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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공명지조(共命之鳥)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20.02.21|조회수122 목록 댓글 0


목숨을 공유하는 새라는 뜻으로, 상대방을 죽이면 결국 함께 죽는다는 말이다.

共 : 함께 공(八/4)
命 : 목숨 명(口/5)
之 : 갈 지(丿/3)
鳥 : 새 조(鳥/0)

출처 : 아미타경(阿彌陀經), 잡보장경(雜寶藏經)


꽃잎 하나가 시들고 떨어지면 꽃송이 전체가 망가지듯 서로 배려하는 공생의 삶을 뜻한다. 이른바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이다. 남을 위하는 게 결국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일화를 보자. 드넓은 사막 한 가운데 폐허나 다름없는 주유소가 있고 그곳에 유일하게 물 펌프가 하나 남아있다. 한 지친 나그네가 목마름으로 거의 실신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주유소의 물 펌프를 발견했다.

거기엔 한 바가지의 물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의 팻말을 보게 된다. “이 물 펌프 밑에는 엄청난 양의 시원한 지하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이 펌프 물로 목을 축이고 가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펌프 앞에 놓은 바가지의 물만은 절대로 마시면 안 됩니다. 이 물을 펌프 안에 넣어서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만 지하의 물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을 축이셨으면 잊지 말고 이 바가지에 다시 한가득 물을 퍼놓고 가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올지도 모르는 또 다른 나그네를 위해서 입니다.”

그렇다. 뒷날의 나그네를 위해 다시 한 바가지의 물을 남겨 놓는 마음, 바로 이것이 자리이타 정신이다. 자신이 또다시 그 샘물을 찾을 수도 있기에 이웃을 위한 배려는 곧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재물과 권력, 명예를 적절하게 나누는 세상이 그립다. 공익적 사회다. 상생 정신의 실천이다.

남의 재앙을 민망하게 여기고, 이웃의 잘됨을 즐겁게 여기며, 남의 급함을 도와주고, 이웃의 위태로움을 구해주라(悶人之凶, 樂人之善, 濟人之急, 救人之危)는 명심보감 성심편은 공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부와 명예를 일부 사람만이 독차지하려 했을 때 그 사회는 혼란스러워진다.

공명지조(共命之鳥),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다. 상대방을 죽이면 결국 함께 죽는다는 내용으로서 상생의 운명공동체를 뜻한다.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잘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공멸하게 된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우리의 자화상이다. 세밑이다. 증오와 갈등을 날려 보내고 배려와 공생의 새날을 맞자.


⏹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추천하며

2017년, 그 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추천하여 선정되었다. 그때 나는 '파사'의 다음에 '현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렀고, 국내외 정치, 경제 상황은 예사롭지 않게 뒤엉켜 꼬여만 있어 우려된다. 뉴스를 보거나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마치 지옥 같다.

출근길에 아파트 문을 열 때면 으레 정호승의 시 '밥값'이 떠오른다. “어머니/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중략)/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 사람 사는 곳이 바로 지옥인 셈이다. 눈앞의 현실을 성찰해보려는 의도에서, 이번에 나는 기억 속에 맴돌고 있던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추천하였다. 그게 덜컥 선정된 것이다. 잘난 척하게 된 것 같아 쑥스럽다. 선정되지 못한 분들께 미안하다.

최근 나는 이 시대에 필요한 말이 공명지조(줄여서 공명조)라 생각하고 수시로 입에 담고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지금 좌우라는 진영 논리로 쫙 갈려져 살벌하기 때문이다.

도처에 죽기 아니면 살기로 서로를 쳐다보며,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있다. 갈기갈기 찢어진 사유와 이념의 영토. 그곳이 바로 전쟁터이고 지옥 아닌가.

남(타자)은 상처이고 고통이고 절망이다. 희망은 타자를 철저하게 죽임으로써 획득된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이 지배하는, 인간의 마음을 다스릴 법이 없는 '말법(末法)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진리(道)보다도 독선과 교만과 시비가 난무하는 시대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불교의 '아미타경(阿彌陀經)', '잡보장경(雜寶藏經)' 등 여러 경전에 등장하는, 산스트리트어(기파기파가耆婆耆婆迦로 음역함)를 의역한 새의 이름, '공명지조(共命之鳥)'를 문득 떠올렸다.

목숨(命)을 함께(共; 공동유지)하는 새(鳥)이다. 히말라야 기슭이나 극락에 사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새이다. 줄여서 공명조(共命鳥) 또는 동명조(同命鳥)라고도 한다.

두 생명(生命)이 서로 붙어 있어 상생조(相生鳥), 공생조(共生鳥), 생생조(生生鳥), 명명조(命命鳥) 라고도 한다. 음역으로 기파조(耆婆鳥)라고도 한다.

이 불교 설화는 인도의 서북부 지역에서 불교경전에 흡수된 다음 차츰 경전의 번역과 석굴의 벽화를 매개로 동아시아로 전파되었다.

공명조는 머리는 2개인데 몸통은 하나이다.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몸은 하나인데 마음이 둘인 셈이다. 한 나라의 백성인데 두 가지 마음으로 쫙 갈라진 우리 현실과 흡사하다. 두 마음이기 때문에 화합이 쉽지 않다.

시기와 질투하며 으르렁대던 어느 날, 한 머리가 맛좋은 과일을 저 혼자 먹는 걸 다른 머리가 알고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다른 머리는 한 머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독 있는 과일을 먹는다. 결국 독이 온 몸에 퍼져 둘 다 죽고 만다.

공명조의 이런 슬픈 전설이 상징하는 것은, 에셔의 그림 '악마와 천사'에서처럼, 모든 생명은 자타가 상의상존하는 연기적(緣起的) 관계라는 점이다.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此生故彼生, 此滅故彼滅, 此有故彼有, 此無故彼無)는 상호 의존성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대단히 심각한 이념의 분열증세를 겪고 있다. 양 극단의 진영을 만들어 서로 적대시하며 끝장 낼 듯 혈전 중이다. 그러는 동안 모두 위험한 이분법적 원리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다.

각 진영의 정의와 도덕성이 독선적으로 폭주하고자 한다. 아무 생각 없는 맹목적 이념기계가 도로 위를 질주하고자 한다. 공공세계와 단절된, 한 집단만의 독단론, 자폐적 행동이 전체화 하려한다.

자기검열과 자아비판의 건강한 힘을 상실하여, 반전가능성(反轉可能性)도 반증가능성(反證可能性)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라는 물건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우리 사회가 제발 상생의 비전을 찾아갔으면 한다.

이념이 아니라 삶이다. 그 지혜는 결코 밖에서 오지 않는다. 우리 안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추악하고 짜증나는,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향기로운 꽃이 만발하는 극락을 이뤄가야 한다.

공명조가 노래하는 극락은 서로 다른 사상과 자유와 의견이 폴리포니를 이루고 각양각색-천차만별이 용서되면서 화합하는 곳이다. 자유와 자율과 자치를 부정하는, 이분법만이 깡패 짓거리 하는 곳이 아니다.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온갖 것들 들판에서 노래하듯, 각각의 노래가 허용될 때 공명조는 훨훨 날게 된다. 이처럼 내가 공명조 전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분열된 우리 사회가 부디 대승적 일심(一心)의 큰 '한 몸'을 함께 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공명지조(共命之鳥)

교수신문이 전국 교수 10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한 2019년 올해의 사자성어다.

공명지조는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머리가 두 개인 새다. 한 머리가 몸에 좋은 열매를 항상 챙겨 먹자 이를 시기한 다른 머리가 독이 든 열매를 먹었고 결국 둘 다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회에 대해 안타까움이 들어 선정했다”고 밝혔다.

극심하게 대립한 우리 사회에 대한 지적이자 이러다가는 둘 다 죽어버릴 수 있다는 경고다. 이런 경고는 비단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건설산업도 마찬가지다.

먼저 발주기관과 건설사의 대립을 지목할 수 있다. 발주기관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건설공사가 지연됐는데 이 때문에 발생한 간접비 추가비용을 나 몰라라 하고 건설사에 떠미는 행태가 대표적이다.

건설사가 망가지면 발주기관도 제대로 된 건설사업을 할 수 없다. 비용 절감에 내몰린 건설현장에서는 품질과 안전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양측 모두 피해를 입게 된다. 발주기관과 건설사는 서로를 ‘공명’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원도급과 하도급 건설사도 같은 운명이다. 원도급사가 무너지면 협력업체들도 일감을 잃는다. 협력업체가 부실화하면 원도급 건설사로서는 제대로 된 건설공사를 하기 어렵다.

원,하도급 간 대립은 건설현장은 물론 업역 개편과 같은 건설산업 혁신방안에서도 첨예하다. 양측 모두가 건설이라는 같은 몸으로 연결된 공명지조라는 사실은 잊혀지고 만다.

건설사와 건설노조, 노조와 노조 간 갈등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서로 자기네 조합원을 고용해달라는 밥그릇 싸움이 사라질 줄 모른다.

노조끼리 치고받고 싸우기까지 한다. 건설사가 없어지면 일자리가 사라진다. 노동자 없이는 건설공사를 할 수 없다. 건설회사와 건설노동자도 공명지조다.

정부와 건설공기업,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사, 건설 기술인과 기능인 모두 건설이라는 한몸에 뿌리를 박고 있는 여러 머리다. 한 머리가 독약을 마시면 몸과 함께 공멸하게 된다.

이럴 게 아니라 좋은 열매를 먹고 건설산업이라는 몸을 튼실하게 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분야를 들자면 현실에 맞는 적정한 공사비와 공사기간 보장이다.

적자공사에서는 원, 하도급 간 분쟁이 빈발할 수밖에 없다. 이윤을 나누는 게 아니라 손해를 나누다 보니 양보는 쉽지 않다. 적자공사는 동시에 건설현장의 안전과 노동자 임금을 위협한다. 독이 든 열매다. 치밀한 안전관리, 철저한 품질관리 역시 어느 한 머리가 아닌 모든 머리가 함께해야 할 일이다.

함께 죽어버린 공명지조, 공멸이 아니라 새해에는 한몸을 함께 가꾸는 공생으로 나아가는 날갯짓을 펼쳐야 한다.


⏹ 공명지조(共命之鳥)

공명지조(共命之鳥)는 불교경전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다. 불교 불본행집경과 잡보잠경에 따르면 이 새는 한 몸에 머리가 두 개다.

한쪽 머리가 늘 좋은 열매만 혼자 챙겨 먹는다. 그에 질투한 나머지 다른 한쪽 머리가 독이 든 열매를 먹는다. 독 열매를 먹어 다른 한쪽 머리를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머리가 두 개이지만 한 몸인 그 새는 결국 죽어버린다.

보통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강조할 때 공명지조로 비유한다. 어느 한 쪽이 사라지거나 상황이 악화하면 다른 한 쪽도 죽게 되거나 나빠지는 것을 말할 때 흔히 인용된다.

한 배를 타고 있는데도 시기와 질투 때문에 이성을 잃고 후과를 생각지 않고 마구 행동하는 사람을 공명지조(共命之鳥)라고도 한다.

비슷한 말로 동주공제(同舟共濟)라는 말이 있다. 같은 배를 타고 물을 건넌다는 의미다. 후한서(後漢書) 주목전(朱穆傳)에 나온다.

성품이 강직한 주목(朱穆)이 당시 척신 양기(梁冀)가 여동생 태후와 함께 황제를 마음대로 갈아치우며 횡포를 부리자 상소를 올린다. 주목은 "군신은 수레도 함께 타고 배도 함께 타 물을 건너야 한다(共與而馳 同舟而濟)"고 강조한다.

그러나 주목의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후한은 급속도로 기울었다. 동주공제는 줄여 동제라고도 한다.

1912년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 이 상하이에서 박은식 김규식 신체호 선생 등과 결성한 독립운동단체 동제사(同濟社)도 주목의 동주공제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늘고 있다. 지구적 환란임이 분명하다. 감염병은 한 국가의 방역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세계 각국이 확산방지에 동참하고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봐도 홀로 위생에 철저해선 안 된다. 나의 감염이 이웃의 감염이 될 수 있다. 철저하게 공명지조, 동주공제라는 마음가짐으로 바이러스와 맞설 때 극복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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