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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춘비아춘(春非我春)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20.05.05|조회수680 목록 댓글 0

춘비아춘(春非我春)

봄은 봄이지만 내 봄은 아니라는 뜻으로, 시절은 끝이 없이 변하지만 사람은 유한하다는 의미의 말이다.

春 : 봄 춘(日/5)
非 : 아닐 비(非/0)
我 : 나 아(戈/3)
春 : 봄 춘(日/5)

출전 : 한서(漢書) 卷022 예악지(禮樂志)


이 성어는 인간이 영생할 수 없음을 한탄하는 말이다. 한서(漢書) 卷022 예악지(禮樂志)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日出入安窮. 時世不與人同.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어찌 다할 수 있겠는가! 시절(時)이나 세상(世)은 사람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故��️春非我春, 夏非我夏, 秋非我秋, 冬非我冬.
봄은 봄이건만 내 봄이 아니요, 여름도 내 여름 아니며, 가을도 내 가을 아니요, 겨울도 내 겨울이 아니라.

泊如四海之池, 遍觀是邪謂何.
사해(海)의 연못에 머무는 배와 같으니, 이리 저리 생각하여도 이를 어찌할 것이냐?

吾知所樂, 獨樂六龍, 六龍之調, 使我心若, 訾黃其何不徠下.
내가 아는 즐거움은 육용(六龍)을 조율하는 것, 육용(六龍)을 몰아가니 내 마음 즐겁기는 하지만, 자황(訾黃; 용의 날개에 말의 몸을 지녔다는 옛날 신마神馬의 이름)은 어이하여 내려오지 않는가!
(漢書/卷022 禮樂志)


⏹ 漢書 卷二十二

禮樂志 第二

○ 六經之道同歸, 而禮樂之用為急.
육경(六經; 주역, 시경, 상서, 춘추, 예경, 악경)의 도는 같이 돌아가지만, 예악의 쓰임은 급하다.

治身者斯須忘禮, 則暴嫚入之矣.
為國者一朝失禮, 則荒亂及之矣.
자기 몸을 수양하는 자가 잠깐동안이라도 예를 잊는다면, 난폭하고 오만함에 들어가고,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하루 아침이라도 예를 잃는다면 황란(荒亂)이 미치게 된다.

人函天地陰陽之氣, 有喜怒哀樂之情.
사람은 천지 음양의 기를 품고 있어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정이 있다.

天稟其性而不能節也, 聖人能為之節而不能絕也.
하늘이 그 본성을 준 것이니 능히 조절할 수 없고, 성인은 능히 이를 조절할 수 있지만 끊어버릴 수는 없다.

故象天地而制禮樂, 所以通神明, 立人倫, 正情性, 節萬事者也.
그래서 천지를 본받아 예악을 제정하니, 신명(神明)을 통하게 하고, 인륜을 세우며, 정성(情性)를 바르게 하며, 만물을 조절하고자 함이다.

◼ 禮

○ 人性有男女之情, 妒忌之別, 為制婚姻之禮.
인성(人性)에는 남녀의 정이 있고 투기(妒忌)의 구별이 있으니, 혼인의 예를 만드는 것이다.

有交接長幼之序, 為制鄉飲之禮.
교접(交接)과 장유(長幼)의 순서가 있으니, 향음(鄉飲)의 예를 제정하는 것이다.

有哀死思遠之情, 為制喪祭之禮.
죽은 자를 애도하고 조상을 생각하는 정이 있으니, 상제(喪祭)의 예를 만드는 것이다.

有尊尊敬上之心, 為制朝覲之禮.
존귀한 자는 높이고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으니, 조근(朝覲)의 예를 만드는 것이다.

哀有哭踊之節, 樂有歌舞之容, 正人足以副其誠, 邪人足以防其失.
슬픔에는 곡용(哭踊)하는 절도가 있고, 즐거움에는 가무(歌舞)의 꾸밈이 있어서, 바른 사람은 그 성실함을 족히 알맞게 하고, 사악한 사람은 그 잘못을 족히 막을 수 있다.

故婚姻之禮廢, 則夫婦之道苦, 而淫辟之罪多.
그래서 혼인의 예가 폐하여지면, 부부의 도가 나빠지고, 음벽(淫辟)의 죄가 많아지게 된다.

鄉飲之禮廢, 則長幼之序亂, 而爭鬬之獄蕃.
향음(鄉飲)의 예가 폐하여지면, 장유의 차례가 어지럽게 되고, 다툼의 옥사가 많아지게 된다.

喪祭之禮廢, 則骨肉之恩薄, 而背死忘先者衆.
상제(喪祭)의 예가 폐하여지면, 골육(骨肉)의 은혜가 박해지고, 죽은자를 등지고 조상을 잊게 되는 자가 많아진다.

朝聘之禮廢, 則君臣之位失, 而侵陵之漸起.
조근(朝聘)의 예가 폐하여지면, 임금과 신하의 위치를 잃고 침범하고 능멸함이 점차 일어나게 된다.

故孔子曰: 安上治民, 莫譱於禮, 移風易俗, 莫譱於樂.
그래서 공자가 "임금를 편안케 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예보다 나은 게 없고, 풍속을 바꾸는데 악보다 좋은게 없다"고 말한 것이다.

禮節民心, 樂和民聲,
政以行之, 刑以防之.
예는 백성의 마음을 조절하고, 악은 백성의 소리를 조화롭게 하니, 정치로써 이를 행하고 형으로써 방비한다.

禮樂政刑四達而不誖, 則王道備矣.
예악정형(禮樂政刑)의 4가지가 이뤄지고 어그러지지 않으면, 왕도(王道)가 완비된다.

○ 樂以治內而為同, 禮以修外而為異.
악은 안을 다스려서 같게 되고, 예를 밖을 수양해서 다르게 한다.

同則和親, 異則畏敬.
같으면 화친(和親)하고 다르면 경외(敬畏)한다.

和親則無怨, 畏敬則不爭.
화친하면 원망이 없고, 경외하면 다툼이 없다.

揖讓而天下治者, 禮樂之謂也.
읍양(揖讓)하여 천하가 다스려진다는 것은 예악을 이른 것이다.

二者並行, 合為一體.
이 두가지가 아울러 행해지면, 합쳐서 일체가 된다.

畏敬之意難見, 則著之於享獻辭受, 登降跪拜, 和親之說難形, 則發之於詩歌詠言, 鐘石筦弦.
경외하는 뜻은 보기 어려워서, 제사 지냄(享獻)에 사양하고 받는 것과 오르내리며 무릎꿇고 절하는 데에서 드러나며, 화친의 기쁨은 형용하기 어려워서, 시가나 노랫말(詠言), 종석관현(鐘石筦弦)의 악기에서 발현된다.

蓋嘉其敬意而不及其財賄, 美其歡心而不流其聲音.
무릇 그 공경하는 뜻을 기뻐해야지, 재물에 뜻이 미쳐서는 안되고, 그 기뻐하는 마음을 아름답게 여기되, 음악소리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故孔子曰: 禮云禮云, 玉帛云乎哉. 樂云樂云, 鐘鼓云乎哉.
그래서 공자가 말하길, "예라 운운하는 것이 옥백(玉帛)을 이른 것이겠는가? 악은 운운하는 것이 종과 북을 이르는 것이겠는가?"라 하였다.

此禮樂之本也. 故曰, 知禮樂之情者能作, 識禮樂之文者能述.
이것이 예악의 근본이다. 그래서 예악의 정을 아는 자는 능히 지을 수 있고(作), 예악의 문(文)을 아는 자는 능히 설명할 수 있다(述).

作者之謂聖, 述者之謂明; 明聖者, 述作之謂也.
짓는 자는 성(聖)이라 이르고, 설명하는 자를 명(明)이라 이르니, 명성(明聖)이란 것은 설명하고 짓는 것을 이른다.

○ 王者必因前王之禮, 順時施宜, 有所損益, 卽民之心, 稍稍制作.
왕자(王者)는 반드시 전왕(前王)의 예를 답습하여 때에 맞춰 알맞게 베풀되, 덜고 더하는 것이 있어야 하고, 백성의 마음으로 나아가 점점 만들어 나가야 한다.

至太平而大備, 周監於二代, 禮文尤具.
태평한 시기에 이르면 크게 완비되니, 주나라는 (상, 은) 2대를 거울삼아, 예문이 또한 갖추어졌다.

事為之制, 曲為之防.
일(事)이 있으면 제작하고, 음악(曲)으로 방비하였다.

故稱禮經三百, 威儀三千, 於是教化浹洽.
그래서 예경 3백장, 위의(威儀) 3천 장으로 이에 교화가 두루 스며들었다고 칭하는 것이다.

民用和睦, 災害不生, 禍亂不作, 囹圄空虛, 四十餘年.
민용(民用)은 화목하고, 재해는 생기지 않으며, 화란은 만들지 않고, 감옥은 텅 비었던 게 40여년이었다.

孔子美之曰: 郁郁乎文哉. 吾從周.
공자가 이를 찬미하여"빛나고 성대하도다 그 문물이여. 나는 주나라를 따를 것이다"고 한 것이다.

及其衰也, 諸侯踰越法度, 惡禮制之害己, 去其篇籍, 遭秦滅學, 遂以亂亡.
(주나라가) 쇠락하게 되자, 제후들인 법도를 뛰어 넘었고, 나쁜 예제(禮制)는 자기를 해쳤으며, 그 전적을 없애고, 진나라가 (유)학을 없앰을 만나, 마침내 난으로 망하였다.

○ 漢興, 撥亂反正, 日不暇給, 猶命叔孫通制禮儀, 以正君臣之位.
한이 흥기하여, 난을 없애고 반정(反正)하였지만, 날로 여가가 없었지만, 오히려 숙손통(叔孫通)에게 명해 예의(禮儀)를 제정케 하여, 군신의 지위를 바로잡았다.

高祖說而歎曰: 吾乃今日知為天子之貴也. 以通為奉常, 遂定儀法, 未盡備而通終.
고조가 기뻐하며 감탄하길, "내가 오늘에서야 천자의 귀함을 알았다"고 하며, 숙손통을 봉상(奉常)으로 삼아 의법(儀法)을 정하게 하였으나, 다 구비하여 끝까지 통하지는 못하였다.

○ 至文帝時, 賈誼以為, "漢承秦之敗俗, 廢禮義, 捐廉恥. 今其甚者殺父兄, 盜者取廟器, 而大臣特以簿書不報期會為故.
효문제(文帝帝) 때에 이르러, 가의(賈誼)가, "한이 진의 패속(敗俗)을 이어서, 예의(禮義)를 폐하고, 염치(廉恥)가 없습니다. 지금 심한 자들은 부형(父兄)을 살해하고, 도적은 궁중에 기물을 훔치고 있는데, 대신들은 다만 문서(簿書)로 보고하는 것을 능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至於風俗流溢, 恬而不怪, 以為是適然耳.
풍속이 유일(流溢)함에 이르렀는데도, 편안히 여기며 이상하다 생각지 않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뿐입니다.

夫移風易俗, 使天下回心而鄉道, 類非俗吏之所能為也.
무릇 풍속을 바꾸는 것은 천하가 마음을 돌려 정도로 향하게 해야지, 대개 속리들이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夫立君臣, 等上下, 使綱紀有序, 六親和睦, 此非天之所為, 人之所設也.
무릇 군신을 세우고 상하를 가지런히 하는 것은 강기(綱紀)가 차례있게 해야 육친(六親)이 화목하며, 이는 하늘이 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人之所設, 不為不立, 不修則壞.
사람이 두는 것은 만들지 않으면 세워지지 않고, 수선하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漢興至今二十餘年, 宜定制度, 興禮樂, 然後諸侯軌道, 百姓素樸, 獄訟衰息.
한이 흥기한지 지금 20여년이 되었으니, 마땅히 제도(制度)를 정하고, 예악(禮樂)을 일으켜야, 그런 연후에 제후들이 도를 따르고 백성들은 질박해지며, 옥송은 그치게 될 것입니다"고 하였다.

乃草具其儀, 天子說焉. 而大臣絳, 灌之屬害之, 故其議遂寢.
이에 그 의논을 초안을 갖춰 아뢰니, 천자가 기뻐하였다. 그러나 대신인 강후(絳侯) 주발(周勃), 관영(灌嬰)의 무리들은 이를 해롭게 여기니, 그래서 그 의논이 마침내 잦아들게 되었다.

○ 至武帝卽位, 進用英雋, 議立明堂, 制禮服, 以興太平.
무제가 즉위함에 이르러, 영준(英雋)한 인사를 등용하여, 명당(明堂)을 세우고 예복(禮服)을 제정하여 태평을 일으키러 의논하였다.

會竇太后好黃老言, 不說儒術, 其事又廢.
두태후(竇太后) 황로(黃老)의 말을 좋아하고, 의술(儒術)을 기뻐하지 않으니, 그 일이 또 폐하여졌다.

後董仲舒對策言: 王者欲有所為, 宜求其端於天.
후에 동중서(董仲舒)가 대책(對策)에서 말하길, "왕자(王者)는 이루고자 함이 있으니, 의당 하늘에서 그 단서를 구해야 합니다.

天道大者, 在於陰陽, 陽為德, 陰為刑.
하늘의 도가 큰 것은 음양에 있기 때문이니, 양(陽)은 덕이 되고, 음(陰)은 형(刑)이 됩니다.

天使陽常居大夏而以生育長養為事, 陰常居大冬而積於空虛不用之處, 以此見天之任德不任刑也.
하늘이 양기를 항상 대하(大夏)에 있게 하여 낳아 기르는 것을 일로 삼으며, 음은 항상 대동(大冬)에 있게 하여 텅 비어 쓰이지 않는 곳에서 축적하게 하니, 이로써 하늘이 덕을 쓰지 형을 쓰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陽出布施於上而主歲功, 陰入伏藏於下而時出佐陽.
양에서 위에서 베푸는 데서 나와 한해의 공업을 주관하고, 음은 아래에서 복장(伏藏)한 것에 들어가 때가 되면 나와 양을 보좌합니다.

陽不得陰之助, 亦不能獨成歲功.
양이 음의 도음을 얻지 못하면, 또한 한해의 공을 홀로 이룰 수 없습니다.

王者承天意以從事, 故務德教而省刑罰.
왕자는 하늘의 뜻을 이어 종사(從事)하니, 그래서 덕교(德教)에 힘을 쓰고 형벌을 줄여야 합니다.

刑罰不可任以治世, 猶陰之不可任以成歲也.
형벌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맡을 수 없는 것은, 음이 한해의 공업을 이루는데 맡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今廢先王之德教, 獨用執法之吏治民, 而欲德化被四海, 故難成也.
지금 선왕의 덕교를 폐하여,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만 등용하여 백성을 다스리니, 그래서 덕의 교화를 사해에 펼치고자 하여도 이루기 어렵습니다.

是故古之王者莫不以教化為大務, 立大學以教於國, 設庠序以化於邑.
이 때문에 옛날의 왕에게 교화만큼 큰 업무가 없었으니, 대학을 세워 나라를 교화하고, 상서(庠序)를 설치해 향읍을 교화하였습니다.

教化已明, 習俗已成, 天下嘗無一人之獄矣.
교화가 이미 밝아지니 습속(習俗)도 이루어져, 천하에는 한사람의 옥사도 없었습니다.

至周末世, 大為無道, 以失天下.
주 말기에 이르러, 크게는 무도(無道)한 짓을 하여 천하를 잃었습니다.

秦繼其後, 又益甚之.
진나라가 그 뒤를 이었으나, 또한 그보다 더 심했습니다.

自古以來, 未嘗以亂濟亂, 大敗天下如秦者也.
옛부터 이래로 일찍이 난(亂)에 난을 더하여 천하에 대패한 것이 진나라와 같은 것이 없습니다.

習俗薄惡, 民人抵冒.
습속이 박하고 나빠지니, 백성들은 거스르고 범하게 됩니다.

今漢繼秦之後, 雖欲治之, 無可柰何, 法出而姦生, 令下而詐起, 一歲之獄以萬千數, 如以湯止沸, 沸俞甚而無益.
지금 한이 진의 뒤를 이어, 비록 다스리고자 하나, 어찌할 수가 없어, 법이 나오면 간사함도 생기도, 아래에 영을 내리면 거짓이 일어나니, 한해의 옥사는 만천으로 헤아려, 마치 끓는 물(湯)로 끓는 물(沸)을 그치게 하려는데, 그 들끓는 상황이 나아갈수록 더욱 심하고 무익한 것과 같습니다.

辟之琴瑟不調, 甚者必解而更張之, 乃可鼓也.
비유컨대, 금슬이 조율되지 않았는데, 심하면 반드시 풀어지고 다시 당겨야, 이에 북을 칠 수 있는 것입니다.

為政而不行, 甚者必變而更化之, 乃可理也.
정치를 하지만 행해지지 않으니, 심한 것은 반드시 변화를 줘야 다시 교화하여 이에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故漢得天下以來, 常欲善治, 而至今不能勝殘去殺者, 失之當更化而不能更化也.
한이 천하를 얻은 이래로, 항상 다스림을 수선하고자 하였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잔멸함을 이기고 살퓩을 없애지 못하였으니, 일을 그르쳐서 응당 다시 교화를 해야 하지만, 다시 교화를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古人有言; 臨淵羨魚, 不如歸而結網.
옛 사람의 말에 '못에 임하여 물고기를 탐낸다면, 집에 돌아가 그물을 짜는 것 만한 게 없다'고 하였습니다.

今臨政而願治七十餘歲矣, 不如退而更化. 更化則可善治, 而災害日去, 福祿日來矣.
지금 정치에 임하여 다스린 지 17년인데, 물러가 다시 교화하는 것만 한게 없으니, 다시 교화한다면 다스림을 수선할 수 있고, 재해는 날로 없어지고 복록은 날로 찾아놀 것입니다"고 했다.

是時, 上方征討四夷, 銳志武功, 不暇留意禮文之事.
이때 상이 때마침 사이를 정벌한다고, 무력의 공업에 뜻을 두니, 예문(禮文)의 일에 유의할 겨를이 없었다.

○ 至宣帝時, 琅邪王吉為諫大夫, 又上疏言: 欲治之主不世出, 公卿幸得遭遇其時, 未有建萬世之長策, 舉明主於三代之隆者也.
선제(宣帝) 때에 이르러, 냥야(琅邪)의 왕길(王吉)을 간대부(諫大夫)로 삼으니, 상소하길, "잘 다스리고자 하는 군주는 세상에 잘 나오지 않는 것인데, 공경들은 다행히 그 때를 만나게 되었지만, 아직 만세의 긴 대책을 세우지 못했고, 삼대의 융성함에 명주(明主)를 들어올리지 못했습니다.

其務在於簿書斷獄聽訟而已, 此非太平之基也.
그들이 힘쓰는 것이란 문서와 단옥(斷獄)와 옥송(聽訟)에 있을 뿐이니, 이것은 태평성대의 기초가 아닙니다.

今俗吏所以牧民者, 非有禮義科指可世世通行者也, 以意穿鑿, 各取一切.
지금 속리들로써 백성들을 다스리는 자(牧民)들은 예의와 과지(科指)가 있어 대대로 통하게 행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며, 구차히 샅샅이 조사하는 것(穿鑿)에나 뜻을 두어, 각자 일체를 취합니다.

是以詐偽萌生, 刑罰無極, 質樸日消, 恩愛寖薄.
이 때문에 사기와 허위의 싹이 트고, 형벌은 끝이 없어, 질박함은 날로 줄어들고, 은혜와 사랑은 점차 옅어집니다.

孔子曰; 安上治民, 莫善於禮. 非空言也.
공자가 말하길, '윗사람을 편안케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 예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빈 말이 아닙니다.

願與大臣延及儒生, 述舊禮, 明王制, 驅一世之民, 濟之仁壽之域, 則俗何以不若成康, 壽何以不若高宗.
원컨대 대신들 및 유생들과 함께 구례(舊禮)를 저술하고, 왕제(王制)를 분명하게 하여, 일세(一世)의 백성들을 몰아가 인수(仁壽)의 경계에서 구제하신다면, 풍속이 어찌 성왕(成王), 강왕(康王)때만 못하겠고, 그 수(壽)는 어찌 고종(高宗)만 못하겠습니까?"라 하였다.

上不納其言, 吉以病去.
상이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왕길은 병을 칭탁해 떠났다.

○ 至成帝時, 犍為郡於水濱得古磬十六枚, 議者以為譱祥.
성제(成帝) 때에 이르러, 건위군(犍為郡)의 물가에서 고경(古磬) 16매를 얻으니, 의론하던 자들이 이를 상서롭게 여겼다.

劉向因是說上: 宜興辟雍, 設庠序, 陳禮樂, 隆雅頌之聲, 盛揖攘之容, 以風化天下. 如此而不治者, 未之有也.
유향(劉向)이 이로 인하여 상에게 얘기하길, "의당 벽옹(辟雍)을 일으키고, 상서(庠序)를 설치하며, 예악(禮樂)을 베풀고, 아송(雅頌)의 소리를 높이고, 읍양(揖攘)의 모양을 성하게 하여, 풍속으로 천하를 교화해야 하고, 이렇게 한다면 다스려지지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或曰, 不能具禮。禮以養人為本, 如有過差, 是過而養人也, 刑罰之過, 或至死傷.
혹자들은 예를 다 갖추지 못하였다 하는데, 예는 사람을 기르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니, 만약 잘못이 있다고 한들, 이 잘못은 백성을 기르다가 나온 것이지만, 형벌의 과오는 혹 죽거나 다치게 합니다.

今之刑, 非皋陶之法也, 而有司請定法, 削則削, 筆則筆, 救時務也. 至於禮樂, 則曰不敢, 是敢於殺人不敢於養人也.
지금의 형벌은 고요(皋陶)의 법이 아니니, 유사(有司)가 법을 정할 것을 청하였는데, 없앨 것은 없애고, 덧붙일 것은 덧붙여서, 시무(時務)를 구제하고 예악에 이르게 하면, 곧 감히 할수 없다고 하셨지만, 이는 사람을 죽이는 데는 감히 할 수 있지만 사람을 기르는 데는 감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為其俎豆筦弦之間小不備, 因是絕而不為, 是去小不備而就大不備, 大不備或莫甚焉.
제기(俎豆)나 악기(筦弦) 사이의 일이 작게 갖춰지지 않았다 하여, 이로 인해 끊어져 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작은 갖추어지지 않음(小不備)을 해결하느라 크게 갖추어지지 않음에 나가는 것(大不備)이며, 크게 갖추어지지 않음이 이보다 심한 것이 혹 없습니다.

夫教化之比於刑法, 刑法輕, 是舍所重而急所輕也.
무릇 교화를 형법에 비교하자면, 형법이 가벼운데, 이것은 중한 것을 버리고 가벼운 것을 화급하게 하는 것입니다.

且教化, 所恃以為治也, 刑法所以助治也.
또한 교화는 그 믿는 바로써 다스림을 삼는 것이고, 형법은 다스림을 보조하는 것일 뿐입니다.

今廢所恃而獨立其所助, 非所以致太平也.
지금 그 믿는 바를 폐하고, 그 보조하는 바를 홀로 세우니, 이것은 태평에 이르게 할 방법이 아닙니다.

自京師有誖逆不順之子孫, 至於陷大辟受刑戮者不絕, 繇不習五常之道也.
경사(京師)에서부터 패역과 불손의 자손들이 있어, 대벽(大辟)에 빠져 형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자가 끊어지지 않으니, 이는 오상의 도를 익히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夫承千歲之衰周, 繼暴秦之餘敝, 民漸漬惡俗, 貪饕險詖, 不閑義理, 不示以大化. 而獨敺以刑罰, 終已不改.
무릇 천년의 쇠망한 주나라를 계승하고, 폭란한 진나라의 남은 피폐함을 이었기에, 백성들은 점차 악한 풍속에 빠져들고, 욕심을 탐하고 음흉(險詖)하며, 의리(義理)를 익히지 않은 것은, 큰 교화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형벌만으로 몰아가서, 끝내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故曰; 導之以禮樂, 而民和睦.
그래서 "예악으로 인도하니 백성들이 화목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初, 叔孫通將制定禮儀, 見非於齊魯之士, 然卒為漢儒宗, 業垂後嗣, 斯成法也.
처음, 숙손통이 장차 예의를 제정하고자 할 때, 제(齊)와 노(魯)의 선비들에게 그릇된 것으로 보여졌지만, 마침내 (숙손통은) 한나라의 유종(儒宗)이 되어 그 공업이 후사에게까지 드리워서, 이렇게 법을 이룩했던 것입니다"라 했다.

成帝以向言下公卿議, 會向病卒, 丞相大司空奏請立辟雍.
성제가 유향의 말을 공경에게 내려 보내 의논하게 하였는데, 유향이 병으로 죽게 되자, 승상 대사공이 벽옹을 세우자고 주청하였다.

案行長安城南, 營表未作, 遭成帝崩, 羣臣引以定諡.
장안성 남쪽을 행행하며 살펴 보았는데, 기반을 채 만들기도 전에, 성제가 붕어하게 되니, 뭇 신하들이 이 일로 인해 (성제의) 시호를 정하였다.

○ 及王莽為宰衡, 欲燿衆庶, 遂興辟廱, 因以篡位, 海內畔之.
왕망(王莽)이 재형(宰衡; 승상)이 되었을 때, 뭇 백성들에게 빛나게 하기 위해서, 마침내 벽옹(辟廱)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서 제위를 찬탈하니, 해내(海內)가 그를 배반하였다.

世祖受命中興, 撥亂反正. 改定京師于土中.
세조(世祖)가 천명을 받아 중흥하여, 난을 다스리고 반정(反正)하였다.
토중(土中)으로 경사를 고쳐 정하였다.

卽位三十年, 四夷賓服, 百姓家給, 政教清明, 乃營立明堂辟廱.
제위에 오른 지 30년, 사이가 찾아와 귀복하고, 백성들은 집집마다 풍족하며, 정교(政敎)는 청명하니, 이에 명당(明堂)과 벽옹(辟廱)을 세웠다.

顯宗卽位, 躬行其禮, 宗祀光武皇帝于明堂, 養三老五更於辟廱.
현종(顯宗)이 즉위하여 몸소 그 예를 행하고, 명당에서 광무황제에게 종사(宗祀)는 지내고 벽옹에서 삼로(三老), 오경(五更)을 봉양했다.

威儀既盛美矣, 然德化未流洽者, 禮樂未具, 羣下無所誦說, 而庠序尚未設之故也.
위의(威儀)가 이미 성대하고 아름다웠으나, 덕화는 아직 충분히 적시지 못했고, 예약은 갖추어 지지 않으니, 뭇 아랫 사람들이 읽고 설명하는(誦說) 곳이 없었고, 상서가 아직도 다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孔子曰: 辟如為山, 未成一匱, 止, 吾止也.
공자가 말하길, "비유컨대 산을 만드는 것과 같아 한 소쿠리라도 모잘라 그만 두었더라도 내가 그만둔 것이다"고 하였다.

今叔孫通所撰禮儀, 與律令同錄, 臧於理官, 法家又復不傳.
지금 숙손통이 예의를 찬술한 것이, 율령들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관(理官)들에게 보관되어 있고, 법가 또한 다시 전하지 않는다.

漢典寢而不著, 民臣莫有言者, 又通沒之後.
한나라의 전적들이 묻혀 저술되지 않고, 백성이나 신하들도 말하는 자가 없다.

河間獻王采禮樂古事, 稍稍增輯, 至五百餘篇.
하간헌왕(河間獻王)이 예악의 고사를 채록하여, 점차 늘려 모으니, 5백여편에 이르게 되었다.

今學者不能昭見, 但推士禮以及天子, 說義又頗謬異, 故君臣長幼交接之道以不章.
지금의 학자들은 훤히 볼 수 없어, 다만 사(士)의 예를 미루어 짐작해 천자에게 까지 미치고, 뜻을 설명하는 것이 자못 어긋나고 다르니, 그래서 군신, 장유, 교접의 도가 점차 명백하지 못하였다.

◼ 樂

○ 樂者, 聖人之所樂也, 而可以善民心, 其感人深, 其移風易俗易, 故先王著其教焉.
악이란 것은 성인이 즐거워 하는 바이니 가히 민심을 착하게 할 수 있고, 사람을 깊이 감복시키고, 풍속을 쉽게 바꾸니, 그래서 선왕들이 그 교화를 밝혔던 것이다.

○ 夫民有血氣心知之性, 而無哀樂喜怒之常, 應感而動, 然後心術形焉.
무릇 백성들에게 혈기심지(血氣心知)의 성(性)이 있지만, 회노애락(哀樂喜怒)의 상(常)은 없으니, 감응하면 움직이고, 그런 연후에 마음이 유래된 바가 나타난다.

是以纖微癄瘁之音作, 而民思憂, 闡諧嫚易之音作, 而民康樂.
이 때문에 섬미(纖微)하고 초췌(癄瘁)하는 음악이 지어지면, 백성들이 근심 걱정하고, 널리 화목하고 급박치 않은 음악이 지어지면 백성들이 강락(康樂)한다.

麤厲猛奮之音作, 而民剛毅.
추려(麤厲)하고 맹분하는 음악이 지어지면, 백성들은 굳세진다.

廉直正誠之音作, 而民肅敬.
염직(廉直) 정성(正誠)한 음악이 지어지면 백성들은 숙경한다.

寬裕和順之音作, 而民慈愛.
관유하고 화순한 음악이 지어지면, 백성들은 자애로워 진다.

流辟邪散之音作, 而民淫亂.
편벽됨에 흐르고 사악함이 퍼지는 음악이 지어지면, 백성들은 음란(淫亂)해진다.

先王恥其亂也, 故制雅頌之聲, 本之情性, 稽之度數, 制之禮儀,
선왕은 그 어지러움을 부끄러워 하여 그래서 아송(雅頌)의 음악을 제정했으나, 정성(情性)을 근본으로 삼고, 도수(度數)로 살피며, 예의로 제정하니,

合生氣之和, 導五常之行, 使之陽而不散, 陰而不集, 剛氣不怒, 柔氣不懾,
생기의 화목함에 부합하고, 오상의 운행을 인도하여, 양기을 흩어지지 않게 하고 음기을 모이지 않게 하였으니, 굳센 기라도 노하지 않으며, 유순한 기라도 슬퍼하지 않고,

四暢交於中, 而發作於外, 皆安其位而不相奪也,
사방으로 통하여 가운데서 만나고 밖으로 발현되어 만들어지니, 모두 자기 자리를 편안히하며 서로 다투지 않으니,

足以感動人之善心也, 不使邪氣得接焉, 是先王立樂之方也.
족이 사람의 착한 마음을 감동시킬 만하고, 사악한 기운을 접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선왕이 악(樂)을 세운 방책이다.

○ 王者未作樂之時, 因先王之樂以教化百姓, 說樂其俗. 然後改作, 以章功德.
제왕이 아직 악을 짓지 않을 때는, 선왕의 악에 기인하여 백성을 교화하여, 그 풍속을 화락하게 한다. 그런 연후에 (악을) 고쳐 지어 공덕을 드러냈다.

易曰: 先王以作樂崇德, 殷薦之上帝, 以配祖考.
역경에 이르길, "선왕이 악으로써 덕을 존숭하였으니, 은에서는 이를 상제에게 올리고 조고(祖考)에 배향하였다"고 했다.

昔黃帝作咸池, 顓頊作六莖, 帝嚳作五英, 堯作大章, 舜作招, 禹作夏, 湯作濩, 武王作武, 周公作勺.
옛날 황제가 함지(咸池)를 지었고, 전욱은 육경(六莖)을 지었으며, 제고는 오영(五英)을 지었고, 요임금은 대장(大章)을 순임금은 초(招)를, 우임금은 하(夏)를, 탕왕은 호(濩)를, 무왕은 무(武)를, 주공은 작(勺)을 지었다.

勺, 言能勺先祖之道也.
작은 능히 선조의 도를 취할 수 있음을 말한다.

武, 言以功定天下也.
무(武)는 공업으로써 천하를 평정한 것을 말한다.

濩, 言救民也.
호(濩)는 백성을 구제한 것을 말한다.

夏, 大承二帝也.
하(夏)는 크게 두 임금을 이은 것이다.

招, 繼堯也.
초(招)는 요임금을 계승한 것이다.

大章, 章之也.
대장(大章)은 밝힌 것이다.

五英, 英華茂也.
오영(五英)은 꽃이 무성한 것이다.

六莖, 及根莖也.
육경(六莖)은 뿌리와 줄기까지 미친 것이다.

咸池, 備矣.
함지(咸池)는 갖추었다는 것이다.

自夏以往, 其流不可聞已, 殷頌猶有存者.
하(夏) 나라 이래로, 그 흐름이 전해져 끊어지지 않았으니, 은송(殷頌)이 오히려 남아 있었다.

周詩既備, 而其器用張陳, 周官具焉.
주시(周詩)는 이미 갖추어져 있어서,(14) 그 기용은 널리 베풀어지며, 주관은 구비되어 있었다.

典者自卿大夫師瞽以下, 皆選有道德之人, 朝夕習業, 以教國子. 國子者, 卿大夫之子弟也.
담당하는 자는 경대부, 사(師), 고(瞽 이하로 모두 도덕이 있는 사람을 선발하였고, 조석으로 그 업을 익혀서, 국자(國子)에게 가르쳤다. 국자란, 경대부의 자제이다.

皆學歌九德, 誦六詩, 習六舞, 五聲, 八音之和.
모두 구덕(九德)을 배워 노래하고, 육시(六詩)를 외웠으며, 육무(六舞), 오성(五聲), 팔음(八音)의 조화를 익혔다.

故帝舜命夔曰: 女典樂, 教冑子, 直而溫, 寬而栗, 剛而無虐, 簡而無敖.
그래서 제순이 기(夔)에게 명하여, "너는 악을 맡아서, 주자를 가르치되, 정직하면서도 온화하고, 관대하면서도 공손하고, 굳세면서 사납지 않고, 간약하면서도 거만하지 않게 하라.

詩言志, 歌咏言, 聲依咏, 律和聲, 八音克諧. 此之謂也.
시에서는 뜻을 말한 것이고, 노래는 그 말을 노래한 것이니, 성(聲)은 영(永)을 돕고, 율(律)은 성(聲)과 조화하여, 팔음이 모두 조화를 이룬다"고 한 것은 이를 이른 것이다.

又以外賞諸侯德盛而教尊者.
또한 밖으로는 덕있는 제후에게 상을 주어, 덕이 성하였고 교화가 높았다.

其威儀足以充目, 音聲足以動耳, 詩語足以感心, 故聞其音而德和, 省其詩而志正, 論其數而法立.
그 위의(威儀)는 족히 눈을 충족시켰고, 음성(音聲)은 귀를 움직였고, 시어(詩語)는 마음을 감복시켰으니, 그래서 그 소리를 듣고는 덕이 조화를 이루었고, 그 시를 살피니 뜻이 바르게 되었으며, 그 수를 논하니 법이 서게 되었다.

是以薦之郊廟則鬼神饗, 作之朝廷則羣臣和, 立之學官則萬民協.
이로써 교묘(郊廟)에 바치니 귀신이 흠향하였고, 조정에서 지으니 군신들이 화목하였고, 학관(學官)에서 세우니, 만백성이 협화하였다.

聽者無不虛己竦神, 說而承流, 是以海內.
듣는 자로써 자기를 비워 신을 공경하지 않음이 없으니 기뻐하며 이어 흘렀다.

○ 徧知上德, 被服其風.
이로써 해내가 상덕을 알게 되었고, 그 풍화을 입게 되었다.

光煇日新, 化上遷善, 而不知所以然, 至於萬物不夭, 天地順而嘉應降.
광휘(光煇)가 날로 새로워지니, 교화가 올라가 선으로 옮겨가고, 그렇게 된 소이연은 알지 못해도 만물불요(萬物不夭)에 이르르니, 천지가 따르고 아름다운 응험이 내렸다.

故詩曰: 鐘鼓鍠鍠, 磬管鏘鏘, 降福穰穰.
그래서 시경에 이르길, "종소리 북소리 크게 울리고, 경쇠소리 피리소리 울리니, 복을 크게 내려주시도다"라 했고,

書云: 擊石拊石, 百獸率舞.
상서에는, "경석을 치고 어루만지니, 뭇짐승들이 따라와 그 춤을 추었다"고 하였다.

鳥獸且猶感應, 而況於人乎, 況於鬼神乎.
조수(鳥獸) 또한 오히려 감응하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하물며 귀신에 있어서랴?

故樂者, 聖人之所以感天地, 通神明, 安萬民, 成性類者也.
그래서 악이란 것은, 성인이 천지를 감응시키고 신명을 통하게 하며, 만백성을 편하게 하고, 그 본성을 이룩하게 한 것들이다.

然自雅頌之興, 而所承衰亂之音猶在, 是謂淫過凶嫚之聲, 為設禁焉.
그러나 아송이 흥한 이래로, 쇠란의 음악을 이은 것이 오히려 남아 있으니, 이것은 음란함이 과하며 흉함이 만연하는 소리이니, 그래서 금법을 만들게 된 것이다.

世衰民散, 小人乘君子, 心耳淺薄, 則邪勝正.
세상이 쇠락하고 백성들이 흩어지자, 소인들이 군자를 능멸했고, 마음과 귀가 천박해지자 사악함이 올바름을 이기게 되었다.

故書序, 殷紂斷棄先祖之樂, 乃作淫聲, 用變亂正聲, 以說婦人.
그래서 상서에서, "은나라 주왕이 선조의 음악을 끊어 버리고, 이에 음란한 소리를 지었고, 변법을 써서 정성(正聲)을 어지럽혀서, 부인을 기쁘게 하였다"고 했다.

樂官師瞽抱其器而犇散, 或適諸侯, 或入河海.
악관과 사, 고가 그 악기를 가지고 흩어져 달아나고, 혹자는 제후에게 가고, 혹자는 해내로 들어갔다.

夫樂本情性, 浹肌膚而臧骨髓, 雖經乎千載, 其遺風餘烈尚猶不絕.
무릇 악은 정성(情性)에 근본하고 있어서, 살갗에 미치고 골수를 품고 있기 때문에, 비록 천년이 지난다 해도, 그 유풍과 여열은 오히려 끊어지지 않는다.

至春秋時, 陳公子完犇齊.
춘추 때에 이르러, 진(陳) 공자 완(完)이 제(齊)나라로 갔다.

陳, 舜之後, 招樂存焉.
진나라는 순임금의 후손이니, 소악(招樂)이 남아있었다.

故孔子適齊聞招,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為樂之至於斯. 美之甚也.
그래서 공자가 제나라로 갔다가 소악을 듣고, 3개월 동안 고기맛을 모르며 말하길, "즐거움이 이토록 지극한 줄 생각하지 못했다"라 하며 심히 찬미하였다.

○ 周道始缺, 怨刺之詩起.
주나라의 도가 쇠락하기 시작하자, 원망하고 헐뜯는 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王澤既竭, 而詩不能作.
왕의 은택이 이미 메마르니, 시는 능히 지어지지 못했다.

王官失業, 雅頌相錯, 孔子論而定之, 故曰: 吾自衞反魯, 然後樂正, 雅頌各得其所.
왕의 관리들이 업을 잃자, 아송(雅頌)이 서로 뒤섞이니, 공자가 논하여 이를 정하였고, 그러면서 말하길, "내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후에, 악을 바로잡아, 아송이 각각 제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是時, 周室大壞, 諸侯恣行, 設兩觀, 乘大路.
이때, 주왕실이 크게 무너지니, 제후들이 방자하게 행동하면서 양관(兩觀)을 두고 대로(大路)를 탔다.

陪臣管仲季氏之屬, 三歸雍徹, 八佾舞廷.
배신(陪臣)인 관중(管仲)과 계씨(季氏)의 무리들이 (관중은) 세부인을 들이고(三歸), (계씨는 천자의 제례인) 옹으로써 제사를 마쳤으며(雍徹), 뜰에서 팔일무(八佾舞)를 추게 하였다.

制度遂壞, 陵夷而不反, 桑間濮上, 鄭衞宋趙之聲並出, 內則致疾損壽, 外則亂政傷民, 巧偽因而飾之, 以營亂富貴之耳目.
제도는 마침내 무너져 폐기되어 회복하지 못하였고, 상간(桑間), 복상(濮의 음악, 정(鄭), 위(衛), 송(宋), 조(趙) 나라의 음악이 아울러 나와서, 안으로는 병들게 하고 천수를 훼손하게 되었으며, 밖으로는 정사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해치면서도, 공교한 거짓으로 이를 꾸미니, 부귀한 자의 이목을 둘러싸 어지럽혔다.

庶人以求利, 列國以相間.
서인(庶人)들은 이익을 구하고, 열국은 서로 헐뜯었다.

故秦穆遺戎而由余去, 齊人餽魯而孔子行.
그래서 진 목공(穆公)이 서융에 (여악을) 보내니, 유여(由余)는 (서융을) 버렸고, 제나라 사람들이 노나라에 (여악을) 보내자 공자가 (노나라를) 떠났다.

至於六國, 魏文侯最為好古, 而謂子夏曰: 寡人聽古樂則欲寐, 及聞鄭衞, 余不知倦焉.
육국때에 이르러, 위 문후(魏 文侯)가 옛 것을 가장 좋아했는데, 자하(子夏)에 이르길, "과인이 고악(古樂)을 들으면 침상에 눕고 싶던데, 정, 위의 음악을 들을때는 내가 지루한지도 몰랐소"라고 하니,

子夏辭而辨之, 終不見納, 自此禮樂喪矣.
자하가 말을 해서 (양자를) 구별해 주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로부터 예악이 망실되기 시작했다.

○ 漢興, 樂家有制氏, 以雅樂聲律世世在大樂官, 但能紀其鏗鎗鼓舞, 而不能言其義.
한이 흥기했을 때, 악가(樂家) 중에 제씨(制氏)가 있었는데, 아악과 성률로써 대대로 대악관(大樂官)에 있었지만, 다만 그 중 악기(鏗鎗)와 고무(鼓舞)를 기록할 뿐이지, 그 의미를 말하지는 못했다.

高祖時, 叔孫通因秦樂人制宗廟樂.
고조 때, 숙손통(叔孫通)이 진의 악인들로 인하여 종묘의 음악을 제정했다.

大祝迎神于廟門, 奏嘉至, 猶古降神之樂也.
대축(大祝)하며 묘문(廟門)에서 신을 영접하는데, 연주하며 기리는 것이 지극하였으니, 옛날 강신(降神)의 악과 같았다.

皇帝入廟門, 奏永至, 以為行步之節, 猶古采薺肆夏也.
황제가 묘문에 들어서면, 연주하며 영송하는 것이 지극하여 걸음걸이가 절도있게 되니, 예전 채제(采薺), 사하(肆夏) 같았다.

乾豆上, 奏登歌, 獨上歌, 不以筦弦亂人聲, 欲在位者徧聞之, 猶古清廟之歌也.
건두(乾豆)가 올려지면, 등가(登歌)를 연주하고, 다만 노래만 올리지, 관, 현악기로 사람의 노래를 어지럽히지 않아, 재위자(在位者)가 이것을 듣고자 하니, 옛날의 청묘(清廟)의 노래와 같았다.

登歌再終, 下奏休成之樂, 美神明既饗也.
등가가 두번 끝나면, 내려와 휴성(休成)의 음악을 연주하여, 신명이 이미 흠향하였음을 찬미하였다.

皇帝就酒東廂, 坐定, 奏永安之樂, 美禮已成也.
황제가 동상(東廂)에 술을 올리고 좌정하면, 영안(永安)의 음악을 연주하여, 예가 이미 이뤄졌음을 찬미하였다.

又有房中祠樂, 高祖唐山夫人所作也.
또한 방중사악(房中祠樂)이 있었으니, 고조의 당산부인(唐山夫人)이 지은 것이다.

周有房中樂, 至秦名曰壽人.
주나라에는 방중악(房中樂)이 있었는데, 진나라떄 이르러 이름을 수인(壽人)이라 하였다.

凡樂, 樂其所生, 禮不忘本.
무릇 악이란 그 생겨난 바를 즐기는 것이고, 예는 그 근본을 잊지 않는다.

高祖樂楚聲, 故房中樂楚聲也.
고조는 초나라 음악을 즐겼으니, 그래서 방중악은 초나라의 음악이었다.

孝惠二年, 使樂府令夏侯寬備其簫管, 更名曰安世樂.
효혜제 2년에, 악부령(樂府令) 하후관(夏侯寬)을 시켜 그 소관(簫管)을 완비하게 했는데, 이름을 고쳐 안세악(安世樂)이라고 하였다.

○ 高(祖)廟奏武德, 文始, 五行之舞.
고묘(高廟)에서는 무덕(武德), 문시(文始), 오행지무(五行之舞)를 연주했다.

孝文廟奏昭德, 文始, 四時, 五行之舞.
효문묘(孝文廟)는 소덕(昭德), 문시(文始), 사시(四時), 오행지무를 연주하였다.

孝武廟奏盛德, 文始, 四時, 五行之舞.
효무묘(孝武廟)는 성덕(盛德) ,문시, 사시(四時), 오행지무를 연주하였다.

武德舞者, 高祖四年作, 以象天下樂己行武以除亂也.
무덕무(武德舞)는 고조 4년에 지었는데, 천하의 악(樂)이 직접 무를 행하고 난을 없애는 것을 본 뜻 것이다.

文始舞者, 曰本舜招舞也, 高祖六年更名曰文始, 以示不相襲也.
문시무(文始舞)는 본래 순임금의 초무(招舞)라 불리는 것인데, 고조 6년에 이름을 바꿔 문시라 하였으니, 서로 답습하지 않았음을 보인 것이다.

五行舞者, 本周舞也, 秦始皇二十六年更名曰五行也.
오행무(五行舞)는 본래 주나라 춤인데, 진시황 26년 이름을 바꿔 오행이라 하였다.

四時舞者, 孝文所作, 以明示天下之安和也.
사시무(四時舞)는 효문제가 지은 것으로 천하가 평안하고 조화로운 것을 밝혀 보이기 위함이다.

蓋樂己所自作, 明有制也; 樂先王之樂, 明有法也.
무릇 악이란 그 자체가 직접 지어진 것으로, 분명히 그 제작이 있고, 악은 또한 선왕의 악으로 분명히 그 법이 있다.

孝景采武德舞以為昭德, 以尊大宗廟.
효경제가 무덕무에서 뽑아서 소덕(昭德)무을 만들어, 대종묘를 높였다.

至孝宣, 采昭德舞為盛德, 以尊世宗廟.
효선제(孝宣帝)에 이르러, 소덕무에서 뽑아서 성덕(盛德)무를 만들어 세종묘를 높였다.

諸帝廟皆常奏文始, 四時, 五行舞云.
여러 제묘(帝廟)에는 모두 항상 문시, 사시, 오행무를 연주하였다고 한다.

高祖六年又作昭容樂, 禮容樂.
고조 6년 또한 소용악(昭容樂), 예용악(禮容樂)을 지었다.

昭容者, 猶古之昭夏也, 主出武德舞.
소용(昭容)은 옛 소하(昭夏)와 같으니, 주로 무덕무에서 나왔다.

禮容者, 主出文始, 五行舞. 舞人無樂者, 將至至尊之前不敢以樂也.
예용은 주로 문시, 오행무에서 나왔다. 무인무악(舞人無樂)이란 것은, 지존의 앞에 이르서는 감히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出用樂者, 言舞不失節, 能以樂終也. 大氐皆因秦舊事焉.
출용악(出用樂)이란 것은 춤이 절도를 읽지 않으면, 능히 그 끝까지 즐거워 한다는 것이다. 대저 모두 진나라의 고사로 나온 말이다.

○ 初, 高祖既定天下, 過沛, 與故人父老相樂, 醉酒歡哀, 作風起之詩, 令沛中僮兒百二十人習而歌之.
처음, 고조가 천하를 평정하고 나서, 패(沛)현을 지나가, 옛 부로(父老)들과 서로 즐거워하며, 술에 취하여 기뻐하고 혹 애닲아 하면서 풍기(風起)의 시를 지어서, 패현 중에 아이들 120명에게 영을 내려 이를 익혀 노래하게 하였다.

至孝惠時, 以沛宮為原廟, 皆令歌兒習吹以相和, 常以百二十人為員.
효 혜제때 이르러, 패궁(沛宮)을 원묘(原廟)로 삼고, 노래하던 아이들에게 모두 이를 연주하는 것을 익혀서 서로 조화되게 하고, 120명을 그 상원(常員)으로 하였다.

文, 景之間, 禮官肄業而已.
문제와 경제 사이에는 예관(禮官)에게 그 업을 익히게 하고 그치었다.

至武帝定郊祀之禮, 祠太一於甘泉, 就乾位也.
효무제 때에 이르러, 교사(郊祀)의 예를 정하고, 감천(甘泉)에서 태일(太一)에 제사지내고, 건위(乾位)를 이루었다.

祭后土於汾陰, 澤中方丘也.
분음(汾陰)에서 후토(后土)에 제사지내니, 못 중의 구릉(方丘)이다.

乃立樂府, 采詩夜誦, 有趙代秦楚之謳.
이어 악부(樂府)를 세웠으며, 시가를 채집하여 야송(夜誦)하게 하였으니, 조(趙), 대(代), 진(秦), 초(楚)의 노래가 있었다.

以李延年為協律都尉, 多舉司馬相如等數十人造為詩賦, 略論律呂, 以合八音之調, 作十九章之歌.

以正月上辛用事甘泉圜丘, 使童男女七十人俱歌, 昏祠至明.
정월 상신(上辛)일에 감천(甘泉)과 원구(圜丘)에서 제사지내고, 어린아이 남녀 70인을 시켜 함께 노래하게 하였으니, 저물 때 제사지내어 날이 밝을 때까지 하였다.

夜常有神光如流星止集于祠壇, 天子自竹宮而望拜, 百官侍祠者數百人皆肅然動心焉.
밤 중에는 항상 신령스런 광채가 있어 유성(流星)같았는데, 제사 지내는 단위에 멈추어 모이며, 천자가 죽궁(竹宮)에서 바라보며 절하니, 백관들 중 제사를 시봉하는 자들이 수백인인데 모두 숙연하여 감동하였다.


◼ 安世房中歌

安世房中歌十七章, 其詩曰:
안세방중가(安世房中歌)는 17장이니, 그 시는 다음과 같다.

其詩一
大孝備矣,休德昭清。
高張四縣,樂充宮庭。
芬樹羽林,雲景杳冥。
金支秀華,庶旄翠旌。

其詩二
七始華始,肅倡和聲。
神來宴娭,庶幾是聽。
粥粥音送,細齊人情。
忽乘青玄,熙事備成。
清思眑眑,經緯冥冥。

其詩三
我定曆數,人告其心。
敕身齊戒,施教申申。
乃立祖廟,敬明尊親。
大矣孝熙,四極爰轃。

其詩四
王侯秉德,其鄰翼翼,顯明昭式。
清明鬯矣,皇帝孝德。
竟全大功,撫安四極。

其詩五
海內有姦,紛亂東北。
詔撫成師,武臣承德。
行樂交逆,簫勺羣慝。
肅為濟哉,蓋定燕國。

其詩六
大海蕩蕩水所歸。
高賢愉愉民所懷。
大山崔,百卉殖。
民何貴?貴有德。

其詩七
安其所,樂終產。
樂終產,世繼緒。
飛龍秋,游上天。
高賢愉,樂民人。

其詩八
豐草葽,女羅施。
譱何如,誰能回。
大莫大,成教德。
長莫長,被無極。

其詩九
靁震震,電燿燿。
明德鄉,治本約。
治本約,澤弘大。
加被寵,咸相保。
德施大,世曼壽。

其詩十
都荔遂芳,窅窊桂華。
孝奏天儀,若日月光。
乘玄四龍,回馳北行
羽旄殷盛,芬哉芒芒。
孝道隨世,我署文章。 
桂華。

其詩十一
馮馮翼翼,承天之則。
吾易久遠,燭明四極。
慈惠所愛,美若休德。
杳杳冥冥,克綽永福。
美芳。

其詩十二
磑磑卽卽,師象山則。
烏呼孝哉,案撫戎國。
蠻夷竭歡,象來致福。
兼臨是愛,終無兵革。

其詩十三
嘉薦芳矣,告靈饗矣。
告靈既饗,德音孔臧。
惟德之臧,建侯之常。
承保天休,令問不忘。

其詩十四
皇皇鴻明,蕩侯休德。
嘉承天和,伊樂厥福。
在樂不荒,惟民之則。

其詩十五
浚則師德,下民咸殖。
令問在舊,孔容翼翼。

其詩十六
孔容之常,承帝之明。
下民之樂,子孫保光。
承順溫良,受帝之光。
嘉薦令芳,壽考不忘。

其詩十七
承帝明德,師象山則。
雲施稱民,永受厥福。
承容之常,承帝之明。
下民安樂,受福無疆。


◼ 郊祀歌十九章, 其詩曰:

○ 練時日一
練時日, 侯有望, 巽膋蕭, 延四方。
九重開, 靈之斿, 垂惠恩, 鴻祜休。
靈之車, 結玄雲, 駕飛龍, 羽旄紛。
靈之下, 若風馬, 左倉龍, 右白虎。
靈之來, 神哉沛, 先以雨, 般裔裔。
靈之至, 慶陰陰, 相放怫, 震澹心。
靈已坐, 五音飭, 虞至旦, 承靈億。
牲繭栗, 粢盛香, 尊桂酒, 賓八鄉。
靈安留, 吟青黃, 遍觀此, 眺瑤堂。
眾嫭並, 綽奇麗, 顏如荼, 兆逐靡。
被華文, 廁霧縠, 曳阿錫, 佩珠玉。
俠嘉夜, 仂蘭芳, 澹容與, 獻嘉觴。

○ 帝臨二
帝臨中壇, 四方承宇。
繩繩意變, 備得其所。
清和六合, 制數以五。
海內安寧, 興文匽武。
后土富媼, 昭明三光。
穆穆優游, 嘉服上黃。

○ 青陽三 鄒子樂。
青陽開動, 根荄以遂。
膏潤并愛, 跂行畢逮。
霆聲發榮, 壧處頃聽。
枯槁復產, 乃成厥命。
眾庶熙熙, 施及夭胎。
群生啿啿, 惟春之祺。

○ 朱明四 鄒子樂。
朱明盛長, 归與萬物。
桐生茂豫, 靡有所詘。
敷華就實, 既阜既昌。
登成甫田, 百鬼迪嘗。
廣大建祀, 肅雍不忘。
神若宥之, 傳世無疆。

○ 西顥五 鄒子樂。
西顥沆碭, 秋氣肅殺。
含秀垂穎, 續舊不廢。
姦偽不萌, 祅孽伏息。
隅辟越遠, 四貉咸服。
既畏茲威, 惟慕純德。
附而不驕, 正心翊翊。

○ 玄冥六 鄒子樂。
玄冥陵陰, 蟄蟲蓋臧。
屮木零落, 抵冬降霜。
易亂除邪, 革正異俗。
兆民反本, 抱素懷樸。
條理信義, 望禮五嶽。
籍斂之時, 掩收嘉穀。

○ 惟泰元七
建始元年, 丞相匡衡奏罷, 鸞路龍鱗, 更定詩曰, 涓選休成。
惟泰元尊, 媼神蕃釐。
經緯天地, 作成四時。
精建日月, 星辰度理。
陰陽五行, 周而復始。
雲風雷電, 降甘露雨。
百姓蕃滋, 咸循厥緒。
繼統共勤, 順皇之德。
鸞路龍鱗, 罔不肸飾。
嘉籩列陳, 庶幾宴享。
滅除凶災, 列騰八荒。
鐘鼓竽笙, 雲舞翔翔。
招搖靈旗, 九夷賓將。

○ 天地八
丞相匡衡奏罷, 黼繡周張, 更定詩曰, 肅若舊典。
天地並況, 惟予有慕
爰熙紫壇, 思求厥路。
恭承禋祀, 縕豫為紛
黼繡周張, 承神至尊。
千童羅舞成八溢, 合好效歡虞泰一。
九歌畢奏斐然殊, 鳴琴竽瑟會軒朱。
璆磬金鼓, 靈其有喜。
百官濟濟, 各敬厥事。
盛牲實俎進聞膏, 神奄留, 臨須搖。
長麗前掞光燿明, 寒暑不忒況皇章。
展詩應律鋗玉鳴, 函宮吐角激徵清。
發梁揚羽申以商, 造茲新音永久長。
聲氣遠條鳳鳥启, 神夕奄虞蓋孔享。

○ 日出入九
日出入安窮, 時世不與人同.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어찌 다할 수 있겠는가! 시절(時)이나 세상(世)은 사람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故春非我春, 夏非我夏.��️
봄은 봄이건만 내 봄이 아니요, 여름도 내 여름 아니라.

秋非我秋, 冬非我冬.
가을도 내 가을 아니요, 겨울도 내 겨울이 아니라.

泊如四海之池, 遍觀是邪謂何.
사해(海)의 연못에 머무는 배와 같으니, 이리 저리 생각하여도 이를 어찌할 것이냐?

吾知所樂, 獨樂六龍, 六龍之調, 使我心若, 訾黃其何不徠下.
내가 아는 즐거움은 육용(六龍)을 조율하는 것, 육용(六龍)을 몰아가니 내 마음 즐겁기는 하지만, 자황(訾黃; 용의 날개에 말의 몸을 지녔다는 옛날 신마神馬의 이름) 은 어이하여 내려오지 않는가!

○ 天馬十
太一況, 天馬下, 霑赤汗, 沬流赭。
志俶儻, 精權奇, 逦浮雲, 晻上馳。
體容與, 迣萬里, 今安匹, 龍為友。
元狩三年馬生渥洼水中作。
天馬徠, 從西極, 涉流沙, 九夷服。
天馬徠, 出泉水, 虎脊兩, 化若鬼。
天馬徠, 歷無草, 徑千里, 循東道。
天馬徠, 執徐時, 將搖舉, 誰與期。
天馬徠, 開遠門, 竦予身, 逝昆侖。
天馬徠, 龍之媒, 游閶闔, 觀玉臺。
太初四年誅宛王獲宛馬作。

○ 天門十一
天門開, 詄蕩蕩。
穆並騁, 以臨饗。
光夜燭, 德信著。
靈娅平而鴻, 長生豫。
大朱涂廣, 夷石為堂。
飾玉梢以舞歌, 體招搖若永望。
星留俞, 塞隕光, 照紫幄, 珠熉黃。
幡比还集, 貳雙飛常羊。
月穆穆以金波, 日華燿以宣明。
假清風軋忽, 激長至重觴。
神裴回若留放, 殣冀親以肆章。
函蒙祉福常若期, 寂漻上天知厥時。
泛泛滇滇從高斿, 殷勤此路臚所求。
佻正嘉吉弘以昌, 休嘉砰隱溢四方。
專精厲意逝九閡, 紛云六幕浮大海。

○ 景星十二
元鼎五年得鼎汾陰作。
景星顯見, 信星彪列
象載昭庭, 日親以察。
參侔開闔, 爰推本紀
汾脽出鼎, 皇祜元始。
五音六律, 依韋饗昭
雜變並會, 雅聲遠姚。
空桑琴瑟結信成, 四興遞代八風生。
殷殷鐘石羽籥鳴, 河龍供鯉醇犧牲。
百末旨酒布蘭生, 泰尊柘漿析朝酲。
微感心攸通修名, 周流常羊思所并。
穰穰復正直往甯, 馮蠵切和疏寫平。
上天布施后土成, 穰穰豐年四時榮。

○ 齊房十三
元封二年芝生甘泉齊房作。
齊房產草, 九莖連葉。
宮童效異, 披圖案諜。
玄氣之精, 回復此都。
蔓蔓日茂, 芝成靈華。

○ 后皇十四
后皇嘉壇, 立玄黃服。
物發冀州, 兆蒙祉福。
沇沇四塞, 徦狄合處。
經營萬億, 咸遂厥宇。

○ 華鳞鳞十五
華鳞鳞, 固靈根。
神之斿, 過天門, 車千乘, 敦昆侖。
神之出, 排玉房, 周流雜, 拔蘭堂。
神之行, 旌容容, 騎沓沓, 般縱縱。
神之徠, 泛翊翊, 甘露降, 慶雲集。
神之揄, 臨壇宇, 九疑賓, 夔龍舞。
神安坐, 启吉時, 共翊翊, 合所思。
神嘉虞, 申貳觴, 福滂洋, 邁延長。
沛施祐, 汾之阿, 揚金光, 橫泰河。
莽若雲, 增陽波, 遍臚驩, 騰天歌。

○ 五神十六
五神相, 包四鄰, 土地廣, 揚浮雲。
扢嘉壇, 椒蘭芳, 璧玉精, 垂華光。
益億年, 美始興, 交於神, 若有承。
廣宣延, 咸畢觴, 靈輿位, 偃蹇驤。
卉汨臚, 析奚道, 淫淥澤, 鬓然歸。

○ 朝隴首十七
元狩元年行幸雍獲白麟作。
朝隴首, 覽西垠, 剨電抠, 獲白麟。
爰五止, 顯黃德, 圖匈虐, 熏鬻殛。
闢流離, 抑不詳, 賓百僚, 山河饗。
掩回轅, 鬗長馳, 騰雨師, 洒路陂。
流星隕, 感惟風, 钆歸雲, 撫懷心。

○ 象載瑜十八
太始三年行幸東海獲赤鴈作。
象載瑜, 白集西, 食甘露, 飲榮泉。
赤鴈集, 六紛員, 殊翁雜, 五采文。
神所見, 施祉福, 登蓬萊, 結無極。

○ 赤蛟十九
赤蛟綏, 黃華蓋, 露夜零, 晝晻濭。
百君禮, 六龍位, 勺椒漿, 靈已醉。
靈既享, 錫吉祥, 芒芒極, 降嘉觴。
靈殷殷, 爛揚光, 延壽命, 永未央。
杳冥冥, 塞六合, 澤汪濊, 輯萬國。
靈禗禗, 象輿轙, 票然逝, 旗逶蛇。
禮樂成, 靈將歸, 託玄德, 長無衰。

其餘巡狩福應之事, 不序郊廟, 故弗論.

是時, 河間獻王有雅材, 亦以為治道非禮樂不成, 因獻所集雅樂.

天子下大樂官, 常存肄之, 歲時以備數, 然不常御, 常御及郊廟皆非雅聲.

然詩樂施於後嗣, 猶得有所祖述.

昔殷周之雅頌, 乃上本有娀姜原, 镨稷始生, 玄王公劉古公, 大伯王季姜女, 大任太姒之德, 乃及成湯文武受命, 武丁成康, 宣王中興, 下及輔佐阿衡, 周召太公申伯召虎, 仲山甫之屬, 君臣男女有功德者, 靡不褒揚.

功德既信美矣, 褒揚之聲盈乎天地之間, 是以光名著於當世, 遺譽垂於無窮也.

今漢郊廟詩歌, 未有祖宗之事, 八音調均, 又不協於鐘律, 而內有掖庭材人, 外有上林樂府, 皆以鄭聲施於朝廷.

至成帝時, 謁者常山王禹世受可間樂, 能說其義, 其弟子宋嘱等上書言之, 下大夫博士平當等考試.

當以為, 漢承秦滅道之後, 賴先帝聖德, 博受兼聽, 修廢官, 立大學, 河間獻王聘求幽隱, 修興雅樂以助化. 時, 大儒公孫弘董仲舒等皆以為音中正雅, 立之大樂. 春秋鄉射, 作於學官, 希闊不講. 故自公卿大夫觀聽者, 但聞鑑鎗, 不曉其意, 而欲以風諭眾庶, 其道無由. 是以行之百有餘年, 德化至今未成. 今嘱等守習孤學, 大指歸於興助教化. 衰微之學, 興廢在人. 宜領屬雅樂, 以繼絕表微. 孔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河間區區, 不國藩臣, 以好學修古, 能有所存, 民到于今稱之, 況於聖主廣被之資, 修起舊文, 放鄭近雅, 述而不作, 信而好古, 於以風示海內, 揚名後世, 誠非小功小美也.

事下公卿, 以為久遠難分明, 當議復寢.

是時, 鄭聲尤甚.

黃門名倡丙彊, 景武之屬富顯於世, 貴戚五侯定陵, 富平外戚之家淫侈過度, 至與人主爭女樂.

哀帝自為定陶王時疾之, 又性不好音, 及即位, 下詔曰: 惟世俗奢泰文巧, 而鄭衛之聲興. 夫奢泰則下不孫而國貧, 文巧則趨末背本者眾, 鄭衛之聲興則淫辟之化流, 而欲黎庶敦朴家給, 猶濁其源而求其清流, 豈不難哉. 孔子不云乎. 放鄭聲, 鄭聲淫. 其罷樂府官. 郊祭樂及古兵法武樂, 在經非鄭衛之樂者, 條奏, 別屬他官.

丞相孔光, 大司空何武奏: 郊祭樂人員六十二人, 給祠南北郊.

大樂鼓員六人, 嘉至鼓員十人, 邯鄲鼓員二人, 騎吹鼓員三人, 江南鼓員二人, 淮南鼓員四人, 巴俞鼓員三十六人, 歌鼓員二十四人, 楚嚴鼓員一人, 梁皇鼓員四人, 臨淮鼓員三十五人, 茲邡鼓員三人, 凡鼓十二, 員百二十八人, 朝賀置酒陳殿下, 應古兵法.

外郊祭員十三人, 諸族樂人兼雲招給祠南郊用六十七人, 兼給事雅樂用四人, 夜誦員五人, 剛別柎員二人, 給盛德主調篪員二人, 聽工以律知日冬夏至一人, 鐘工磬工簫工員各一人, 僕射二人主領諸樂人, 皆不可罷.

竽工員三人, 一人可罷.

琴工員五人, 三人可罷.

柱工員二人, 一人可罷.

繩弦工員六人, 四人可罷.

鄭四會員六十二人, 一人給事雅樂, 六十一人可罷.

張瑟員八人, 七人可罷.

安世樂鼓員二十人, 十九人可罷.

沛吹鼓員十二人, 族歌鼓員二十七人, 陳吹鼓員十三人, 商樂鼓員十四人, 東海鼓員十六人, 長樂鼓員十三人, 縵樂鼓員十三人, 凡鼓八, 員百二十八人, 朝賀置酒, 陳前殿房中, 不應經法.

治竽員五人, 楚鼓員六人, 常從倡三十人, 常從象人四人, 詔隨常從倡十六人, 秦倡員二十九人, 秦倡象人員三人, 詔隨秦倡一人, 雅大人員九人, 朝賀置酒為樂.

楚四會員十七人, 巴四會員十二人, 銚四會員十二人, 齊四會員十九人, 蔡謳員三人, 齊謳員六人, 竽瑟鐘磬員五人, 皆鄭聲, 可罷.

師學百四十二人, 其七十二人給大官挏馬酒, 其七十人可罷.

大凡八百二十九人, 其三百八十八人不可罷, 可領屬大樂, 其四百四十一人不應經法, 或鄭衛之聲, 皆可罷.

奏可. 然百姓漸漬日久, 又不制雅樂有以相變.豪富吏民湛沔自若, 陵夷壞于王莽.

今海內更始, 民人歸本, 戶口歲息, 平其刑辟, 牧以賢良, 至於家給, 旣庶且富, 則須庠序禮樂之敎化矣.

今幸有前聖遺制之威儀, 誠可法象而補備之, 經紀可因緣而存著也.

孔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 可知也. 周因於殷禮, 所損益, 可知也. 其或繼周者, 百世可知也.

今大漢繼周, 久曠大儀, 未有立禮成樂, 此賈宜, 仲舒, 王吉, 劉向之徒所為發憤而增嘆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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