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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홍점지익(鴻漸之翼)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20.05.03|조회수351 목록 댓글 0

홍점지익(鴻漸之翼)

점점 높이 날아 하늘위까지 날 수 있는 큰기러기의 날개라는 뜻으로, 점차 높은 자리에 오르는 유위(有爲)한 재능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鴻 : 큰기러기 홍(鳥/6)
漸 : 점차 점(氵/11)
之 : 갈 지(丿/3)
翼 : 날개 익(羽/11)

출전 :
주역(周易) 점괘(漸卦) 第53卦 上 9
한서(漢書) 卷058 공송홍열전(公孫弘列傳)
사기(史記) 卷112 평진후열전(平津侯列傳)


큰 기러기의 날개는 한 번 날갯짓을 해서 천 리를 날아갈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라는 뜻으로, 뛰어난 재능이나 위대한 능력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차차 높은 자리로 올라갈 재능이 있음이나 큰 사업을 이룰 기량이 있음의 비유한 말이다.

이 성어는 주역(周易) 점괘(漸卦) 第53卦 上 9에, "기러기가 공중에서 점차 나아감이니 그 깃이 의표가 될 만하다(鴻漸于逵 其羽可用爲儀)"에서 연유한다.

또한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卷058 공송홍열전(公孫弘列傳)에 이 성어가 보인다.

그리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卷112 평진후열전(平津侯列傳)에 반고(班固)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다음은 사기의 내용이다.

반고(班固)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손홍과 복식과 예관은 모두 날아오르는 큰기러기(비범한 인물)의 날개를 가졌으면서도 제비와 참새에게 시달림을 받아 멀리 양이나 돼지 무리 속에 섞여 살았다. 때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이런 지위(재상지위)에 오를 수 있었겠는가?
班固稱曰: 公孫弘, 蔔式, 兒寬皆以��️鴻漸之豕之間. 非遇其時, 焉能致此位乎.

당시 한나라가 일어난 지 육십여 년으로 온 천하가 태평스러우며 국고가 가득 찼지만, 사방의 오랑캐는 아직 복종하지 않고 제도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是時漢興六十餘載, 海內乂安, 府庫充實, 而四夷未賓, 制度多闕.

황제는 바야흐로 문무의 인재를 등용하려고 하면서 그러한 인재들을 얻지 못할까 봐 애태우면서 구했다."
上方欲用文武, 求之如弗及.
(史記/卷112 平津侯主父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卷112
평진후주보열전(平津侯主父列傳)

사마천과 반고의 평론
①平津侯(평진후) 公孫弘(공손홍)
②主父偃(주보언)

평진후주보열전(平津侯主父列傳)은 평진후(平津侯) 공손홍(公孫弘)과 주보언(主父偃)의 합전(合傳)이다.

평진후 공손혼은 한무제(漢武帝)때 내사(內史),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역임하였으며, 기원전 124년 승상(丞相)이 되고 평진후(平津侯)에 봉해졌다.

회남왕(淮南王), 형산왕(衡山王)이 반란을 일으키자 책임을 지고 사임하려 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아 유임하였으며 그 이듬해 병사하였다.

주보언(主父偃)은 제나라 임치현 사람으로 종횡가의 학술을 익혔으나 중용되지 못하자 한 무제에게 상소한 것이 인정을 받아 낭중이 된 후 일 년 만에 중대부로 승진하였다.

남의 비밀을 폭로하기 좋아하므로 대신들이 두려워하여 뇌물을 바쳤으며, 제나라 재상이 된 후 주보언이 제나라 왕 유차경이 기옹주와 간통한 사실을 황제에게 간한 것으로 인해 일족이 멸족되었다.

이 장에서는 공손홍과 주보언에 대한 태사공 사마천의 논평이 기록되어 있으며, 태사공의 논평 이후에는 한평제(漢平帝)의 조모인 왕정군(王政君)이 공손홍(公孫弘)을 기리는 조서와 반고의 논평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사마천의 원문이 아닌 후세 사람이 추가한 것이다.

◼ 태사공(太史公)의 논평(論評)

太史公曰: 公孫弘行義雖修, 然亦遇時.
태사공은 말한다. "공손홍(公孫弘)은 행의(行義)가 뛰어났지만 시기 또한 잘 만났다.

漢興八十餘年矣, 上方鄉文學, 招俊乂, 以廣儒墨, 弘為舉首.
한나라가 일어난지 80여 년에 황제께서 때마침 문학을 숭상해 뛰어난 인재들을 불러 모아 유학(儒學)과 묵학(墨學)을 발전시킬 무렵 공손홍이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主父偃當路, 諸公皆譽之,
及名敗身誅, 士爭言其惡. 悲夫.
주보언(主父偃)이 요직에 있을 때 조정의 고관들은 모두들 그를 칭찬했으나,
그의 명성이 실추되어 사형을 당하자 선비들은 다투어 그의 악행을 비난했다. 슬픈 일이로다!"

◼ 태황태후(太皇太后)의 조서(詔書)

太皇太后詔大司徒大司空.
蓋聞治國之道, 富民為始, 富民之要, 在於節儉.
태황태후(太皇太后)가 대사도(大司徒), 대사공(大司公)에게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대저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데에서 시작되고,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관건은 절약하고 검소함에 달려있다"고 했다.

孝經曰: 安上治民, 莫善於禮.
효경(孝經)에서 이르기를, "윗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백성들을 다스림에 예(禮)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고 하였다.

禮, 與奢也寧儉.
또 공자는,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昔者管仲相齊桓, 霸諸侯, 有九合一匡之功, 而仲尼謂之不知禮, 以其奢泰侈擬於君故也.
옛날 관중은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제 환공을 제후의 패자가 되게 했으며,
제후들을 아홉 차례나 규합해 천하를 바로잡은 공이 있었으나, 공자께서는 관중은 예를 모른다고 하셨으며, 그것은 관중의 호사스러움이 군주에 비길 정도로 지나쳤기 때문이다.

夏禹卑宮室, 惡衣服, 后聖不循.
하(夏)나라 우(禹)임금은 궁전의 누추한 방에 살면서 남루한 의복을 입고도 후세의 성인들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由此言之, 治之盛也, 德優矣, 莫高於儉.
이로 미루어 볼 때 훌륭하게 다스렸다는 것은 덕망 있는 정사를 펼쳤다는 것이며, 덕행에는 검소한 것 보다 높은 것이 없다.

儉化俗民, 則尊卑之序得, 而骨肉之恩親, 爭訟之原息.
검소함으로 풍속과 백성을 교화시키면 신분의 질서가 제자리를 찾게 되고, 골육간에는 서로 아끼게 되어 분쟁이나 소송의 근원이 사라지게 된다.

斯乃家給人足, 刑錯之本也歟. 可不務哉.
이것이 바로 백성들을 풍족하게 만들어 형법을 시행하지 않아도 다스려지는 근본이 되지 않겠는가? 어찌하여 이것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夫三公者, 百寮之率, 萬民之表也.
무릇 삼공(三公)은 모든 관료들의 통솔자요, 만민의 본보기이다.

未有樹直表而得曲影者也.
이제껏 곧은 기둥을 세워놓고 굽은 그림자를 얻은 자는 없었다.

孔子不云乎. 子率而正, 孰敢不正. 舉善而教不能則勸.
공자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그대가 바름으로서 솔선수범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또 "현능한 사람을 등용하여 그렇지 못한 자를 교화한다면 서로 타일러 힘쓰게 될 것이다"고 하셨다.

維漢興以來, 股肱宰臣身行儉約, 輕財重義, 較然著明, 未有若故丞相平津侯公孫弘者也.
한나라가 건국한 이래 황제의 수족 같은 승상들 중 몸소 근검절약을 실천하면서 재물을 경시하고 의를 소중히 여겨 세상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람으로는 지난날 승상 평진후(平津侯) 공손홍(公孫弘)만한 사람은 없었다.

位在丞相而為布被, 脫粟之飯, 不過一肉.
그는 승상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베 이불을 덮고, 거친 밥에 고기반찬은 한 가지 이상을 먹지 않았다.

故人所善賓客皆分奉祿以給之, 無有所餘.
평진후는 옛 친구들이나 사이좋은 빈객들 모두에게 자신의 봉록을 나누어주고 자신은 남은 재물이 없었다.

誠內自克約而外從制.
그는 확실히 내심으로 스스로 검약할 줄 알았고, 밖으로는 제도를 따랐다.

汲黯詰之, 乃聞于朝, 此可謂減於制度而可施行者也.
급암(汲黯)이 그를 힐책함으로써 그의 사정이 마침내 조정에 알려졌으며, 이는 그의 행위가 정해진 제도의 본뜻을 손상시킨 면도 있지만 시행할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德優則行, 否則止, 與內奢泰而外為詭服以釣虛譽者殊科.
덕행은 넉넉하면 밖으로 행해지고 그렇지 못하면 그치는 것이며, 그것은 속으로는 지나치게 사치하면서도 겉으로는 거짓된 행위를 하고 헛된 명예를 낚시질하는 것과는 다르다.

以病乞骸骨, 孝武皇帝即制曰: 賞有功, 褒有德, 善善惡惡, 君宜知之. 其省思慮, 存精神, 輔以醫藥.
그가 병으로 벼슬을 그만두기를 청하자, 효무제(孝武帝)가 즉시 말리며 말씀하시기를, "공이 있는 자를 상 주고 덕이 있는 자를 표창하며, 군자는 선량한 사람을 좋아하고 추악한 사람을 미워함은 그대가 잘 알 것이오. 근심을 덜고 정신을 모아 의약으로 몸을 잘 보전토록 하라"고 하셨다.

賜告治病, 牛酒雜.
그러고는 휴가를 주어 병을 치료하게 하고, 쇠고기와 술 그리고 여러 옷감을 하사하셨다.

居數月, 有瘳, 視事.
몇 달이 지나자 그는 병이 치유되어 다시 승상의 업무를 볼 수 있었다.

至元狩二年, 竟以善終于相位.
원수(元狩) 2년(기원전 121년)에 이르러 마침내 승상으로 재직 중에 천수를 다하였다.

夫知臣莫若君, 此其效也.
무릇 군주만큼 자신의 신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무제와 공손홍의 사이가 바로 그 증거이다.

弘子度嗣爵, 后為山陽太守, 坐法失侯.
공손홍의 작위는 아들 공손도가 물려받았고, 후에 산양의 태수가 되었으나 법을 위반하여 제후의 작위를 잃고 말았다.

夫表德章義, 所以率俗厲化, 聖王之制, 不易之道也.
무릇 덕행을 드러내고 의로움을 표창하는 것은 풍속을 이끌어 격려하고 교화하기 위한 이유로 성왕(聖王)의 법도로서 바뀌지 않는 도리이다.

其賜弘後子孫之次當為後者爵關內侯, 食邑三百戶, 徵詣公車, 上名尚書, 朕親臨拜焉.
공손홍의 후손으로 서열상으로 그의 뒤를 이어야 할 자에게 관내후(關內侯)의 작위와, 식읍 3백호를 하사하며 나라의 수레로 조종으로 불러들여 상서(尙書)에 이름을 올리면 내가 친히 조정으로 나아가 작위를 수여하리라.


◼ 반고(班固)의 논평

班固稱曰: 公孫弘卜式, 兒寬皆以��️鴻漸之翼困於燕雀, 遠跡羊豕之閒, 非遇其時, 焉能致此位乎.
반고(班固)는 다음과 같이 칭송했다. "공손홍(公孫弘)과 복식(卜式), 예관(兒寬)은 모두 큰 기러기의 날개를 지니고서도 제비와 참새 같은 무리에게 시달림을 당하여, 멀리 가서 양과 돼지를 키우며 살았으니 그들이 때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찌 그러한 지위에 오를 수 있었겠는가?

是時漢興六十餘載, 海內乂安, 府庫充實, 而四夷未賓, 制度多闕, 上方欲用文武, 求之如弗及.
당시는 한나라를 건국한 지 60여 년으로 온 천하는 안정되었고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했으나, 사방의 오랑캐는 아직 복종하지 않았으며, 제도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으니, 황제께서 때마침 문(文), 무(武)를 지닌 인재를 등용하려 하였으며 인재들을 얻지 못할까봐 애태우며 구하였다.

始以蒲輪迎枚生, 見主父而嘆息.
처음에는 부들로 바퀴를 감싼 수레를 보내 매승(枚乘)을 맞이했고 주보언을 만나보고는 늦게 만난 것을 탄식했다.

群臣慕向, 異人并出.
이에 많은 신하들이 흠모하여 따르고 비범한 자들이 잇달아 나오게 되었다.

卜式試於芻牧, 弘羊擢於賈豎,
衛青奮於奴仆, 日磾出於降虜,
斯亦曩時版筑飯牛之朋矣.
복식은 양을 치다가 등용되었고, 상홍양(桑弘羊)은 장사꾼으로 있을 때 발탁되었으며, 위청(衛靑)은 종의 신분에서 몸을 일으켰고, 김일제(金日磾)는 투항한 흉노 속에서 나왔으니, 이 또한 옛날에 판으로 담을 쌓던 부열(傅說)이나, 소에게 꼴을 먹이던 영척(寗戚)과 같은 인재를 등용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

漢之得人, 於茲為盛.
한나라가 인재를 얻음이 이때에 이르러 가장 성대했다.

儒雅則公孫弘, 董仲舒, 兒寬.
학문이 깊고 의젓한 인물로는 공손홍(公孫弘), 동중서(董仲舒), 예관(兒寬)이 있었고,

篤行則石建, 石慶.
독실한 행실로는 석건(石建), 석경(石慶)이 있었으며,

質直則汲黯, 卜式.
질박하고 정직한 인물로는 급암(汲黯), 복식(卜式)이 있었으며,

推賢則韓安國, 鄭當時.
현인을 잘 천거한 인물로는 한안국(韓安國), 정당시(鄭當時)가 있었으며,

定令則趙禹, 張湯.
법령을 제정하는 데에는 조우(趙禹), 장탕(張湯)이 있었으며,

文章則司馬遷, 相如.
문장에 특출한 인물로는 사마천(司馬遷),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있었으며,

滑稽則東方朔, 枚皋.
골계(滑稽)에 뛰어난 인물로는 동방삭(東方朔), 매고(枚皐)가 있었으며

應對則嚴助, 朱買臣.
응대(應對)에는 엄조(嚴助), 주매신(朱買臣)이 있었고,

歷數則唐都, 落下閎.
역법과 천문에는 당도(唐都), 낙하굉(落下閎)이 있었으며,

協律則李延年.
음악과 음률에는 이연년(李延年)이 있었고,

運籌則桑弘羊.
기획에는 상홍양(桑弘羊)이 있었으며,

奉使則張騫, 蘇武.
외국에 간 사신으로는 장건(張騫), 소무(蘇武)가 있었고,

將帥則衛青, 霍去病.
장수로는 위청(衛靑), 곽거병(霍去病)이 있었으며,

受遺則霍光, 金日磾.
유조(遺詔)를 받아 어린 천자를 보필하는 데에는 곽광(霍光), 김일제(金日磾)가 있었다.

其餘不可勝紀.
그 나머지는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是以興造功業, 制度遺文, 後世莫及.
이들로 인하여 공업(功業)이 세워지고 여러 가지 제도와 문물을 남았으니 후세에는 아무도 이에 미치지 못했다.

孝宣承統, 纂修洪業, 亦講論六藝, 招選茂異, 而蕭望之, 梁丘賀, 夏侯勝, 韋玄成, 嚴彭祖, 尹更始以儒術進, 劉向, 王褒以文章顯.
선제(宣帝)께서는 대통을 계승하여 대업을 새로이 하고 육예(六藝)를 강론하고, 재능이 뛰어난 인재를 불러 모아 소망지(蕭望之), 양구하(梁丘賀), 하후승(夏侯勝), 위현성(韋玄成), 엄팽조(嚴彭祖), 윤갱시(尹更始) 등은 유가의 학설에 정통하여 등용되었고, 유향(劉向), 왕포(王褒)는 문장으로 이름을 드러냈다.

將相則張安世, 趙充國, 魏相, 邴吉, 于定國, 杜延年, 治民則黃霸, 王成, 龔遂, 鄭弘, 邵信臣, 韓延壽, 尹翁歸, 趙廣漢之屬. 皆有功跡見述於後.
장상(將相)으로는 장안세(張安世), 조충국(趙充國), 위상(魏相), 병길(邴吉), 우정국(于定國), 두연년(杜延年)이 있었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는 황패(黃霸), 왕성(王成), 공수(龔遂), 정홍(鄭弘), 소신신(邵信臣), 한연수(韓延壽), 윤옹귀(尹翁歸), 조광한(趙廣漢) 등이 있었다. 그들이 남긴 공적이 모두 후세에 칭송되었다.

累其名臣, 亦其次也.
명신(名臣)이 많기로는 이 시대가 역시 무제(武帝) 때의 다음이 된다."


◼ 史記列傳
卷112 平津侯主父列傳

①平津侯(평진후) 公孫弘(공손홍)
②主父偃(주보언)

평진후주보열전(平津侯主父列傳)은 평진후(平津侯) 공손홍(公孫弘)과 주보언(主父偃)의 합전(合傳)이다.

평진후 공손홍은 한 무제(漢 武帝)때 내사(內史),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역임하였으며, 기원전 124년 승상(丞相)이 되고 평진후(平津侯)에 봉해졌다.

회남왕(淮南王), 형산왕(衡山王)이 반란을 일으키자 책임을 지고 사임하려 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아 유임하였으며 그 이듬해 병사하였다.

공손홍이 벼슬에 올라 황제에게 아첨한 행위는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로 인용되고 있다.

곡학아세(曲學阿世)는 '학문을 왜곡하고 세상에 아부한다'는 뜻으로, 그릇된 학문을 이용해 권력자나 세상에 아첨하는 모습으로 배운 학문을 올바로 이용하지 않고 권력자의 뜻에 맞추어 그릇된 말로 아첨하면서, 자신의 이익이나 출세를 꾀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①平津侯(평진후) 公孫弘(공손홍)

○ 汲黯曰: 弘位在三公, 奉祿甚多.
然為布被, 此詐也.
급암(汲黯)이 공손홍을 비난하며 말했다. "공손홍은 삼공(三公)의 지위에 있으면서 봉록도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도 베 이불을 덮는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上問弘, 弘謝曰: 有之.
夫九卿與臣善者無過黯.
然今日庭詰弘, 誠中弘之病.
황제가 공손홍에게 그 일을 묻자 공손홍은 사죄하면서 대답하였다.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구경(九卿) 가운데 급암 보다 신과 사이가 좋은 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가 조정에서 신을 비난했는데, 그는 신의 결점을 확실히 짚어낸 것입니다.

夫以三公為布被,
誠飾詐欲以釣名.
무릇 삼공의 지위에 있으면서 베 이불을 덮는 다는 것은, 확실히 거짓으로 꾸며서 명성을 얻고자 하는 짓입니다.

且臣聞管仲相齊, 有三歸, 侈擬於君, 桓公以霸, 亦上僭於君.
그러나 신이 듣기로 관중(管仲)은 제나라의 정승이 되어서 세 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사치함이 군주와 같았으며, 제환공(齊桓公)을 패자(覇者)라고 칭하였는데, 이 역시 군주로서 분수에 지나쳐 황제에 비유되는 행동이었습니다.

晏嬰相景公, 食不重肉, 妾不衣絲, 齊國亦治, 此下比於民.
안영(晏嬰)은 제나라 경공(景公)의 재상으로서 두 가지 고기반찬을 먹지 않았고, 첩들은 비단옷도 입지 않았습니다만 제나라는 역시 잘 다스려졌으며, 이는 백성으로서 아래에 있는 백성과 비슷한 생활을 한 것입니다.

今臣弘位為御史大夫, 而為布被, 自九卿以下至於小吏, 無差, 誠如汲黯言.
지금 신 홍은 어사대부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베 이불을 덮음으로써 구경으로 부터 말단 관리에 이르기까지 차별을 없앴으니 진실로 급암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且無汲黯忠, 陛下安得聞此言.
만일 급암의 충성된 말이 없었더라면 폐하께서 어떻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天子以為謙讓, 愈益厚之.
황제는 공손홍이 겸양의 덕을 갖추었다고 여기고 더욱 그를 후하게 대우했다.

卒以弘為丞相, 封平津侯.
마침내 공손홍을 승상으로 삼고 평진후(平津侯)에 봉했다.

○ 弘為人意忌, 外寬內深.
공손홍은 사람됨이 남을 의심하고 꺼렸으며, 겉으로는 너그러워 보이나 속마음은 숨겼다.

諸嘗與弘有卻者, 雖詳與善, 陰報其禍.
일찍이 그와 틈이 있는 사람들과는 비록 겉으로 사이가 좋은 것처럼 꾸며댔지만, 남몰래 보복을 가하고는 했다.

殺主父偃, 徙董仲舒於膠西, 皆弘之力也.
주보언(主父偃)이 살해되고 동중서(董仲舒)를 교서(膠西)로 좌천된 것은 모두 공손홍의 힘이었다.

食一肉脫粟之飯. 故人所善賓客, 仰衣食, 弘奉祿皆以給之, 家無所餘. 士亦以此賢之.
그는 한 가지 고기반찬에 거친 밥을 먹었다. 옛 친구들이나 빈객이 와서 의식(衣食)을 청하면, 자신의 봉록을 모두 주어버려서 자기 집에는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사대부들도 이 때문에 공손홍을 현명하다고 하였다.

○ 淮南衡山謀反, 治黨與方急.
회남왕(淮南王)과 형산왕(衡山王)이 반역을 꾀해 이들과 결탁된 자들을 색출하느라 급박한 시기였다.

弘病甚, 自以為無功而封, 位至丞相, 宜佐明主填撫國家, 使人由臣子之道.
공손홍은 심하게 병을 앓았으며, 그는 자신이 공도 없이 후작(侯爵)으로 봉해지고 승상의 지위에까지 이르렀으니, 마땅히 현명한 군주를 잘 보좌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고 신하들이 신하된 도리를 지키게 해야 했다.

今諸侯有畔逆之計, 此皆宰相奉職不稱, 恐竊病死, 無以塞責.
또 지금 제후들이 반역을 꾀한 것은 모두가 재상인 자신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이니, 이대로 남몰래 병들어 죽는다면 책임을 면할 길이 없음을 두려워 하였다.

乃上書曰: 臣聞天下之通道五, 所以行之者三. 曰君臣, 父子, 兄弟, 夫婦, 長幼之序, 此五者天下之通道也.
이에 상서를 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이 듣건대 천하에는 변하지 않는 다섯 가지의 도가 있고, 이것을 실행하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군신, 부자, 형제 ,부부, 장유(長幼)의 순서라는 이 다섯 가지는 천하에 변하지 않는 도입니다.

智, 仁, 勇, 此三者天下之通德, 所以行之者也.
지(智), 인(仁), 용(勇), 이 세 가지는 천하에 변하지 않는 덕으로 도를 실행하게 하는 수단인 것입니다.

故曰; 力行近乎仁, 好問近乎智, 知恥近乎勇.
그래서 공자가 말하기를, '노력하여 실천하는 것은 인(仁)에 가깝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智)에 가까우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다'고 한 것입니다.

知此三者, 則知所以自治,
知所以自治, 然後知所以治人.
이 세 가지를 안다면 곧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게 되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을 안 뒤에야 남을 다스릴 줄 알게 됩니다.

天下未有不能自治而能治人者也.
此百世不易之道也.
천하에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남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는 백 대(代)가 지나도 변치 않는 도리입니다.

今陛下躬行大孝, 鑒三王, 建周道, 兼文武, 厲賢予祿, 量能授官.
지금 폐하께서는 몸소 큰 효를 실천하시고, 삼왕(三王)을 거울로 삼아 주(周)나라의 치국의 도를 일으켜 세우시고,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같은 덕과 재능을 겸비 하셨으며, 어진 사람을 격려하여 봉록을 하사하고 능력을 헤아려 벼슬을 내리셨습니다.

今臣弘罷駑之質, 無汗馬之勞, 陛下過意擢臣弘卒伍之中, 封為列侯, 致位三公.
지금 신 공손홍은 보잘것없는 자질로 전쟁터에서 세운 공조차 없는데도, 폐하께서 파격적으로 신을 군중(軍中)에서 발탁하시어 열후(列侯)에 봉하시고 삼공의 지위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臣弘行能不足以稱, 素有負薪之病, 恐先狗馬填溝壑, 終無以報德塞責.
신 홍의 품행이나 재능은 언급할 만한 가치가 없으며, 평소 가난할 때에 얻은 병이 있어서, 먼저 객사하여 끝내 폐하로부터 입은 은덕에 보답하는 책임을 면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願歸侯印, 乞骸骨, 避賢者路.
원컨대 제후의 인수를 반납하고 사임하여 현명한 자에게 길을 비켜 주고자 합니다."

天子報曰: 古者賞有功, 襃德, 守成尚文, 遭遇右武, 未有易此者也.
천자가 공손홍에게 답변했다. "옛날에는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내리고, 덕이 있는 자에게 표창한다고 했으며, 태평할 때에는 문(文)을 숭상하고, 변란을 만났을 때에는 무(武)를 숭상했으니, 이는 불변하는 도리이다.

朕宿昔庶幾獲承尊位, 懼不能寧, 惟所與共為治者, 君宜知之.
짐은 지난날 요행히 보위에 오른 이래로, 나라를 안녕하게 만들지 못할 것 걱정하여, 여러 대신들과 더불어 나라를 다스릴 것만을 생각했음을 공도 마땅히 그것을 알 것이오.

蓋君子善善惡惡, 君宜知之, 君若謹行, 常在朕躬.
대저 군자는 선량한 사람을 좋아하고 추악한 사람을 미워하는 법이며, 공이 잘 알 듯이 근신과 행동은 항상 짐에게 달려 있는 것이오.

君不幸罹霜露之病, 何恙不已, 乃上書歸侯, 乞骸骨, 是章朕之不德也.
그대가 불행히도 상로지병(霜露之病)에 걸렸으나 어찌 병이 낫지 않는다고, 상서하여 작위를 반납하고 사직하겠다고 하는 것은 짐의 부덕함을 천하에 알리는 것이오.

今事少閒, 君其省思慮, 一精神, 輔以醫藥.
이제 조정의 일이 다소 호전되었으니 공은 근심을 덜고 정신을 모아 의약으로 몸을 잘 보전하도록 하시오."

因賜告牛酒雜帛.
居數月, 病有瘳, 視事.
이에 황제는 그에게 휴가를 허락하고, 쇠고기와 술 그리고 여러 옷감을 하사했다. 몇 달 지나 공손홍의 병이 낫자 다시 사무를 보았다.

○ 元狩二年, 弘病, 竟以丞相終.
원수(元狩) 2년(기원전 121년), 공손홍은 병이 들어 결국 승상의 직에 있다가 죽었다.

子度嗣為平津侯.
그의 아들 공손도(公孫度)가 자리를 이어받아 평진후(平津侯)가 되었다.

度為山陽太守十餘歲, 坐法失侯.
공손도는 산양(山陽)의 태수(太守)로 10여 년 간 재직하다 법을 위반하여 제후의 작위를 잃었다.

(下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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