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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망가망친망신(忘家忘親忘身)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20.02.27|조회수192 목록 댓글 0


집을 잊고 친척을 잊으며 자신까지 잊는다는 뜻으로, 직책을 맡은 사람의 자세를 의미하는 말로, 공사가 분명한 공직자의 자세를 뜻하는 말이다.

忘 : 잊을 망(心/3)
家 : 집 가(宀/7)
忘 : 잊을 망(心/3)
親 : 친할 친(見/9)
忘 : 잊을 망(心/3)
身 : 몸 신(身/0)

출전 : 사기(史記) 卷64 사마양저열전(司馬穰苴列傳)


이 성어는 춘추시대 말기 제(齊)나라의 유명한 장군인 사마양저(司馬穰苴)가 한 말로서 그 내용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사마양저는 제(齊)나라를 차지하여 왕이 되는 전씨(田氏)의 시조가 되는 전완(田完)의 후손(서출)으로 이름이 전양저(田穰苴)라 했다.

제(齊)나라 경공(景公) 때, 진(晉)나라가 공격해 오고 연(燕)나라도 침범해 제나라 군이 패배했으므로 경공은 자못 근심했다.

이때에 안영(晏嬰; 宰相)은 전양저를 경공에게 추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저는 전씨의 첩의 몸에서 났으나, 글은 뭇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무(武)는 적을 놀라게 할 만한 인물입니다. 바라옵건대 임금께서 직접 시험해 보십시오."
穰苴雖田氏庶孽, 然其人文能附眾, 武能威敵, 願君試之.

이에 경공은 양저를 불러서 군사에 관한 것을 대담하여 하고서, 흡족하여 장군으로 등용하면서 진, 연나라의 침범을 격퇴하라고 했다.

그러자 양저는 "신은 근본이 비천한 출신입니다. 바라옵건대 임금께서 총애하시는 신하로, 국민에게도 존경을 받는 사람을 시켜 군사를 감독케 하여 주십시오." 라 하니 경공은 장가(莊賈)라는 자를 감군으로 임명했다.

양저는 장가와 이튿날 군영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서, 이튿날, 양저는 먼저 군영으로 도착해서 해시계를 세우고 물시계를 걸어 놓은 다음 장가를 기다렸다.

장가는 평소에 교만했는데, 이때도 전양저가 군영에 있는 이상 감찰격인 자기는 그리 급하게 서두를 것이 없다고 생각해 친척과 친구들의 송별을 받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정오가 되어도 장가가 오지 않으므로, 양저는 해시계를 엎어 버리고 물시계를 치운 다음에 군영을 순시하고 군사를 정돈하여 군령을 시달했다.

이런 일도 다 끝이 나고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겨우 장가가 왔다. 양저가 어째서 늦었느냐고 물으니 장가가 대부와 친척들이 송별을 해 주어서 늦었다고 했다.

이에 양저가 다시 말했다. "장군이란 자는, 출진의 명령을 받은 그날부터 집을 잊어버리고 군무에 종사하여, 군령을 내면 육친을 잊어버리고, 채를 들어 군고를 치는 것이 급하면 몸을 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적이 깊이 침입하여 국내가 소란하고 사병들은 국경을 지키며 몸을 풍우에 내던지고 있습니다. 임금은 자리에 누워서도 편한 잠을 못 자고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백성들의 목숨은 모두 임금의 한 몸에 매여 있소. 이러한 때에 송별이 다 무엇이오!"
穰苴曰 : 將受命之日則忘其家, 臨軍約束則忘其親, 援枹鼓之急則忘其身. 今敵國深侵, 邦內騷動, 士卒暴露於境, 君寢不安席, 食不甘味, 百姓之命皆懸於君, 何謂相送乎!

곧 군정(軍正; 군의 법무관)을 불러 물었다. "군법에 기한을 어겼을 때의 죄는 무엇인가?" "참하는 것입니다."
召軍正問曰 : 軍法期而後至者雲何? 對曰 : 當斬.

장가는 겁을 내어 종자에게 명해서 말을 달리게 하여 경공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양저는 종자가 돌아오기 전에 장가를 베고, 이 사실을 널리 3군에 게시하여 경계로 삼으니 군사들은 모두 떨었다. 경공에게는 사자를 보내 이 사실을 보고케 하고 비로소 싸움터로 출동했다.

양저는 군사들의 숙사, 우물, 아궁이, 음식을 비롯하여 병의 위문, 의약에까지 모두 몸소 마음을 쓰고, 장군에게 주어지는 급비는 모두 군사들에게 베풀어 주고, 자신은 군사들과 양식을 같이 하고 그런 중에도 가장 허약한 군사와 같은 양으로 했다.

이렇게 한 덕으로 3일 동안에 군사를 정비하고, 병자까지도 출동을 같이 하기를 원하여 앞을 다투어 분발해서 싸움터로 나아갔다.

진나라 군대는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싸움을 그만두고 물러가고, 연나라 군대도 이를 듣고 황하를 건너 해산했다. 이에 양저는 이들을 추격해 앞서 잃었던 땅을 다시 찾고 군사를 인솔하여 돌아왔다.

경공은 대부들과 함께 교외로 마중 나가 출정의 수고를 위로하고, 개선의 예를 행했다. 이어 정전(正殿)으로 돌아와 양저를 인견하고, 대사마로 임명했다.
이때부터 사마양저(司馬穰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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