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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운명]시종일관(始終一貫)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9.04.14|조회수944 목록 댓글 0

시종일관(始終一貫)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관철한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나 의지, 뜻이 변하지 않는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始 : 비로소 시(女/5)
終 : 마칠 종(糹/5)
一 : 한 일(一/0)
貫 : 꿸 관(貝/4)

(유의어)
수미일관(首尾一貫)
시종(始終)
시종여일(始終如一)
종시여일(終始如一)
종시일관(終始一貫)

(상대어)
용두사미(龍頭蛇尾)


시종(始終)은 ‘처음과 끝’을 말하며, 일관(一貫)은 ‘하나의 자세로 꿰뚫어 본다’ 또는 ‘변함 없음’의 뜻이다. 그러므로 시종일관(始終一貫)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태도로 나아감을 나타내는 말이다.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는, 처음엔 누구나 잘 하지만, 끝까지 잘 하는 예는 드물다는 뜻으로,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시경(詩經)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누구나 새 일을 시작 할 때는 처음이라 긴장하고 열정을 쏟는다. 계획했던 대로 일이 순탄하게 잘 되어 가면 마음이 저절로 느슨해지고 조금은 나태해 진다.

대개는 이럴 때 실수나 변수가 뒤따른다. 이때 바로 깨닫고 처음처럼 마음을 다잡아서 최선을 다하면 새롭게 질서를 잡아 나가지만 아예 포기하고 방심해버리면 영 벼랑길이다.

최초의 긴장감 그 초심으로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쏟으면 그 결과는 당연지사이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그 차이는 포기하느냐, 포기하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두느냐 일것이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중국은 어지러웠다. 이상국가였던 주(周)나라가 쇠락해져서 동쪽의 뤄양(洛陽)으로 수도를 옮긴 때로부터 춘추시대가 시작되는데 오(吳), 월(越), 정(鄭), 연(燕), 초(楚), 진(晉), 노(魯), 진(秦) 등의 큰 나라부터 작은 읍락(邑落) 정도의 이름없는 나라까지 무려 100여 나라가 천하를 놓고 다투었다.

노(魯)나라의 공자(孔子)를 비롯하여 수많은 인물과 고사성어도 이 시기에 등장한다. 그러다 기원전 453년, 진(晉)나라의 유력한 귀족들인 한(韓), 위(魏), 조(趙) 3씨가 나라를 세우고 위세를 떨치면서 천하가 크게 7개 나라로 통합 재편되기에 이른다. 이 시기부터 진(秦)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루는 기원전 221년까지를 전국시대라 한다.

이 시기의 역사서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천하통일 대업을 눈앞에 둔 진(秦)나라 왕이 자만심을 보이자 신하가 간언을 한 기록이 있다. 위(魏)나라와 조(趙)나라를 차지하고서 자만에 빠진 왕에게 “제(齊)나라를 잃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한 대목이다.

그 의미를 새겨 보면 대강 다음과 같다. “시경에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즉 누구든 무슨 일을 도모하려고 할 때 처음부터 포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도모하는 일을 마지막까지 좋게 마치는 사람 또한 드뭅니다.”

신하들은 왕에게 선대 왕이 그 시작과 끝을 하나같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존엄하게 여겨서 크게 이루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처음엔 잘하다가 뒤에 실패하거나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천하통일을 도모하는 난세에는 어땠겠는가.

몇 나라를 차지했다고 만족하고 태평하게 있다가는 곧 다른 나라에 정복당하고 만다. 진(秦)나라의 충신은 시경의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이라는 구절을 인용한다. 마무리를 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충언을 받아들인 왕이 다시 분발하여 마침내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로, 서방에도 이때의 진나라가 알려져 중국이 CHINA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그리고 최초의 황제 칭호를 사용하기도 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결심을 한다. 그러나 결심을 끝까지 지켜 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꾸준히 노력하려는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꾸준한 노력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결과를 너무 초조하게 기다리기 때문이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결과를 멀리 두고 한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이라는 말이 있다.

行(행)은 원래 ‘네거리’라는 뜻이다. 네거리는 반듯하게 일정한 방향으로 열을 지은 길이다. 네거리에는 또한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므로 行은 ‘가다, 돌아다니다’ 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행백리자(行百里者)는 ‘백 리를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半(반)은 원래 ‘절반’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절반으로 여기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九十의 뜻은 ‘구십’이지만 앞에 ‘백 리’라는 말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구십 리’가 된다. 그러므로 반구십(半九十)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여기다’라는 의미가 된다.

의미를 모으면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은 ‘백 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 리를 가고 나서 이제 절반쯤 왔다고 여긴다’가 된다.

다시 말해, 100리 길을 감에는 처음 90리와 나머지 10리가 서로 맞먹는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나 처음은 쉽고 끝맺기가 어려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은 진(秦)나라 무왕(武王)의 자만심을 걱정한 신하가 시경을 인용해 충고한 데서 나온 말로, 무슨 일이든 마무리 단계가 중요하니 완성단계에서 다시 마음을 다잡으라는 뜻이다.

논어(論語)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자공(子貢)이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모든 것들을 다 알고 계십니까?”

공자왈,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모두 기억하는 줄로 아느냐?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한 가지로 꿰고 있는 도(道)을 알려고 할 뿐이다.”

이른바 일관지도(一貫之道)를 대화로 설명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치는 한 가지 큰 깨달음으로 통달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서 공자(孔子)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말이다.

오늘날에도 많이 쓰이는 시종일관(始終一貫)이나 초지일관(初志一貫) 또는 일관(一貫)되다는 말은 모두 이 일관지도(一貫之道)와 맥이 닿아 있다.


🔘 산다는 것은 만남의 연속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미 그전에 대단한 인연이 준비되어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만남이란 명제(命題)에 우연이란 만남은 결코 없다. 그 때문에 단 한번의 만남이라도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러한 만남 못지 않게 소중한 것은 만남의 끝 매듭을 어떻게 짓느냐는 것이다. 처음 만날때는 신선하고 호기심에 가득차서 지나치리만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평생 다시는 보지 안을 것처럼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경솔한 짓이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삶이란 예측 불가능한 시나리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상처받고 소외되는 사람 사이의 섬을 만들지 말아야겠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도 그 뜻이 시종일관한 사람을 소신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반대로 정해진 뜻이 없이 백왕흑귀(白往黑歸)한 사람을 소신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소신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과의 차이는 매우 크다. 소신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왕후장상(王侯將相)이라도 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왕후장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결국, 소신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선비정신의 표상이자, 지도자로서의 제일가는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버린 채, 우왕좌왕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철새 정치인은 자신의 이해당락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쉽게 포기하거나 당적을 옮기기도 하고, 부패한 기업인은 기업의 발전보다는 부정한 축재에 관심을 기울이곤 한다.

이렇듯 자신의 명리(名利)와 출세만을 위해 동료나 지지자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도자들을 수없이 목격 하였기에,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사람이 소신과 신념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펴야 한다. 소신과 신념이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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