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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업정어근(業精於勤)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20.03.28|조회수255 목록 댓글 0

업정어근(業精於勤)

학문은 부지런히 힘쓰면 힘쓸수록 진보한다는 뜻으로, 학문에 매진할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業 : 업 업(木/9)
精 : 정할 정(米/8)
於 : 어조사 어(方/4)
勤 : 부지런할 근(力/11)

출전 :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


이 성어는 당(唐)나라 때 유명한 문인인 한유(韓愈)의 학문으로 나아가는 태도를 비난함에 대한 해명(進學解)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國子先生, 晨入太學, 招諸生立館下, 誨之曰:
국자선생이 아침 일찍 태학에 들어가 학생들을 불러 교사 아래에 세워 놓고 훈화하셨다.

業精于勤, 荒于嬉.
行成于思, 毁于隨.
학업은 부지런한 데서 정진되고 노는 데서 황폐해진다. 행실은 생각하는 데서 이루어지고, 마음대로 하는 데서 허물어진다.

方今聖賢相逢, 治具畢張, 拔去凶邪, 登崇俊良.
지금 성군과 현명한 재상이 서로 만나 법령을 고루 펼쳐 흉악하고 사악한 무리들은 제게 해 내고 영준한 인재들을 등용하여 우대하고 있다.

占小善者, 率以錄,
名一藝者, 無不庸.
조그만 장기라도 가진 자는 모두 수록되고, 한 가지 재주라도 이름이 난 자는 쓰이지 않음이 없다.

爬羅剔抉, 刮垢磨光.
손톱으로 긁어내고 그물질하기도 하고 척결하기도 하여 때를 닦아내고 문질러 광을 내듯이 하고 있다.

蓋有幸而獲選,
孰云多而不揚.
대개 요행으로 선택된 자도 있겠지만 누가 재주는 많은데 드날려지지 않았다고 하겠는가?

諸生; 業還不能精, 無患有司之不明, 行患不能成, 無患有司之不公.
제군들은 학업이 정진되지 않음을 근심할 것이지 관리가 현명하지 못함을 근심하지는 말고, 행실이 완성되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지 관리가 공정하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라.


⏹ 업정어근(業精於勤)

공자는 주유천하 하면서 경륜을 펼치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67세 되던 해 고국인 노나라로 돌아왔다.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서경(書經)'을 다시 편찬했다.

젊었을 때 이 책을 읽고 꿈에 불탔던 시절이 엊그제 같기만 했다. 회한 속에 서경을 재편찬한 뒤 공자는 시(詩)를 들추었다. 옛 시는 모두 3000편이었다. 공자는 이를 305편으로 간추렸다.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이 공자의 손으로 다시 정리되고 고쳐진 셈이다.

그럼 공자가 가장 즐겨 읽던 책은 무엇일까. '주역(周易)'이었다. 공자는 우주생성 등 삼라만상의 원리를 담고 있는 '주역'을 읽고 또 읽었다.

책 맨 끈이 닳아 끊어지면 다시 매어 읽었다. 이러기를 세 번이나 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다. 제자들을 가르치기에 앞서 자신이 풍부한 공부를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게 한다.

훗날 당나라 때 대문장가인 한유(韓愈)가 "학업은 부지런히 분발하는 데서 정밀해지고 장난스럽게 하는 데서 거칠어진다. 행동은 신중하게 생각하는 데서 성공하고 게으른 데서 실패하게 된다(業精於勤 荒於嬉 行成於思 毁於隨)"고 말한 것은 공자의 솔선 모범적 정진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다.

물론 스승의 가르치는 열정 못지않게 제자의 힘써 배우려는 열성이 있어야 학문적 성취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예기(禮記)'에도 "옥은 가공하지 않으면 그릇을 이룰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삶의 이치 곧 도를 알 수 없다(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道)"고 했던 것이다.

교수직의 권위가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높다. 전공 분야를 깊이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전임교수'와는 태생부터 다른 온갖 종류의 '비전임교수'가 경력관리 및 선거출마용, 소일거리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현장경험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순기능이 없지 않지만, 전임교수가 되려는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질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수직의 권위를 되돌려야 할 때다.


◼ 진학해 / 한유

進學解 / 韓愈

國子先生晨入太學, 招諸生立館下, 誨之曰:
국자선생이 이른 아침에 국자감으로 들어가서 학생들을 불러 학당 아래 세워 놓고 나무라듯 말했다.

業精於勤, 荒於嬉;
行成於思, 毁於隨.
학업은 부지런해야 다듬어지고 노는 데 팔리면 거칠어지며, 행실은 생각을 통해 이뤄지고 내키는 대로 하면 허물어진다.

方今聖賢相逢, 治具畢張.
拔去凶邪, 登崇畯良.
지금 밝은 군왕과 어진 재상이 만나 법령을 고르게 펼치고, 흉악하고 사악한 무리를 제거하고 총명하고 선량한 인재들을 뽑아 귀하게 쓰고 있다.

占小善者率以錄, 名一藝者無不庸.
爬羅剔抉, 刮垢磨光.
蓋有幸而獲選, 孰云多而不揚.
소소하게라도 잘하는 것이 있으면 뽑아서 쓰고 재능을 가진 자는 누구든 쓰고 있는데, 꼼꼼하게 인재들을 모으고 정성을 들여 키운다. 어쩌다 운이 좋아 뽑힌 사람이 있기도 하겠지만 누가 재주는 있는데 쓰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을 하는가?

諸生業患不能精, 無患有司之不明;
行患不能成, 無患有司之不公.
배우는 사람들은 학업에 발전이 없는 것을 근심할 일이지 관리가 현명하지 못한 것을 근심하지 말고, 행실이 이뤄지지 못한 것을 근심할 것이지 관리가 공정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지 말 일이다.

言未旣, 有笑於列者曰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학생 중에 한 사람이 비웃듯 말하였다.

先生欺余哉! 弟子事先生, 於玆有年矣.
先生口不絶吟於六藝之文, 手不停披於百家之編.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을 속이고 계십니다. 저희가 제자로서 선생님을 모신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입으로는 쉬지 않고 육례의 문장을 외웠고, 손으로는 쉴 새 없이 제자백가의 책을 펼쳐 넘기셨습니다.

記事者必提其要, 纂言者必鉤其玄.
貪多務得, 細大不捐.
적은 일은 반드시 그 요점을 파악하셨고, 말한 것을 모아 책으로 묶을 때는 반드시 그 깊은 이치를 밝히셨습니다. 언제나 더 많은 책을 읽어 배우려고 하셨는데 크든 작든 어떤 것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焚膏油以繼晷, 恒兀兀而窮年.
先生之業, 可謂勤矣.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애쓰며 평생을 사셨으니 선생님의 학업은 참으로 부지런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觝排異端, 攘斥佛老.
補苴罅漏, 張皇幽眇.
이단을 배척하고 불가와 도가의 가르침을 물리쳐 (유학의) 빈 틈과 새는 곳을 보완하셨고 오묘한 이치를 확대하여 밝히셨습니다.

尋墜緖之茫茫, 獨旁搜而遠紹.
障百川而東之, 回狂瀾於旣倒.
先生之於儒, 可謂有勞矣.
쇠퇴하여 희미해지는 유가의 도통을 홀로 뒤지고 찾아내 멀리까지 이었고, 백 갈래의 물줄기들을 막아 동쪽으로 흐르게 함으로써 무너진 유가를 크게 부흥시키셨으니 선생님께서는 유교에 대하여 노고를 다하셨다고 할 만합니다.

周道衰, 孔子沒, 火於秦, 黃老於漢, 佛於晉魏梁隋之間. 其言道德仁義者, 不入於楊, 則歸於墨; 不入於老, 則歸於佛. 入於彼, 必出於此. 入者主之, 出者奴之; 入者附之, 出者汚之

沉浸醲郁, 含英咀華;
作爲文章, 其書滿家.
그윽하고 아름다운 옛 글의 순박하고 깊은 내용에 잠기고, 문장의 정수를 머금고 되씹으며, 문장을 짓고 책으로 엮은 것이 집안에 가득합니다.

上規姚姒, 渾渾無涯;
周誥殷盤, 佶屈聱牙;
春秋謹嚴, 左氏浮誇;
易奇而法, 詩正而葩;
위로는 순임금과 우임금 때의 한없이 깊고 넓은 뜻을 가진 제도와 문물, 읽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주서(周書)와 하서(夏書),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춘추(春秋), 화려하고 과장된 좌전(左傳), 기묘한 변화 중에 법칙을 가진 역경(易經), 단정한 사상과 아름다운 언사의 시경(詩經)을 본받아 배웠으며,

下逮莊騷, 太史所錄;
子雲相如, 同工異曲.
先生之於文, 可謂閎其中而肆其外矣.
아래로는 장자(莊子)와 이소(離騷)와 사기(史記), 양웅(揚雄)과 사마상여(司馬相如)처럼 공교로움에 있어서는 같지만 풀어내는 방법은 서로 다른 글을 좇았으니 선생님의 문장은 그 내용이 광대하고 기세가 분방하며 웅장하다 할 수 있습니다.

少始知學, 勇於敢爲;
長通於方, 左右具宜.
先生之於爲人, 可謂成矣.
선생님께서는 어려서는 배워 알게 된 것은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셨고, 자라서는 예법에 정통하여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때와 장소와 경우에 들어맞지 않은 때가 없었으니 선생님의 인품도 아름답다 할 수 있습니다.

然而公不見信於人, 私不見助於友.
그러나 공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고 사적으로도 벗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跋前躓後, 動輒得咎,
暫爲御史, 遂竄南夷.
앞으로 나아가기도 뒤로 물러나기도 어려운 처지에 하는 것마다 허물이 되니 어사가 된 것도 잠시 남방으로 멀리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三年博士, 冗不見治,
命與仇謀, 取敗幾時.
박사로 있는 삼 년 동안 맡은 일에서 아무런 치적도 이뤄내지 못하다가 선생님의 운명이 원수들과 손을 잡은 셈이니 실패할 때가 언제인지 알 수조차 없었습니다.

冬暖而兒號寒, 年豊而妻啼飢.
겨울이 따뜻할 때도 선생님의 자식들은 춥다고 울고, 풍년이 든 해에도 사모님께서는 먹을 것이 부족하여 배를 곯아야 했습니다.

頭童齒闊, 竟死何裨.
不知慮此, 而反敎人爲?
선생님께서 머리가 벗겨지고 치아가 빠져 죽을 때가 될 때까지 좋은 것이 뭐가 있었습니까.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이런 사정도 모르시고 오히려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십니까?

先生曰 : 吁! 子來前!
(학생의 말을 듣고) 선생이 말하였다.
"오! 자네는 앞으로 나오라.

夫大木爲杗, 細木爲桷, 欂櫨侏儒, 椳闑扂楔, 各得其宜, 施以成室者, 匠氏之工也.
무릇 큰 나무는 들보가 되고 작은 나무는 서까래와 두공, 귀잡이보, 문지도리, 문설주, 빗장, 쐐기 등 저마다의 쓰임이 있는 것인데, (이런 여러 가지) 목재를 사용하여 집을 짓는 것은 목공의 기술이라 할 것이다.

玉札丹砂赤箭靑芝, 牛溲馬勃, 敗鼓之皮, 俱收並蓄, 待用無遺者, 醫師之良也.
오이풀과 주사, 천마, 용란 같은 귀한 약재와 쇠오줌, 말똥, 찢어진 북의 가죽 같은 값싼 약재들을 모두 모아 버리지 않고 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쓰는 것은 의원의 밟은 헤아림이라 할 것이다.

登明選公, 雜進巧拙, 紆餘爲姸, 卓犖爲傑, 校短量長, 惟器是適者, 宰相之方也.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숨기는 것이 없고 인재를 뽑는 과정을 공정하게 하며, 빼어난 사람과 처지는 사람을 함께 일하게 함에 있어 겸손하고 조화로운 사람을 아름답게 하고, 호방한 사람을 걸출하게 하면서 저마다 가진 단점을 비교하고 장점을 계량하여 그들이 모두 자신의 재능과 품격에 맞게 일하게 하는 것은 재상의 방책이라 할 것이다.

昔者孟軻好辯, 公道以明, 轍環天下, 卒老於行. 荀卿守正, 大論是弘, 逃讒於楚, 廢死蘭陵.
옛날에 변론하기를 좋아한 맹자는 공자의 도를 밝혔으나 수레를 타고 천하를 돌아다니다 끝내는 길 위에서 죽었고, 순자는 바른 도리를 지키며 위대한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으나 모함을 피해 초나라로 달아났다가 난릉에서 죽었다.

是二儒者, 吐辭爲經, 擧足爲法, 絶類離倫, 優入聖域, 其遇於世何如也?
이 두 위대한 유학자는 말을 하면 경전이 되었고 행동거지 하나하나 법칙이 되었으며 보통사람들 속에서 유독 빼어나 그 덕행과 공적이 성인의 행렬에 들기에 족하였지만 세상은 그들을 어떻게 대우했는가?

今先生學雖勤而不繇其統, 言雖多而不要其中, 文雖奇而不濟於用, 行雖修而不顯於衆.
지금 그대들의 선생은 학업은 부지런히 하지만 도통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고, 말은 많이 하지만 많은 경우 요지에 들어맞지 않으며, 문장은 특별하지만 실용적인 이익이 되지 못하고, 행실은 수행을 했으면서도 사람들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猶且月費俸錢, 歲糜廩粟;
子不知耕, 婦不知織;
乘馬從徒, 安坐而食.
오히려 달마다 봉록을 낭비하고 해마다 창고의 식량을 소비하며 자식들은 농사 지을 줄 모르고 아내는 베를 짤 줄 모르는 채 말을 타고 하인을 부리며 편히 앉아 밥을 먹고 지낸다.

踵常途之役役, 窺陳編以盜竊.
然而聖主不加誅, 宰臣不見斥, 茲非其幸歟?
관례에 따라 편협하게 일을 처리하고 옛 전적 속 글이나 훔쳐보는 짓을 하고 있지만 지혜롭고 총명하신 천자께서 벌을 주지 않고 재상과 대신들도 배척하지 않으니 어찌 다행이라 하지 않겠는가?

動而得謗, 名亦隨之.
投閑置散, 乃分之宜.
거동을 하면 비방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에 따라 명성도 또한 얻었으니 한산한 자리에 두는 것이 분수에 맞는 일이다.

若夫商財賄之有亡, 計班資之崇庳, 忘己量之所稱, 指前人之瑕疵,
만약에 재물의 유무를 재고 지위의 고하나 봉록의 다과를 비교하며 자신이 가진 재능에 어울리는 자리를 잊고 윗사람의 잘못이나 지적한다면

是所謂詰匠氏之不以杙爲楹, 而訾醫師以昌陽引年, 欲進其豨苓也.
이것은 말뚝으로 기둥을 삼지 않는다고 목공을 나무라고 수명 연장이 필요한 환자에게 창양을 처방하는 의원을 헐뜯으며 소변이나 보게 하는 저령을 올리려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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