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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운명]교학상장(敎學相長)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9.04.10|조회수201 목록 댓글 0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시켜 준다는 뜻으로,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스승에게 배우거나 모두 자신의 학업을 증진시킴 또는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서로 자신의 공부를 진보시킴을 말한다.

敎 : 가르칠 교(攵/7)
學 : 배울 학(子/13)
相 : 서로 상(目/4)
長 : 긴 장(長/0)


학원이나 학급에 급훈으로 많이 등장하는 명언성어다. 가르치는 일이나 배우는 일(敎學)이나 서로에게 도움을 줘 자라게 한다(相長)는 이 말은 교(敎)와 학(學)을 일로 삼는 학교의 스승이나 제자들뿐만 아닌 일반인에게도 항상 해당한다.

자기 분야에 아무리 정통한 사람이라 해도 막상 남을 가르치려 할 때는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을 깨닫게 되고 부족한 부분을 더 연구하여 제자에 내놓는다. 그러니 가르치는 것이 두 번 배우는 것이라고 하는 말까지 나왔다.

중국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에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玉不琢 不成器(옥불탁 불성기)
人不學 不知道(인불학 부지도)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

유명한 글귀이다. 이어서 구절 뒤로 이어진다.

좋은 안주가 있더라도 먹어보지 않고서는 맛을 모르며 지극한 도가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은 점을 모른다.

知不足然後能自反(지부족연후능자반)
知困然後能自强(지곤연후능자강)
故曰敎學相長(고왈교학상장)
부족함을 안 연후에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막힘을 안 연후에 스스로 힘쓸 수 있으니 그것이 바로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학업을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새내기 교사들은 배운 지식을 현실에 적용해 가르치면서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연마해 나가면 늘어난 지식이 제자에 전달되고 자신도 계속 성장하는 것이다.

뒤따라 배우는 사람은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갈 후학이기에 언젠가 스승을 능가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므로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도 했다.

학문에만 한하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직장을 잡은 신입 사원들에게 교육할 때도 자기의 업무를 이미 습득한 선배는 더 연구하여 가르쳐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과 같이 자만하지 않고 학문을 다듬어야 한다고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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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상장(敎學相長)

敎 : 가르칠 교
學 : 배울 학
相 : 서로 상
長 : 클 장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시켜 준다는 뜻으로,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스승에게 배우거나 모두 자신의 학업을 증진시킴, 또는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서로 자신의 공부를 진보시킨다는 말이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은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으로써 진보한다는 말이다.

옥(玉)은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道)를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옛날에 왕된 자는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임금 노릇을 함에 교(敎)와 학(學)을 우선으로 삼았다.

비록 좋은 안주가 있더라도 먹지 않으면 그 맛을 알지 못하고, 비록 지극한 도가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음을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배운 연후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연후에야 막힘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안 연후에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막힘을 안 연후에 스스로 힘쓸 수 있으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서 배우는 일이 서로 도와서 자기의 학업을 증진시킨다.” 고 한다.

상(相)은 나무 목(木)에 눈 목(目)을 짝지은 글자로서, 나무 위에 올라가 보면 잘 보인다는 데서, 사람이 서로 보며 살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장(長)은 수염과 머리카락이 긴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서, ‘길다, 어른’ 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중국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의 학기편(學記篇)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좋은 안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먹어 보아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극한 진리가 있다고 해도 배우지 않으면 그것이 왜 좋은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배워 본 이후에 자기의 부족함을 알 수 있으며, 가르친 후에야 비로소 어려움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한다고 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배움이 깊을 수록 겸허해 진다는 뜻으로 비유해도 좋을 것이다. 학문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가르쳐 보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스승은 부족한 곳을 더 공부하여 제자에게 익히게 하며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남김없이 받아 더욱 학식이 풍부한 인재로 성장한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서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을 했다. 즉, 후진자(後進者)는 젊고 기력이 왕성하므로 쉬지 않고 배우니 그 진보의 깊이는 두려워 할 만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젊은 사람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서경(書經) 열명(說命)의 하편(下篇)에 보면, 은(殷)나라 고종(高宗) 때의 재상 부열(傅說)이 교학상장(敎學相長)과 같은 뜻으로 효학반(斅學半)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남을 가르치는 일은 자기 학업의 반을 차지한다는 뜻으로, 학업의 반은 남을 가르치는 동안에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즉, 가르치는 일의 절반은 자기 공부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효학반(斅學半)은 남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은 자신의 학문을 닦는 데에도 이익이 된다는 뜻이다. 학학반(學學半), 교학반(敎學半)과 같은 말이다. 효학상장(斅學相長)이나 교학상장(敎學相長)과도 뜻이 통하는 말이다.

부열(傅說)은 중국 은(殷)나라 고종(高宗) 때의 명재상이다. 그는 토목공사의 일꾼이었는데 재상으로 등용되어 중흥의 대업을 이룬 사람이다. 다음은 그가 군주에게 학(學)에 대해서 훈고(訓告)하는 내용의 말이다.

은(殷)나라의 재상 부열이 말했다. “모든 일을 배움에 있어서 스스로 지혜가 뛰어나다든가 스스로 분별이 바르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현자의 가르침을 들어 그 실행을 민첩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덕이 뛰어나게 되는데, 뛰어난 것을 언제나 생각하여 왕으로서 실행할 도를 몸에 쌓도록 해야 한다. 또 사람을 가르치는 일도 필요하다.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절반이다(斅學半).

사람을 가르치는 데 스스로가 실행하지 못할 것을 가르쳐도 사람이 듣는 것이 아니니,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수양을 쌓아야 하며,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곧 자기가 배우는 것이다(斅學相長).

자기 몸을 수양할 때 처음에 선한 일을 했어도 후에 태만해지면 아무것도 안되므로,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여 선행에 힘쓰고, 끊임없이 배우는 일에 힘써 정진하면 덕이 닦여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계속 진보해 간다.

또 언제 자기가 진보했는지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덕도 높아지고 지혜도 밝아져 많은 사람을 교도(敎道)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스승과 선생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스승이라는 본래 뜻은 스스로 승리한 자라는 뜻이고, 선생은 먼저 났다는 의미인데 그것은 먼저 이루었다는 뜻으로 스승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학생은 이루는 것을 배우는 자 인 것이다.

스승과 제자, 선생과 학생은 같은 길, 즉 전인(全人)이 되기 위한 목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자들인 것이다. 따라서 누구 하나 선생이 아닌 자가 없고 생이 아닌 자가 없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남을 가르치다보면 아무리 학문이 깊은 사람이라 해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때문에 끊임없이 연구를 하며 제자들을 가르친다. 이처럼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교훈일 것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힘든 일 중의 하나는 지루함이다. 일단 지루함이 들기 시작하면 일을 잘하기 어렵다. 지루함은 언제 찾아올까? 결과에 집착할 때 찾아든다. 하루라도 빨리 결과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지루함이 바람처럼 찾아온다. 그러나 어떤 일은, 아니 대부분의 일은 한 세월이 지나서야 결과가 나타난다.

결과에 집착하면 큰일을 해낼 수 없다. 배우는 일도 그렇다. 예전의 학동이 산 속 스승을 찾아가면 나무하기 3년, 청소하기 3년을 거치게 했다. 이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면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마도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한 것 같다.

배우는 일은 수많은 단련을 요구한다. 가르치는 일도 그렇다. 가르침의 결과를 기대하면 곧바로 지루함이 온다. 한없이 가르치고 가르친 후에야 가르침의 효과가 나타난다.

학불염이교불권(學不厭而敎不倦)이라는 말이 있다. 제자가 공자(孔子)에게 “선생님은 성인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공자는 “나는 성인이 될 수 없다” 고 하면서 이어서 한 말이다.

학(學)은 배운다는 뜻이다. 염(厭)은 싫다는 뜻이다. 교(敎)는 가르친다는 뜻이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은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자라게 한다. 즉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는 말이다. 가르치다 보면 오히려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게 된다는 뜻이다. 권(倦)은 게으르다, 쉬다는 뜻이다.

이상의 의미를 정리하면 학불염이교불권(學不厭而敎不倦)은 배우는 것에 싫증을 느끼지 않고,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인류의 스승이라고 하는 공자 같은 분이 배움에 싫증을 느끼지 않았음은 배움에 끝이 없음을 말해준다. 공자는 가르침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훌륭한 제자나 못난 제자를 구분하지 않고, 교육의 효과에 눈을 감고 한없이 가르쳤음을 의미한다. 배우고 가르침의 끝없음을 공자가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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