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지애(手足之愛)
손과 발의 사랑이라는 뜻으로, 손발같은 형제간의 우애를 말한다.
手 : 손 수(手/0)
足 : 발 족(足/0)
之 : 갈 지(丿/3)
愛 : 사랑 애(心/9)
(유의어)
동기지친(同氣之親)
수족지정(手足之情)
양조추리(讓棗推梨)
여족여수(如足如手)
우단사연(藕斷絲連)
자죽분수(煮粥焚鬚)
자형화(紫荊花)
작애분통(灼艾分痛)
장침대금(長枕大衾)
체화지정(체華之情)
형우제공(兄友弟恭)
형제수족(兄弟手足)
형제투금(兄弟投金)
한 부모의 자식이라는 점에 있어서 형제는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세상에 태어난 차례가 있다는 점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순서가 있다. 그러므로 가까운 형제간이지만 서로 지켜야 될 예절이 있다.
형제간에 지켜야 할 예절로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른 말씨를 쓰는 것이다. 함부로 말하면서 마음속으로 공손한 자세를 갖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와는 반대로 속에는 공손한 마음이 있으면서 말투가 거칠게 나오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항상 다정한 우애가 우러나오는 부드러운 말을 쓰는 버릇을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형제간의 예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양보이다. 형은 아우가 어리므로 양보하고 아우는 형이 자기보다 윗사람이니까 양보한다면 형제간에 다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형제간에 우애를 돈독히 다질 줄 아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사회생활도 순조롭게 잘 해나가는 사람일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근본 자세가 서 있기 때문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안의편(安義篇)에 이런 말이 나온다.
莊子曰 兄弟 爲手足 夫婦 爲衣服.
장자왈 형제위수족 부부위의복.
衣服破時 更得新 手足斷處 難可續.
의복파시 갱득신 수족단처 난가속.
장자가 말하기를 "형제는 손발과 같고 부부는 의복과 같으니, 의복이 떨어졌을 때는 새것으로 갈아입을 수 있으나 수족이 잘라진 곳은 다시 잇기가 어렵다."
당시에 장자가 부부 사이와 형제 사이의 우열관계를 말하려 했던 의도였는지의 여부를 짐작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비유는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부란 서로의 몸에 맞는 옷일수도 있고 맞지 않는 옷일수도 있어서 서로의 뜻에 따라서 언제든 헤어지고 만나는 것이 가능하지만 형제란 천륜에 의해서 정해진 한핏줄이고 한몸과 같은 것이다. 결국 장자는 형제간의 우애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직은 나보다는 가족과 집안이 중요시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결혼은 개개인의 결합이라는 의미 만큼이나 집안끼리의 결합이라는 의미가 짙다.
이런 말이 있다. '그 집안이 잘 될라고 하면 들어오는 사람이 잘 들어와야 된다.' 들어오는 사람이란 그 집안에 시집을 오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말이야말로 정말 기막히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말과 앞에서 언급한 장자의 말을 연관시켜서 생각했다. 그 집안에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가에 따라 형제간의 우애가 아무리 좋던 집안이라도 풍비박산이 날수 있고 형제간의 우애가 별로였더라도 돈독한 우애를 지니게 되기도 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이나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 했던가? 남자들이란 여자에게 빠지면 이성과 판단력을 상실해 버린다. 아무리 명약관화한 일이라도 남자에겐 오직 여자의 말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수족인 형제간의 우애 따위는 하찮게 생각하고 결국엔 자신의 수족을 기꺼이 잘라내 버리고 만다.
마치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의복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 자신의 수족을 기꺼이 잘라내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의복이 몸에 맞지 않는다면 그 의복을 고쳐야 하는 것이지 손발을 잘라내서 의복에 몸을 맞출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몸에 맞지 않은 의복을 입었다면 그 의복을 고쳐야 될 것이고 고쳐질 의복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그 의복을 버려야 된다. 몸에 맞지 않은 의복을 기어코 입어야겠다며 자신의 손발을 스스로 잘라낸다고 과연 그 의복이 딱 맞을까?
사자소학(四字小學)은 주자(朱子)의 소학과 기타 여러 경전의 내용을 알기 쉽게 생활한자로 편집한 한자학습의 입문서로써, 옛날에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자의 기초 교과서이다.
사자소학에는 부모님에 대한 효도, 형제간의 우애, 친구간의 우정, 스승 섬기기, 바람직한 대인관계 등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기 위한 기본적인 행동철학이 담겨져 있어, 종합적인 도덕교육과 인성교육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자소학은 단순한 한자 교과서가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변치않는, 시공을 초월한 인성교육의 지침이 될 권위있는 책으로서, 이를 익히다 보면, 한자공부 뿐 만 아니라 도덕성 회복과 인간성 복원에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이 사자소학은 비록 옛날에 나오 것이지만, 그 정신은 21세기를 맞고 있는 오늘날에 더욱 빛나고 있으며,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바로 이 사자소학에서 출발한다라고 할 수 있다.
사자소학(四字小學) 형제(兄弟篇)
兄弟姉妹(형제자매)
同氣而生(동기이생)
兄友弟恭(형우제공)
不敢怨怒(불감원노)
형제와 자매는, 같은 기운으로 생긴 것이니, 형은 우애롭고 동생은 공손하여, 감히 원망하고 성내지 않아야 한다.
骨肉雖分(골육수분)
本生一氣(본생일기)
形體雖異(형체수이)
素受一血(소수일혈)
뼈와 살이 비록 나뉘어졌으나, 본래 하나의 기운에서 생긴 것이며, 형체가 비록 다르지만, 본래 하나의 피를 받았다.
比之於木(비지어목)
同根異枝(동근이지)
比之於水(비지어수)
同源異流(동원이류)
이를 나무에 견주어 본다면, 뿌리는 같고 가지만 다른 것이며, 물에 견주어 본다면, 근원은 같고 흐름이 다른 것이다.
兄弟怡怡(형제이이)
行則雁行(행즉안행)
寢則連衾(침즉련금)
食則同牀(식즉동상)
형제가 화합하여, 길을 갈 때 기러기처럼 나란히 가고, 잘 때는 이불을 나란히 하고, 먹을 때 밥상을 함께해야 한다.
分毋求多(분무구다)
有無相通(유무상통)
私其衣食(사기의식)
夷狄之徒(이적지도)
나눌 때 많은 것을 구하지 말고, 있고 없는 것을 서로 통해야 한다. 자신의 의복과 음식을 사사로이 하면 오랑캐의 무리이다.
兄無衣服(형무의복)
弟必獻之(제필헌지)
弟無飮食(제무음식)
兄必與之(형필여지)
형에게 의복이 없다면, 동생은 반드시 그것을 드리고, 아우에게 음식이 없다면, 형은 반드시 그것을 주어야 한다.
一杯之水(일배지수)
必分而飮(필분이음)
一粒之食(일립지식)
必分而食(필분이식)
한 잔의 물도, 반드시 나누어 마시며,
한 알의 음식도, 반드시 나누어 먹어야 한다
兄雖責我(형수책아)
莫敢抗怒(막감항노)
弟雖有過(제수유과)
須勿聲責(수물성책)
형이 비록 나를 꾸짖는다 해도, 감히 대항하여 성내지 말며, 동생이 비록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모름지기 소리내어 꾸짖지 말아야 한다.
兄弟有善(형제유선)
必譽于外(필예우외)
兄弟有失(형제유실)
隱而勿揚(은이물양)
형제간에 잘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밖에 칭찬하며, 형제간에 잘못이 있으면, 숨기고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兄弟有難(형제유난)
悶而思救(민이사구)
兄能如此(형능여차)
弟亦效之(제역효지)
형제간에 어려움이 있으면, 근심하고 구제할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니, 형이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동생 또한 이를 본받아야 한다.
我有歡樂(아유환락)
兄弟亦樂(형제역락)
我有憂患(아유우환)
兄弟亦憂(형제역우)
내게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면, 형제간에 또한 즐거운 것이다. 내게 근심이 있다면, 형제간에 또한 근심이 있는 것이다.
雖有他親(수유타친)
豈若兄弟(기약형제)
兄弟和睦(형제화목)
父母喜之(부모희지)
비록 다른 친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형제와 같겠는가. 형제간에 화목하면, 부모님께서 이를 기뻐하신다.
우리는 흔히 형제자매의 우애가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형제간의 피비린내 나는 경쟁은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형제간의 우애는 단순히 피를 나누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형제간의 경쟁을 지혜롭게 다스리고 그들 모두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가족 환경에서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형제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편애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보다 더욱 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해지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비교는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자식이라 할지라도 형제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 성격, 취향, 지적능력, 재능 등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차이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저 다름을 의미한다. 첫째가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데 배해, 둘째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조용하다면 이는 누가 더 뛰어나고 좋은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개성을 이해하고 아이들 각각이 가진 좋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부모는 첫째의 적극적인 면을 칭찬해 주는 동시에 둘째의 사려 깊음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여줄 줄 알아야 한다.
형제간의 우애를 다지기 위해서는 서열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 이 때의 서열은 단지 나이가 들었다고 무조건 떠받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첫째는 연장자로서 존경과 이득을 얻는 대신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며, 막내는 막내로서의 특권과 면책을 얻는 대신 연장자에 대한 존경과 의무를 해야만 한다.
자장면도 나이 순이다는 말처럼 첫째는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더 먼저 먹을 수는 있으나, 아직 어린 동생을 위해 뒷 정리를 도와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동생은 어리기 때문에 형의 도움을 얻고 힘든 일을 덜하게 되는 대신에 형의 말을 존중해야 한다.
아무리 사이좋은 형제라 할지라도 다툼은 있게 마련이다.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지만 부모가 어설프게 개입할 경우에는 오히려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부모가 섣불리 판사 역할을 하는 경우이다. 아예 상관없는 다른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할 때보다 부모가 나설 때 아이들은 더 발끈하기 쉽다. 아이들 모두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사소한 싸움일 경우에는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낫고, 문제가 커질 경우에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 주는 것보다 각각의 입장을 헤아려 준 후 서로 때리거나 욕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해 보라고 아이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좋은 형제가 있는 것은 좋은 부모를 만난 것만큼이나 커다란 축복이다. 그리고 이러한 축복은 저절로 받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함께 나누는 기쁨을 가르친 부모님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나라에 형제가 금덩이를 내던진 형제투금(兄弟投金) 설화가 있다. 길을 가던 두 형제가 금덩이를 주워 둘이 나란히 나누어 가졌는데, 강을 건너다가 동생이 자기 몫인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버렸다.
깜짝 놀란 형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전에는 형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였는데 금덩이를 주운 다음에는 욕심이 생겨 형님이 없었으면 내가 다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금덩이가 우리 형제 사이를 갈라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네 말이 옳다."하고 자기도 역시 금덩이를 강에 던져 버렸다는 내용이다.
형제간의 우애가 전답보다, 금덩이보다 더 소중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그러나 형제들이 나이가 들어 사이가 멀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재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재산을 사이에 둔 형제간의 다툼은 대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형제간의 결속이 약해지는데 이때는 대부분 자신의 가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병중에 있거나 돌아가셨을 때, 형제간에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은 어렵지 않게 보아 왔을 것이다. 이런 형제는 패륜아로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
부모는 자신들을 낳아 주시고 길러 주었으며, 형제간에 항상 우애있게 지내라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재산을 가지고 다투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일까? 이 모두가 욕심이 앞서서 생기는 일이다. 형제투금(兄弟投金)을 한 번 생각해 볼일이다.
형제는 부모의 몸을 나누어 가지고 같은 피를 이어 받은 사람들이다. 어릴 때에는 부모의 크나 큰 사랑을 고루 받고 자랐고, 함께 밥을 먹고 옷은 돌려가며 입었으며 학문은 서로 이어 받고, 언제나 뜻을 같이 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도리에 어긋나고 난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형제는 서로 사랑한다.
형과 아우는 세상에서 가장 친하면서도 가장 많이 싸우는 사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치거나 형제에게 위험이 있으면 형제는 하나가 되어 뭉쳐서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
사람이 있은 후에 남편과 아내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가 있은 후에야 아버지와 자식이 있으며, 아버지와 자식이 있은 후에야 형제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한 집에 이 셋이 가장 친한 사이다.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 형제로부터 구족(九族)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세 가지 친함이 바탕이 된다. 이러한 때문에 인륜에서 이 셋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니 이 친함을 더욱 두텁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형제가 장성하여 각각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게 되니, 비록 우애가 돈독하게 두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정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동서(同壻) 사이를 형제에 비교한다면 멀고도 정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멀고 정이 없는 사람들을 친하고 두터운 정을 헤아려 조절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로 인해서 형제 사이의 틈이 벌어지게 되나, 오직 우애와 공경함이 지극히 깊어서 아내가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어야만 우애가 약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 혼사에 있어서 사람의 선택은 그 사람이 가진 재물이나 영화로움보다는 인품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사람이 현명하다면, 현재는 비록 가난하고 지위가 낮더라도 미래에 부유하고 귀하게 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아내의 재물로 부유해지고 아내의 권세로 몸이 귀해진다고 한들, 대장부의 기개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부끄러운 마음이 없겠는가?
예로부터 집안의 흥망성쇠는 며느리에게 달려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한 때 며느리의 부귀를 부러워하여 며느리를 삼는다면 며느리는 자신의 집안의 부귀함을 자랑하여 남편을 가볍게 여기고 시부모를 업신여기지 않을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하고 질투하는 습성이 생겨나면 그 집안에는 근심이 끝이 없게 된다.
소경(蘇瓊)이라는 사람이 고을 태수로 부임해 갔을 때, 그 고을에서 형제간의 농토를 서로 가지려고 다투고 있었다.
이 다툼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해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였다. 그들 형제는 수백명의 증인을 내세워 자기의 주장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형제는 원수지간으로 변하고 말았다.
마을 태수 소경은 이를 안타까이 생각하여 두 형제를 불러 "천하에 얻기 어려운 것이 형제이고 구하기 쉬운 것이 농토이다. 가령 농토를 얻는다 하더라도 형제의 우의를 잃게 되면 어찌 하겠느냐?"하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자, 모여 있던 증인들 모두가 울음을 터트렸다.
이후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서야 이들 형제는 태수의 말이 옳다는 것을 느끼고 농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예전처럼 형제가 다정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형제의 우애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오직 우애와 공경함이 지극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형제간의 우애가 지켜짐을 새겨야 한다.
전통사회에서 사람을 귀하게 여긴 것은 인륜이 있었기 때문인바 인륜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전통교육에서 가장 중시한 것도 바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이었고, 역대 왕조 대대로 각 방면에서 뛰어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교화에 사용했다.
조선 왕조에서 인륜을 가르치는 교재로 가장 중시했던 것은 세종(世宗) 때 간행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정조(正祖) 때 간행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들 수 있다.
행실도는 글을 잘 모르는 일반 백성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림을 그리고 한글로 해석해 놓았는데, 이 책에 조효(趙孝)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동한(東漢) 명제(明帝)때 패(沛)지방에 조효(趙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조예(趙禮)라는 동생과 아주 우애가 깊었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해지자 각지에서 도적떼가 출몰해 사회가 혼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한 가닥 광풍이 몰아쳤다.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과연 한 무리 도적떼들이 의추산(宜秋山)을 점거하고 사방으로 다니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백성들은 살기 위해 황급히 도망쳤고 기아에 지친 도적들은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심지어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았다. 도적들은 빈집에서 먹을 만한 양식을 찾지 못하자 사람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조예가 도적들에게 잡혀갔다. 조예는 몸이 허약해 비쩍 마른 상태였지만 흉악한 도적들은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도적들은 배가 고픈 나머지 조예를 잡아먹기 위해 나무에 묶어 놓고는 그 옆에서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형 조효는 다행히 화를 면한 뒤 동생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조급하게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동생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 동생을 잃는다면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고 자신도 더 이상 살아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조효는 동생을 살려내기 위해 도적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조효의 순수하고 간절했던 마음이 통했는지 길을 잃지 않고 곧장 도적들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형이 온 것을 본 조예는 놀라서 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조효는 동생을 돌볼 겨를도 없이 곧장 도적들에게 달려가 애원했다. "제 동생은 병이 있는데다가 몸이 약해 맛도 별로 없을 겁니다. 부디 제 동생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도적들은 화를 벌컥 내며 "풀어주라고?, 그럼 우린 뭘 먹으란 말이냐?"라고 하자 조효는 "제 동생을 풀어만 주신다면 제가 대신 끓는 물속에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몸도 건강할 뿐만 아니라 살도 통통합니다."
도적들은 순간적으로 멍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죽기를 자청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조예가 옆에서 형의 말을 듣고는 놀라 소리쳤다. "안돼요! 안돼! 붙잡힌 건 나란 말이에요. 우리 형은 아무 잘못 없으니 죽이지 마세요." 동생의 말을 들은 조효는 달려가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비록 흉악하기 그지없는 도적들이지만 어린 형제가 서로 죽기를 다투며 자신을 희생하여 서로를 살리려는 것을 보고는 깊은 감동을 받아 오랫동안 닫혀있던 측은한 마음이 올라와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후 그들은 양식을 구해오라는 조건을 달아서 조효 형제를 풀어주었다. 비록 조건을 달긴 했지만 그냥 풀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그들이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한 도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효는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방으로 다니며 식량을 구하려 했으나 못 구하자 다시 되돌아가 "약속대로 식량을 구하지 못했으니 저를 삶아 드시기 바랍니다." 라고 했다. 그러자 도적들은 기이하게 여겨 아무 조건없이 그를 풀어주었다.
나중에 이 일이 황제에게까지 알려져 명제(明帝) 역시 감동받아 조서(詔書)를 내려 조효에게 간의대부(諫議大夫)란 벼슬을 내렸다. 아울러 이들이 덕으로 도적들을 감화시킨 선행을 널리 알려 모든 백성들이 본받게 했다.
속담에 '형제란 수족과 같다'는 말이 있다. 부모라는 한 나무에서 나온 가지와 같다는 뜻이다. 조효 형제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형제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으니 실로 그 우애가 깊다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효제(孝悌;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공손함)란 인(仁)의 근본이라 하여 인을 실천함에 효제(孝悌)를 아주 중시했다.
형제자매는 한 부모로부터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로서, 동일한 성장 체험을 통하여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면서 성장한다.
형제자매 간에 지켜야 할 행동양식은 가정교육을 통하여 배우고 익히며,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원형이 된다.
형제자매가 우애하며 지내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를 실천하는 길이다. 형제자매 관계는 연령의 차이와 이성의 구별이 있다.
형제자매는 자신들이 동일한 부모의 자녀임을 확인하고, 혈연과 공통체험에서 축적된 서로간의 친애감을 바탕으로 서로 돕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부모에 대한 효와 형에 대한 공경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아우는 형을 부모와 같은 존재로 공경하고, 형은 부모와 같은 입장에서 아우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형수와 시동생은 한없이 어려워질 수 있는 관계이지만, 다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관계이기도 하다.
형제자매의 범위를 넓히면 동년배 친척관계에서의 형제자매, 더 확장하면 사회에서의 모든 인간관계로까지 확대된다.
건강한 가정은 부부간의 돈독한 사랑에서 출발하고, 건전한 사회는 가정에 바탕을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