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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유교무류(有敎無類)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20.07.01|조회수508 목록 댓글 0

유교무류(有敎無類)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有 : 있을 유(月/2)
敎 : 가르칠 교(攵/7)
無 : 없을 무(灬/8)
類 : 무리 류(頁/10)

출전 :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이 말은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다는 공자의 말이다.

논어(論語)의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말이다. 호향(互鄕)이란 곳은 풍기가 문란하고 천한 직업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어느 날 그곳에 사는 한 아이가 공자를 만나러 왔기 때문에 제자들이 돌려 보내려고 했으나 공자는 그 아이를 맞아 그가 묻는 말에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제자들이 공자의 이러한 태도을 보고 의아해 하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깨끗한 마음으로 찾아오면 그 마음만을 받아들이면 됐지 그 사람의 과거와 행동까지 따질 것이 있느냐." 공자는 제자들의 차별의식을 안타까워 했다.

공자는 실제로 그에게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최소한도의 예의만 지키면 신분의 고하, 재산의 많고 적음과 나이의 고하를 묻지 않고 받아 들였는데 신분과 계급의 차별이 엄격했던 3천년 전에 공자의 이러한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신선할 정도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공자는 뛰어난 교육학자이자 사상가로서 많은 제자들이 따랐고 당시에는 물론 현재까지도 성현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우리 주변의 일부 지역에서는 자녀에게 "비싼 아파트 평수의 크기에 따라 친구와 어울리라"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특정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함께 공부할 수 없도록 해달라는 요구나 서로 간의 통행조차도 막는 곳이 있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장애학생 시설을 혐오시설로 여겨 자기 지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극렬한 시위를 한다거나 새터민, 다문화 학생에 대한 정서적 차별, 성적우수자와 그렇지 못한 학생의 차별적 대우 등 교육계 곳곳에서도 알게 모르게 교육적 불평등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곤 한다.

교육이란 자신의 덕과 지식을 쌓고 배려하고 어울리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학교와 교사의 할 일은 무엇보다 학생에 대한 고른 사랑이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일수록 더욱 보살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가르치는 대가로 비록 한 묶음의 말린 고기(乾肉)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해도 나는 어떠한 사람에게나 차별 없이 교육을 했다"고 말한 수천 년 전 공자의 사도(師道) 실천은 그래서 더욱 울림이 크다.

오늘날 '가르치고 배움에 계층과 계급, 잘 살고 못사는 구분이 없다'는 '유교무류(有敎無類)'의 말을 되새겨 우리 모두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을 다잡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유교무류(有敎無類)

이 말을 한자 없이 언뜻 들으면 유교(儒敎)에 잘못이 없다거나 유교가 가장 뛰어나다는 뜻으로 알기 쉽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가르치는 데(有敎)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無類)는 공자(孔子)의 말이다.

공자는 최고의 스승으로 꼽히는 만큼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인(仁)을 실천하기 위한 교육에 빈부나 귀천, 노소를 불문하고 가르침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예의만 차리면 가르쳤던 속수지례(束脩之禮)란 말이 전한다. 가난해도 열 조각의 말린 고기만 있으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논어(論語)에는 곳곳에 공자의 교육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가르침이 있을 뿐 대상에 빈부귀천의 차이는 없다(子曰 有敎無類)'는 구절은 위령공(衛靈公)편에 실려 있다.

이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해석이 있는 중 남북조(南北朝) 시대 양(梁)나라의 경학자 황간(皇侃)의 주(註)를 많이 따른다.

사람에게 귀천이 따르지만 재주에 따라 가르쳐야 한다며 '가르치면 선하게 되니, 차별은 없는 것(敎之則善 本無類也)’이라 봤다.

송(宋)나라의 유학자 주희(朱熹)는 사람의 본성이 다 선하니 구분 없이 가르친다면 본래의 선을 회복한다고 해석한다.

공자가 가르침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는 예는 여러 제자를 보고 알 수 있다. 수제자 안회(顔回)는 단사표음(簞食瓢飮)이란 말이 전하듯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으나 자공(子貢)과 염유(冉有)는 부유한데다가 재산도 많이 모았다.

현명한 안회에 비해 우직한 자고(子羔)도 있었고, 덕행을 칭찬한 중궁(仲弓)이 있었는가 하면 자로(子路) 같은 불량배 출신도 껴안았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더 문제가 안 되는 듯 안회의 아버지 안로(顔路)도 제자가 된 적이 있다. 태어난 노(魯)나라 뿐 아니라 각국을 주유하다 보니 여러 나라 출신이 다양하게 제자로 들어왔다.

사람이 날 때부터 능력에 차별이 없을 리 없지만 공자는 스승이 제자의 개성을 파악하여 옳게 지도한다면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엄격했을 시기였을 텐데 공자의 이런 가르침은 오늘날 더욱 돋보인다.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부유층은 사교육으로 어릴 때부터 앞서 나간다.

개천에서 용 나온다는 이야기는 사시(司試)가 폐지된 뒤로는 지역까지도 높이 성이 쳐져 옛이야기가 됐다. 차별이 없는 교육은 옛 책 속에만 있다.


⏹ 유교무류(有敎無類)

가르칠 때 사람을 가리지 말라

근대는 민족국가의 시대다. 나라마다 자기 민족의 융성을 추구했고, 이를 위해 산업화에 힘썼다. 민족 융성과 산업화를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었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른바 국민 교육을 실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국민 교육은 민주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결코 아니었음에도 결론적으로는 주인 노릇을 할 시민을 기르는 구실을 해왔다.

오늘날 교육은 모든 시민의 권리가 되었지만, 인류의 문명사를 돌아보면 교육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가 결코 아니었다.

처음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는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도 배움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하물며 왕이나 황제가 전제(專制)하며 통치했던 곳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인류의 문명사는 어쩌면 배울 권리, 배우는 사람의 범위가 확장되어 온 역사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왕에서 귀족 또는 성직자로, 귀족 또는 성직자에서 민중으로.

동아시아 역사에서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배울 수 있다고 선언하고 실행한 최초의 인물은 공자(孔子)다. 그 자신 몰락한 귀족의 사생아나 다름이 없었던 공자는 어려서부터 당시 지식이 집약되어 있던 예악(禮樂)을 배우는 데 힘썼다.

공자는 예악의 붕괴를 탄식했지만, 그 붕괴가 공자처럼 기득권에서 밀려나 있던 존재에게는 도리어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한낱 노예나 다름이 없던 민중도 배워서 역량을 발휘해 신분을 세탁할,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편에, "말린 고기 한 묶음 이상을 들고 스스로 찾아온 자라면, 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고 한 공자의 말이 나온다.

가난하고 미천한 자라도 배우려는 뜻을 품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자라면, 누구나 가르쳤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유교무류(有敎無類) 곧 "가르칠 때 사람을 가리지 말라"고 말했다. 오늘날 교육을 돈벌이로 여기는 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 유교무류(有敎無類)

공자는 인류 최초의 사학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자를 따르는 제자가 3000명 정도였으니 어떻게 그토록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는 바로 공자의 교육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사람은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교육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공자는 강조한다.

유교무류(有敎無類)
가르침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공자가 공평한 가르침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호향(互鄕)이라는 마을에서 한 소년이 공자를 찾아왔다. 그 곳은 천민들이 천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살고 있는지라 풍기가 문란한 곳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제자들이 소년을 돌려 보내려고 했으나 이를 본 공자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묻는 말에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고 있었다.

제자들이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자 공자가 "사람들이 깨끗한 마음으로 찾아오면 그 마음만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 사람의 과거와 행동까지 따질 것이 있느냐"면서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차별의식을 두지 말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공자는 공부하려는 사람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있으면 신분, 연령, 지위, 재산 등에 관계없이 열린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자에게 구름처럼 몰려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자공과 염유는 부자였지만 안회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맹의자는 신분이 높았지만 자로는 신분이 낮았다. 나이도 천차만별이어서 안로는 공자보다 53세나 적어 최연소 제자가 되었다. 출신지역도 공자의 고향인 노(魯)나라 뿐만 아니라 자하는 위(衛)나라, 자장은 진(陳)나라 출신이었다.

공자는 이 같은 사회적인 차별은 교육에 걸림돌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다만 제자들이 학문적으로 얼마나 성장하고 인격적으로 성숙되느냐를 가지고 평가하려고 했다. 그래서 제자들의 수준에 따라 맞춤식 교육을 제공하였기에 많은 제자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최근에 일어난 기적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은 무엇일까. 아마도 오바마의 기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탄생은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자리매김 해주고 있다.

미국은 기회의 나라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해서 그렇다. 기적의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분석과 설명이 있다. 오바마가 능력과 인품을 갖추었고 상대방 후보인 매케인이 고령이라는 점도 큰 행운이었다.

특히 최고의 일등공신은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다. 그러나 오바마 기적의 원초적인 근원지는 어디일까.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오바마는 하바드대학을 졸업했다. 만약 그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면 오늘의 기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교육은 인종과 신분의 벽을 뛰어 기적을 만들어 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세계 13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높은 교육열을 꼽는다. 한국처럼 아침에 호텔이 공부하는 모임들로 호황을 누리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전국의 유명강사를 초빙하여 공부하는 모임이 늘어나고 있다. 공부의 열풍이 계속되는 한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다.

요즈음 만나는 사람마다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 IMF의 쓰라린 경험이 있어 더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경험은 우리에게 지혜를 공급해 준다.

많은 전문가들이 "만약 IMF외환위기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경제는 너무나 심각한 상황을 겪고 있을 것이다"고 진단한다. 이미 우리는 소중한 체험을 가지고 있다.

공자가 강조한 유교무류(有敎無類)의 자세는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주는 것임과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배우는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다.

가르침을 주는 모든 사람도 스승으로 예우하는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심지어 불황조차도 훌륭한 스승으로 여기는 열린 마음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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