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지을 때를 그르치지 않게 한다는 뜻으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일을 꼭 행하도록 배려한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이다.
不 : 아닐 불(一/3)
違 : 어긋날 위(辶/9)
農 : 농사 농(辰/6)
時 : 때 시(日/6)
출전 : 맹자(孟子) 양혜왕 장구 상((梁惠王章句上) 삼장(三章)
농사철을 어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농사철을 놓치지 않고 알맞은 시기에 농사를 짓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의 양혜왕(梁惠王) 상편에 나오는 맹자의 말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이 성어는 군주가 백성을 잘 살게 하는 방법을 이야기 한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혜왕이 말했다. "과인(寡人; 양혜왕 자신)은 나라에 다스리는 일에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河內; 황하 안쪽)에 흉년이 들면 그 백성을 하동(황하 동쪽)으로 이주시키고 하동의 곡식을 하내로 옮기며, 하동에 흉년이 들어도 또한 그렇게 합니다.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면 과인 보다 마음을 쓰는 사람이 없는데, 이웃나라의 백성은 줄지 않으며, 과인의 백성이 늘어나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梁惠王曰 :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 河內凶, 則移其民於河東, 移其粟於河內. 河東凶亦然. 察隣國之政, 無如寡人之用心者. 隣國之民不加少, 寡人之民不加多, 何也?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청컨대 전쟁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둥둥 큰 북을 쳐서 병기와 칼날이 이미 부딪쳤는데,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고 달아났습니다. 어떤 병사는 백 보를 달아난 후에 멈추었고, 어떤 병사는 오십 보를 달아난 후에 멈추었습니다(五十步百步). 오십 보를 달아난 병사가 백 보를 달아난 병사를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
孟子對曰 : 王好戰, 請以戰喩. 塡然鼓之, 兵刃旣接, 棄甲曳兵而走. 或百步而後止, 或五十步而後止. 以五十步笑百步, 則何如?
양혜왕이 말했다. "옳지 않습니다. 다만 백 보를 가지 않았을 뿐이지, 이 또한 도망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曰 : 不可, 直不百步耳, 是亦走也.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 만약 이것을 아신다면,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농사철을 어기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不違農時), 곡식이 많아 다 먹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나 연못에 넣지 못하게 하면, 물고기와 자라가 많아 다 먹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때를 정하여 도끼를 들고 산림에 들어가지 않게 하면, 목재가 많아 다 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曰 : 王如知此, 則無望民之多於隣國也.
不違農時, 穀不可勝食也. 數罟不入洿池, 魚鼈不可勝食也. 斧斤以時入山林, 材木不可勝用也. 穀與魚鼈不可勝食, 材木不可勝用, 是使民養生喪死無憾也. 養生喪死無憾, 王道之始也.
※ 과인(寡人)은 제후가 덕이 적다고 겸사로 자칭하는 말이다. 황제나 천자는 짐(朕), 제후는 과인(寡人)이라는 명칭을 쓰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태조 때부터 짐(朕)을 사용했지만, 원(元)나라 간섭기엔 고(孤)나 과인(寡人)이라 했다. 조선시대에는 과인(寡人)이라 칭하다 대한제국 때 고종 황제가 짐(朕)이라는 명칭을 썼다.
※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는 자신의 선정(善政)을 자랑하는 양혜왕(梁惠王)에게 그와 이웃 나라 왕의 정치에 큰 차이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