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간에 가득 차 있는 넓고 큰 기운이라는 뜻으로, 세상에 꺼릴 것이 없는 크고 넓은 도덕적 용기를 이르는 말이다.
①도의(道義)에 근거(根據)를 두고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 마음
②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정기(精氣)
③공명정대(公明正大)하여 조금도 부끄럼 없는 용기(勇氣)
④잡다(雜多)한 일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浩 : 넓을 호(氵/7)
然 : 그럴 연(灬/8)
之 : 갈 지(丿/3)
氣 : 기운 기(气/6)
(유의어)
정기(正氣)
호기(浩氣)
출전 : 맹자(孟子) 공손추편(公孫丑篇)
맹자(孟子)가 제(齊)나라에서 제자 공손추(公孫丑)와 나눈 대화이다.
맹자가 제나라에 머물던 어느 날, 제자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이 제나라 대신이 되어 도(道)를 행하시면 제를 천하의 패자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시면 선생님도 마음이 움직이시겠지요."
맹자가 답했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부터는 마음이 움직인 적이 없다."
공손추가 다시 물었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으신지요."
맹자가 답했다. "그건 용(勇)이니라." 맹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마음속에 부끄러운 게 없으면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게 대용(大勇)이다."
공손추가 재차 물었다. "그럼 선생님의 부동심(不動心)과 고자의 부동심은 무엇이 다른지요."
맹자가 답했다. "고자는 이해되지 않는 말을 애써 이해하지 말라 했다. 하지만 이는 소극적 태도다. 나는 말을 알고 있고(知言), 호연지기(浩然之氣)도 기르고 있다. 호연지기는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다. 기(氣)는 광대하고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 이것을 기르면 우주자연과 합일의 경지에 이른다." 지언(知言)은 편협하고 음탕한 말, 간사하고 꾸미는 말을 구별하는 밝음(明)이 있다는 의미다.
고자(告子)는 맹자의 논적(論敵)으로 사람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주장한 사상가다. 그는 출렁대는 물은 방향이 없으며 동쪽을 터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을 터주면 서쪽으로 흐를 뿐이라며 맹자의 성선설을 반박했다.
이에 맹자는, 물은 아래로 흐른다. 아래를 막으면 물이 거슬러 오르고, 손으로 때리면 물이 허공으로 솟구치지만 그건 인간이 본성에 인위를 가한 때문이라고 되받아쳤다.
맹자 공손추편에 나오는 호연지기는 원래 천지에 가득찬 큰 원기, 공명정대한 도덕적 용기, 속세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뜻한다. 현대적 의미인 '당당한 기상'보다 뜻이 넓고 깊다.
그릇이 커야 큰 것을 담고, 뜻이 곧아야 바르게 서고, 시야가 넓어야 두루 본다. 기(氣), 덕(德), 의(義), 지(智)는 어느 것 하나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그건 모두 마음을 모아 키워야 하는 것들이다.
▣ 호연지기(浩然之氣)
맹자(孟子)의 가르침인 인격(人格)의 이상적 기상(氣象)으로, 호연(浩然)은 넓고 큰 모양을 일컫는 말로 호연지기(浩然之氣)란 천지(天地)간에 가득 찬 크고 넓은 정기, 곧 무엇에서도 구애를 받지 않는 떳떳하고도 유연한 기운을 말한다.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사람의 몸에는 물적 생명원소(物的生命元素)인 '기(氣)'가 갖추어져 활동한다고 하였고, 또 그것을 수련하는 여러 가지 세속적인 술(術)이 성행하였다. 맹자(孟子)가 비로소 그 '기(氣)'를 통일적 의지와 상호보충되는 도덕적 실천력의 문제로 다루고, '기(氣)'는 도의(道義)와 조화됨으로써 의기당당한 활동이 가능하다 하였다.
또한 그것을 계율적(戒律的), 또는 공리주의적(功利主義的)으로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의(知情意)와 더불어 총체적, 자발적으로 도의를 실현하는 기상으로 기를 것을 주장하여, 그 이상적 상태를 "그(浩然)의 기야말로 지대지강(至大至剛)하며, 바르게(直) 길러(養) 손상함(害)이 없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충만(색:塞)한다"고 표현하였다.
이 말은, 맹자(孟子)의 주관적 이상주의의 특색을 확실하게 나타낼 뿐만 아니라 유가(儒家)의 실천행위의 기본구조, 그 이상적 상태를 나타낸 것이며, 이 사상은 송대(宋代) 학자들의 '존양설(存養說)', 문천상(文天祥)의 '정기(正氣)' 등으로 발전한다.
이 말은 맹자(孟子)와 그의 제자 공손추(公孫丑)와의 문답 가운데 나오는 것이다. 나이 마흔이면 인생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된다. 공자(孔子)의 경우 나이 마흔이 돼서야 비로소 남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를 맹자(孟子)도 했다. 부동심(不動心;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 이것이 그것이다.
한번은 제자(弟子) 공손추(公孫丑)가 물었다. "선생님께서 제(齊)의 재상에 앉게 되셨다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맹자(孟子)의 대답은 단호했다. "나는 나이 마흔이 되고 부터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느니라."
공손추가 다시 물었다. "만일 그러시다면 선생님은 위(魏)나라의 맹분(孟賁) 보다도 더 용감하십니다."
맹자가 답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자(告子)도 나보다 먼저 마음이 동요되지 않았다."
공손추가 재차 물었다.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데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孟子)께서는 "있다" 하시고, 예로써 용기가 있는 사람으로 평판이 높은 북궁유(北宮黝)와 맹시사(孟施舍) 등이 마음이 동요되지 않음을 수양한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당시 공자(孔子)가 제자 증자(曾子)에게 한 말을 인용하여 진정한 용기를 설명하셨다.
맹자가 이르기를, "스스로 반성해서 옳지 못하면 비록 낡은 옷을 천인에게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거니와, 스스로 반성하여 내가 옳다면 나는 가서 그들과 대적하겠다. 그러므로 맹시사가 용기를 지킨 것은 증자가 용기를 지킨 것만 못하다."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특히 어느 것에 뛰어나십니까?"
맹자가 답했다. "나는 남의 말을 잘 알며 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르고 있다."
공손추가 물었다. "무엇을 호연지기(浩然之氣)라 하나이까?"
맹자가 답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 기운은 몹시 크고 몹시 굳센 것으로 그것을 곧게 길러서 해되게 하지 않는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그 기운이 됨은 정의와 도에 맞는 것으로 이 기운이 없으면 굶주리게 된다. 이 기운은 안에 있는 옳음이 모여서 생겨나는 것으로 밖에서 옳음이 들어와 취해지는 것이 아니다. 행동하여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있으면 곧 굶주리게 되는 것이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용기(勇氣)에 있다. 그런데 용기라면 우리는 흔히 물질적인 완력(腕力)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맹자(孟子)가 말하는 진정한 용기란 완력이나 용맹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수양에서 가능하다. 다시 말해 혈기의 용기보다는 도덕의 용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氣)를 잘 길러야 하는데, 맹자(孟子)는 특히 그것을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행동하는데 있어 양심(良心)에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인간이 그런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비도덕적인 것을 배격하고 도의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는 것이다. 그렇다. '진정한 용기'란 도덕적인 양심을 뜻하며, 그것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름으로 써 가능하다. 물론 꾸준한 인격 수양이 뒷받침돼야 하겠다.
▣ 호연지기가 필요한 때
봄 석달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로 발진(發陳)이라 한다. 천지에 생기가 솟고 만물이 자라나는 때다.
밤에는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며, 큰 걸음으로 뜰을 거닐어라. 머리는 풀어 몸을 편안하게 이완시키며 좋은 뜻을 세우도록 하라. 생명이 돋아나는 것을 돕고 살생을 하지 말며, 주되 빼앗지 말고, 칭찬하되 벌을 주지는 말라. 이것이 바로 봄의 기운에 응하는 양생의 법도다.
고대 의학서 황제내경 소문편에는 일년 사계의 변화에 따라 심신의 기운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다룬 사기조신대론(四氣調神大論)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봄에 해당하는 이론이 위와 같다.
음력으로 정월부터 삼월까지 석 달이 봄에 해당한다. 전통 동양력에서 1년은 24절기로 나뉘니까, 입춘부터 우수 경칩 경칩 춘분 청명 곡우까지가 봄의 절기다. 이 기간은 음양오행으로 쳐서 목(木)행이 지배하는 절기이며, 만물이 생동하기 시작한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일년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다.
중국 제자백가의 시조인 관자(管子; 흔히 '관중'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제나라의 재상)는 목화토금수 오행의 순서대로 절기를 논한 '오행편'에서 봄에 지켜야 할 덕목을 이렇게 말한다. "봄에는 목행이 지배하니 농사준비를 지원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가축이나 야생동물이라도 함부로 죽이지 말고 보호해야 한다. 관리들의 인사고과와 직위조절도 이때 한다. 비축한 물품을 풀어 상을 내리지 않고 형벌을 내리거나 전쟁을 일으키면 군주는 위태로워진다."
봄은 만물이 살아나는 시기라 무엇이든 살리는 일을 해야 하고 정치도 그래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새겨보면 깊은 뜻이 있다. 사람들은 한 해가 시작될 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따라 일을 시작하는데, 만일 이 시기를 놓치면 한 해가 별 소득 없이 유야무야 흘러 가버리고 말 것이다.
동물들이 알을 품고 새끼를 낳는 것도 이 시기다. 만일 이런 시기에 사냥을 하고 가축을 잡아먹으면 번식의 고리를 끊는 결과가 된다. 단순히 살생을 금하라는 윤리적 계율이 아니다. 번식을 해야 할 시기에 씨암탉을 잡아먹으면 집안에 먹을 것이 없게 되고, 야생의 동물을 함부로 잡으면 자연 생태계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공자보다 2백년이나 앞선 BC 7세기의 지도자에게서 이미 생태계를 염려한 교훈이 나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봄에 전쟁을 일으키면 군주가 위태로워진다'는 말 역시 단순히 살생을 금하라는 윤리적 의도에서 비롯된 훈계가 아니다. 그가 서두에 전제했듯이 봄철에 모든 국가 사회 정책은 농사 준비를 지원하는 게 최우선이다. 이 시기에 전쟁을 치르려면 노동력을 가진 젊은 남자들이 징집되어 농사를 제대로 시작할 수 없게 된다.
식량부족(가난)이 극한에 이르는 보릿고개에 비축한 식량과 물품을 풀지는 못할망정 전쟁을 위해 오히려 백성에게서 더 거둬들여야 하니 백성들의 마음에는 원망이 생길 것이다. 군주가 위태로워진다는 말은 그로 인해 민심이반이 일어날 것에 대한 큰 경고다.
우리가 고전, 즉 옛말을 들을 때는 흔히 수천년 전 시절과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는 생각을 같이 하게 되고, 그래서 거기서 배울 점은 많지 않다고 여기기 쉽다. 표현만 놓고 보면 그렇게 여길 수 있다.
이를테면 인공조명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게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말이 더 이상 금과옥조가 될 수 없고, 식량과 자원이 자유로이 국경을 넘나들고 기상변화까지 겪고 있는 지금 시대의 농부들에게는 고대 농업의 절기론이 더 이상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상투를 틀지 않는데 무슨 머리를 풀라는 것인가. 그러나 표면적인 방법론만이 아니라 내면에 담긴 본질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고전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더위와 추위의 폭이 크지 않더라도 겨울은 겨울이고 여름은 여름이다. 이 겨울에도 나무들은 잎을 다 떨구었고, 봄기운과 함께 잎눈을 틔우며 소생하기 시작했다. 동물들은 봄기운이 일으키는 호르몬의 영향에 따라 부지런히 짝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일 년 사계의 질서는 변함없이 자연 생태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우선 움츠린 어깨를 펴고 여몄던 옷깃을 풀어 몸을 편안하게 하고, 시원시원한 보폭으로 걸으며 좋은 의지를 되새겨 정신을 단정하게 갖춰보자. 봄에 갖춰야 할 기운은 한 마디로 호연지기(浩然之氣)다. 이것으로 심신은 함께 건강해진다. 사회적으로도 옹졸한 시시비비와 잔꾀, 음모술수보다는 호연지기의 대범한 기운이 넘쳐서 건강한 봄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 리더는 호연지기를 길러야 한다
호연(浩然)은 강물이 불어 거대한 물살이 세차게 흐르는 모습을 뜻한다. 이처럼 크고 넓게 뻗친 강한 기운을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한다.
호연지기는 맹자가 제자 공손추(公孫丑)에게 부동심(不動心)을 언급하면서 나온 말이다. 공손추가 호연지기를 묻자, 맹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호연지기는 지극히 크고(至大), 지극히 강한 것(至剛)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 꽉 차 있을 만큼 넓고 커서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기상'인데 이는 의(義)를 쌓아서 생겨나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호연지기는 떳떳함에서 오는 용기이다. 떳떳함은 마음이 이끄는 올바름(義)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얻을 수 있다. 올바름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발한다. 올바름을 실천한 경험은 올바름에 대한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더 크고 단단해진 마음은 더욱 분명한 실천을 동반하게 된다.
올바름에 대한 믿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육체적 힘 또한 점점 강해진다. 이런 과정이 쌓이다 보면 정신적 의지와 육체적 힘이 전일(專一)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바로 호연지기를 얻는 순간이다.
리더에게는 호연지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결과에 집착하다 보면 실력을 제대로 발휘를 못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 때 필요한 것이 호연지기다.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호연지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숙종 대에 송시열(宋時烈)은 천지 사이에 가득한 호연지기에 대한 공부를 임금의 성학(聖學)으로 삼았고(숙종실록 7년 3월 4일), 정조(正祖)는 의(義)가 축적된 선유들의 말을 호연지기와 같은 것으로 생각했고, 맹자가 "천만 명이 앞에 있더라도 내가 가서 대적할 수 있다"고 한 말에서 호연지기를 볼 수 있다고 했다(정조실록 5년 3월 18일).
특히 정조는 학문하는 방법을 말하며, 직내방외(直內方外)의 과정을 터득해야 왕도를 말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직내는 경(敬)으로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고, 방외는 의(義)로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을 말한다. 결국 호연지기는 나 자신에게 진실하고, 올바른 일을 하도록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상황에 적합하고 정당한 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에 대해 맹자는 두 가지를 말한다.
첫째는 평생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는 기상을 가진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마음 속에 올바름을 채우고 올바름이 행동으로 표출되게 해야 한다.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들어야 한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의 올바름에 비추어 옳지 않은 일이라면 그것이 어떤 위협을 동반하는 것일지라도 흔들림 없이 그것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올바른 행동이 올바른 마음을 강화시키는 선순환을 이루게 한다. 마음과 행동이 합치되면 정신과 육체가 강건하고 담대해진다.
둘째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억지로 조급하게 나서지 않고 평생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맹자는 곡식을 키우는 일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곡식을 키우려면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도 매야 한다. 하지만 곡식이 스스로 가지는 생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빨리 자라게 조장해서는 안된다며 '발묘조장(拔苗助長)'의 고사를 예로 든다.
어떤 사람이 밭에 곡식을 심어 놓고, 날마다 얼마나 자랐는지 보러 나가곤 했다. 그런데 그 싹이 도무지 자라는 것 같지가 않았다. "정말 너무 안 자라는 구나. 내가 얼른 자라도록 도와 주어야지" 하고 생각한 그는 애써서 곡식의 싹을 모두 뽑아 올려 놓았다. 그리곤 집에 돌아가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난 오늘 정말 지쳤다. 싹이 빨리 자라도록 도와 주고 왔단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아들이 밭에 나가 보니, 싹은 모두 말라 죽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송나라의 농부가 벼를 빨리 키우려는 욕심에 싹을 조금씩 뽑아서 모두 말려죽였다'는 고사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부추기다'라는 뜻의 '조장(助長)'의 어원이기도 하다.
서커스단에서는 다 자란 코끼리를 허술한 말뚝에 그냥 묶어 놓는다. 코끼리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자신의 발목에서 부터 말뚝까지의 거리인 지름 2미터 내외의 원 안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코끼리는 말뚝을 뽑고 달아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코끼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말뚝에 묶여 지냈다. 이유는 바로 이 습관 때문이다.
호연지기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호연지기는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바른 길을 걸어갈 때 얻을 수 있다. 그럴 때 마음의 흡족함도 얻을 수 있고,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울 만한 큰 기운을 얻게 된다.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삶을 좀 더 길게 보고, 올바름이 조직 경영의 큰 원칙이 될 수 있을 때 개인의 행복과 조직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