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는 뜻으로, 불교 경전의 첫머리에 쓰는 용어이다.
如 : 같을 여(女/3)
是 : 옳을 시(日/5)
我 : 나 아(戈/3)
聞 : 들을 문(耳/8)
(유의어)
문여시(聞如是)
아문여시(我聞如是)
부처에게서 들은 교법(敎法)을 그대로 믿고 따르며 적는다는 뜻으로, 경전(經典) 첫머리에 쓰는 말이다. 석존(釋尊)의 제자인 아난이 경전의 첫머리에 쓴 데서 비롯되었다.
이와 같이(如是) 나는 들었다(我聞), 또는 내가 들은 바는 이와 같다는 뜻의 이 말은 불자가 아니라도 불경을 암송할 때 처음 나오는 것이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조금도 거짓이 없이 진실 되게 옮긴다는 의미를 갖는다. 아문여시(我聞如是), 문여시(聞如是)라고도 한다.
부처님은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존칭으로 고대인도 샤카(Sākya/ 釋迦) 민족의 성인을 뜻하는 모니(muni/ 牟尼)란 뜻이다. 본명은 성이 고타마(Gautama, 瞿曇/구담), 이름이 싯다르타(Siddhārtha, 悉達多/실달다)인 것도 상식이 되어 있다.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부처님 말씀은 어떻게 불경으로 남아 전해졌을까.
훌륭한 말씀이라도 전하는 사람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면 신뢰받지 못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열반(涅槃)하기 전까지 25년간 시중을 들었던 아난타(阿難陀)의 기억으로 전해졌다.
석가모니의 사촌이며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아난타는 곁에서 가장 많은 말을 들었으므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도 불린다. 그렇더라도 자기 개인의 의견이 아닌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다는 뜻을 강조하여 경전 앞에 썼다.
초기 불교의 경전은 석가의 사후 제자 중의 영도자 역할을 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불린 마하가섭(摩訶迦葉)의 영도로 결집사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대반야경(大般若經)의 전반적인 주석서 '대지도론(大智度論)'에 아난이 모든 경전의 앞에 어떤 글자를 붙여야 하는지 여쭙자 부처님께서 답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모든 경전의 앞에 제가 들은 바는 이와 같습니다란 말을 두면 된다(一切經首置 如是我聞等言)."
좀 더 풀이를 옮겨 보면 불법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는데 '이와 같이(如是)'의 의미가 바로 믿음이라 했다.
그러면서 깨끗한 믿음이 있어야 불법에 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믿음을 말하는 표현은 열반 500년이 지나 편찬된 초기 경전에도 그대로 전통이 이어졌다고 한다.
부처님이 어디서 누구에게 설법한 내용은 이와 같다고 전한 아난의 말은 사실대로 전하는 뉴스와 닮았다. 없는 사실을 전하고 실제보다 부풀려 말하고,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느끼게 하는 점이 크다.
목소리 크게, 여러 매체를 동원하여 동시다발로 전한다고 해도 사실이 아니면 일시적인 믿음은 곧 사라진다. 전하는 사람이나 그 내용이나 믿음이 앞서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여시아문(如是我聞)
◼ 정의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뜻으로, 아난다가 붓다의 가르침을 사실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로 경전의 첫머리에 쓰는 불교 용어이다.
◼ 개설
팔리어로는 evam me suttam, 산스크리트어로는 evam mayā śrutam이며, 직역하면 "이와 같이 나에게 들렸다"는 의미이다.
내 의지로 들은 것이 아니라, 붓다가 말한 대로 나에게 들려진 것을 그대로 여기에 전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아문여시(我聞如是), 문여시(聞如是)라고도 한다.
◼ 내용
초기불교의 경전은 붓다의 열반 후, 제1차 결집에서 마하까삿빠(대가섭)가 주도하여 정리되었다. 붓다가 깨달은 후 25년 되는 해부터 붓다의 비서(侍子)였던 아난다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고 시작하며 다섯 니까야를 암송하였고, 당시 모인 참가자(전체 500명)와 함께 외워(合誦) 전했다.
따라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은 아난다가 듣고 붓다가 말한 것을 증명하는 표현으로 경전의 첫 머리에 제시되었다.
여시아문(如是我聞)은 붓다의 가르침을 온전히 전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초기 경전의 주석 문헌에 이 구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의 해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란 자신에 의해 일어난 상태를 인정하지 않고, 앞의 청문(聽聞)을 설명하고, '이것은 내가 네 가지 담대함(四無畏)과 열 가지 힘(十力)를 갖추고, 우왕(牛王)의 지위에 있고, 사자후를 하며, 일체 존재의 최상자, 법의 자재자, 법왕, 법주, 법의 섬, 법의 귀의처, 정법의 최상전법자이고 정각자인 저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것이다.
여기에서 의미 또는 법 또는 형식에 대해서 의문이나 의심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모든 천신과 인간이 이 법에 대한 불신(不信)을 소멸시키고, 믿음의 성취를 일으키고 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고 고타마의 제자는 말하면서 가르침에 대한 불신을 없애고 믿음을 키운다.
(디가 니까야, 범망경/梵網經, 주석서, DN-a, I, 29)
대승 경전인 '대반야경'의 주석서인 '대지도론'에서 여시아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시(如是)'에 대한 해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불경은 어찌하여 처음에 '이와 같이'라는 말을 하는가? 답: 불법의 대해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다. '이와 같이'의 의미는 바로 믿음이다.
만약 사람의 마음에 깨끗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불법에 들어갈 수 있다. 만약 믿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불법에 들어갈 수 없다. 믿지 않는 자는 '이 일은 이와 같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믿지 않는 모습이다.
믿는 자는 말한다. "이 일은 이와 같다." 비유하면 소가죽이 부드럽지 않을 때는 구부리지 못하는 것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도 이와 같다.
비유하면 소가죽이 이미 부드럽다면, 쓰임에 따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다.
(대지도론/大智度論, T.25, 62하~63상)
붓다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가르침을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여시아문(如是我聞)은 붓다의 가르침을 들은 그대로 전한다는 점을 경전의 처음에 분명히 밝히는 표현으로 삽입된 말이다.
초기 경전에서 사용된 이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표현은 붓다가 완전한 열반에 들고 500년 정도가 지난 기원 전후부터 대승 운동가들에 의해 성립한 대승불교의 경전들에도 초기 경전의 전통을 이어받아 사용되었다.
대반야바라밀다경, 묘법연화경, 화엄경, 불설무량수경 등의 대표적인 초기 대승 경전은 모두 여시아문(如是我聞) 또는 아문여시(我聞如是)로 시작한다. 대승 경전도 붓다의 설법이라고 대승 경전 편찬자들은 주장했던 것이다.
◼ 의의와 평가
여시아문(如是我聞)은 초기 경전 편집에서 아난다에 의해 사용되어 경전의 내용이 붓다에게 유래함을 분명히 말해준다.
하지만 붓다가 완전한 열반에 든 지 500년 후에 편찬된 대승 경전도 여시아문으로 시작하며 붓다의 가르침임을 드러내고 있다.
대승불교권에서는 대승 경전에 사용된 여시아문이라는 문구를 통해 대승 경전도 붓다의 직접적인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여시아문이 의미하는 바가 지금까지도 그대로 인정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