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전 읽기

[사랑과운명]장수선무(長袖善舞)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9.04.12|조회수198 목록 댓글 0

장수선무(長袖善舞)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

長 : 긴 장(長/0)
袖 : 소매 수(衣/5)
善 : 착할 선(口/9)
舞 : 춤출 무(舛/8)


긴 소매로 된 윗옷을 입고 추는 전통춤은 보기에 우아하다. 화사한 색상에 유려한 선으로 된 옷차림만으로 어깨춤이 절로 따른다.

특히 승무에서 남색 치마에 흰 저고리, 흰 장삼을 걸치고 추는 춤은 나비와 같다고 표현한 시인도 있다. 이처럼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 한다’는 우리 속담과 똑 같은 뜻이 이 성어다.

수단이나 밑천이 넉넉한 사람은 일을 하거나 성공하기가 쉽다는 말인데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원전에서도 장수선무 다전선고(長袖善舞, 多錢善賈)로 되어 있다.

善은 착하다는 뜻 외에 잘한다는 뜻, 賈는 성 가, 장사 고. 다재선고(多財善賈), 다전선매(多錢善買)로도 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주창한 한비(韓非)의 논저인 이 책의 오두(五蠹)편에 실렸다.

蠹는 좀벌레를 말하는데 ‘오두’는 오적(五賊)과 같이 나라를 갉아먹어 황폐하게 하는 사람들을 지칭했다.

공론만 일삼는 유가와 종횡가, 무력으로 질서를 해치는 유객, 권문귀족, 그리고 농민들의 이익을 빼앗는 상공인을 포함한다.

한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군주가 나라 다스리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잘 다스려 강력하게 하는 것은 외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에 달려 있는데 국내에서 법치로 다스리지 않고 국외에서 지모 쓰는 것을 일삼는다면 강대해 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속담에 '긴 소매 자락은 춤추기에 좋고 많은 돈은 장사하기에 좋다(鄙諺曰 長袖善舞 多錢善賈/ 비언왈 장수선무 다전선고)'는 말이 있다. 이것은 밑천이 많아야 일을 잘하기가 쉬움을 말한 것이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강대하면 계책을 세우기가 쉽고, 나라가 약하고 어지러우면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운 것이다’고 덧붙인다. 鄙는 더러울 비, 鄙諺은 품위가 매우 낮은 말이나 속담을 뜻한다.

이런 정치적 측면은 줄었지만 동가홍상(同價紅裳)이란 말과 같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능력과 함께 물질적인 것이 갖춰져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뜻으로 넓혀졌다.

그렇더라도 요즘은 소매가 긴 집안이 너무 길고, 대대로 긴 것이 탈이다. 한국 20세 이상 성인을 기준으로 자산 상위 10%가 전체의 66.4%를 보유하여 양극화가 위험수준이 됐다고 한다.

부모 재산 정도에 따라 금수저, 흙수저로 젊은이들이 나눠진다며 아무리 노력해도 손부익빈(損富益貧)에서 언급한대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사라졌다고 자조한다. 젊은이들에 긴 소매를 달아 줄 묘책은 없는가.


⏹ 장수선무(長袖善舞)

해외에서 터무니없는 학술 발표를 듣다가 벌떡 일어나 일갈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막상 영어 때문에 꿀 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있다 보면 왜 진작 영어 공부를 제대로 안 했나 싶어 자괴감이 든다. 신라 때 최치원도 그랬던가 보다. 그가 중국에 머물 당시 태위(太尉)에게 자기추천서로 쓴 '재헌계(再獻啓)'의 말미는 이렇다. "삼가 생각건대 저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통역하고 성대(聖代)의 장구(章句)를 배우다 보니, 춤추는 자태는 짧은 소매로 하기가 어렵고, 변론하는 말은 긴 옷자락에 견주지 못합니다(伏以某譯殊方之語言, 學聖代之章句, 舞態則難爲短袖, 辯詞則未比長裾)."

자신이 외국인이라 글로 경쟁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만큼은 저들과 경쟁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안타까워 한 말이다. 글 속의 '단수(短袖)'와 '장거(長裾)'는 고사가 있다.

먼저 단수(短袖)는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의 언급에서 끌어왔다. "속담에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한다'고 하니, 밑천이 넉넉해야 잘하기가 쉽다는 말이다(鄙諺曰:'長袖善舞, 多錢善賈' 此言多資之易爲工也)." 춤 솜씨가 뛰어나도 긴 소매의 맵시 없이는 솜씨가 바래고 만다. 장사 수완이 좋아도 밑천이 두둑해야 큰돈을 번다. 최치원은 자신의 부족한 언어 구사력을 '짧은 소매'로 표현했다.

장거(長裾), 즉 긴 옷자락은 한나라 추양(鄒陽)의 고사다. 추양이 옥에 갇혔을 때 오왕(吳王) 유비(劉濞)에게 글을 올렸다. "고루한 내 마음을 꾸몄다면 어느 왕의 문이건 긴 옷자락을 끌고 다닐 수 없었겠습니까?(飾固陋之心, 則何王之門, 不可曳長裾乎)" 아첨하는 말로 통치자의 환심을 살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긴 옷자락은 추양의 도도한 변설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다. 최치원은 자신이 추양에 견줄 만큼의 웅변은 없어도 실력만큼은 그만 못지않다고 말한 셈이다. 긴소매가 요긴해도 춤 솜씨 없이는 안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긴 소매의 현란한 말재간만 멋있다 하니 안타까웠던 게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