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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부시기소여(富視其所與)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20.05.03|조회수100 목록 댓글 0

부시기소여(富視其所與)

부자의 사람됨은 어떤 방면에 그 재물을 쓰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인재 등용에서 부자인 경우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돈을 쓰는지, 아니면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쓰는지 보라는 것이다.

富 : 가멸 부(宀/9)
視 : 볼 시(礻/8)
其 : 그 기(八/6)
所 : 바 소(戶/4)
與 : 줄 여(臼/8)

출전 :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


이 성어는 전국시대 때 위(魏)나라의 문후(文侯)가 재상 임명을 위해 이극(李克)에게 자문(諮問)을 요청했는데, 이에 이극이 대답한 말에서 연유한다.

위문후(魏文侯)가 이극(李克)에게 말했다. "선생께서 일찍이 저를 가르치며 말씀하시기를, '집안이 못살게 되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게 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훌륭한 재상을 생각하게 된다(家貧思良妻, 國亂思良相)'고 하셨습니다. 지금 위나라의 재상을 임명하려면 위성자(魏成子; 문후의 동생)아니면 적황(翟璜; 당시 상경) 뿐인데, 이 두 사람은 어떠한지요?"
魏文侯謂李克曰: 先生嘗教寡人曰, 家貧則思良妻, 國亂則思良相. 今所置非成則璜, 二子何如.

이극이 대답해 말했다. "제가 듣건대 신분이 낮은 자는 신분이 귀한 자의 일을 거론하지 않고, (관계가) 먼 자는 가까운 자의 일을 품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궁궐 문 밖에 있으니 감히 왕의 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李克對曰: 臣聞之, 卑不謀尊, 疏不謀戚. 臣在闕門之外, 不敢當命.

문후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일에 맞닥뜨리면 마다하지 마십시오."
文侯曰: 先生臨事勿讓.

이극이 말했다. "왕께서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는 그의 가까운 사람들을 살피시고, 부귀할 때에는 그가 재물을 어디에 쓰는가를 살피시며, 현달(관직)했을 때에는 그가 천거한 사람을 살피시고, 곤궁한 때에는 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살피시고, 가난할 때에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을 살피십시오. 이 다섯 가지로써 충분히 사람을 정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저 같은 사람의 말을 기다리시는 지요."
李克曰: 君不察故也. 居視其所親, ��️富視其所與, 達視其所舉, 窮視其所不為, 貧視其所不取, 五者足以定之矣, 何待克哉.

문후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숙소로 돌아가셔도 좋으니, 과인의 재상은 정해졌소이다."
文侯曰: 先生就舍, 寡人之相定矣.


⏹ 人材 登用의 基準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훌륭한 목수는 좋은 연장을 사용한다'는 말이 있다.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적재적소에 걸맞는 사람을 등용하기란 그리 쉽지 않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인품과 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별, 등용해서 그 사람의 인품과 능력을 국민들이 본받을 수 있고 또 그의 재능이 사회와 국가 발전으로 이어져야 한다.

중국 고대사를 담은 역사서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춘추전국시대 위(魏)나라 신하 이극(李克)의 인재를 선발하는 다섯 가지 관찰법이 있다. 일명 '오시법(五視法)'이라고도 한다.

위나라 문후(文侯)는 이극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에 선생은 집안이 가난해지면 어진 부인이 필요하고(家貧則思良妻), 나라가 혼란해지면 유능한 재상이 필요하다(國亂則思良相)고 하였소. 지금 나라에 재상을 선발하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을 재상으로 등용했으면 좋겠소?"

문후의 물음에 이극은 아래 '오시법'을 제시하여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고 간언(諫言) 했다고 한다.

첫째, 거시기소친(居視其所親)
평소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를 본다. 그 사람과 친분을 맺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둘째, 부시기소여(富視其所與)
부자인 경우 어떤 사람에게 베푸는지 본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돈을 쓰는지, 아니면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쓰는지 보라는 것이다.

셋째, 원시기소거(遠視其所擧)
지위가 높을 때 어떤 사람을 채용하여 쓰고 있는지를 본다. 그 사람이 등용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인재를 보는 안목을 알 수 있다.

넷째, 궁시기소불위(窮視其所不爲)
곤궁한 경우 나쁜 짓을 하는지 본다. 사람이 窮(궁)해지면 해서는 안 될 일도 서슴지 않고 하게 마련이다.

다섯째. 빈시기소불취(貧視其所不取)
가난할 때 부정한 방법으로 물건을 취하는지 본다.

이극의 '인재 판별 기준'은 주변 사람과의 인간관계, 부의 나눔, 인재의 등용, 소신과 지조(志操), 재물 따위를 탐하지 않는 청렴 등이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물 평가를 '신언서판(身言書判)'에 두었다. 즉 몸(體), 말씨(言), 글씨(筆), 判(판단력)의 네 가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신(身)이란 사람의 건강과 풍채(風采)와 용모(容貌)를 뜻한다. 이는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첫째 평가 기준이 되는 것으로,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첫눈에 건강과 풍채와 용모가 뛰어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언(言)이란 사람의 언변으로, 논리 정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 역시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

書(서)는 필적(筆跡)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글씨는 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며 그 사람의 인품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데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判(판)이란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체모(體貌)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出衆)할 수 없다.

이상 네 가지 조건을 '신언서판'이라 하여 당나라에서는 이를 모두 갖춘 사람을 으뜸으로 덕행, 재능, 노효(勞效; 어떤 목적을 이루는데 들인 노력이나 수고)의 실적을 감안한 연후에 인재를 등용하였다고 한다.

위나라의 상인이자 진나라의 재상까지 올랐던 여불위(呂不韋)가 인재를 뽑을 때에 기준으로 삼았다는 여섯 가지 육험론(六驗論)이 여불위가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온다.

첫째, 낙지이험기벽(樂之以驗其僻)이다. 즉 즐거움을 조절할 수 있느냐? 즐겁게 해주고서 그가 즐거움에 얼마나 빠져드는지를 살핀다.

둘째, 희지이험기수(喜之以驗其守)이다. 즉 기쁨을 자제할 수 있느냐? 사람을 기쁘게 하고서 그가 기쁨을 얼마나 자제하는가를 살핀다. 크게 기쁘더라도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그 기쁜 마음을 억제할 줄 아는지 살핀다.

셋째, 고지이험기지(苦之以驗其志)이다. 즉 괴로움을 잘 참아 낼 수 있느냐? 사람을 괴롭게 하고서 그가 괴로움을 얼마나 참는지를 살핀다.

넷째, 구지이험기특(懼之以驗其特)이다. 즉 두려움 앞에 담대할 수 있느냐? 사람을 두렵게 하고서 얼마나 두려움을 나타내는지를 살핀다.

다섯째, 애지이험기인(哀之以驗其人)이다. 즉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사람을 슬프게 하고서 얼마나 슬픔을 삭이는지를 살핀다.

여섯째, 노지이험기절(怒之以驗其節)이다. 즉 노여움을 자제할 수 있는가? 사람을 성나게 해놓고서 얼마나 감정을 다스리는지를 살핀다.

'육험론'은 인간이 극한상황에 처했을 때 평상심을 견지하고 감정 조절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는 방법이다.

'안목이 없으면 사기꾼도 하늘 같이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인재등용에서 소인을 군자(君子)라고 천거하고 군자를 소인으로 내치는 우(愚)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십팔사략(十八史略)을 보면, '사람을 관찰하는 다섯가지(五視)'가 있다.

첫째, 평소에 친한 사람이 누구인가(居視其所親).

둘째, 자신의 부를 어떻게 쓰는가(富視其所與).

셋째,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누구를 추천하는가(遠視其所擧).

넷째,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어떤 일을 하지 않는가(窮視其所不爲).

다섯째, 가난할 때 부당한 것을 취하지 않는가(貧視其所不取).

탁월한 군주였던 위나라 문후에게 충성스런 재상 이극이 간언했던 말로, 오늘날에도 경계로 삼을 만한 말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을 아는 일은 그만큼 어렵기에 다양한 관점에서 시험이 필요한 것이다.

심지어 철학적으로 완성된 인물인 공자도 사람을 볼 때 실수를 했던 적이 있었다.

공자는 13년간의 유랑생활 중 많은 고난을 겪었는데, 며칠을 쌀 한톨 구경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굶주림을 참지 못해 잠깐 낮잠을 자다가 깼는데 마침 수제자 안연이 쌀을 구해 밥을 하고 있었다.

공자가 흐린 눈으로 잠깐 보니 안연이 시루 속에 손을 넣어 밥을 집어먹는 것이었다. 공자는 안연이 배고픔을 못 이겨 몰래 밥을 먹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그 밥으로 제사를 드린 후에 먹자"고 안연을 떠보았다.

그러자 안연은, "안됩니다. 아까 티끌 하나가 시루 속에 들어가 제가 티끌이 묻은 밥을 걷어내 먹었습니다. 이미 부정을 탔으니 제사상에 올릴 수 없습니다"고 대답했다.

잘 알다시피 안연은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수제자였고, '나보다 더 뛰어난 군자'라고 인정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공자는 순간적으로 본 한 장면으로 인해 안연을 오해했다.

공자는 크게 후회하며 이렇게 말했다. "믿는 것은 오직 눈이지만 눈도 믿을 만한 것이 못되고, 의지할 것은 마음이지만 마음도 믿기에 부족하다. 부디 명심할진대 사람을 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사람을 볼 때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리적 요인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공자의 경우처럼 상황이나 환경에 의해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을 이끌고 있다면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키우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특히 보이지 않는 것에서 그 사람의 내면을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을 몸에 갖추는 것은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지도자가 스스로 사람을 볼 능력이 없다면 결국 다른 사람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추천자의 이권이나 탐욕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외부의 추천 역시 인재 등용 측면에서 중요한 판단기준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지만 지도자라면 최종결정은 언제나 스스로 내려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다양한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물지(人物志)'의 저자 유소(劉邵)는 이렇게 말했다. "관리의 책임은 한가지 일로 여러 가지 일을 잘 조합해 처리하는 것이지만, 군주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대신들에게는 어떤 일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인재이겠지만, 군주에게 인재란 그 인재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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