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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

작성자時雨|작성시간20.08.14|조회수6,640 목록 댓글 0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

군자의 복수는 10년을 참아도 늦지 않는다는 뜻으로, 인내를 하면서 실력을 쌓아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君 : 임금 군(口/4)
子 : 아들 자(子/0)
報 : 갚을 보(土/9)
仇 : 원수 구(亻/2)
十 : 열 십(十/0)
年 : 해 년(干/3)
不 : 아닐 불(一/3)
晩 : 늦을 만(日/8)


사마천 사기(史記)의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인의 '복수(復讐) 철학'을 언급할때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기도 하다.

이 말에는 복수도 중요하지만 '인내를 하면서 실력을 닦는다'는 교훈도 담겨있다. 즉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는 뜻도 녹아있는 것이다.

범저(范雎)는 위(魏)나라 출신이다. 그는 가난해 유세에 나설 돈조차 없어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를 섬겼다.

수가가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게됐는데, 범저가 수행원으로 따라갔다. 제나라 왕은 범저의 재주를 알아보고 황금과 음식을 보내는 등 그를 환대했다.

그런 범저를 수가는 시샘했다. 귀국하자 수가는 범저를 모략했다. 범저는 심한 태형을 받았고 죽은 체하여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마침 그 무렵 진(秦)나라에서 온 사신 왕계(王稽)를 알게되어 진나라로 들어갔다. 왕계는 진 소왕(昭王)에게 "뛰어난 변사(辯士)가 있다"면서 그를 천거했다.

후에 그는 진나라 재상이 되었고 결국 위나라를 쳐서 원수를 갚았다. 사마천은 이를 두고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이리고 표현했다.

중국은 복수의 나라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절치부심(切齒腐心), 굴묘편시(掘墓鞭尸) 등 복수와 관련된 고사성어가 즐비하다. 지금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以眼還眼, 以牙還牙)라는 복수 철학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미국이 휴스턴 소재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하자 청두(成都)의 미국 총영사관을 폐쇄하는 맞대응에 나선 것을 보면 그렇다. 이러는 사이 양국간 대립은 첨예화되고 있다.

하지만 노자는 "원수를 덕으로 갚으라(報怨以德)"고 말했고, 공자도 "올곧음으로 원수를 갚으라(以直報怨)"고 가르쳤다. 복수보다 용서를 택하라는 말이다. 복수란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 군자는 복수를 하는데 십 년을 기다린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중국 속담이다. "군자는 복수를 하는데 십 년을 기다린다." 성급하게 해서는 일을 그르친다는 의미로, 중국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책략과 맥을 같이 한다.

도광양회는 빛을 감추어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으로, 자신의 실력과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이다.

도광양회는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조조의 식객으로 머물면서 스스로를 낮추며 때를 기다렸던 일화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어느 날 조조가 "지금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유비 그대와 나 조조 둘 뿐이오"라 말하자, 유비는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리며 놀라는 시늉을 했다.

당시 세력이 약해 조조에게 의탁하고 있던 유비는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척하며 조조로 하여금 경계심을 늦추게 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영웅이라고 하니 놀랄 만큼 황송하다는 시늉을 한 것으로, 천하를 도모하려는 큰 뜻이 없는 것처럼 속이려 한 유비의 계책이라고 하겠다.

도광양회는 1980년대 등소평이 중국 대외정책의 기본으로 채택하면서 우리에게 더 널리 알려졌다.

등소평의 도광양회는 외국으로부터 불필요한 견제와 간섭을 피하면서 내부적으로 국력을 키우기 위한 개혁 개방 정책이었다.

우리가 역사에서 이름을 접하게 되는 많은 인물들은 때를 기다렸던 사람들이다. 강태공 태공망 여상은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위수에서 곧은 낚시를 드리운 채 때를 기다렸다. 그는 결국 주 문왕에게 밭탁되어 주나라가 은나라를 물리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춘추시대 초 장왕은 왕위에 오른 뒤 자신과 함께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충신을 가리기 위해 3년 동안이나 짐짓 방탕한 생활을 하는 불비불명(不飛不鳴)의 기간을 보낸 뒤 국정에 전념해 춘추오패 가운데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은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고, 쓰디쓴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날을 기다려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성어를 만들어냈다.

중국의 사마의와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내심의 대가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모두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 끝에 중국 삼국시대와 일본 전국시대의 최종 승리자로 자리매김을 했다.

사람들이 삼국지에서 주목하는 인물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져 왔다. 한때는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와 제갈량이 주목을 받았지만 조조에게로 관심이 옮겨가더니 최근에는 사마의(중달)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사마의는 평생 조조와 그의 친족들에게 숱한 의심과 모함을 받으면서도 기다리고 버틸 줄 알았던 자기 통제의 승부사이다.

삼국지 인물들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 "만약 새가 울지 않으면, 조조는 새를 울게 만들고, 유비는 울어달라고 청하며, 사마의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들 인물들의 성격을 적절하게 비유한 표현이다.

사마의는 조조, 조비, 조예, 조방까지 4대를 보필하면서, 손자인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우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테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3대 주역이다. 이들 가운데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온갖 수모와 치욕을 참아낸 결과 '에도 시대'를 창건하고 태평성대를 이룬 인내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울지 않은 두견새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질문에 대한 세 사람의 대처법은 유명한 이야기다.

성질이 불같은 맹장 오다 노부나가는 새가 울지 않으면 바로 죽여 버리고, 전략가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가 울지 않으면 달래어 울게 만들며, 덕장 스타일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 그것이다.

일본의 전국 통일은 오다 노부나가는 밭을 갈고,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씨를 뿌린 것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확했다고 할 수 있다.

蹞步而不休, 跛鱉千里.
(규보이불휴 파별천리)
온전치 못한 걸음이라도 쉬지 않고 걸으면 절뚝거리는 자라도 천리를 갈 수 있다.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의미로, 춘추시대 순자가 했던 말이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나아갈 때가 있고 멈춰야 할 때가 있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이밍은 승부수를 띄워야 할 시점을 말하는 것으로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

섣부른 행동보다는 최적의 기회가 올 때까지 인내하며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차분히 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이다.


⏹ 최고의 복수 - 과하지욕(胯下之辱)

굴욕을 참지 못하고 욱하며 분노 조절 못하면 패가망신 당하기 쉽다. 명심보감 계성편에도 "한때의 분노를 참으면 백일 동안 근심이 없다(忍一時之忿, 免百日之憂)"며 순간적 분노를 참으라 한다.

더구나 왕이나 장군이 화난다고 대책 없이 일을 벌이면 그 피해는 훨씬 크다. 작게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심하면 나라도 망하게 한다.

손자병법 화공 편에서 리더의 분노를 경계한다. "임금은 노여움으로 군사를 일으켜선 안되고, 장수도 분노로 싸움을 해선 안 된다. 노여움은 다시 기쁨이 될 수 있고, 분노도 다시 기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싸움에서)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 없고, 망한 나라는 다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노여움을 삼가고, 뛰어난 장수는 분노를 경계한다. 이것이 나라를 편안케하고, 군사를 온전케 하는 것이다."

한나라 대장군과 제나라 왕이 된 한신도 젊은 시절 제나라에서 빨래터 할머니에게 밥을 얻어 먹었다. 밥이나 얻어먹는 백수임에도 항상 보검을 차고 다니는 한신이 눈꼴시럽던 동네 건달들이 한신에게 시비를 건다.

그 중 한 건달은 한신에게 자기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고 한다. 굴욕적 순간이지만, 한신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 건달의 다리 밑으로 기어간다. 그 후에 동네 소문 다 나고 사람들은 한신을 대 놓고 무시한다.

일생의 흑역사인 과하지욕(胯下之辱)은 두고두고 한신을 괴롭힌다. 한신이 항우를 찾아가 일할 때도 과하지욕 소문을 들은 항우는 한신을 천하에 비겁한 놈이라며 무시한다.

견디다 못한 한신은 유방을 찾아가지만 유방 역시 소문을 듣고 쓰려고를 안 한다. 절망한 한신은 유방도 떠나려고 한다. 그러나 한신은 출세 길을 여러 번 막은, 과하지욕을 멋진 복수로 마무리 한다.

한신은 제왕이 되자, 흑역사의 조연인 건달들과 공짜 밥을 주었던 빨래터 할머니도 찾아낸다. 모두 건달들이 능지처참 당하리라 생각하지만, 한신은 파격적으로 그 건달 두목을 경찰서장에 임명한다. "내가 너한테 참는 것을 배웠다"고 한마디 한다.

최고의 복수는 보복이 아닌 성공임을 통해, 과거 흑역사도 멋진 스토리로 만든 한신에게 제나라 민심은 확 돌아선다.

결과론이지만 10면 매복으로 항우도 죽인 뛰어난 전략과 멋진 복수로 제나라 민심도 휘어잡는 뛰어난 정치 감각은 결국 유방의 두려움을 사서 토사구팽 당한다.

그러나 한신은 젊은 시절 가난과 멸시, 분노를 견디며 대장군과 왕이 되고, 최고의 복수가 성공임을 보인 대단한 사람이었다.

현재의 아베의 후안무치한 태도는 분노와 모멸감을 부릅니다. 그러나 한신의 과하지욕을 생각하면서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면 좋겠다.

분노를 잠시 내려놓고, 유비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처럼 실력을 길러 우리가 강국이 되면 그게 큰 복수이다.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언제든 복수할 기회는 오고,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결코 늦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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