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전 읽기

[사람과운명]양탕지비(揚湯止沸)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20.01.31|조회수615 목록 댓글 0


끓는 물을 퍼냈다가 다시 부어 끓는 것을 그치게 한다는 뜻으로, 임시로 미봉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揚 : 오를 양(扌/9)
湯 : 넘어질 탕(氵/9)
止 : 발 지(止/0)
沸 : 끓을 비(氵/5)

출전 :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유이전(劉廙傳)


삼국시대에 형주(荊州)자사 유표(劉表)의 동생 유이(劉廙)는 유표가 죽은 뒤 조조(曹操)에게 귀순했다.

유이의 동생 유위(劉偉)는 조조에게 반기를 든 위풍(魏諷)의 반란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는데, 유이의 인물을 높이 평가한 조조는 ‘형제에게 죄를 연좌하지 않는 것이 고래의 법제’라며 죄를 묻지 않았다.

유이는 조조에게 글을 올려 감사를 표했는데,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신의 죄는 종중을 기울게 하고 화는 멸족에 해당되지만, 폐하의 성명(聖明)을 입고 시운을 만나 끓는 물을 퍼냈다가 다시 부어 물이 끓는 것을 막아 타지 않게 된 격이 되었습니다.
臣罪應傾宗, 禍應覆族, 遭乾坤之靈, 値時來之運, 揚湯止沸, 使不燋爛.

식어 버린 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말라 죽은 나무에서 꽃이 핀 것과 같습니다.
起煙於寒灰之上, 生華於已枯之木.

만물은 하늘과 땅의 베풂에 답례하지 아니하고, 아들은 부모가 낳아 준 것에 대해 사례하지 않지만, 죽음으로써 보답을 할 수가 있음을 붓으로 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物不答施於天地, 子不謝生於父母, 可以死效, 難用筆陳.

이 이야기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유이전(劉廙傳)에 나온다.

양탕지비는 원래는 화급한 상황을 다소 늦춘다는 뜻이었는데, 후에는 일시적으로는 곤경에서 벗어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마른 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뜻의 고수생화(枯樹生華)도 유래했다.

양탕지비의 원형은 이탕지비(以湯止沸)인데, 이는 다음의 전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즘 세상은 점술과 복을 비는 일을 숭상하므로 질병이 더욱 심하다.
今世上卜筮禱祠, 故疾病愈來.

화살을 쏘는 일에 비유하자면 활을 쏘아 과녁에 명중시키지 못하였다고 과녁을 수리하면 그것이 명중시키는 일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譬之若射者, 射而不中, 反修於招, 何益於中.

무릇 끓는 물로써 물이 끓는 것을 그치게 하려 한다면 물은 더욱 세차게 끓게 될 것이나, 불을 끄면 물이 끓지 않게 될 것이다.
夫以湯止沸, 沸愈不止, 去其火則止矣.

이 글은 여씨춘추(呂氏春秋) 진수(盡數)에 나오는데, 양생(養生)에 관한 내용이다.

질병 치료를 의술에 의존하지 않고 점술과 기도에만 의존함으로써 병세를 더욱 악화시키는 세태를 경계하고, 근본적인 치료를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글의 ‘이탕지비’에서 ‘양탕지비’가 나왔다.

문자(文子) 상례(上禮)에서는 “끓는 물로써 끓음을 그치게 하려 하면, 끓음은 더욱더 심해진다. 그 뿌리를 아는 이는 불을 없앨 따름이다”라고 했다.
揚湯止沸, 沸乃益甚.
知其本者, 去火而已.


⏹ 양탕지비(揚湯止沸)

정조 22년(1798) 7월 27일 충청관찰사 이태영(李泰永)이 정조에게 장계를 올려 매년 가을마다 실시해온 마병(馬兵) 선발 시험의 폐지를 청원했다.

혹심한 재해로 농사를 망쳐 생계가 어려운 데 시험장 설치 비용도 만만치 않고, 응시하는 백성들이 양식을 싸 오기도 힘든 상황이라 올해에 한해 시험을 폐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조가 하교했다. "흉년에 백성을 살피는 일은 크고 작은 것 따질 것 없이 성가시게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백성을 귀찮게 할 일은 일절 하지 말라. 그래야 '끓는 물을 퍼냈다가 다시 부어 끓는 것을 멈추게 한다(揚湯止沸)'는 나무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을 성가시게 하지 않는 것이 부역을 면제해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 판에 도와준다면서 일이나 제도를 만들어 나라가 백성을 더 괴롭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글 속의 양탕지비는 한(漢)나라 매승(枚乘)이 '오왕에게 간하여 올린 글(上書諫吳王)'에서 "끓는 물을 식히려 할 때 한 사람이 불을 때는데 백 사람이 물을 퍼냈다가 다시 담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장작을 빼서 불을 그치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欲湯之滄, 一人炊之, 百人揚之, 無益也. 不如絶薪止火而已)"라고 한 데서 나왔다.

'역대사선(歷代史選)' 동한(東漢) 효령황제(孝靈皇帝) 조에서 "끓는 물을 퍼냈다가 다시 부어 끓는 것을 그치게 하는 것은 땔나무를 치우는 것만 못하다(揚湯止沸, 莫若去薪)"고 하고, 이와 나란히 "종기를 터뜨리는 것이 아프기는 해도, 안으로 곪는 것보다 낫다(潰癰雖痛, 勝於內食)"란 말을 인용한 것도 같은 뜻이다.

문제가 있으면 발본색원해서 근원적으로 해결해야지 임시방편으로 돌려막기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숙종 33년(1707) 11월 9일 지평(持平) 이대성(李大成)이 상소를 올려 임금이 붕당(朋黨)을 미워한다면서 막아 끊지 못하고 도리어 조장하니 이러면서 당쟁의 폐해를 막겠다는 것은 양탕지비요, 포신구화(抱薪救火), 즉 섶을 들고 불을 끄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간언했다. 펄펄 끓는 물은 장작을 빼야지 국자로 퍼서는 식힐 수가 없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