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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군자지유(君子之儒)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20.01.28|조회수197 목록 댓글 0


군자는 학식이 높은 사람이다.

君 : 임금 군(口/4)
子 : 아들 자(子/0)
之 : 의 지(丿/3)
儒 : 선비 유(亻/14)


이 성어는 소설 삼국지에서 공명(孔明; 제갈량)이 오(吳)나라에 가서 동맹을 맺기 전에 오나라 선비들과 대담하는 가운데 나온 말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엄준(嚴畯)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못한다. 또 한 사람이 소리 높여 한마디 한다. “공이 큰 소리는 치지만 제대로 된 학문이 없으니 선비들의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걱정이오.”
嚴畯低頭喪氣而不能對。忽又一人大聲曰 : 公好為大言, 未必真有實學, 恐適為儒者所笑耳。

공명이 보니, 여남 사람 정덕추(程德樞)다. 공명이 대답한다. “선비 중에도 군자와 소인배가 있소.
孔明視其人, 乃汝南程德樞也。孔明答曰 : 儒有君子小人之別。

군자 선비는 임금에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바른 것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싫어하니, 일을 함에 있어 당대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미치니, 이름을 후세에 길이 남는 것이오.
君子之儒, 忠君愛國, 守正惡邪, 務使澤及當時, 名留後世。

소인 선비라면 그저 책벌레처럼 글줄이나 파고 문장을 다듬는 데만 교묘하여, 젊어서는 부를 짓고, 늙어서는 경전을 연구하며, 붓을 들면 천 자를 써 내지만 가슴속에는 한 가지 계책도 없는 법이오.
若夫小人之儒, 惟務雕蟲, 專工翰墨, 青春作賦, 皓首窮經, 筆下雖有千言, 胸中實無一策。

이를테면 양웅(揚雄; 한나라 전기 문장가)이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왕망에게 몸을 굽혀 섬기다가 마침내 누각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죽었으니, 이것이 바로 소인배 선비라는 것이오.
且如揚雄以文章名世, 而屈身事莽, 不免投閣而死, 此所謂小人之儒也。

하루에 만 자의 시(賦)를 짓는 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雖日賦萬言, 亦何取哉。
(三國演義/第043回)


⏹ 儒(유)

공자는 유가(儒家)를 일으킨 창시자이자, 동아시아 정신문명을 열어간 대스승이다. 그의 학파를 두고 왜 儒(유)라고 표현했을까.

儒는 선비를 뜻한다. 굳이 오늘 말로 표현하자면 학자다. 그러나 글자가 등장한 고대 중국에서 儒는 장례사를 일컫는 말이었다.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는 儒, 柔也, 術士之稱이라고 했다. '글자 儒는 부드러움을 뜻하며, 술사(術士)를 지칭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술사가 바로 장례를 주관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술사의 지위는 높지 않았다. 언제나 남에게 순종해야 했고, 낮은 자세로 일했다. 그러니 ‘부드럽다’는 뜻이 나온 것으로 중국의 언어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장례사는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도사(道士)다. 이들은 무엇인가 아는 게 많은 신통한 사람으로 받아 들여지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춘추시대에 들면서 儒는 학식이 높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漢)나라 시기 학자였던 양웅(揚雄)이 편찬한 양자법언(揚子法言)은 '하늘, 땅, 사람의 도에 통한 사람을 가르켜 유라한다(通天地人曰儒)'고 했다. 단순한 장례사 직업을 뜻하던 단어가 지식이 있는 사람, 즉 학자라는 뜻으로 진화된 것이다.

공자는 제자 자하(子夏)에게, “너는 군자 학자가 되어야지, 절대로 소인 학자가 되어서는 안된다(汝爲君子儒, 無爲小人儒)”고 말했다. (論語/雍也)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처음 등장한 학자들의 무리(群)였고, 후대 이들을 일컬어 儒家(유가)라고 표현한 것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우리가 흔히 읽는 삼국지(三國志)의 영웅 제갈공명은 공자가 말한 君子儒, 小人儒를 이렇게 설명한다.

君子之儒, 忠君愛國, 守正惡邪.
군자 학자는 임금에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정의를 지키고 사악을 멀리한다.

小人之儒, 笔下雖有千言, 胸中實無一策
반면에 소인 학자는 글을 쓸 때는 온갖 화려한 단어를 구사하지만 정작 가슴 속에는 아무런 실질적 대책이 없다.

실천하는 지식인이 되라는 얘기다. 공자가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 이 땅의 학자들에게 던지는 충고이기도 하다.


⏹ 공부(工夫)

물음표(?)와 느낌표(!)는 의문으로 시작해서 놀람으로 끝나는 이 단어는 호기심과 놀라움의 감정을 동시에 표현한 단어이다.

일상에서 ‘이것이 무엇이지?’에서 출발해서 ‘아하 이것이구나!’로 마무리 되는 물음(?)과 느낌(!)의 일들이 대부분이다. 다소의 비약된 논리라고 할 수 있지만 물음에 대한 느낌과 마무리의 연속 과정이 바로 공부(工夫)가 아닌가 생각 해 본다.

2015년 IBM 보고서에 따르면, ‘매일 5조 권 책 분량의 정보가 쏟아지고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의 90%는 지난 2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날마다 새로운 지식으로 넘쳐 나고 있으니 얼마나 아느냐보다 자기에게 꼭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자기 나름의 창의적인 공부법을 개발하여 지식과 정보를 구조화하고 평소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공부의 사전적 의미는,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신영복 교수의 담론(談論)에는, 공부를 파자(破字) 해석해서, 工(공)은 하늘(−)과 땅(−)을 잇는 것으로 풀이하고, 夫(부)는 하늘과 땅을 뜻하는 이(二)를 사람(人)이 연결함을 나타내며,

공부(工夫)는 사람이 천지 곧 세상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세계와 나에 대한 공부이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이며,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省察)과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 과정이며,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여행이며, 머리는 인식을, 가슴은 인식의 공감과 변화와 창조를, 말은 실천을 뜻하며, 공부는 인식과 인식에 따른 변화와 창조를 실천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용(中庸) 제 20장에, "혹은 태어나면서 알고, 혹은 배워서 알고, 혹은 어렵게 배워서 알기도 하나, 그 아는 데 미쳐서는 한가지이다."
惑生而知之(혹생이지지)
惑學而知之(혹학이지지)
惑困而知之(혹곤이지지)
及其知之一也(급기지지일야)

이 구절은 인간이 무엇을 터득하는 데는 生而知之(생이지지), 學而知之(학이지지), 困而知之(곤이지지) 세 종류가 있다고 하겠다.

생이지지는, 태어나면서 부터 바로 아는 경지를 말하며, 학이지지는, 평범하게 배움을 통해서 아는 경지를 말하고, 곤이지지는, 어렵게 힘들여서 아는 경지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공부도 자기의 내면적 성취를 위해서 자기 자신의 인격 수양을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남의 이목(耳目)을 생각하여 하는 공부나 남들의 평판(評判)에 관심을 쏟아 이름을 얻는 것을 목표로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를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인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하고 후자를 남을 위한 공부, 즉 위인지학(爲人之學)이라 한다. 올바른 공부는 바로 자기의 내면을 가꾸는 위기지학이어야 한다.

옛날 선비들은 학문(공부)하는 방법 및 순서를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辯), 독행(篤行)의 순서로 정하고 실천하였다.

첫째, 박학(博學)이다. 널리 배우는 것이다. 군자는 배우지 않을지언정 배운다고 마음먹었으면 개방적인 태도로 널리 배우고 온전히 배운다.

둘째, 심문(審問)이다. 의심나는 것은 깊이 파고들어 이해가 될 때까지 묻는다. 묻지 않을지언정 물으면 정확히 알지 않고는 그만 두지 않는다.

셋째, 신사(愼思)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그 실행을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한번 생각하면 제대로 밝히지 않고는 그만 두지 않는다.

넷째, 명변(明辯)이다. 명확하게 판단한다. 판단하지 않을지언정 한번 판단하면 제대로 밝히지 않고는 그만 두지 않는다.

다섯째, 독행(篤行)이다. 행동하려면 독실하게 행동한다. 행동하지 않을지언정 한번 행동하면 확실히 실천하지 않고서는 그만 두지 않는다.

퇴계선생의 위기지학 편에는, “군자의 학문은 위기(爲己)일 뿐이다. 위기(爲己)란 무엇인가? 하는 바 없이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경지이다. 마치 깊은 산 무성한 숲속에 한 포기의 난초와 같은 것이다. 종일토록 향기를 품으나 그 자신은 그 향기로움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바로 군자의 위기(爲己)의 의리에 부합하는 것이니 마땅히 깊이 체득할 일이로다.”
君子之學, 爲己而已.
所爲爲己者, 無所爲而然也.
如深山茂林之中, 有一蘭草.
終日薰香, 而不自知其爲香, 正合於君子爲己之學, 宜深體之.

진정한 공부(工夫)는 성찰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의 인격을 수양시키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며, 군자지유(君子之儒), 대동지유(大同之儒)로 이어져야 한다.


⏹ 한명회, 신숙주에 둘러싸인 예종이 단명한 이유는?

군자유(君子儒)

세조 13년(1467 丁亥 / 明 성화(成化) 3년) 7월 11일(甲戌)

제신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사간원 정언이 김국광의 비위를 아뢰다.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봉원군(蓬原君) 정창손(鄭昌孫), 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 능성군(綾城君) 구치관(具致寬), 영의정(領議政) 심회(沈澮), 좌의정(左議政) 최항(崔恒), 우의정(右議政) 홍윤성(洪允成), 우참찬(右參贊) 김국광(金國光)과 여러 장수와 승지(承旨) 등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었다.

세자(世子)가 모시니, 임금이 필선(弼善) 정효상(鄭孝常)에게 이르기를, “옛날에 세종조(世宗朝)에 있어서 문종(文宗)이 세자였을 때, 서연관(書筵官) 최만리(崔萬理)와 박중림(朴仲林) 등이 세자를 보익(輔翼)하는 데, 하나라도 조그마한 과실(過失)이 있으면 문득 간(諫)하여 마지않았다.

내가 지금까지도 생각하면, 이 두 신하는 그 직책(職責)을 능히 다하였다고 할 만한데, 우연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제 그대들은 한 번도 선한 말을 진달(陳達)하여 세자를 경계한 것을 듣지 못하였으니, 아첨(阿諂)하고 아유(阿諛)함이 심하다.

세자가 혹시 궁시(弓矢)를 일삼으면 그대들은 어찌 궁시(弓矢)를 그르다고 하지 않는가? 그대들이 비록 ‘문무(文武)는 편폐(偏廢)하는 것이 불가(不可)하다’고 할지라도 어찌 세자와 더불어, ‘무(武)를 그만두시고 문(文)을 닦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말하지 아니하는가?’

하고, 세자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유자(儒者)는 공경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네가 마땅히 공경하여야 한다. 내가 유자(儒者)와 더불어 담론(談論)할 때에, 혹시 유자(儒者)를 우활(迂闊)하다고 하나, 내가 실제로는 농담하는 것이니, 너는 듣고서 믿지 말고, 공경하고 공경하라.
顧謂世子曰 : 儒者不可不敬, 汝當敬之. 予與儒者談論時, 或以儒爲迂, 予實戲爾, 汝勿聽信, 敬之敬之.

공자(孔子)가 이르시기를, ‘너는 군자(君子)의 유자(儒者)가 될 것이요, 소인(小人)의 유자(儒者)가 되지 말라’ 하였으니, 유자(儒者)에도 군자(君子)가 있고 소인(小人)이 있다.
孔子曰 : 汝爲君子儒, 無爲小人儒. 儒有君子, 有小人.

소인(小人)의 유자(儒者)는 진실로 가까이 할 수가 없으며, 군자(君子)의 유자(儒者)는 높이고 중하게 여기라. 예(禮)로써 접대하여도 오히려 혹시 경홀(輕忽)히 할까봐 두려운데, 하물며 거만하게 대하겠는가?” 하였다.
小人之儒, 固不可親;
君子之儒, 尊而重之.
禮而接之, 猶恐或忽, 況慢之乎?

이 말은 논어 옹야(雍也)편 11장의 말로, 공자께서 자하에게 말하길, "너는 군자의 학자가 되고, 소인의 학자가 되지 말라."
子謂子夏曰 :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이 문장에 정이천(程伊川)은 "君子의 학자는 자신을 위하고, 小人의 학자는 남을 위한다"고 하여 위기(爲己)와 위인(爲人)으로 구분했는데,

이 말은 원래 헌문(憲問)편 25장에,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해서 공부를 했는데, 요즘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해 배운다(古之學者, 爲己; 今之學者, 爲人)"에서 인용한 것으로 위기(爲己)의 學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기 위한 학문을 하는 것이며, 위인(爲人)의 學은 남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학문을 말한다.

또 사량좌(謝良佐)가 말하길, "君子와 小人의 구분은 의(義)와 리(利)의 사이일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利라는 것이 어찌 반드시 재화(財貨)를 증식하는 것만을 말하겠는가? 사사로움으로 공정함을 잃고 자신에게만 맞게 하여 스스로 편케 해서 무릇 천리(天理)를 해칠 수 있는 것은 모두 利이다. 자하(子夏)가 문학(文學)은 비록 유여(有餘)했으나, 짐작컨대 그 원대(遠大)한 것(義理)에는 혹 어두운 듯하다. 고로 공자께서 이 말씀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다."라고 했다.

이 기사는 세조가 제신(諸臣)들을 모아 놓고 주연(酒宴)을 벌이면서 세자(世子)인 훗날 예종에게 한 말이다.

너는 소인의 유자(儒者)를 가까이 하지 말고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는 군자의 유자(儒者)를 존경하고 따르라는 것이다.

세자가 중신들에게 인사를 안 하거나 거만하게 구는 모습으로 비쳤던지 지금 자기가 유학자인 중신(重臣)들과 농담하면서 함부로 대하더라도 그것은 농이니 너는 경홀(輕忽)히 대하지 말라면서,

세자시강원의 필선(弼善)인 정효상(鄭孝常)에게 옛날 문종이 세자 시절에 세자시강원의 최만리(崔萬里)나 박중림(朴仲林) 같은 서연관(書筵官)들은 세자에게 엄하게 훈도를 했는데, 왜 지금은 세자가 학문을 게을리 하고 활쏘기만 하고 다니는데도 가만 놔 두냐고 질책을 가하고 있다.

이는 아비가 자식을 염려하는 노파심에서 한 말이지만 아비가 자식을 볼 때는 항상 미진함이 있었으므로 보다 더 담금질을 시키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원로(元老) 대신들의 기(氣)를 살려 주었으니 나중에 예종이 즉위해서도 한명회, 신숙주, 구치관을 비롯한 중신(重臣)들에게 눌려서 제대로 정사(政事)를 펴 보지도 못하고, 요절(夭折)하고 말았으니 세조가 그것까지는 몰랐었나 보다.

아무튼 이날의 술자리에서 세조 임금이 매우 취해서 파(罷)했다고 실록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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