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목욕 재계한다는 뜻으로, 마음을 비운다는 말이다.
心: 마음 심(心/0)
齋: 재계할 재(齊/3)
출전 ;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이 성어는 공자(孔子)의 제자 안회(顏回)가 제멋대로 정치를 하는 위나라 군주(衛君)를 설득하러 가려 하자 공자가 안회에게 소통(대화)의 방법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안회가 말했다. “저로서는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顏回曰 : 吾無以進矣, 敢問其方。
공자가 말했다. “재계(齋)하라. 내 너에게 이르겠는데, 그러나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려고 들면 그것이 쉬운 일이 되지는 않을 게다. 그것이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늘이 그를 마땅치 않게 여기실 것이다.”
仲尼曰 : 齋, 吾將語若。有(心)而為之, 其易邪? 易之者, 皡天不宜。
안회가 말했다. “저는 집이 가난하여 술을 마시지 않고 냄새나는 푸성귀도 먹지 않은지 몇 달 되었습니다. 이만하면 재계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顏回曰 : 回之家貧, 唯不飲酒不茹葷者數月矣。如此, 則可以為齋乎?
공자가 말했다. “그것은 제사 때의 재계는 될지언정 마음의 재계는 아니니라.”
仲尼曰 : 是祭祀之齋, 非心齋也。
안회가 말했다. “감히 마음의 재계(心齋)를 묻겠습니다.”
顏回曰 : 敢問心齋。
공자가 말했다. “먼저 뜻을 한데 모아 잡념을 없애라. 그리하여 귀로써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며, 또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써 듣도록 해라! 무릇 들음은 귀에서 그치고 마음은 뜻이 합치는데서 그치지만, 기(氣)는 공허해서 무엇이나 다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도(道)는 오직 공허 속에 모이며, 이 공허가 곧 마음의 재계이니라.”
仲尼曰 : 若一志, 無聽之以耳而聽之以心, 無聽之以心而聽之以氣. 聽止於耳, 心止於符。氣也者, 虛而待物者也。唯道集虛。虛者, 心齋也。
⏹ 심재(心齋)를 아는가?
장자가 소통의 방법론 중에서 최고라고 제시한 것이 심재이다. 마음을 목욕 재계하라. 장자는 이 메시지를 설명하기 위해, 공자와 안회의 대화를 설정한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위왕을 설득하러 가겠다는 제자에게 공자는,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운으로 들으라고 한다.
귀는 듣는데서 그치고 마음은 맞추는데 그치지만 기운은 비어있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어 있음만이 진실을 들일 수 있다. 비우는 것이 바로 마음의 목욕재계, 심재이다.
공자가 안회에게 이런 말을 한 까닭은, 안회가 오로지 선(善)으로 스스로를 갖춰 위왕을 설득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맹자의 권고이기도 한, 어질고 바른 생각들을 채우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소통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잘났고 내가 옳으며 너를 바로잡겠다고 마음 먹고 있는 한, 소통은 거의 불가능하다.
장자는 진실로 통하려면 자기부터 완전하게 비워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내가 우월하다는 생각은 소통에 방해만 될 뿐이며, 자기 말만 지껄이게 될 뿐이다.
남의 말을 '귀'로만 들으면, 그것은 남의 말일 뿐이다. 남의 말을 '마음'으로만 들으면, 그것은 남의 말을 내 마음에 꿰맞춰 이해하고 반응할 뿐이다.
남의 말을 그 '기운'으로 들어야, 남의 말이 내 말과 같은 방식으로 들리게 된다. 그 기운을 받아들이려면 이미 마음속에 들어앉아있는 편견이 될 수 있는 모든 잣대들을 내려놓고 생각을 비워놓아야 한다.
이 빈 방에 빛줄기가 들어와 환해지듯 남의 말이 들어와야 그게 소통이며 타인의 진실을 이해하는 길이다.
나의 옳은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야 말겠다는 생각들이, 역사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소통을 완력의 일방통행으로 어질러 놓았던가.
소통이란,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 판단을 정지하고 충분히 들어서 그것이 지닌 진실을 찾아내려는 노력으로만 빚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다.
날마다 쏟아내는 수많은 언론의 메시지들과 지식인의 담론들은 소통의 가면을 쓰고 확성기를 켠 채 남의 귀를 들쑤시는 소란스런 고통, 즉 소통(騷痛)이라고, 장자의 '심재'가 꼬집어주고 있는 셈이다.
장자의 심재가 요즈음 자꾸 내 마음을 서성이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마음집(心齋)'으로 읽고싶은 생각 때문이다.
마음집을 텅 비워놓아야 다른 생각들이 넘나든다는 것. '나' 하나가 내 마음에 꽉 차 있는 한, 손님이 들어올 수 없다.
나를 잠시 비워놓은 빈 집으로 세상의 생각들과 의견들을 들어와 노닐게 하는 것. 이 심재의 경지가 새삼 그리운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