가장 비참하고 견디기 힘든 슬픔과 고통을 나타내는 말이다. 단장(斷腸)은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이다. 부모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라 하여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비참하고 견디기 힘든 아픔이 자식을 잃는 일이다. 그래서 이를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 곧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하였다.
원숭이는 가족애 모성애가 강하다. 가족을 잃은 원숭이의 울음소리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우리는 매우 슬플 때 단장(斷腸), 즉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단장의 미아리고개’라는 유행가도 있다.
근심과 슬픔으로 넋이 빠지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상태를 소혼단장(消魂斷腸)이라고 한다.
단장의 출처는 남송(南宋)시대 유의경(劉義慶)이 지은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출면(黜免)편이다. 黜(출)은 물러남, 몰아냄, 免(면)은 파면을 말하니 벼슬자리에서 쫓겨나거나 비방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부분이다.
동진(東晋)의 환온(桓溫)이 촉(蜀) 땅으로 공격해 들어가 삼협(三峽)에 이르렀을 때 원숭이 새끼를 잡은 병사가 있었다. 그 어미가 강 언덕으로 100여 리를 따라오며 슬피 울다가 마침내 배에 뛰어오르더니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배 속을 가르고 보니 창자가 모두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破視其腹中, 腸皆寸寸斷). 환온은 격노하여 그 사람을 파면하라고 명했다. 오늘날의 싼샤댐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같다고 하여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한다.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끊어졌다는 뜻에서 모원단장(母猿斷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문학에는 원숭이 울음소리(猿嘯)가 많이 등장한다. 특히 가을의 슬픈 정조를 형용할 때 많이 쓰인다. 고교 교과서에 두시언해 가운데 하나로 실렸던 두보의 등고(登高) 중 한 대목이다.
風急天高猿嘯哀
바람이 빠르며 하늘이 높고 원숭이 휘파람이 슬프니,
渚淸沙白鳥飛廻
물가가 맑고 모래 흰 곳에 새가 돌아오는구나.
이백의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 마지막 2행은 이렇게 돼 있다.
兩岸猿聲啼不住
양쪽 언덕 처절한 원숭이 울음 이어지고,
輕舟已過萬重山
날쌘 배는 어느덧 첩첩산중 만산을 지나네.
⏹ 단장(斷腸)의 슬픔
불과 얼마 전 죽은 새끼를 코에 올려놓고 사흘간 바다를 헤맨 어미 범고래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 적이 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의하면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 빅토리아 앞바다에서 범고래 새끼 한 마리가 태어난 지 30여분 만에 숨졌다.
어미 고래는 갓 태어나 지방질이 충분치 않은 새끼가 물에 빠지면 물속으로 들어가 새끼의 지느러미 발을 물어 다시 건져 올렸다.
자신의 코 위에 놓고 균형을 잡으면서 차마 죽은 새끼와 헤어지지 못하고 약 421Km를 헤엄쳤다고 한다.
또한 센트럴 팍 어린이동물원에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동물 중 하나가 스노우 몽키다. 바위 위를 뛰어 다니거나 일광욕을 하면서 서로 긁어주고 손으로 무언가를 먹는 원숭이를 보면 늘 단장지애(斷腸之哀)라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진 제국의 대장 환온이 성한을 정벌하기 위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 삼협이라는 계곡을 지날 때였다. 이곳에서 부하 한 명이 새끼 원숭이를 잡아왔다.
그런데 어미 원숭이가 며칠간을 협곡을 따라오며 수백리 길을 울었다. 배가 강기슭에 닿자 어미원숭이는 배에 뛰어들어 새끼도 못보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모두 끊어져 있었다.
환온은 “아무리 짐승일지라도 모정이 지극하다”면서 어미원숭이를 후히 장사 지내주고 새끼원숭이를 풀어주었다. 물론 그 부하는 엄한 벌을 받고 내쳐졌고 이후 환온은 성한을 정벌했다.
이처럼 사람이나 포유류 동물이나 부모가 자식을 잃은 슬픔은 창자를 끊어내는 슬픔, 단장(斷腸)이다. 우리가 잘 아는 가요 ‘단장의 미아리 고개(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가 있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감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많은 미아리 고개....”
이 미아리 고개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다. 전쟁발발 초기 국군과 인민군의 교전이 벌어진 곳이고 남측 인사들이 이곳을 지나 북으로 끌려갔다. 그래서 이산가족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되었다.
그런데 21세기 선진국 대열 문턱에 선 한국에서 다시 이러한 단장의 슬픔을 보았다. 67년 만에 금강산에서 만나 2박3일간 상봉행사를 마치고 다시 남과 북으로 헤어져야 했던 이산가족들.
남측의 99세 어머니와 북측의 71세와 72세인 두 딸은 버스 차창에 서로 손을 마주 대며 ‘아이고 아이고’ 통곡을 했다. “어머니, 건강하시라요“ 외치는 두 딸도 주름진 얼굴과 검버섯이 핀 마른 손, 이들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남측의 99세 아버지가 75세의 북측 아들에게 말한다. “가짜 아버지 아니야, 너 아버지 있어.” 평생 잊고 살았던 아버지를 불러보는 아들, 이들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92세의 어머니와 71세의 백발 아들, 89세의 아버지와 3살 때 헤어진 71세의 딸, 이들 역시 두 번 다시 못만날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손자손녀, 형제자매들, 삼촌과 조카, 다들 천륜과 핏줄이 끊어졌음을 애통해 했다. 도대체 이렇게 잔인한 행사는 언제까지 계속 되어야 할까.
상봉이 이뤄지고 있다지만 아직 상봉의 기회조차 잡지못한 이산가족이 수만 명이다. 무엇보다도 재미한인들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신청조차 못한다.
한국정부가 고위급 회담서 북한에 제안 했지만 미주한인은 한국계이지만 국적이 미국인이므로 상봉대상 명단에 포함될 수 없다고 거절했다 한다.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확인, 상시 상봉, 서신교환, 고향 방문 등 이산가족 상봉 확대는 언제 합의가 되고 언제나 실시되려나. 그 전에 다들 숨넘어가게 생겼다.
⏹ 가슴에 묻은 자식
아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 그 다음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미친 듯이 몸을 솟구치면서 울부짖을 차례였다.
(中略)
목청껏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통곡하면 소리와 함께 고통이 발산되면서 곧 환장을 하거나 무당 같은 게 되어서 죽은 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고(故) 박완서씨가 2004년 내놓은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의 한 대목이다.
그는 1988년 남편 별세 후 넉 달 만에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서 일기에 “자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에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만 같다”고 썼다.
아들을 따라 죽지 못한 자신을 저주하며 하느님에게 따지고 물어뜯었다. “만만한 건 신이어서 신을 죽이고 또 죽였다”고 했다.
부모의 죽음은 천붕(天崩)이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라는 뜻이다. 자식의 죽음은 참척(慘慽),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한다. 참혹한 슬픔, 창자가 끊어지는 애달픔이라는 말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펜션으로 체험학습에 나선 고3 학생 10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3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친 지난 18일 강릉 경포는 하늘이 무너지고 창자가 끊긴 곳이었다.
자식을 잃은 모정(母情)의 울부짖음이 없었겠는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고통스러운 상처를 남긴다. 그중에서도 자식을 먼저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상처가 가장 깊고도 크다.
이 참사, 이 비극을 우리는 어떻게 감내해야 하나. 또 안전불감증 사고! 그동안 그렇게 많이, 또 깊이 우리 스스로 자책하고, 다시는 일어나게 해선 안 된다고 다짐했던 안전불감증 사고가 이렇게 재연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부끄럽다.
⏹ 부모는 땅속에 묻고, 자식은 가슴속에 묻는다 (김길웅 시인)
부모든 자식이든 죽으면 땅속에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데 자식은 죽으면 땅속에 묻는다 하지 않고 가슴속에 묻는다고 했다.
그것은 다른 무엇에 비할 수 없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보다 앞서 눈을 감는다는 것은 부모의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는 일이다.
이 속담은, 부모의 죽음보다 자식의 죽음이 더 애통한 것임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비슷한 속담이 있다. “자식은 보내 두고도 할긋할긋 기다린다.”
여기서 ‘할긋할긋’은 이제나 저제나 하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내는 부사다. 참혹한 일을 당해 애태우는 제주인의 섬세한 성정(性情)을 나타낸 말로 제주방언이 갖는 독특한 정감을 느끼게 한다. 방언은 거칠고 투박한 것 같으면서도 이런 섬세한 표현들이 적지 않다.
세상에 어느 부모치고 제 자식을 아끼고 그리워하지 않으랴. 큰 뜻을 품고 잠시 먼 데로 떠나가는 자식과의 헤어짐에도 가슴을 쓸어내리거늘,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이별이 있다.
참척(慘慽)이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음을 뜻하는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부모가 그 자식을 앞세운다는 말이다. 이에 더할 가슴 아픈 일이 있으랴.
이처럼 고통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을 알지 못하는 아픔이고 슬픔이다. 참척당한 부모에게 하는 조의(弔意)는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도 모진 고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부모의 죽음을 천붕지괴(天崩地壞), 곧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에 비유하고, 자식의 죽음을 참척 또는 단장지애(斷腸之哀: 창자가 끊어지는 애달픔)이라 한다.
더욱이 한 가문의 대(代)를 이을 아들의 죽음은 상명(喪明)이라 한다. 자식을 묻는 것은 태양을 묻는 것처럼 온 천지가 캄캄해지는 일이라는 뜻이다.
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아 온 사람도 참척을 당하면, 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
자신의 성품과 꼭 닮아 그토록 사랑했던 셋째 아들 면을 잃은 충무공 이순신은,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 하거늘” 이라며 자식하고 생사를 맞바꿀 수 없음을 한탄했다.
자신의 문학을 이해한 둘째 아들을 잃은 조선시대의 문호 '오우가', '어부사시사'의 고산 윤선도는 “가을바람 불고 달 밝은 밤이면 내 어찌 너 없이 누각에 오를 수 있으랴”며 즐기던 음풍농월(吟風弄月)을 끊었다.
늦은 나이에 겨우 얻은 네 살배기 아들을 추락사로 잃은 애리 클랩튼은 한동안 알코올 중독과 자학적 삶에 침몰해 힘들어 했다 한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1970년에 발표한 소설 '나목'의 故 박완서 작가도 생전에 참척의 고통을 당했던 분이다.
운명이라는 것일까. 남편을 잃은 슬픔을 채 추스르기도 전 어느 날, 분신 같던 외아들(젊은 의사)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무 예고도 없이,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경황도 주지 않은 채 자신의 곁을 떠났다.
작가는 스스로 “이건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다”라 했다. 자식을 앞세운 참척의 창망(悵惘)한 심경을 피를 토하듯 토정한 것이다. 참척의 고통을 당한 어미의 비통한 심경이 그대로 기록된 게 그의 일기다.
실제로 통곡 대신 미친 듯이 끼적거린 그의 일기에는 앞서 간 아들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 자신이 겪고 있는 극한의 고통과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무정한 세상에 대한 분노, 우리 인생의 생명을 주관하는 하나님에 대한 저주가 뒤섞여 있다.
그것은 도무지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환난이나 시험이나 고난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언제든지 가질 수밖에 없는 솔직한 양심의 소리이기도 하다. “부몬 땅속에 묻곡, 자식은 가슴속에 묻나.”
인간사에 이에 더할 참담한 일이 있으랴. 가난이야 부지런은 하늘도 돕는다 하고, 한때의 실패야 딛고 일어서면 될 것이지만, 차마 못 볼 일이 부모가 그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참척이다. 한 세상 살며 그런 슬픔만 당하지 않아도 복락을 누리는 것일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