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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운명]사해형제(四海兄弟)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9.04.10|조회수160 목록 댓글 0

사해형제(四海兄弟)

사해(四海)란 곧 온 천하를 가리키는 말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형제와 같이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이다.

四 : 넉 사(囗/2)
海 : 바다 해(氵/7)
兄 : 형 형(儿/3)
弟 : 아우 제(弓/4)

(유의어)
사해동포(四海同胞)
호월지가(胡越之家)

출전 :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


오대양(五大洋)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다섯 개의 큰 바다를 가리키는데, 사해(四海)는 어디를 말할까. 세계의 중심을 자처했던 고대 중국인들은 나라 사방이 모두 바다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이 문자 해설서 이아(爾雅)에서 사해로 풀이했던 동서남북의 이적융만(夷狄戎蠻)은 바다가 아닌 엄연한 이민족 나라였다. 그래서 바다를 기준으로 한 것이 육지로 고쳐졌고 사방의 땅이란 의미에서 온 세상을 뜻하게 됐다.

온 세상(四海) 사람이 모두 형제(兄弟)와 같다는 이 성어는 누구든지 마음과 뜻을 같이 하면 친밀하게 지낼 수 있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에 등장하는 내용을 보자. 공자(孔子)의 제자 사마우(司馬牛)가 '남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저만이 홀로 없습니다(人皆有兄弟 我獨亡)'라며 근심스럽게 말했다.

본명이 경(耕)인 사마우는 환퇴(桓魋)라는 형이 있었는데 송(宋)나라에서 벼슬하던 중 내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망명지로 떠도는 신세였다. 형의 일이 몹시 걱정되어 자하(子夏)에게 근심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공문십철(孔門十哲)에 드는 문학의 자하인 만큼 다독인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 '군자가 공경하며 실수하지 않고, 남에게 공손하고 예의를 지키면 온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형제가 됩니다(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라고 말했다. 모두 가까우니 어찌 형제가 없음을 걱정하겠는가라고 위로했다.

동진(東晋)의 도연명(陶淵明)이 읊은 잡시(雜詩) 중에는 '세상에 나오면 모두가 형제인데, 하필 한 핏줄만 따질 것이 있으랴(落地爲兄弟 何必骨肉親)'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딴 낙지형제(落地兄弟)도 온 세상 한 사람이란 의미로 쓰인다.

지난 20일은 '세계인의 날'이었다. 2007년부터 재한 외국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조성하기 위해 제정했다.

특히 부산은 외국인주민 정착지원에 힘써 국제교류재단이 올해 대통령 표창을 받는 영광도 안았다고 한다. 그런데 다문화 가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아직 미미한 편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우리를 찾았던 외국인 배우자들이나 자녀들, 제조 산업 현장에서 땀 흘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문화적 차별과 편견은 없었는지 곰곰 생각할 일이다. 이들 모두가 한 세상 형제다.


⏹ 사해형제(四海兄弟)

사해(四海)란 곧 온 천하를 가리키는 말로, 천하의 뭇사람들은 모두 동포요, 형제라는 뜻이다.

논어(論語)의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날 사마우(司馬牛)가 공자(孔子)가 아끼는 제자(弟子) 자하(子夏:BC 507~BC 420?)를 찾아와 괴로워하면서 근심하며 말하기를“사람들은 형제(兄弟)가 모두 있는데 나만 혼자인 것 같네요”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자하(子夏)가 이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사람이 사는것과 죽는것은 자신(自身)의 명(命)에 달려 있고, 부귀(富貴)는 하늘에 달려 있으며, 군자(君子)가 공경(恭敬)하여 실수가 없고 사람을 사귀는 데 공손(恭遜)하고 예절(禮節)을 갖추면 세상 사람들이 다 형제(兄弟)라 하니 군자(君子)가 어찌 형제(兄弟)가 없음을 근심하겠소”라고 대답(對答)하였다.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사생유명 부귀재천 군자경이무실 여인공이유예 사해지내 개형제야 군자하환호무형제야]


사실 사마우(司馬牛)에게는 사마환퇴(司馬桓退)라는 형(兄)이 있었는데 천하(天下)에 악명(惡名)을 드날리는 악한(惡漢)으로 송(宋)나라에서 일어났던 반란(叛亂)에 가담(加擔)하였다가 실패(失敗)하여 망명(亡命)하여 떠도는 신세였다. 사마우(司馬牛)는 이를 걱정하여 자하(子夏)에게 근심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자하(子夏)는 모든 일은 운명(運命)에 달려있다고 하고 군자(君子)가 공경(恭敬)으로서 남을 대하고 예(禮)를 지킨다면 천하(天下)의 누구와도 형제(兄弟)처럼 지낼 수 있으니 어찌 형제(兄弟)가 없음을 걱정하겠느냐고 위로(慰勞)한 것이다


사해형제(四海兄弟)에서 사해(四海)는 온 천하(天下)를 지칭(指稱)하며, 불교(佛敎)에서는 수미산(須彌山)을 둘러싼 바다를 말한다. 즉 온 세상 사람들은 모두 형제(兄弟)같이 지내야 한다는 뜻이다.

동의어(同義語)로 사해동포(四海同胞)와 호월지가(胡越之家:중국 북쪽의 이민족인 호족과 남쪽의 이민족인 월족이 한 집안이 되었다는 말로, 온 천하가 한 집안과 같다는 뜻)가 있다.

[원문]
司馬牛憂曰 人皆有兄弟 我獨亡 子夏曰 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 사해형제(四海兄弟)

누구나 즐겨 봤던 소설 수호지는 일탈한 군상들의 중구난방이었다. 대견하게도 그들이 한결같이 주창하는 것은 충의(忠義)였고 인용(仁勇)이었다.

다양한 호걸들이 규합될 때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입니다"(四海兄弟)라고 말했다.

누구나 바라고 누구나 꿈꾸는 세상을 만들고자 만났으니, 그 사람이 어떤 지위에서 어떤 일을 했던 간에 형제처럼 툭 터놓고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거다.

송강이 무송을 만났을 때, 노지심이 양지를 만났을 때에도 그들은 부딪히고 싸웠지만 결국엔 세상이 모두 형제라는 말을 나누며 부둥켜 안았다.

노동, 그건 한때 거칠고 뜨거웠다. 그건 1900년대 전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였다. 어느 때에는 혁명이 됐고 어느 때에는 사회운동이 됐다. 어느덧 그건 현대인과 그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일부가 됐다.

인류 역사상 노동은 계속 존재했다. 생존과 직결되는 활동이기에 더욱 중요했다. 광활한 평원에서 곡물을 길러 내던 농노들은 지주에겐 소소한 자원에 불과했을지라도 그 노동이야말로 러시아의 젖줄이었고 밥줄이었다.

그들은 사회에서 소외됐다. 그들이 산업혁명에 따라 터전을 잃고 도시로 한데 모였을 때, 소비에트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노동혁명은 세상과 사용자들이 노동의 참된 가치를 깨닫게 했고 근로자를 보호하도록 만들어 줬다.

근로자는 사용자와 다르다. 근로자(노동자)와 사용자(사업주)는 법적으로 분류하기 쉽다. 누군가를 위해 일하고 돈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은 근로자고, 자신을 위해 영리활동을 하는 사람은 사용자다.

근로자라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신성한 근로에 대해, 노동 3권에 대해 최대한의 예우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2017년 대한민국에 1천800만명의 근로자와 800만명의 자영업자가 있다는데, 근로자, 사용자를 나눠 근로자만을 보호해야 하는가.

어쩌면 사용자지만 중위층 이하 근로자와 다를 게 없는데도,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보험이나 근로조건 등의 수혜를 받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줄곧 근로자로 살다가 자영업자로 나와 보험을 팔거나 통닭을 튀기는 사람들은 어떤가. 생계불안에 시달리고 고된 노동을 하는 이들을 ‘근로자형 사용자’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근로자는 어떤가. 상당수의 근로자들이 최대한의 예우를 적절하게 받고 있는가. 전체 근로자의 절반인 사람들이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노동 3권 문제나 노조탄압 문제는 참 멀다.

개별적 근로관계법이 지향하는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는 (근로기준법 1조) 목적이 제대로 달성되고 있는지부터 확인해 봐야 하는 실정이다.

얼마나 많은 근로자들이 임금체불, 감정노동, 직장내 괴롭힘, 근로시간 위반, 부당해고와 전직, 전보, 산업안전 미준수, 산업재해 은폐로 힘들어 하는지 말이다.

그렇다면 미래 대한민국에서 근로자, 사용자, 정규직, 비정규직 등의 구분은 어쩌면 대단히 구시대적이고 이분법적이다. 정작 이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대다수로서 같은 시대에서 동등한 보살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혼란스럽다. 누구는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고 누구는 영세 자영업의 몰락을 호소한다. 누구는 노조탄압이나 노동 3권을 말하고 누구는 과보호 노동권이나 노동정치화를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아무도 세상이 형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사해형제라는 생각을 하면 누구나 이웃의 현실을 먼저 들여다볼 것이고 같이 공감을 나눌 수 있을 게다. 근로자든 사용자든 누구나 바라는 바는 같다.

그건 행복한 일터, 건강한 노동을 위한 세상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구나 사해형제라는 생각으로 큰 연대(Solidarite)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 형제(兄弟)

형제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일까?

형제는 같은 부모를 가진 남성들을 아울러 일컫는 말로 부모 양쪽 모두가 같거나 부모 한쪽이 같은 경우 모두를 포함하며, 동기란 형제와 자매, 남매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우리 인간은 오복(五福)을 타고나야 이승에서 남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삶을 누렸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복에 해당하는 것은 부모 복, 형제 복, 배우자 복, 자식 복, 주변사람 복이라 할 수 있다.

농구 황제라고 불리는 조던에게는 ‘래리’라는 형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에 한 수 위였던 형 래리는 동생 조던에게 농구를 가르쳐 주었는데, 이후 키가 자라지 않은 형은 미국 프로농구 마이너리그에서 뛰었고, 반면에 키가 훌쩍 컸던 조던은 NBA 황제로 불리며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렇게 조던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때론 경쟁자요, 때론 조용한 후원자였던 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부모와 형제는 천륜의 관계이다. 형제는 끊을 수 없는 관계이고 형은 아우를 사랑하며 아우는 형을 존경해야 한다. 형제는 열 손가락과 같은 것이며 형제는 차례가 있는 법이다. 형제는 물질보다 귀중한 것으로, 물질은 감정이 없지만 형제는 동정이 있기 때문이다.

형제는 수족과 같으며 그 어느 것도 혈연을 끊지는 못한다. 형제는 영원히 형제이며 어떤 격심한 무정이나 분노도 결코 형제라는 자석에게는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함은 최고의 즐거움과 행복한 삶이다. 논어의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사해형제(四海兄弟)라는 말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형제와 같이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로 형제의 근본은 서로 친절하고 가까우며 서로를 위해 주어야 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형제는 잘 두면 보배이고, 잘못 두면 원수라는 말이 있으며 이 세상에서 가깝고도 먼 것은 의리 없는 형제인데, 비록 형제라도 의가 나쁘면 남만 못한 법이다.

혈육의 정이 깊음을 나타내는 서양 속담으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사자성어에 동근연지(同根連枝)라는 말은 형제는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라는 것이다.

사실 형제의 우애는 부모에게 어느 정도 그 책임이 있다고 본다. 평소 부모는 형이 아우에게 양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며, 아우는 형의 양보에 감사하고 형을 존경하도록 가르쳐 형제들이 어려서부터 우애를 돈독하게 해주어야 한다.

요즈음 같은 세태에 자칫 멀어질 수 있는 형제의 관계나 의절한 형제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유태인의 규범이 되어 있는 탈무드에 나오는 형제애에 대한 일화를 보기로 하자.

옛날에 이스라엘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제는 둘 다 농부였는데, 부친이 죽자 부친의 재산을 나누어 갖게 되었다. 수확한 사과와 옥수수는 공평하게 나누어 각자의 곳간에 넣었다.

한밤중이 되자 동생은, 형님은 아내와 자식들이 있어 자신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형님의 곳간에 많은 양의 사과와 옥수수를 옮겨다 놓았고,

형은 자신은 자식이 있으므로 늙게 되면 아이들이 잘 보살펴 주겠지만 동생은 미혼이니 나중을 위해 준비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역시 옥수수와 사과를 동생의 곳간에 많이 옮겨다 놓았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우리 선조들 경우에도 민담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충남 예산 대흥면의 조선시대 의좋은 형제 이성만과 동생 이순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우애가 뛰어난 것이 알려져 1497년(연산3년)에 효제비(유형문화재 제102호)가 세워져 후세에 형제에 대한 배려심의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이들처럼 진정한 형제의 가치는 의타심보다는 먼저 배려하는 마음으로 형제의 어려움이 있으면 물질에 앞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 주며 함께 희·노·애·락을 나누고, 형은 아우를 친자식처럼 여기고, 아우는 형을 부모처럼 섬기며, 물질적인 도움을 받으려는 마음보다는 서로 베풀어 주는 그 마음에 있는 법이다.

매사 인간사에 일방통행은 없는 법. 서로 혈육 간에 애틋한 마음으로 형제, 나아가서 동기간을 대하며 서로를 위해 주며 우애하는 것이 삶의 지혜이며. 소중한 가치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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