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
욕심 없고 마음이 깨끗해야 뜻을 밝게 가질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원대한 포부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澹 : 맑을 담(氵/13)
泊 : 배댈 박(氵/5)
明 : 밝을 명(日/4)
志 : 뜻 지(心/3)
寧 : 편안할 녕(宀/11)
靜 : 고요할 정(靑/8)
致 : 이를 치(至/4)
遠 : 멀 원(辶/10)
출전 :
○회남자(淮南子) 주술훈(主術訓)
○제갈량(諸葛亮) 계자서(戒子書)
국내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 한 달 전에 세로로 써서 남긴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문장은 회남자(淮南子) 주술훈(主術訓)에 나오는 문장이다. "마음에 욕심이 없어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원대한 이상을 이룰 수 없다(是故淡漠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그러나 이 말은 제갈량(諸葛亮)이 계자서(戒子書)에 인용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제갈량을 정말 좋아한 이유는 단지 신출귀몰한 책략 때문만이 아니라 따로 있었다.
계자서(誡子書)를 읽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계자서'는 제갈량이 전장에서 죽기 직전, 8세 된 아들에게 남긴 유언 같은 글이다.
한자로는 총 86자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아비의 절절한 부정과 함께 그가 평생 지켜온 인생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조금 길지만 전문을 살펴보자.
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무릇 군자는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도달할 수 없다.
夫學須靜也, 才須學也.
무릇 배움은 고요해야 하고, 재능은 모름지기 배워야 얻는다.
非學無以廣才, 非靜無以成學.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慆慢則不能硏精, 險躁則不能理性.
오만하면 세밀히 연구할 수 없고, 위태롭고 조급하면 본성을 다스릴 수 없다.
年與時馳, 志與歲去, 遂成枯落, 多不接世, 悲嘆窮廬, 將復何及也.
나이는 시간과 함께 내달리고, 뜻은 세월과 함께 떠나가니, 마침내 낙엽처럼 떨어져 세상에서 버려지니, 궁한 오두막집에서 탄식해본들 장차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
어린 아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심오한 내용이다. 제갈량은 그의 아들이 '계자서'를 평생 의 원칙으로 지켜나가면 인생에서 큰 낙오점은 없으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제갈량의 마음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나이든 사람이라면 '궁한 오두막집에서 탄식한다'는 '궁려(窮廬)의 탄식'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흰 머리만 늘어나는 자신을 볼 때면 더욱 그럴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 또한 너도 나도 앞장서서 궁려의 탄식을 쏟아냈다. 몸이 갑자기 쇠약해지거나 과거에 했던 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밀려드는 회한 때문에 이구동성으로 탄식했다.
누군가는 '그럭저럭 지내다 보니 반생이 어그러졌다'고 탄식했고, 누군가는 '고식적인 안일만 꾀하다가 허송세월 했다'고 탄식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해 붓을 들었다. 아직 구만리 같은 인생을 앞 둔 자식과 조카와 후배들에게 제갈량의 마음을 담아 간곡한 어조로 편지를 띄웠다.
인생에 대해 빠삭하게 안다고 자부하는 나도 이렇게 후회가 많은데 부디 너희들은 나처럼 살지 말아라. 그런 뜻이 담겼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진리가 있기 마련인 것을.
훗날 제갈첨(諸葛瞻)은 위나라 등애(鄧艾)와 싸울 때 심모원려(深謀遠慮) 전략을 세우지 못해 패했지만, 우국의 굳센 뜻은 버리지 않고 장렬히 전사했으니 부친의 유훈을 절반은 지킨 셈이다.
제갈량은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고, 병법에도 정통한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어째서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으로 아들을 가르쳤을까?
사실 제갈량은 아들 제갈첨이 담박하기를 즉 욕심이 없기를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담박하게, 즉 목표도 없고 이룬 바도 없이 속세를 떠나 산에 은거하여 무위도식 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또한 아들이 '영정(寧靜)', 즉 평온하고 안일하게 세월을 보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갈량은 아들이 '담박명지(澹泊明志)' 하여 마음에 잡념이 없기를 바랐다. 욕심이 없어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더욱 명확하고 강한 야망이 생길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상태라면 명성과 관심에 얽매이지 않고, 세간의 화려한 유혹에 잠식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담박(淡泊)의 기운은 물이 세차게 흘러 생기는 안개처럼 부드러우며, 비바람이 몰아쳐도 변함없이 꼿꼿이 서 있는 소나무나 잣나무처럼 의연하다.
이와 함께 제갈량은 아들에게, 영정치원(寧靜致遠), '평온하지만 멀리 다다른다'는 훈계를 했다. 선량한 마음을 간직하고 경솔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이 평온해야 높디높은 하늘처럼 넓고 깊을 수 있다.
'담박'의 기운으로 사람의 뜻은 더욱 확고해 질 것이며, '영정(寧靜)'의 마음으로 사람은 지혜를 더해 만물을 통찰하고 당황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궁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얻었을 때 비로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람이 눈앞의 득실을 따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세상을 아우르는 지혜와 통찰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마음이 뿌옇게 흐려져 있고 욕심의 찌꺼기가 많은 사람은 올바른 뜻을 명확하게 세우기가 힘들다. 또한 마음이 불안하게 요동치는데 멀리 바라보는 안목이 생길 리가 없다.
담박함과 고요함이 위인들만을 위한 미덕이라 생각하지는 말자. 그것은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유용한 덕목이다. 그런데 그것은 한순간의 생각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평소 마음의 수양을 통해 서서히 길러지는 것이다.
조용한 곳에서 차분한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혹은 멀리 갈 필요 없이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끊고 차분히 숨 고르며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담박함과 고요함의 힘을 키우는 데 분명 도움을 줄 것이다.
⏹ 부모의 공부 타령
누구나 느끼듯 자기 자식 가르치기가 제일 어렵다. 부모로서 몇 마디 좋은 말이라도 해줘야 할 텐데 이게 참 어렵다. 그래서 옛 글에서 지혜를 빌려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중국인들이 신기묘산(神機妙算)이라고 칭송하고, 삼국지 팬들에게 지혜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제갈량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제갈량은 17세에 혼인을 했는데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다. 부득이 동생의 아들 제갈교를 양자로 들였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47세에 아들 제갈첨이 태어났다.
그 귀한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보내준 편지가 ‘계자서(誡子書)’이다. 계자서(誡子書)는 제갈량이 54세에 죽음에 임하여 8세 난 아들에게 훈계하며 준 글이다.
후에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諸葛瞻)은 유비의 아들인 2대 황제 유선(劉禪)의 행군호위장군(行軍護衛將軍)으로 중용됐는데 사마의 휘하의 장군 등애(鄧艾)로 부터 낭야왕(琅耶王)으로 봉하겠다는 것을 거절하고 전사했으나, 황제 유선은 항복하여 안락공(安樂公)에 봉해져 낙양에서 편안하게 천수를 누렸다.
誡子書 / 諸葛亮
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무릇 군자는 행함에 지조가 있어야 하나니, 욕심 없는 평온한 마음으로 몸을 닦아야 하고, 근검과 절약으로 인품과 덕성을 길러야 한다.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담박하지 않은 마음으로는 자신의 뜻을 명확하게 밝힐 수 없고, 바깥 것에 흔들리는 마음으로는 원대한 목표에 이를 수 없다.
夫學須靜也, 才須學也, 非學無以廣才, 非志無以成學.
배울 때는 고요한 마음을 유지해야 배울 수 있는데, 배움 없이 재능을 키울 수 없고, 뜻한 바 없이 이뤄지는 배움도 없다.
慆慢則不能勵精, 險躁則不能冶性.
거리끼는 것이 없고 게을러서는 정신을 진작할 수 없고, 조급하고 위험스러워서는 마음을 기르고 닦을 수 없다.
年與時馳, 意與日去,
遂成枯落, 多不接世,
悲守窮廬, 將復何及.
세월은 시간 따라 나는 듯이 달려가고, 의지도 세월 따라 흘러가는데, 시들어 지고 말면 세상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못한 채, 슬프게 부서진 집이나 지키고 있게 될 테니, 그때 가서 후회와 원망을 어찌 감당하겠느냐!
군자는 평정심으로 수신하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 욕심 없이 담담해야 의지를 분명히 할 수 있고, 고요하게 집중해야 원대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고요함 속에서 공부가 완성되며 재능은 공부에서 얻어진다. 공부해야 재능을 넓힐 수 있고 의지가 있어야 공부를 완성할 수 있다. 방종하고 태만하면 정신을 연마할 수 없으며 거칠고 조급하면 성정을 도야할 수 없다.
순식간에 나이가 들고 의지도 세월 따라 약해지면, 결국 쇠락하고 쓸모가 없어져 세상에서 버려진다. 그때에 쓸쓸히 궁색한 집구석을 지키면서 후회한들 어찌하리.
수신(修身)과 입지( 志)의 자세를 요약한 명언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이 여기서 나왔다. 중국인들 집에 가면 이 글귀를 써서 걸어 놓은 경우가 많다.
죽음을 예견 했던걸까. 이 글을 보낸 해에 제갈량은 54세로 전장에서 생을 마친다. 그때 제갈첨은 8세였다. 그래서인지 글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애잔해진다. 그 어린 아들이 무얼 알겠는가. 그래도 애절한 마음으로 붓을 잡아 글을 써내려간 아비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제갈첨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후일 촉한 황제의 사위가 되었다. 승승장구 하던 그는 263년 위나라의 공격에 맞서 싸우다가 아들 제갈상과 함께 전사한다. 역사 앞에 인생이란 이렇게 비감한 것인지. 정녕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인가.
제갈첨의 비극은 제갈량의 일생을 더욱 고단하고 슬퍼 보이게 한다. 그래도 애써 위안해 보면, 제갈량은 후인들에게 자식 교육의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었으니 '계자서'에 들인 정성이 헛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렇게 자식 교육을 위해서 고심한 부모들이 만든 결정체가 '가훈(家訓)'이다. 가훈(家訓)이라고 하면 근면, 정직 등등 간단한 몇 마디 좋은 말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원래 가훈은 책 이름이었다. 중국 남북조(南北朝)시대 양(梁)나라 출신 안지추(顔之推)가 저자이다.
그의 '가훈'은 여타의 가훈과 구별하기 위해 '안씨가훈'이라 부르는데, 총 20편 약 5만 여자로 사회생활 전반에 걸친 자신의 생각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중국에서는 '안씨가훈'을 '가훈의 시조(家訓之祖)'라고 평가하고 있다.
안지추가 '가훈'을 남긴 데는 사연이 있다. 그는 9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린 동생이 불쌍했던 큰 형은 그를 응석받이로 키웠다. 한없이 너그럽지만 위엄이 없는 형이 아버지 노릇을 하면서 안지추는 멋대로 생활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술독에 빠져 있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위도식하던 그에게 24세에 겪은 조국의 멸망은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그로부터 포로 생활이 시작된다. 정말 운도 없는지 끌려간 나라도 또 망해서 계속 유랑의 신세였다.
서위(西魏), 북제(北齊), 북주(北周)를 거쳐 수(隋)나라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해 느낀 모든 것들을 가훈을 통해 후손들에게 말하려 한 것이다.
너무 할 말이 많았는지 자신의 기막힌 인생 유전을 '논어'의 편수에 따라 20편으로 정리하였다. 자신의 경험담과 생각을 적절히 섞어 글을 풀었는데 마치 한 편의 자서전을 읽는 것 같다.
그가 서위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같이 끌려간 양나라 귀족들은 공리공담에만 익숙할 뿐 세상의 실무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자들이었다. 입들은 살아있고 지식인 행세를 하니 문서 정리라도 할 줄 알았는데 심지어는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자가 태반이었다.
서위의 권세가들은 하사받은 양나라 귀족 출신 포로들을 살려두지 않았다. 공밥을 먹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안지추는 글을 읽고 쓸 수 있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무엇이든 기술 하나는 익혀야 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기술 가운데 가장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 공부라고 강조하고 있다. "무릇 배움이란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봄에는 그 꽃을 즐기고 가을에는 그 열매를 얻는 것이니, 서로 토론하고 글을 짓는 것은 봄의 꽃이요, 자신을 수양하고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은 가을의 열매이다."
안지추는 '춘화추실(春華秋實)'이란 성어로 공부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개괄하고 있다. 우리네도 자식에게 늘 공부 타령을 하지만, 제갈량과 안지추가 강조하는 공부와는 결이 달라 보인다. 그들이 말한 공부는 바른 사람 만들기가 수반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