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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운명]음덕양보(陰德陽報)

작성자時雨|작성시간20.10.13|조회수1,839 목록 댓글 0

음덕양보(陰德陽報)

드러나지 않게 덕행을 베풀면 드러나는 보답이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좋은 일을 베풀면 반드시 그 일이 드러나서 갚음을 받는다는 말이다.

陰 : 숨을 음(阝/8)
德 : 덕 덕(彳/12)
陽 : 나타날 양(阝/9)
報 : 갚을 보(土/9)

출전 :
회남자(淮南子) 인간훈편(人間訓篇)
열녀전(列女傳) 인지편(仁智篇)


음덕양보는 음덕을 베풀면 드러나는 보답(報答)이 있다. 곧 남모르게 덕을 베풀면 밖으로 드러나는 보답을 받는다. 음덕은 남이 모르게 행하는 선행, 양보는 똑똑히 나타나는 경사스런 보답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숨은 노력은 반드시 보답을 받게 된다.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명재상(宰相)이던 손숙오(孫叔敖)의 고사가 대표적이다. 손숙오(孫叔敖)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밖에서 놀다가 양두사(兩頭蛇; 머리가 둘 달린 뱀)를 보고 죽여서 땅에 묻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집에 돌아와 밥을 먹지 못하고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으니 손숙오가 울면서, "저는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본 사람은 죽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그런 뱀을 보았습니다. 머지않아 저는 죽을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가 다시 물어보았다. "그래, 그 뱀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이냐?"

손숙오가 대답하길, "그 뱀을 본 사람은 죽게되므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죽여서 땅에 묻었습니다"고 말하였다.

아들의 말을 다 들은 어머니는, "남모르게 덕행(德行)을 쌓은 사람은 그 보답을 받는다(陰德陽報)고 들었다. 네가 뱀을 죽인 것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配慮)였으므로 너는 그 보답으로 죽지 않을 것이며 숨은 행실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명성을 얻게 된다"고 말하였다.

그 후 손숙오의 어머니 말처럼 그는 일찍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젊었을 때도 백성들이 그의 어짊을 존경하고 따랐다. 그는 장성해서 초나라의 재상이 되어 훌륭한 재상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물론 보답을 목적으로 음덕을 베푼 것은 아니지만, 음덕을 베풀다보면 결과적으로 양보(陽報)가 따라 오게 되는 것이다.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 교훈에 '착한 일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남겨지는 경사(慶事)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 하고,

명심보감에도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른 것 같이 하며, 악한 말을 듣거든 귀머거리처럼 하라(見善如渴, 聞惡如聾)'는 말과 함께,

모든 사람들에게 경계(警戒)의 말로, '오이씨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種瓜得瓜, 種豆得豆)'는 말이 있다.

이는 곧, 선을 행하면 경사(慶事)나 복(福)을 받게 되고, 악을 행하면 그 결과는 혹독하고 참혹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경고하는 교훈인 것이다.

머리 둘 달린 뱀을 죽여 다른 사람을 살리려했던 손숙오는 그 음덕으로 인하여 훗날 재상이 되었다.

또 다른 고사(故事)로는 연회장에서 신하의 난처한 입장을 모른 척 용서한 초장왕(楚莊王)의 '음덕은 나라의 강성(强盛)과 왕권강화(王權强化)라는 큰 보답을 받게 된다'는 뜻을 가진 절영지연(絶纓之宴)이라는 고사도 있다.

즉,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쌓아가는 덕행은 반드시 행복과 기쁨으로 보답을 받는다는 음덕양보의 논리야말로 따뜻한 마음을 상실해가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에도 "너는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은밀(隱密)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3-4)는 말씀이 있다.

남이 모르도록 하면서 보답을 받고자하는 생각 없이 남을 돕는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복으로 갚아준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살아가는데 세 가지 덕(三德)을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 첫째는 남이 알지 못하는 음덕(陰德), 둘째는 마음으로 남을 도우려고 동정하는 심덕(心德), 셋째는 권력과 재물로써 남을 돕는 공덕(功德)이다. 이 가운데 가장 으뜸 되는 것은 물론 음덕이라 하였다.

진실된 덕행이란 이와 같이 음덕을 말하며, 아무 보답도 바라지 않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는 것이지만 언젠가는 세상이 훤히 알 수 있는 보답이 돌아오게 된다는 교훈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작은 공덕을 베푸는 척하면서 이를 끝없이 공치사(功致辭)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 도리어 씁쓸하다. 특히 고위 공직자나 유명 연예인 일수록 생색내기의 공덕이 심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연말이 되면 해마다 보이지 않는 익명(匿名)의 이웃돕기의 훈훈한 뉴스를 접하곤 하는데 그 때마다 따뜻한 세상을 느끼게 된다.

남을 대함에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같이 엄격하게 대하라(待人春風, 持己秋霜)는 선현(先賢)들의 말씀이 큰 울림이 되어 부패되고 혼란한 현대인의 양심과 감정에 또 다른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


⏹ 음덕양보(陰德陽報)

남모르게 덕을 쌓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

한 농부가 농산물 경진대회에 옥수수를 출품해 1등을 차지했다. 다년간의 노력이 만들어 낸 품종 개량의 성과였다. 알이 굵고 맛이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회에 참가했던 사람들 모두 부러워했다.

그런데 농부는 마을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그 옥수수의 씨앗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씨앗을 받아가면서 물었다. "그동안 고생을 했고 이제 겨우 결실을 보았는데, 왜 이런 귀중한 씨앗을 우리에게 나눠주는 겁니까?"

농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실은 저 잘되라고 하는 일입니다. 바람이 불면 옥수수 꽃가루가 날아다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웃에서 품질이 떨어지는 옥수수를 계속 기른다면 저도 손해거든요.

애써 품종개량을 해놓았는데 이웃의 옥수수 꽃가루가 제 밭에 날아와서 자리를 잡으면 좋을 게 없죠. 그러니까 이웃 모두가 좋은 품종을 가르는 것이 저한테도 좋은 것이죠."

준 대로 돌려받는 게 인생이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남들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자비를 베푸십시오. 또한 당신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자비를 베푸십시오."

행운은 마음을 쓰는 것으로 부터 비롯된다.

나 스스로에게 마음을 쓰고(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남들에게 마음을 써가며(돕고 배려하면서),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행운을 찾아내고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운은 행복과 밀전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어의 'happy(행복)'는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말 'happ(행운)'에서 유래했다.

세 잎 클로버와 네 잎 클로버의 관계처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가까이 있는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행운'이라는 지혜를 슬며시 드러낸다.

음덕양보(陰德陽報), 남모르게 덕을 쌓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 음덕양보(陰德陽報)

음덕양보(陰德陽報)란 ‘남이 모르게 덕행을 쌓은 사람은 뒤에 반드시 그 보답을 받게 된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기고사'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옛날 주(周)나라 사람인 손숙오(孫叔敖)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밖에 나가 놀다가 집에 와서는 밥을 먹지 않고 걱정을 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 어머니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으니 숙오는 울면서 대답했다. "제가 오늘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았습니다. 옛날부터 이런 뱀을 보면 죽는다고 했으니 저는 곧 죽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그 머리가 둘 달린 뱀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니 "그 뱀을 또 다른 사람이 보면 죽을까 걱정이 되어서 죽였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가 말했다. "은밀히 덕을 닦아 선행을 하는 사람은 그 보답으로 복을 받는다고 들었다. 니가 그런 생각으로 뱀을 죽인 것은 음덕(陰德)을 쌓은 것이므로 그 보답으로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 어머니의 말대로 되었다. 손숙오(孫叔敖)는 죽지 않고 장성하여 초(楚)나라 장왕(莊王)의 부름을 받아 재상(宰相)이 되었다.

여기서 손숙오(孫叔敖)는 어머니의 말처럼 일찍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젊었을 때부터 백성들이 그의 착하고 어짊을 따랐으며, 그가 장성해서는 초나라의 재상이 되어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이 고사에서 만들어진 말이 바로 '음덕양보(陰德陽報)'다. 이 말은 유안(劉安)이 지은 회남자(淮南子) '인간훈편(人間訓篇)'에 나오는데, '회남자'에서 이르기를 "남이 알지 못하는 음덕(陰德)과 마음으로 남을 도우려 하고 동정하는 심덕(心德), 그리고 권력과 재물로써 남을 돕는 공덕(功德)이 있지만 이 가운데 제일 큰 것은 음덕(陰德)이다"고 하였다.

이는 음덕(陰德)을 베풀면 반드시 양보(陽報)가 따른다는 음덕양보(陰德陽報)의 깊은 뜻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음덕(陰德)이란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보면 음덕(陰德)이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음지에서 행하는 덕행을 말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게 행하는 선행이다.

같은 선행이라도 다른 사람 눈에 띄는 것은 음덕(陰德)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음덕은 귀울림과 같다고 한다. 귀울림이란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음덕(陰德)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음덕(陰德)을 쌓은 자에게는 반드시 양보(陽報)가 따른다고 했다. 양보란 뜻하지 않은 때에 갚음(보답)을 받는 것인데, 그럼 누가 갚는 것일가? 이것은 바로 하늘이다.

사람이 모르는 일을 반드시 하늘은 알고 있다. 남이 모르게 쌓은 덕은 하늘이 틀림없이 갚아준다고 한다. 그래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기 자신만 아는 것이 음덕(陰德)이다.

그런데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것을 보시(布施)라 하는데, 보시와 음덕은 서로 상통하는 것이 많다. 보시(布施) 또한 덕(德)을 쌓는 일이다. 남모르게 보시하는 것이 또한 음덕(陰德)이다. 남모르게 행하는 보시야말로 진정한 음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베푼 사람은 스스로 마음을 낮추어야 한다. 베풀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바라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순수한 보시를 통하여 우리는 애착을 끊고 집착을 버리며, 마음을 비워야 한다.

햇빛은 인간에게 베푼다는 생각 없이 내리쬐어 곡식을 익히고 과일을 열매 맺게 한다. 비는 인간에게 베푼다는 생각 없이 마른 대지를 적시고 강을 이루며, 바다를 완성한다.

이 세상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남을 위해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색을 낸다. 남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각조차 없이 하는 베풂을 불교에서는 '무주 상봉시(無主相布施; 베풀었다는 생각에 머무름 없이 하는 보시)'라고 한다.

금년에는 우한 폐렴으로 인해 경제가 더 나빠진다고 하니 밝고 맑은 복덕(福德)이 가득 채워지는 음덕의 논리를 잊지 말고, 늘 나누고 배려하며 음덕(陰德)을 쌓으시기 바란다. 그러면 반드시 양보(陽報)가 따를 것이다.


⏹ 그래도 선행을 하는 게 낫다

화(禍)와 복(福)의 이치에 대하여는 옛날 사람들도 의심해 온 지 오래되었다. 충(忠)과 효(孝)를 행한 사람이라 하여 반드시 화를 면하는 것도 아니고, 음란하고 방탕한 자라 하여 반드시 박복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선(善)을 행하는 것이 복을 받는 도(道)가 되므로 군자(君子)는 부지런히 선을 할 뿐이다. 정약용(丁若鏞)

등굣길 교통사고

지금은 대학생인 딸아이 가진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아침 등굣길에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가진이는 학생이 차에 치여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도로는 학부모 차량으로 붐비는데 학생이 도로에 쓰러져 있으니 막힐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119에 신고를 했고, 그 학생도 무사했다고 한다. 사고가 난 다음날 사연을 듣게 됐다.

가진이가 말했다. "서진이(둘째)가 먼저 현장에 갔어. 나는 좀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앞에서 서진이가 '어떡해! 어떡해!' 하면서 학교에 전화를 하는 거야. 제일 먼저 본 아이는 울고 있고."

"너도 어제 손까지 떨렸다며? 지금은 괜찮아?"
"응. 괜찮지."

"만약 그 아이가 잘못 됐으면 너도 충격이 컸을 거야. 무사하니까 이렇게 웃고 있는 거지. 정말 다행이다."
"맞아. 그랬을 거 같아. 학교에 있는데, 손발이 다 떨리고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 애들하고도 이런 이야기를 했어. 트라우마가 뭔 지 알 거 같다고."

"그러게 얼마나 놀랐겠냐."
"더구나 나는 그렇게 큰 사고는 이번에 처음 봤잖아. 눈앞에서 사람이 다쳐서 피를 흘리는 거."

"그 학생이 무사하니 우선 그게 다행이고, 너는 살면서 이런 걸 다시는 안 보면 좋겠지만, 만약 보게 되면 그 때는 침착하게 대응하게 될 걸?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해라. 그런데 너 나중에 또 비슷한 일을 겪으면 어제처럼 교통정리 할 거냐?"
"하하하. 아마도? 근데 그거 하면서 참 어이가 없었어."

"뭐가?"
"사고 현장 거의 바로 앞에 있는 차도 빵빵거리는 거야. 사람이 다친 걸 몰랐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계속 그럴 수가 있어? 나 같으면 내려서 상황이라도 보겠다. 그리고 차를 빼려면 맨 뒤에 있는 차부터 후진으로 빠져야 되는데, 다들 앉아서 빵빵대기만 해."

"…"
"그래서 내가 뛰어다니면서 차 한 대 한 대 모두한테 사고가 났다고 말했어. 그 사람들 다들 학부형이잖아. 내가 교복을 입고 헐떡거리면서 다니는데, 어떤 사람은 신경질적으로 '사고요?' 하면서 자기애한테 '내려서 걸어가라'고 하는 거야."

"사람이 다쳤다고 그랬으면 반응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순간 그 생각이 안 나더라고. 그래도 사람이 다쳤다는 말은 안했지만, 사고가 났다는 말을 하는데 '사람은 다치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안 돼? 그걸 묻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네가 겪은 일 속에 우리나라 사회의 한 모습이 들어 있는 것 같네."
"맞아. 자기 아이 지각 안 하는 게 먼저야."

"너는 지각 안 했냐? 하하."
"안 했지. 다행히."

"다행이네. 그런데 지각을 하게 돼도 계속 그렇게 했을까?"
"흠, 그래도 차 빼라고 말하고 다녔을 거 같아."

"그럼 네가 손해를 보잖아."
"하하. 그러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잘했어. 그저 아빠가 생각하는 건, 좋은 일을 하고도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최소한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장치 정도는 필요하다는 거야. 만약 네가 지각을 했다면 선생님이 지각 처리를 안 해야 한다는 거지. 만약 지각을 하고 선생님께 사정을 말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지각 처리를 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는 말이잖아. 지각하고 네 뿌듯함하고 바꾸는 거도 좋은데,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그렇게 개인이 다 책임지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하하. 그건 그러네?"
"여하튼 잘 했다. 어제 정말 수고 많았어."

머리 둘 달린 뱀을 죽인 손숙오(孫叔敖)

가진이는 좋은 일을 하고 손해도 보지 않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남한테 도움을 주고 오히려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길 잃은 아이의 엄마를 찾아주다 중요한 약속 시간을 놓치기도 하고, 다친 사람을 돌봐 주다 지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선행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거나 '내 문제보다 사고를 당한 분의 일이 더 급하다'고 말한다.

이와 비슷한 옛날이야기 하나가 있다. 중국 한(漢)나라 가의(賈誼)가 쓴 '신서(新書)'에 손숙오(孫叔敖)라는 사람의 일화가 실려 있다.

손숙오는 중국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명재상이다. 손숙오가 어린 아이였을 때, 나가서 놀다가 돌아와서는 근심을 하면서 밥을 먹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묻자 울면서 대답했다. "제가 오늘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봤는데요. 언제 죽게 될지 모르겠어요."

"그 뱀이 지금 어디 있어?"

"머리 둘 달린 뱀을 본 사람은 죽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또 보게 될까봐 뱀을 죽여서 땅에 묻었어요."

"걱정 마라. 너는 죽지 않을 거야. 남몰래 덕을 베풀면 하늘이 복을 준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 사연을 듣고 손숙오가 어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중에 손숙오는 초나라의 영윤(令尹; 재상)이 되었을 때, 그 자리에 부임하지도 않았는데 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를 신뢰했다고 한다.

가의(賈誼)의 신서(新書) 권6의 이 이야기는 '음덕양보(陰德陽報; 남 몰래 덕을 베풀면 드러나는 보답을 받음)'라는 성어를 소개할 때 자주 소개되는 일화다.

손숙오의 명성을 빌려 선행을 권장하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이런 교훈을 빼고 보더라도 어린아이가 참 기지가 있고, 마음이 무척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손숙오는 하늘이 내려준 복을 진짜로 받았을까?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커서 초나라의 재상이 되었으니 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반드시 보답을 받기 위해 선행을 한 건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받기는 했으니 음덕양보라는 말이 실현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선행을 한 사람이 모두 손숙오와 같은 보답을 받고 있기는 한 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앞서 가진이처럼 가벼운 손해를 감수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치자. 물론 그 조차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현실에선 보답은 고사하고 선행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많다.

약삭빠르게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경우도 있다.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현실은 이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부지런히 선을 행할 뿐이다.

길게 늘어선 차량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앞에 사고가 났으니 유턴하세요"고 하면서 구급차의 진로를 확보하려고 애를 썼던 가진이한테 '수고했다'는 칭찬을 하면서 동시에 '너 지각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처럼 나는 혹시 생길지도 모를 불이익까지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손숙오인데 아빠는 손숙오의 어머니가 아니었던 셈이다.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는 현실에 속이 상하기도 하다.

화(禍)와 복(福)의 이치에 대하여는 옛날 사람들도 의심해 온 지 오래되었다. 충(忠)과 효(孝)를 행한 사람이라 하여 반드시 화를 면하는 것도 아니고, 음란하고 방탕한 자라 하여 반드시 박복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선(善)을 행하는 것이 복을 받는 도(道)가 되므로 군자(君子)는 부지런히 선을 할 뿐이다.

정약용(丁若鏞),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18권, 가계(家戒)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정약용다운 말이다. 자신처럼 충효를 행한 사람도 화를 면하지 못했으니 이런 말을 할 법하다.

정약용처럼 어렵게 살았던 사람도 '그래도 선을 행해야 한다'고 하는 걸 보면서 위안을 얻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살면서 복을 받을지 화를 입을지 알 수 없지만, 선행을 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 믿고 사는 게 낫지 않겠나. 그래도 선행을 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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