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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염이불귀(廉而不劌)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20.05.03|조회수273 목록 댓글 0

염이불귀(廉而不劌)

날카로워도 상처를 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옥이 모가 있어도 망가지지 않듯이 군자의 덕이 견고하여 외부의 사물로 인하여 더럽혀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廉 : 예리할 염(广/10)
而 : 말 이을 이(而/0)
不 : 아닐 불(一/3)
劌 : 상처 입힐 귀(刂/13)

출전 : 노자(老子) 58章


모가 나나 부서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옥이 모가 있어도 망가지지 않듯이 군자의 덕이 견고(堅固)하여 외부(外部)의 사물로 인하여 더럽혀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옥이 모가 나도 다른 물건을 상하게 하지 않듯, 군자는 의리로 제재(制裁)하나 그로 인해 남을 다치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 성어는 노자(老子) 58장에서 연유한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정치가 어리숙하면 백성이 순박해지고, 정치가 똑똑하면 백성이 못되게 된다.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라고 생각되는 데서 복이 나오고, 복이라고 생각되는 데 화가 숨어 있다. 누가 그 끝을 알 수 있겠는가.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 올바름이 변하여 이상스런 것이 되고, 선한 것이 변하여 사악한 것이 된다. 사람이 미혹되어도 실로 한참이다.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
그러므로 성인은 모가 있으나 다치게 하지는 않고, 예리하나 잘라 내지는 않고, 곧으나 너무 뻗지는 않고, 빛나나 눈부시게 하지는 않는다.

(解)
이 장의 주된 메시지도 무위지치(無爲之治)다. 앞선 57장의 메시지와 같다. 민민(悶悶)과 찰찰(察察), 순순(淳淳)과 결결(缺缺)은 도와 비도를 대립시켜 전자인 도를 강조하는 노자 특유의 수사적 표현이다.

'민민'과 '순순'은 무위지치의 도가 실현되고 있는 상태를 뜻하고, '찰찰'과 '결결'은 유위로 인해 세상이 도에서 멀어지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민민(悶悶)과 찰찰(察察)은 20장에서도 나왔다.

노자는 도를 깨우친 자신을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민민'에 비유했고, 도를 깨우치지 못한 대중들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찰찰'에 비유했다.

상식적으로 보면 백성들의 삶을 미주알 고주알 챙기는 정치인이 더 훌륭하지만 노자는 오히려 백성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는 정치인이 더 훌륭하다고 말한다. 적극적 개입과 통치보다는 위임과 자치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자연이 순환하듯이 백성들의 삶도 순환한다. 배추의 작황이 좋다고 해서 그 다음해에도 똑 같이 배추 작황이 좋을 수는 없다.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다. 그래서 화에는 복이 기대고 있고 복에는 화가 엎드려 있다고 했다.

작황이 좋은 해에 국가가 나서서 배추를 많이 심으라고 독려하는 것은 이듬해 배추 값의 폭락을 부르는 요인이 된다. 오랜 세월 자연의 순리에 맞춰서 살아온 백성들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놔두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 게 노자가 말하는 무위지치다.

그래서 성인은 모가 나도 자르지 않고, 날카로워도 벼리지 않고, 곧아도 지나치게 뻗어 나가지는 않는다고 했다.

제도나 법률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도구다. 하지만 세상사란 칼로 무를 자르듯이 시비를 딱 부러지게 가릴 수는 없다. 기무정(其無正), 즉 절대적으로 바른 것, 절대적으로 선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에만 의존해서 국가를 다스릴 수는 없다. 법을 기반으로 하되 그것을 넘어서 존재하는 더 큰 지평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지치의 궁극적 지향점도 그러한 곳에 있다 하겠다.


⏹ 보통사람은 많고 성인은 적으니

10세기 경 중국 고승 상찰(常察)이 쓰고, 15세기 우리나라 김시습(金時習)과 이로부터 500년 뒤 20세기 한용운(韓龍雲)이 주해(註解)한 것을 오늘날 조동일(趙東一)이 설명한 것을 살펴보자.

한용운의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에 이런 말이 있다.

博地凡夫, 本自具足.
一切賢聖, 道破不得.
넓은 땅에 사는 범부(凡夫)는 본디 스스로 만족함을 다 갖추고 있으며, 일체의 성현은 도리를 모두 말할 수 없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낮은 자리에 있는 예사 사람들인 범부는 삶을 누리기나 하고, 높은 위치에 오른 스승인 '현성'이 그 이치를 밝혀 논한다.

그러나 '일체'의 현성을 다 모아도 '넓은 땅'의 범부만큼 많을 수는 없어 한정된 능력으로 무한한 진실을 모두 설파할 수는 없다.

범부가 누리고 있는 '본디 스스로 만족한' 경지는 아무런 차등이 없이 원만하기만 해서 말이 모자라 전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비자(韓非子)가 '노자(老子)' 58장을 해설하며 꼭 이런 말을 하고 있어 도도한 사상의 흐름을 느낀다. 한비자는 노자를 신명나게 해설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使失路者而肯聽習問知, 即不成迷也.
길을 잃은 자라도 기꺼이 듣고 익히고 물어 알면 헤매지 않는다.

今眾人之所以欲成功而反為敗者, 生於不知道理而不肯問知而聽能.
이제 보통사람들이 성공하고자 하나 실패하는 까닭은, 도리를 모르고 살아가면서도 즐겨 물어 알고 들어 해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眾人不肯問知聽能, 而聖人強以其禍敗適之, 則怨.
보통사람들이 즐겨 물어 알고 들어 해내려고 하지 않는데, 성인이 억지로 잘못이나 실패를 꾸짖으니, 보통사람들은 원망을 한다.

眾人多而聖人寡, 寡之不勝眾, 數也.
보통사람은 많고 성인은 적은데, 적은 수로 많은 수를 당하지 못하는 것은 정한 이치라.

今舉動而與天下之為讎, 非全身長生之道也, 是以行軌節而舉之也.
지금 그런 행동을 하여 천하 사람들과 원수를 지는 일은, 몸을 온전히 하고 장수하는 도리가 아니니, 이래서 절도에 맞게 행동하면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故曰: 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耀.
그래서 노자에 말하기를, "자신은 반듯하지만 남을 해치지 않고, 깨끗하지만 남을 상하게 하지 않고, 곧지만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고, 빛나지만 남을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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