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음 또는 막힘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감을 이르는 말이다.
一 : 한 일(一/0)
以 : 써 이(人/3)
貫 : 꿸 관(貝/4)
之 : 갈 지(丿/3)
(유의어)
일관(一貫)
초지일관(初志一貫)
출전 :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 이인편(里仁篇)
이 말은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과 이인편(里仁篇)에서 공자 스스로 언급하고 있다.
먼저 위령공편에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모두 기억하는 줄로 아느냐?"
자공(子貢)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아닌가요?"
공자가 "아니다. 나는 하나로 꿸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일관지도(一貫之道)이다. 그러나 이 말을 명확하게 이해한 사람은 제자 가운데 증자(曾子)뿐이었다.
그것은 이인편(里仁篇)에 자세히 나와 있다.
공자가 말하였다. "삼(參)아,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었느니라."
증자가 말하기를, "옳습니다."
공자가 나가자, 제자들이 물었다. "무엇을 이르신 것인가?"
증자가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 라고 하였다.
충은 중(中)과 심(心)의 합체어로서 글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속에 있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仁)이며 성(性)인데, 남을 나처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인(仁)이라 하고 살려는 마음이라는 의미에서 성(性)이라 한다. 그리고 서(恕)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과 같이 생각하는 일이다. 속에 있는 마음인 충(忠)이 밖으로 나타날 때는 서(恕)로 나타난다.
즉, 일이관지(一以貫之)는 공자의 사상과 행동이 하나의 원리로 통일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인(仁)이며, 증자가 충서(忠恕)로 해석한 것은 충성과 용서가 곧 인을 달성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한 번에 끝까지'라는 뜻으로 변형되어 쓰이기도 한다. 그 예로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이나 '일관(一貫)되다' 등이 있다.
▣ 일이관지(一以貫之)
유가(儒家)는 인(仁)이 뿌리다. 인(仁) 위에 서지 않으면 모든 것이 틀어진다는 게 유가적 생각이다. 공자는 인(仁)이라는 바탕에 의(義), 예(禮), 지(智)를 쌓았다.
공자는 늘 배우고 익혔다. 논어 첫 장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는 공자의 삶을 한마디로 응축한다. 그는 타고난 성인이 아니라 평생을 갈고 닦은 성인이다.
증자(曾子)는 효심과 배움이 깊은 공자의 제자다. 공자의 도(道)를 계승했으며, 그의 가르침은 공자의 손자 자사를 거쳐 맹자에게까지 전해졌다. 동양 5성(五聖) 중 한 사람이다.
증자 역시 여느 제자들처럼 스승의 앎을 부러워한 모양이다. 어느 날 공자가 물었다. "삼(參·증자의 이름)아, 너는 내가 모든 걸 배워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증자가 답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스승님."
공자가 말을 이었다. "아니다. 나는 하나로써 꿰었다(一以貫之)."
공자가 나가자 증자의 제자들이 증자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번엔 증자가 답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뿐이다."
논어 위령공편과 이인편에 나오는 얘기다.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이 없다는 뜻인 일관(一貫)은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줄임이다.
증자는 공자를 꿰는 두 축을 충(忠)과 서(恕)로 봤다. 충(忠)은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거다.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거다. 서(恕)는 자신을 헤아려 그 마음으로 남을 헤아리는 거다. 공자가 강조한 추기급인(推己及人), 즉 나로 미뤄 상대를 보는 거다.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성경의 말씀과 뜻이 하나다.
인(仁)은 충(忠)과 서(恕)를 아우른다. 인(仁)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요체다. 그러니 인하지 않으면 사람 형상을 한 동물에 가깝다. 그게 유가적 생각이다. 앎이 빠진 창의는 담론일 뿐이고, 행함이 없는 언변은 수사일 뿐이다.
알맹이 없는 포장은 껍데기일 뿐이고, 근본이 허약한 외침은 메아리일 뿐이다. 뿌리가 바르면 가지도 바르다. 근본이 곧으면 말단도 곧다. 때로는 하나가 참 많은 것을 말해준다.
▣ 일이관지(一以貫之)
子曰 : 參乎! 吾道, 一以貫之.
공자께 말씀하셨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었느니라."
曾子曰 : 唯.
이에 증자가 "예"하고 답하였다.
子出, 門人問曰 : 何謂也?
공자께서 나가시자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曾子曰 :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道)는 충(忠)과 서(恕)일 뿐입니다."
세계는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의 근본이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위에 예시된 논어의 구절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있어서 이보다 간결하고 옳은 답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대하고,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 진실된 마음을 다하고(忠), 타인의 입장을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 공감한다면(恕), 항상 자신이 임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성 혹은 이론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부단히 칼로 자르듯, 줄로 가는 듯, 정으로 쪼는 듯, 숫돌로 광을 내는 듯 다스림으로써 마치 맑은 호수와 거울처럼 고요히 할 때 저절로 몸짓 하나, 말 한마디를 통해서도 드러나는 경지일 것이다.
그 길에서는 자신의 마음에 삿됨(私)이 자리잡는 것을 항상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삿된 마음으로 인하여 진실된 마음에서 멀어지고, 결국 자기가 자신을 속이고, 자기가 자신을 망하는 길로 이끌게 되기 때문이다.
삿된 마음은 수양이 깊어질수록 그 모습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자연스러워진다. 따라서 밝게 보는 지혜가 없이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어 삿됨이 원래 내 몸인양 달라붙어 버리고는 결코 다시는 바른 길로 돌아서지 못하게 된다.
본디 사람이란 짐승이기 때문에 내 몸에 편한 것을 찾아가게 마련이니, 사사로움이란 그러한 본성에 순(順)하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짐승에게 없는 생각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짐승에게는 없는,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병폐가 생긴다.
동물은 자기 배를 채우고 나면 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고 안주하기에 자연을 거스르지 않지만, 사람은 생각이 자기 자신을 속이기 때문에 그 삿됨이 끝간 데 없이 자라날 수가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제각각 이러한 욕심이 키우다보면, 서로 싸우고 뺏고 해치게 된다.
같은 사회 안에서 살아야 함에도 서로 믿을 수 없고, 반목하게 되고, 결국 파멸로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람에게는 이를 막을 수 있는 힘 또한 있다. 공자가 말하는 서(恕), 자기 자신을 비추어 남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공감능력이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만큼이나, 공감능력은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하다. 개인의 이기심(삿된 마음; 私)이 생각으로 인해 끝없이 커지는 것을, 저 사람도 나처럼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길 원한다는 것을 앎으로서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감은 사람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서(恕)는 사사로운 마음(私)이 커지는 것을 막아내고 내려놓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삿된 마음을 버리고 항상 진실한 마음(忠)으로 항상 살아갈 수 있다면, 사람은 본래 어진 마음(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짐승은 다른 개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본능에서 일어나기에 순수하지만 그 한계가 뚜렷하다. 허나 사람이 생각과 공감을 발판삼아 본능을 뛰어넘어 어진 마음(仁)을 갖게 된다면, 그와 같은 인간의 사랑하는 마음은 그 경계가 끝이 없고, 그 깊이가 잴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이 사사로움(私)을 끝까지 따르면 사람은 짐승으로 태어났으나 짐승보다 못한 자가 된다. 삿된 생각은 영혼을 황폐하게 한다. 사사로움을 취하다보면 타인을 헤아리는 마음(恕)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공에 도취하여 중독되는 CEO들이 뇌내 호르몬 분비의 균형이 깨져 공감능력을 상실해가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공감능력을 잃는 것, 이는 곧 타인과의 연결고리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자폐증이라면 자기 만의 세계에 갇히기에 다른 이에게 딱히 피해를 줄 일도, 이유도 없다. 그러나 사사로움에 취해 잘못된 길을 가는 이들의 마음은 외부와의 심리적 유대는 단절되었으나, 자신의 욕심은 끊임없이 외부세계로 뻗어져 나간다. 이로 인해 결국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람은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따라서 그가 가지고자 하는 권력과 물질이 크면 클수록 자신과 남에게 끼치는 해가 이루말할 수 없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잘못된 마음씀으로 인해 변해버린 사람의 뇌는 돌이킬 수 없다. 정신의 변화가 이미 물질의 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에 불가역적이다. 결국 다른 무수한 존재들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그의 영혼은 더이상 깊은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 없고, 보잘것 없는 얕은 차원의 욕구충족과 쾌락만이 그의 악행의 댓가로 주어질 뿐이다.
이 짧은 인생, 자신과 남들에게 하지 못할 일만 하다가 죽음 앞에 놓여 초라하고 비루하게 사라져가게 된다. 아무리 그 겉이 번지르르 한 들 죽음 앞에서 그 의미를 잃는 모든 물질적인 것들은 그를 위로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삿됨(私)을 경계해야 하는 법이고, 자기자신을 수양하고, 바른 가치를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항시 충(忠)과 서(恕)로 귀결되는 덕목을 벗 삼아 이같은 사람의 본성을 역(逆)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법이다.
한 마리 짐승으로 태어나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길은 언제나 거꾸로 거슬러가는 굽이치는 가파른 길이기에 그 길은 항상 험난하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최상승의 지혜를 깨우친 사람에게는 오직 그 길 밖에 가야한 길이 없을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더 깊고, 더 넓어지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대붕역풍비(大鵬逆風飛) 생어역수영(生魚逆水泳)이란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연유로 바르게 살고자 하는 이는 한없는 어진 마음(仁)에 이르기 위해 살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일생은 자기 내면에 도사리는 삿됨(私)이라는 본성의 극복과, 세상 사람들의 삿됨(私)으로 비롯된 외부세계의 불의와 그로 인한 고통을 없애는 일에 바쳐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여정에서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이긴 연후에 외부의 경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먼저 내부의 적을 없애고, 단결해야 하는 이치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아득히 멀어보이는 길의 끝은 언제 다다를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삿되고 거짓된 삶이 아닌 바르고 진실된 삶을 살게 되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피안으로 다다라야 한다. 그 길 밖에는 가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남과 살아감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지만,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는 지혜가 있다면 명약관화하다. 예수와 부처,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평생을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깨우쳤던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 일이관지(一以貫之)
서양 격언은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해서 여름은 아니라'고 했지만 우리의 속담은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했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단적으로 나타나는 예이다.
우리의 속담은 공자의 사상인 일이관지(一以貫之)와 상통한다. 열 가지가 있더라도 하나의 원칙으로 꿴다는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아무리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하나로 꿰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정보의 홍수 시대에 있어서는 그 많은 정보를 무조건 쫓아다니다가 보면 사람이 실성하게 된다. 꿰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여우와 고양이의 대화이다. 고양이가 말했다. "나는 위험에서 벗어나는 꾀를 한 가지밖에 몰라." 여우가 말했다. "그래? 나는 백 가지나 알고 있단다."
그 때 호랑이가 나타났다. 고양이는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갔지만, 여우는 우물쭈물하다가 잡혔다. 여우의 백 가지 꾀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 백 가지 꾀를 하나로 꿰지 못했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고양이는 한 가지 꾀밖에 없었기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 한 꾀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하지 않는가. 어설픈 정보와 지식, 제대로 꿰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만 아는 단순함만 못하다. 이제는 자기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모든 이치를 꿰는 지혜를 모으자.
▣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의 이치써 모든 것을 꿰뚫어라
공자께서 말씀하길, "사야 나를 많이 배우고 모든 이치를 다 아는 자라고 생각하느냐"고 하니 (자공이)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나는 한 가지 이치로 모든 일을 관통한다"고 하셨다.
자공은 공자가 모든 분야에서 박학다식하다고 판단하였으나, 공자는 모든 분야에 박학다식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분야에 관통하면 모든 것에 통한다고 생각했다. 공자는 이인편에서 오직 자기의 학문은 충서지도(忠恕之道)로 일관된다고 하셨다.
일이관지( 一以貫之)는 일관(一貫)이며, 공자는 학문지식이나 도덕행위가 하나의 원리에 의해 체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아 위령공편(衛靈公篇)과 이인편(里仁篇)에서 공자 스스로 언급하고 있다.
이 장(章)에서 공자는 학문지식과 관련해서 일관(一貫)을 강조했다. 한편 이인(里仁)편에서는 도덕행위가 충서(忠恕)의 이념에 따라 일관(一貫)되어야 한다고 증자(曾子)에게 가르쳤다.
하지만 정약용(丁若鏞)은 두 곳의 일관(一貫)이 모두 충서(忠恕), 더 줄여서 서(恕)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지(知)와 행(行)이 분리될 수 없다고 여겨, 두 곳의 일관이 서로 통한다고 본 것이다. 일설(一說)로서 갖추어 둘 만하다.
위령공편에 공자가 말하길,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모두 기억하는 줄로 아느냐?" 자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아닌가요?" 공자가 "아니다. 나는 하나로 꿸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일관지도(一貫之道)다. 이 말을 명확하게 이해한 사람은 제자 가운데 증자(曾子)뿐이었다.
이인편에서 공자가 말하였다. "삼(參)아,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었느니라." 증자가 말하기를, "옳습니다." 공자가 나가자, 제자들이 물었다. "무엇을 이르신 것인가?" 증자가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 라고 하였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의 합체어로서 글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속에 있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仁)이며 성(性)인데, 남을 나처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인(仁)이라 하고 살려는 마음이라는 의미에서 성(性)이라 한다. 서(恕)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과 같이 생각하는 일이다. 속에 있는 마음인 충(忠)이 밖으로 나타날 때는 서(恕)로 나타난다.
일이관지(一以貫之)는 공자의 사상과 행동이 하나의 원리로 통일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인(仁)이며, 증자가 충서(忠恕)로 해석한 것은 충성과 용서가 곧 인(仁)을 달성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한 번에 끝까지'라는 뜻으로 변형되어 쓰이기도 한다. 그 예로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이나, 일관(一貫)되다, 수미일관(首尾一貫), 일맥상통(一脈相通) 등이 있다.
불가(佛家)에서도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 했다. 하나라는 일(一)은 다분히 추상적인 글자이니 그 속의 구체성이 궁금해진다. 증자가 그 내용으로 제시한 충(忠)은 단순히 나라에 충성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글자에서 보듯 충(忠)은 중심(中心)으로 마음의 깊숙한 뿌리인 본심이다.
서(恕)는 여심(如心)으로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라고 하듯이 사람 간에 공감하고 소통하게 된 마음이다. 사람의 본심과 그 본심이 발현되는 마음작용의 원리는 보편적인 차원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증자는 일이관지에 대해 동서고금을 관통하는(貫) 인간관계의 동일한(一) 원리(道)로 파악하여 사람의 본심과 본심의 발로인 충과 서라고 한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상호소통은 타인이 나에게 이렇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其所不欲)을 나도 타인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勿施於人)는 보편적 정감을 인정하고 실천할 때 가능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최근의 여론은 현 시대 최고 덕목으로 국민 46%가 소통을 꼽았다. 그만큼 현재 국민이 마음을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갈망한다는 반증이다.
박학(博學)과 기억(記憶)은 지식을 축적하는 유력한 방법이다. 검증(檢證)을 거치지 않은 통념(通念)은 아직 지식이 아니다. 최한기(崔漢綺)는 추측(推測)을 거치지 않는다면 앎이 근거를 지닐 수 없다고 했는데, 추측은 추론(推論)과 실측(實測)에 해당한다. 지식은 체계를 지녀야 하며, 그 체계는 현실사회의 발전에 유효한 이념에 따라 구축되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지적 활동에서 박학과 기억만을 존숭하고 있지 않나 되물어야 할 것이다.
▣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 어떤 일이나 생각이 통일된 기준에 따라 완벽하게 정리되어 질서정연한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과 이인편(里仁篇)에서 제자와 문답형식의 학문을 강(講) 하였다. 위령공편을 공부할 때 공자가 자공(子貢)에게 물었다.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모든 것을 모두 기억해서 잘 아는 줄 아느냐?"고 물었다. 자공이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공자(孔子)가 "아니다. 나는 하나로 꿸(一貫)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논어 이인편(里仁篇)의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해에 밝다'라는 일관지도(一貫之道)를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명확하게 이해한 사람은 제자 가운데 증자(曾子)뿐이었다.
공자가 증자(曾子)에게 물었다. "증삼(曾參)아, 나의 도(道)는 하나로써 꿰었느니라(一貫之道)"라고 말하자 증자가 대답하여 "옳습니다." 이와 같은 문답을 마치고 공자가 밖으로 나간 다음 제자들이 증자에게 물었다. 스승께서 "무엇을 이르신 것인가?"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道)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공자와 제자들 사이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는 논어(論語)는 워낙 이야기가 간단명료하고 짤막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함축하고 있는 뜻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공자의 언행(言行)은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이 정확하게 핵심을 꿰뚫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생각이 옅은 사람은 깨우치지 못해도 어느 정도 사려와 분별력을 갖춘 사람이 들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이 합쳐진 말이다. 마음의 한가운데를 잘 지키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어떤 외부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의미한다. 서(恕)는 여(如)와 심(心)이 합쳐진 말이다. 즉 '마음을 같이한다'는 뜻이다. 이는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하면 어떤 경우라도 화해와 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그런 정신으로 공자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했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당당하게 "나의 도(道)는 하나로써 꿰뚫려 있다(一貫之道)"고 선언했던 것이다.
정치를 하는 위정자(爲政者)는 덕(德)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의 중심에 놓인 것이 인(仁)이다.
인(仁)에 대한 공자의 해석은 논어(論語)에서 사람다움을 인(人)이라 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애인(愛人)이라고 표현했고 인(仁)은 인(人)이라고 다양하게 나타냈다.
공자(孔子)의 인(仁)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정의는 극기복례(克己復禮)다. 즉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에 따르는 삶이 곧 인(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를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보는 이유는 공자가 인(仁)을 단지 도덕적 규범으로서가 아닌 사회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정치사상(政治思想)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공자 사상의 인(仁)은 부모형제에 대한 골육의 애정 곧 효제(孝悌)를 중심으로 하여 타인에게도 미친다는 사상이다. 모든 사람이 인덕(仁德)을 지향하고 인덕을 갖춘 사람만이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앉아 인애(仁愛)의 정치를 하면 세계의 질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인(仁)의 실천을 위해 예(禮)라는 형식이 필요하며 더불어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하였다.
▣ 일이관지(一以貫之)
한 가지 도리로서 모든 것을 관통하다
논어를 읽다가 아는 문장이 나오면 오랜 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울 수가 없다. 초지일관(初志一貫)이란 말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표현이다. 아마도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성공의 제일 덕목으로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초지일관을 연상케 하는 구절이 논어에 두 번 나온다. 논어 위령공 편에 공자가 제자 자공과 정답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자공아,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아니다. 나는 한 가지 도리로써 모든 것을 관통하고 있단다."여기서 일이관지(一以貫之)란 말이 등장한다. 하나로써 모든 것을 관통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제자인 자공의 눈에 비친 스승 공자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으로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 박학다식함에 놀란 적이 어디 한 두 번이겠는가. 가끔 '선생님은 나면서부터 아는 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자가 상황에 따라 내뱉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공자가 던진 질문과 답은 너무나 간단하고 명확했다. 한 가지의 원칙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이니 말이다. 제자들이 질문을 하면 막힘없이 답변을 하는 공자의 모습은 제자들에게도 존경과 경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자신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을 터득한 것은 이 것 저 것 공부를 많이 해서 박학다식한 결과가 아니라고 분명한 선을 긋는다. 어떤 원칙을 가지고 세상사를 바라보면 해답이 보인다고 설명한다.
그 원칙이 무엇일까. 공자와 자공이 나눈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한 내용이 논어의 이인편에 공자와 증삼(曾參)의 대화 형태로 나온다. 증삼은 훗날 증자로 추앙받는 공자 말년의 제자로서 공자학단을 이어가는 인물이다. 어느 날 공자가 증삼을 비롯한 제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자신의 도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 '오도 일이관지(吾道 一以貫之; 나의 도는 하나로 꿰어져 있느니라).'
논어를 통해 바라본 공자의 일이관지(一以貫之)는 두 축으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축은 인(仁)의 실천이다. 공자가 도덕정치, 덕치주의,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평생 머나먼 장정을 떠난 이유이다. 또 다른 축은 호학(好學)하는 자세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익힘으로써 인의 실천이 가능한 것이다.
인의 실천이 목적이라면 호학하는 자세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인과 호학이라는 두 축을 가지고 논어는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도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실천여부에 달려있는 셈이다.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왜 생겨났을까. 우물을 파다 보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통해 하나의 일관된 법칙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종사한 많은 전문가들에게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일반 사람들을 위해 책을 쓸 것을 권유한다. 필자의 얘기를 듣고 책을 쓴 사람이 적지 않다. 책 쓰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책이야말로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철학이 없으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의 친구 중에 치과의사가 있다. 그는 책을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쓰는 방법을 몰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의 설명을 듣고 난 후 그는 '입안에 행복'이란 책을 발간하여 화제가 되었다. 세 치 혀를 감싸고 있는 입 속을 매일 들여다보며 느낀 점과 환자들을 통해 얻은 인생의 지혜를 담아 좁은 입안과 넓은 세상을 소통하는 이야기를 주제로 책을 만들었다.
책을 쓰는 비결 중의 하나가 바로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자세이다. 전문가들의 주변에는 많은 구슬들이 굴러다니고 있다. 그 구슬을 일이관지(一以貫之)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책이 되는 것이다. 전문가라면 반드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반대로 문제의식이 없다면 전문가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세상과 통하게 되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것 저 것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지식이 될 수 없다. 자신이 아는 것을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철학으로 정리해 보자. 감동은 지식이 많아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삶을 산다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공자가 설파한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철학을 우리의 삶 속에서 점검하고 실천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