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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양유건괵(亮遺巾幗)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20.05.03|조회수45 목록 댓글 0

양유건괵(亮遺巾幗)

제갈량이 여자들 머리장식용 쓰개(巾幗)을 사마의에게 보내 욕 보였다는 뜻으로, 큰일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참아야 하는 작은 모욕을 일컫는 말한다.

亮 : 밝을 양(亠/7)
遺 : 보낼 유(辶/12)
巾 : 수건 건(巾/0)
幗 : 머리장식 괵(巾/11)

출전 : 삼국연의(三國演義) 第103回


이 성어는 삼국지에서 유명한 촉(蜀)나라의 제갈량(諸葛亮)이 사마의(司馬懿)와 위수(渭水)에서 대진(對陣)했을 때, 사마의가 상반곡(上方谷)에서 죽음을 면하고 자중하여 움직이지 않자, 제갈량이 부인의 머리 장식 용구를 보내어 그가 용기 없는 아녀자라고 비웃었다는 이야기에서 연유한다.

황석영의 삼국지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한편 공명(孔明)은 오장원(五丈原)에 주둔한 뒤로 자주 군사를 보내 싸움을 걸었지만 위(魏)날 군대는 한결같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且說孔明自引一軍屯於五丈原, 累今人搦戰, 魏兵不出.

마침내 공명은 건괵(巾幗; 여인들이 머리에 쓰는 두건)과 흰 비단 옷(縞素)을 함 속에 넣고 서신 한 통을 써서 위군 영채로 보냈다.
孔明乃取巾幗並婦人縞素之服, 盛於大盒之內, 修書一封, 遣人送至魏寨.

위나라 장수들은 이 일을 그냥 덮어둘 수도 없어 사자를 사마의에게로 데려갔다. 사마의가 함을 열어보니 여인네들의 쓰는 두건과 치마 저고리와 함께 서신이 들어있었다.
諸將不敢隱蔽, 引來使入見司馬懿. 懿對眾吞盒視之, 內有巾幗婦人之衣, 並書一封.

그것을 펴보니 다음과 같았다. "중달 그대는 대장이 되어 중원의 대군을 통솔하고 있거늘, 굳은 의지와 번쩍이는 예기로 자웅을 겨룰 생각은 않고, 그저 토굴만 굳게 지키고 앉아 칼과 화살을 피하려고 하니, 그대가 아녀자와 무엇이 다르다 하겠소. 내 이제 사람을 시켜 건괵과 흰옷을 보내오. 싸우지 않으려면 두 번 절하고 이것을 받으시오. 혹여 아직도 사내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남아 있거든 즉시 회답하여 기일을 정하고 싸움에 응하도록 하시오."
懿拆視其書. 略曰: 仲達既為大將, 統領中原之眾, 不思披堅執銳, 以決雌雄, 乃甘窟守土巢, 謹避刀箭, 與婦人又何異哉. 今遣人送巾幗素衣. 至如不出戰, 可再拜而受之; 倘恥心未泯, 猶有男子胸襟, 早與批回, 依期卦敵.

사마의는 보고 나서 마음속에 노기가 물끓듯 일어났으나 겉으로는 태연자약하게 웃음을 띠며 말한다. "공명이 나를 아녀자로 알고 있구나?"
司馬懿看畢, 心中大怒, 乃佯笑曰; 孔明視我為婦人耶.

즉시 물건을 받아 두고, 사자를 후하게 대접하며 묻는다. "그래, 공명께서는 요사이 침식이 어떠하며, 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신지?"
即受之, 令重待來使. 懿問日: 孔明寢食及事之煩簡若何.

촉의 사자가 대답한다. "승상께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시고 밤엔 늦게 주무시며, 곤장 20대 이상의 형벌은 모두 친히 처결하시며, 잡수시는 음식은 하루에 몇 홉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使者曰: 丞相夙興夜寐, 罰二十以上皆親覽焉, 所啖之食, 日不過數升.

사마의는 웃음 띤 얼굴로 수하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공명이 먹는 것은 적고 하는 일은 많으니, 이러고서야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느냐?"
懿顧謂諸將曰: 孔明食少事煩, 其能久乎.

여기서 식소사번(食少事煩)의 성어가 나왔다.

사자는 하직하고 오장원으로 돌아와 공명을 빕고 자세히 고한다. “사마의가 건괵과 여자 옷을 받고 서찰을 읽고도 진노하는 빛이 없고, 다만 승상의 침식이 어떤지와 일이 많은지 적은지를 물었지, 군사 문제는 전혀 꺼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사실대로 대답했더니, 그가 '식사를 적게 하는데 일은 많다니, 어찌 장구(長久) 하겠는가?'고 말했습니다.”

공명이 탄식한다. "그가 나를 잘 아는구나(彼深知我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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