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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운명]속수무책(束手無策)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9.04.16|조회수3,749 목록 댓글 0

속수무책(束手無策)

손을 묶인 듯이 어찌 할 방책이 없어 꼼짝 못하게 된다는 뜻으로, 뻔히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꼼짝 못한다는 말이다.

束 : 묶을 속(木/3)
手 : 손 수(手/0)
無 : 없을 무(灬/8)
策 : 채찍 책(竹/6)

(유의어)
속수(束手)
공수무조(拱手無措)
무가내하(無可奈何)
거허박영(據虛博影)
갱무도리(更無道理)
일주막전(一籌莫展)
산궁수진(山窮水盡)
무능위력(無能爲力)


속수(束手)는 손이 묶는다는 뜻이고, 무책(無策)은 방책을 세울 수 없다는 뜻이다. 손이 묶인 것처럼 아무런 방법이나 도리가 없음을 가리킨다.

속수무책(束手無策)은 본래 집이기(集異記)라는 책에 나오는 말로, 원전에는 공수무조(拱手無措)라고 나온다.

공수(拱手)란 두 손을 맞잡거나 팔짱을 끼는 것을 말해 손을 묶는다는 뜻의 속수(束手)로 바뀌었고, 무조(無措)는 조치나 계책이 없다는 뜻으로 무책(無策)으로 바뀌어, 속수무책(束手無策)이라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당(唐)나라 대력(大曆) 연간(年刊)에 원찰(元察)은 공주(邛州)의 자사(刺史: 감찰관)가 되었다. 공주의 성곽을 지키는 장수가 있어 위숙(魏淑)이라 하니 몸집이 건장하였다.

위숙의 나이는 바야흐로 사십, 부모는 연로하고 아내는 어린데 갑자기 이상한 병에 걸렸으니 아픈 데는 없고 다만 먹는 음식은 나날이 줄어 신체는 날로 줄어들 뿐이었다.

용한 의원도 공수무조(拱手無措) 또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한 해가 채 지나지도 않아 마치 갓난애와 같아져, 다시 걷고 앉거나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어머니와 아내가 서로 끌어 안았다.

위숙의 생일을 맞아 집안 사람이 중(僧)을 불러 음식을 시주하고, 그 아내가 비녀를 넓적다리에 끼고 음식을 먹는데, 순식간에 작은 사발 한 그릇을 능히 비웠다. 이로부터 날로 먹는것이 늘어 몸 또한 점점 크고 반년이 안돼 곧 처음처럼 회복되었다.

원찰(元察)은 위숙에게 이전의 벼슬을 수여하였고, 기력을 회복하니 다시 작아지는 이상한 일은 없었다. 십여년 후 오랑캐를 막다가 진에서 전사하였다.

大曆中, 元察為邛州刺史.
대력중, 원찰위공주자사.
而州城將有魏淑者, 膚體洪壯.
이주성장유위숙자, 부체홍장.
年方四十, 親老妻少, 而忽中異疾,
연방사십, 친로처소, 이홀중이질,
無所酸苦, 但飲食日損, 身體日銷耳.
무소산고, 단음식일손, 신체일소이.
醫生術士, 拱手無措.
의생술사, 공수무조.
寒暑未周, 即如嬰孩焉, 不復能行坐語言.
한서미주, 즉여영해언, 불부능행좌어언.
其母與妻, 更相提抱.
기모여처, 경상제포.
遇淑之生日, 家人召僧致齋, 其妻乃以釵股挾之以哺,
우숙지생일, 가인소승치재, 기처내이채고협지이포,
須臾, 能盡一小甌.
수유, 능진일소구.
自是日加所食, 身亦漸長, 不半歲, 乃復其初.
자시일가소식, 신역점장, 불반세, 내복기초.
察則授與故職, 趨驅氣力, 且無少異.
찰즉수여고직, 추구기력, 차무소이.
後十餘年, 捍蠻, 戰死于陳.
후십여년, 한만, 전사우진.

한자성어는 한자로 이루어진 관용구를 말하고, 사자성어는 4글자로 된 한자성어를 말하고, 고사성어에는 고사성어(古事成語)와 고사성어(故事成語)가 있다.

그렇다면 古事成語와 故事成語의 차이는 무엇일까 ?

古와 故의 뜻의 차이로 볼 수 있는데 古와 故는 둘 다 ‘옛, 예전의, 오래되다’ 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故는 그 이외에도 연고(緣故)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고사성어(故事成語)는 어떤 사건의 연고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생성된 말이라고 해석되고, 고사성어(古事成語)는 흔히 故事成語와 혼용되나, 보통은 특정한 연고없이 옛날에 이루어진 관용적인 표현의 한자어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관포지교(管鮑之交)와 등하불명(燈下不明)을 예로 들어보면 관포지교(管鮑之交)는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兒)의 우정을 나타내는 옛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故事成語이지만 등하불명(燈下不明)은 단순히 등잔 밑이 어둡다는 뜻의 古事成語이다.

따라서 속수무책(束手無策)은 옛날에 있었던 무슨 사건과 관련된 한자성어가 아니라, 옛날부터 관용적으로 쓰던 말이 문헌에 기록이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흔히 하는 말인 얼짱이나 몸짱과 같은 말을 먼 미래 사람들이 여전히 쓴다면 무슨 유래가 있는 것은 아니듯이 그 전부터 널리 쓰인 것이 문헌에 기록된 것 일뿐이다.

다시말해 어떤 일에 결부되어 만들어진 말을 고사성어(故事成語)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비록 어느 한 특별한 고사(故事)와 관련은 없어도 흔히 쓰이는 성어라도 그 출전(出典)은 찾아볼수 있다.

송사(宋史) 열전(列傳) 범응령편(范應鈴篇)에, “폐하께서 스스로의 마음에서부터 결단하지 못하고 헛되이 좌우의 가깝고 익숙한 말에 현혹되고 궁중의 비빈(妃嬪)의 소견에 전이(轉移)되어 지금의 때를 잃고 도모하지 않아 간신이 한밤을 타 종이조각이 혹 안에서 나오면 충의지사(忠義之士)가 속수무책(束手無策)일 것입니다.”라고 한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한자성어도 가만 보면 갑자기 이루어 진 것보다 그 이전까지 흔히 쓰이던 말이 합쳐 연용(聯用)된 것이 많다. 즉 속수무책(束手無策)의 경우 한(漢)나라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춘신군열전(春申君列傳)에 ‘아비와 아들 늙은이와 어린애가 목줄을 하고 손이 묶여(束手) 포로가 된자가 서로 도로에 잇 다르고’ 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옛말에 속수(束手)란 바로 이렇게 꼼짝없이 묶여가는 포로가 된다는 뜻으로 쓰였다.

또한 무책(無策)도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에 보면 왕망(王莽)이 흉노를 공격하려 하자 왕망의 장군 엄우(嚴羽)가 이를 간해 한 말로 역대의 흉노에 대한 정책으로 주(周)나라는 중책을 얻었고 한(漢)나라는 하책을 얻었는데 진시황(秦始皇)은 작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민력(民力)을 가벼이 여겨 온 힘을 기울여 장성(長城)을 쌓아 나라를 고갈시키고 이로 사직을 잃게 했으니 이것이 무책이 된다고 한말이 있다. 즉 하책도 못 된다는 것이다.

책(策)은 회초리같은 채찍인데 옛날 종이가 나오기 전에 나무 졸가지를 깍아 여기에 글을 쓴 것을 엮어 이것을 또한 책(策)이라 했는데 이는 지금 공책의 책(冊)과 통하는 글자이며 이렇게 만들어진 책(策)에 정책(政策)의 글을 올리는 것을 헌책(獻策)이라 하였으니 계책(計策)의 책(冊)은 여기서 나온 뜻이다.

속수무책(束手無策)과 같은 뜻으로 쓰일 만 한 말로 무가내하(無可奈何), 공수무조(拱手無措) 등이 있는데 무가내하(無可奈何)는 막무가내(莫無可奈)의 반대말로 어쩔 수 없다는 말이고 공수무조(拱手無措)는 필장을 낀채 방관(傍觀)하고 손 댈데가 없다는 말로서 좀 소극적인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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