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언구정(一言九鼎)
말 한마디가 구정(九鼎)만큼 무겁다는 뜻으로, 무게 있고 값진 말 또는 어떤 사람의 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함을 비유한 말이다.
一 : 한 일(一/0)
言 : 말씀 언(言/0)
九 : 아홉 구(乙/1)
鼎 : 솥 정(鼎/0)
출전 : 사기(史記) 卷076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구정(九鼎)은 중국 하(夏)나라 우왕(禹王) 때 전국의 아홉 주(州)에서 거두어 들인 금으로 만들었다는 솥을 가리키는데, 구주(九州)를 상징하며 주(周)나라 때까지 대대로 천자에게 전해진 보물이었다고 한다.
이 성어는 사기(史記) 卷076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서 평원군(平原君)이 한 말이다.
평원군(平原君)은 전국시대 말엽에 조(趙)나라의 여러 공자 중 한사람인데, 선비를 좋아하여 식객이 3,000명에 달했다.
당시 가장 강력한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침공하여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했으므로, 조나라는 매우 위험에 처했다. 이에 조나라 국왕은 평원군에게 초(楚)나라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고 합종을 하도록 했다.
이에 평원군은 식객 중에서 20명을 선발하여 초나라를 갈려고 했으나 19명만 뽑고 한 명을 뽑지 못했는데,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스스로 가고자(自薦; 毛遂自薦)하여 20명을 데리고 초나라에 갖다.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초나라 왕을 설득하는데 실패하였을 때 모수(毛遂)가 나서서 초나라 왕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평원군은 합종을 결정짓고 조나라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 내가 지금까지 선비를 고른 수는 많다면 천 명이 되겠고, 적어도 백여 명은 될 것이다.
平原君已定從而歸, 歸至於趙, 曰: 勝不敢復相士. 勝相士多者千人, 寡者百數.
나는 스스로 천하의 선비를 잃은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모 선생의 경우에는 실수하였다. 모 선생은 한 번 초나라에 가서 조나라를 구정이나 대려(보물; 주나라가 만든 큰 종)보다도 무겁게 만들었다.
自以為不失天下之士. 今乃於毛先生而失之也. 毛先生一至楚, 而使趙重於九鼎大呂.
모 선생의 세 치 혀는 군사 백만 명보다도 강했다. 나는 감히 다시는 인물을 평가하지 않겠다." 그리고는 마침내 모수를 상객으로 삼았다.
毛先生以三寸之舌, 彊於百萬之師. 勝不敢復相士. 遂以為上客.
(史記/卷076 平原君虞卿列傳)
그 후에 이를 두고 '일언구정(一言九鼎)'이라 했다.
⏹ 일언구정(一言九鼎)
한 마디 말이 아홉 개 솥의 무게와 같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조(趙)나라 공자(公子) 가운데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은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과 더불어 식객이 많기로 유명했다.
그 평원군과 모수(毛遂)라는 식객 사이에 얽힌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된다. 그 중 모수자천(毛遂自薦; 모수가 스스로 자신을 천거하다는 뜻으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추천하는 것을 말한다)과,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그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뜻으로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다)라는 고사성어가 유명하다.
모수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고사성어로 일언구정(一言九鼎)이 있다. 모수가 자천하여 초나라와의 교섭에 나서 큰 공을 세움으로써 평원군은 초나라와 합종의 맹약을 맺을 수 있었다.
평원군은 초나라에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 감히 선비를 고르지 못하겠소이다. 내가 선비를 고른 것이 많으면 천 명, 적어도 백여 명으로 제 스스로 천하의 인재를 한 사람이라도 잃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지금 하마터면 모수 선생을 잃을 뻔 하였소이다.
모수 선생이 한번 초나라에 가니 조나라를 구정(九鼎), 대려(大呂) 보다도 무겁게 만들었소(毛先生 一至楚而使趙重九鼎大呂). 모수 선생의 세치 혀는 백만의 군사보다도 강하였소. 나는 감히 다시는 인재를 고르지 않겠소."
그리고는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사기' 평원군우경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일언구정(一言九鼎)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 마디 말이 아홉 개 솥의 무게와 같다는 뜻으로 말 한 마디로 큰일을 한 것을 일컫는다.
정(鼎)은 솥에 해당하는 고대 중국의 세 발 달린 금속 기구로 제기로 이용되었다.
구정(九鼎)은 하나라의 시조 우가 구주(九州)에 명해 모은 청동으로 주조한 것이라 한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왕이 상나라의 탕왕에게 멸망한 후 상나라 왕실에 있다가 상나라의 주왕이 주나라 무왕에게 멸망한 후 왕실의 소유가 되었다. 이후 구정을 가진 자를 천자로 여겼다.
주나라가 진나라에게 멸망한 후 진나라는 이것을 가지려 했지만 혼란 중에 사수(泗水)의 바닥에 가라앉아 없어졌다고 한다.
⏹ 문정경중(問鼎輕重)
(問:물을 문, 鼎:솥 정, 輕:가벼울 경, 重:무거울 중)
솥이 가벼운지 무거운지 묻는다는 뜻으로, 타인의 실력 또는 내막을 엿보거나 상대방의 실력을 떠본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인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천하를 뺏으려는 야심을 품고, 주(周)나라 정왕(定王)에게 제위(帝位)의 상징이며 전국의 보물인 구정(九鼎)의 무게를 물었다.
그러자 정왕의 대부 왕손만(王孫滿)이 대답했다. "솥의 크기와 무게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덕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솥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禹)임금이 만든 솥이 걸(桀)의 부덕으로 상(商)나라로 옮겨 갔고, 600년 뒤에 주(紂)가 포학하자 솥은 다시 주나라로 옮겨 갔습니다.
덕이 크고 밝으면 비록 작아도 무겁고, 어둡고 어지러우면 비록 커도 가볍습니다.
(…)
성왕(成王)께서 솥을 주나라로 옮긴 뒤 대를 점쳐 삼십(三十)을 얻고 해를 점쳐 백을 얻었으니 이는 하늘이 명한 것입니다.
지금 주나라의 덕이 비록 쇠했어도 천명은 아직 고쳐지지 않았으니 솥의 무게는 물을 일이 못 되는 줄로 압니다."
전국의 보물인 구정(九鼎)은 솥이다. 이 솥은 무게가 천 균(鈞)이나 되었다고 한다. 한 균이 삼십(三十) 근이니 천 균은 삼만(三萬) 근이다. 진시황이 이것을 함양으로 옮겨 간 기록이 남아 있을 뿐 현재는 없다.
왕손만은 아직 초나라가 천하를 주름잡지 못하고 있으므로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고 정중하게 대답한 것이다.
본디 '문정지경중(問鼎之輕重)'으로 되어 있다. 타인의 실력 또는 내막(內幕)을 엿보거나 상대방의 실력을 떠본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 언격(言格)이 인격(人格)
사마천의 '사기'는 130권 52만 6500자로 이루어진 방대한 통사이다. 더욱이 사마천은 52만자 한 글자 한 글자를 마치 바닷물을 길어다 소금을 걸러내듯 심혈을 기울였다. 주옥 같은 고사성어가 헤아릴 수 없이 탄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마천은 '사기' 곳곳에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말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나아가서는 통치 행위에서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말 한마디가 '가마솥 아홉 개 무게(一言九鼎)' 보다 더 무거워야 한다고 일갈한다. 또 '한번 내뱉은 약속의 값어치는 100금(一諾百金)' 이상 값어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는 믿음이란 글자만 해도 그렇다. 믿을 신(信)이란 글자는 그 자체로 '사람(人)의 말(言)'이다. 믿음이 사람의 말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믿음을 얻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 말을 얻는다는 것은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뜻이고, 이것이 결국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기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그 말', 즉 '믿음'을 잃게 되면 마음도 잃게 된다. 이렇게 보면 누구든 글자의 뜻에 대한 정확한 인식만 있어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은 또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둘도 없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사마천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천하의 명언을 남겼다. "말이 적절하게 들어맞으면 다툼조차 해결할 수 있다(談言微中亦可以解紛)."
중국 역사상 최고의 개혁가 상앙(商鞅)은 변법(變法)을 통한 개혁정책을 밀고 나가기에 앞서 백성들의 믿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성문 앞에다 나무 기둥을 세워놓고는 이를 다른 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는 거액의 상금을 준다고 약속했다.
반신반의하던 백성들 중 누군가가 기둥을 옮겼고, 상앙은 약속대로 거금을 상금으로 주었다. 이것이 이른바 '입목득신(立木得信)'의 고사이다.
말이나 글(법)이 실천으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그 말이나 글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언행일치(言行一致)'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전제조건 또한 '말(글)의 격' 즉, '언격(言格)'이 될 것이다.
말은 마음의 소리(言爲心聲)이다. 마음의 소리는 인격(人格)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말의 격, 즉 '언격(言格)'이 '인격(人格)'이 되는 셈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국격(國格)'이나 '인격(人格)'은 차치하고 먼저 '언격(言格)'을 요구하고 싶다.
(參考)
◼사모무방정(司毋戊方鼎)
고대에 정(鼎)은 왕권을 상징했다. 중국어에서 정자가 들어가는 단어들은 보통 왕권과 관련된다. 예를들어 '문정(問鼎)'은 '정권 탈취를 노린다'는 뜻이고, '일언구정(一言九鼎)'은 '결정적 역할을 하는 말'을 가리킨다.
사모무방정(司毋戊方鼎)은 1937년 하남(河南) 안양(安陽)에서 발견된 귀중한 문화재로 중국 상나라 말기의 유물이며 30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방정(方鼎)은 세계적으로 발견된 최대의 청동기로 중국국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정(鼎)은 원시사회에서 음식을 끓일 때 사용하던 취사 도구였다. 당시 정(鼎)은 흙을 구워 만들었으며 상주(商周) 시기에 이르러 중국의 청동기 주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청동으로 정(鼎)을 만들었다. 당시 정(鼎)은 더 이상 백성들이 사용하는 취사도구가 아니라 고귀한 신분과 왕권을 상징하는 제사도구가 됐다.
사모무방정(司毋戊方鼎)은 상왕 문정(文丁)이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주조한 것이다. '사모무(司毋戊)'는 원래 정(鼎) 내벽에 적힌 글이었다.
고고학자의 해석에 따르면 '사(司)'는 제사의 의미이고 '모무(母戊)'는 상왕 문정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나중에 사모무(司毋戊)는 정(鼎)의 이름으로 정해졌다.
사모무방정(司毋戊方鼎)의 높이는 1.3m이고, 길이가 1.10m, 너비가 0.78m이며, 무게는 832.84kg이다. 당시 1000kg이 넘는 금속 재료가 필요했고, 200~300명의 장인이 함께 해야 완성할 수 있었다.
사모무방정(司毋戊方鼎)은 모양이 생동하고 웅장하며 제작공예 또한 정교하다. 정(鼎)의 하단에는 네 발이 기둥처럼 정을 지탱해 주고 있으며 정(鼎) 표면에는 풍년과 상서로움을 표현하는 각종 정교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사모무방정(司毋戊方鼎)은 상주시기 청동 주조 기술의 최고 성과를 집중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