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국과민(小國寡民)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욕심 없는 이상사회를 말한다.
小 : 작을 소(小/0)
國 : 나라 국(囗/8)
寡 : 적을 과(宀/11)
民 : 백성 민(氏/1)
땅덩어리도 좁고(小國) 사는 인구도 적은(寡民) 그런 나라가 세력 다툼에 여념이 없는 세상에서 견디기는 어렵다. 강대국은 틈만 나면 작은 나라를 넘보고 땅을 넓히려 안간힘이다.
옛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부터 근대의 제국주의(帝國主義)까지 아니 오늘날까지도 호시탐탐한다.
그런데 작은 땅덩이와 적은 백성을 가진 나라가 참으로 살기 좋은 이상적인 형태라고 한 사람이 노자(老子)다. 나라가 크면 클수록 국민들의 욕심만 커져 오히려 불행을 가져온다고 봤다.
자연법칙에 따르고 인위적인 것을 배격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은 도가(道家)의 근본개념이다. 도가의 창시자답게 노자는 나라도 문명의 발전이 없었던 때가 가장 평화롭고 살기 좋았던 때라고 했다.
도덕경(道德經) 제80장의 독립장(獨立章) 첫 부분에 이 말이 나온다.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나라는 작고 백성도 적어서 열 가지 백 가지 온갖 이기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게 된다.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백성은 목숨이 중한 것을 알아 멀리 옮겨가는 일도 없고,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탈 일이 없고, 무기가 있어도 쓸 곳이 없다.
이렇게 작은 나라가 되면 자신들의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최고로 여기며, 사는 곳을 최고로 여기게 된다.
또 이웃나라가 바라보이고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지척에 있더라도 오갈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다고 했다. 땅이 좁고 인가가 인접해 있다는 계견상문(鷄犬相聞)이란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
문명의 발달도 없고 갑옷과 무기도 소용이 없는 나라가 살기 좋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땅도 넘기고 인간도 줄여야 할까. 백성들의 살 근거가 되는 땅을 일부러 넘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다.
또 이웃나라를 쳐서 땅을 차지하고 국민을 노예로 삼았던 강국들은 욕심이 지나쳐 서로 원수가 됐다.
노자는 주거나 뺏거나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초창기처럼 이웃과 잘 지내는 이상적인 나라라고 본 것이다. 지구촌에 하루도 총성이 들리지 않는 날이 드물다고 하니 이상사회는 까마득하다.
⏹ 소국과민(小國寡民)
이 성어는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노자(老子)가 이야기하는 가장 이상적인 나라 형태로 문명의 발달없는 무위와 무욕의 이상사회를 이르는 말이다.
기원전(紀元前) 570년, 노자(老子)가 초(楚)나라의 귀족신분(貴族身分)으로 탄생(誕生)하였다. 도덕경(道德經)을 지었다고 한다.
도(道)의 철학개념은 자연자체, 즉 만물의 기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공자(孔子)나 묵자(墨子)처럼 인류를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것에 대하여, 그것은 쓸데없는 짓으로, 무위자연만이 인간의 본성에 합치하는 도(道)라고 하였다.
그의 정치적 이상은 소국과민(小國寡民)이었다. 노자(老子)는 노예제도의 부패상을 보아왔고 신흥세력을 대표하는 사람들 가운데서조차 사회발전의 요소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원시적인 경제상태로 복귀하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자(老子) 80장(章)에 나오는 말이다.
소국과민(小國寡民) : 작은 나라와 적은 백성.
使有什伯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많은 도구가 있으나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이 죽음을 중히 여기고 멀리 이사가지 않는다.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탈 일이 없고, 군사와 무기가 있어도 내보일 일이 없다.
사인복결승이용지(使人復結繩而用之) : 다시금 새끼를 묶어서 의사 소통을 한다.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음식을 달게 먹고, 의복을 아름답게 걸치며, 거처를 안락하게 여기며, 풍속을 즐긴다.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이웃나라가 서로 마주보고, 닭과 개가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지만, 백성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노자왈(老子曰); “인간 개개인이 하나의 나라이니 그 다스림을 관여하지 말고 관여한다 하여도 관여 할 방법이 없다. 내가 상대의 속으로 들어 갈 수가 없으니, 어떻게 백성을 바꿀 수가 있는가. 내 속에 재물을 쌓을 수 없고, 병사로 막을 방책도 없다. 내 나라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상대의 나라도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노자는 계속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 새끼를 묶어서 문자로 사용하게 하며, 그 음식을 달게 여기고 그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그 거처를 편안하게 여기고 그 풍속을 즐겁게 여기게 해야 한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노자는 문명의 발달이 생활을 풍부하고 화려하게 하지만, 인간의 노동을 감소시키고 게으름과 낭비와 생명의 쇠퇴현상을 가져온다고 하면서 소박하고 작은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사회를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과 같은 이상사회, 이상국가로 보았다.
즉, 소국과민(小國寡民)이란 문명의 발달이 없지만, 갑옷과 무기도 쓸 데가 없는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이 이상적 사회요 이상적 국가임을 일컫는 말이다.
다시 풀이하면 작은 나라에는 사는 사람도 적다. 수많은 사람이 쓸 수 있는 기물이 있지만 쓰지 않게 하고, 죽음을 중하게 여겨 멀리 떠나지 않게 한다.
비록 배가 있고 수레도 있지만 그것들을 타는 바가 없고, 비록 병사가 있지만 전선(戰線)에 배치한 바가 없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아득한 옛날의 덕치(德治)로 돌아가 생활하게 한다.
거둔 곡식(穀食)으로 밥을 지어 맛있게 먹고, 손수 길쌈한 천으로 옷을 지어 아름답게 하고, 손수 지은 집에서 편안히 살며, 손수 가꾼 습속(習俗)을 즐긴다.
인접한 두 나라가 서로 건너편에 보이고 닭 울음, 개 짖는 소리도 들렸지만 사람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 80장(章)은 떠돌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고 자연에 안겨 탈 없이 사는 모습을 그려 주고 있다.
무위(無爲)의 생존을 생각해 보게 하며 번잡하고 불안한 문명의 현실을 헤아려 보게 한다. 편리한 생활이 중한가 편안한 생활이 중한가를 따져 보게 하는 장이다.
결승(結繩)은 법령으로 다스리기 전에 행해졌던 다스림을 말한다. 주역(周易) 계사편(繫辭篇)에 상고결승이치(上古結繩而治)라는 구절이 나온다.
결승(結繩)은 덕치(德治)를 연상케 한다. 불상왕래(不相往來)는 서로 다투지 않고 경쟁하지 않으며 자연에 안겨 만족하며 사는 것을 떠올려 준다.
🔘 지금은 고향이 따로 없다.
고향은 이미 삶의 터전이 아니라 일년에 한두번 방문해야 하는 타향처럼 되어 버렸다. 편안한 삶을 버리고 편리한 삶을 택하면 택할수록 마음은 쫓기며 쪼들리게 마련이다.
편리한 삶을 갖자면 그만큼 돈이 필요한 까닭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살길이 막히고 돈이 없으면 거지가 된다. 어쩔 수 없이 현대인은 돈벌레가 되고 성취욕의 병사(兵士)처럼 된다.
🔘 문명의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자연을 떠나게 한다.
도시는 인생을 숨가쁘게 하고 산천은 인생을 느긋하게 한다. 도시는 온갖 것들에게 부족함을 느끼게 하지만 산천은 온갖 것들에게 만족을 준다.
도시의 모든 것들이 부족하다고 충동질하기 때문에 도시인의 마음은 항상 총대에 꼿힌 칼끝처럼 예리하다. 그래서 미소 뒤에 송곳이 숨어 있다는 말을 만들어 낸다.
도시인은 이웃을 얻지 못하고 그저 모여 살 뿐이다. 인생을 검소하고 겸허하게 맞이할 줄을 잊어버린 탓이다.
������ 자연으로 산다.
노자(老子)가 알려 준 작은 나라(小國)는 자연으로 사는 나라이다. 자연으로 산다는 것은 무리없이 산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짓는 무리는 인간을 중심으로 만물을 결정하려고 할 때 빚어진다.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 중심의 발상은 순리(順理)에서 멀다. 자연이 도시에는 없고 산중(山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천만 자연인 것이 아니라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도시인이라도 덕(德)을 떠나지 않고 산다면 도시에서 자연을 누리는 셈이고, 선(善)한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노자가 말하는 작은 나라라고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 죽음이 귀해 멀리 이사 가지 않는다(重死而不遠徙).
고향을 떠날 수는 없다. 몸은 떠나 있어도 마음에는 항상 고향이 있는 법이다. 태어난 곳에 묻힌다는 것은 자연으로 되돌아감을 뜻한다.
죽을 때 묻힐 곳을 생각한다는 것은 고향을 잊지 못함이요, 고향을 잊지 못함은 자연을 잊지 못함이다. 멀리 이사 가지 않음은 자연을 어기는 짓을 하지 않음을 뜻한다고 새겨도 될 것이다.
🔘 수수하게 꾸밈없이 산다(復結繩而用之).
결승(結繩)은 꾸밈없이 수수한 것이다. 자연은 사람의 마음을 두텁게 하지만 문명은 사람의 마음을 얄팍하게 한다. 얄팍한 마음은 이해에 따라 변덕스럽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마음은 꾀를 내고 거짓을 일삼는다.
복결승(復結繩)을 현대문명을 등지고 원시시대로 복귀하자는 말로만 들을 것은 없다. 유위(有爲)의 와중에서 무위(無爲)를 잊지 않으면 그것이 곧 복결승(復結繩)인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치스러움을 멀리하라 함이다.
🔘 의식주를 경쟁하지 마라.
남보다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남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남보다 더 좋은 집에 살아야 잘사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음 편한 삶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인생에 우열반이 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착각은 없다.
인생에는 승패가 없다. 오직 생사의 사이를 맞이하고 누리면 거기에 곧 행복이 있다는 것을 자연은 가르쳐 준다. 그러나 인간은 문명의 유혹에 매달릴 뿐 자연의 가르침을 외면하려고 한다.
🔘 의식주가 다 바뀐 지금 노자가 그려놓은 작은 나라는 외딴 섬이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인간의 모습이 괴물처럼 변신해 가는 와중이지만 선(善)이 부재하고 덕(德)이 부정되는 삶을 어느 누가 바랄 것인가. 인생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인간이 선(善)하고 유덕(有德)하기를 바란다면 노자의 작은 나라는 생존의 고향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중국 역사에서 최초로 국가의 형태를 갖춘 나라는 하(夏)나라고, 그 다음이 은(殷)나라, 그 다음이 주(周)나라다.
문헌에 많이 나오는 문왕(文王)은 원래 서백(西伯)으로서 풍(豊)땅을 도읍으로 정하고 은왕조(殷王朝)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으로 자신의 부족을 성장시켰다.
문왕(文王)의 아들인 무왕(武王)은 여상(呂尙: 강태공) 등을 거느리고 은(殷)나라 주(紂)왕을 쳐서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호경(鎬京)을 도읍으로 정해 주왕조(周王朝)를 세웠다.
이후 수도를 동쪽에 있는 낙양(洛陽)으로 옮겼다. 수도를 옮기기 전을 흔히 서주시대(西周時代)라고 하고 이때부터 주왕실(周王室)이 멸망할 때까지를 동주시대(東周時代)라고 한다.
그리고 동주시대를 다시 춘추시대(春秋時代)라고 하고, 이후 진(秦)나라가 통일하기까지를 바로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시대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원래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성립한 주(周)나라는 왕이 직접 다스리던 지역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여러 제후국으로 만들었다.
왕과 혈연관계가 있거나 공로가 많은 사람을 제후로 삼아 영토를 주고 다스리게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왕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제(齊)나라는 은(殷)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강태공(姜太公)이 다스렸다. 하지만 그들의 손자 세대에는 할아버지 세대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내는 천자를 죽이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중국 땅이 하나의 계통이 형성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무질서, 혼란의 시대가 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러 제후국은 어떤 나라를 세워야 할지, 힘 있고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사상가들은 사유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왕을 설득하려고 하였다. 이른바 유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여러 명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제자(諸子)라고 하고, 그 온갖 학파들을 백가(百家)라고 한다.
유가(儒家)는, 왕이 인(仁)과 예(禮)로 백성을 통치한다면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梁)나라의 혜왕(惠王)이 맹자(孟子)를 맞이하는 것이 맹자의 첫 장면이다.
양혜왕(梁惠王) 말했다. “원로(元老)한 분께서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오셨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어떤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양혜왕의 말에 맹자가 답하였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일 뿐입니다. 왕이 어찌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대부는 어찌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 하며, 일반 사람은 어찌 내 자신을 이롭게 할까 할 것입니다.”
맹자는 왕이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로움으로써 감화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다음 만남에서 양혜왕은 자신은 정치를 잘하는 것 같은데 백성들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한탄하였다.
그러자 맹자는 쉽게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나서,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는데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는데 창고를 열 줄 모르고, 사람이 죽으면 ‘내가 아니라 이 해(歲)의 잘못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을 찔러 죽이고 이것은 내가 아니라 칼이 한 일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잘못을 그 해의 일로 돌리지 않는다면 이 천하의 백성이 왕에게 이를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맹자는 백성을 위함으로써 부강한 나라를 만들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세금이 많아야 하며, 세금을 많이 걷기 위해서는 인구가 많아야 한다.
당시 중국 실정에서 단기간에 인구를 증가시키는 방법은 오직 외부의 백성이 이주해 오는 것밖에는 없다. 맹자는 부강한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인의(仁義)의 위민정치(爲民政治)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법가(法家)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법가가 이룩한 나라가 통일제국인 진(秦)나라이기 때문이다. 법가는 법으로써 부국강병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주장을 실천했다.
공자가 말하길, “법제(法制)와 금령(禁令)으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가지런하게 하면 백성들이 법망을 피해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요,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禮)로써 가지런하게 하면 부끄러움이 있고 또 바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로써 보면 당시에 대체로 형벌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예(禮)는 사회관습을 바탕으로 한 규범이고, 법(法)은 형벌 위주의 인위적 규범이다.
법가는 관습적 규범을 제거하고 법에 의해서 국가질서를 확립하고 나아가 국력을 충실히 할 것을 추구했다. 법가의 최대 사상가인 한비(韓非)도 정치의 최대 목표는 힘으로서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외에 보편적 원칙이나 일관된 주장도 없이 무조건 자신이 소속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하겠다는 사상가, 혹은 유세가들이 등장했다. 바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그들이다.
사기열전(史記列傳)에서 사마천(司馬遷)은 이들을 “진실로 위험한 사람들이다”라고 비평했다. 소진과 장의는 여기서 역사적으로 매장 당했다.
하지만 소진과 장의는 오늘날의 일반적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국가와 국민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나라 간의 협상에서 멍청하게 당할 수도 있고 힘이 약한 나라를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공격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현실에서 살고 이를 실천한 이들이 소진과 장의이다.
이들은 제후국의 왕에게 이렇게 하면 당신의 나라가 잘 될 것이라고 유세하여 자신의 주장대로 움직이게 하였다.
당시 전국시대에 진(秦)나라의 강성함이 문젯거리였다. 진(秦)나라는 다른 나라들의 합종정책 때문에 다른 나라들을 공격하지 못했다. 이 정책을 유지시킨 이가 바로 소진(蘇秦)이다.
반대로 진나라를 방어하는 합종정책을 깨고 진나라를 섬기게 한 연대를 도모한 이가 바로 장의(張儀)이다.
이들이 남긴 말 속에는 독특한 현실성이 들어있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자신의 나라를 부국 강대화할 것인가에 대하여 적극적이며 현실적으로 접근하였다.
물론 여러 왕들에게 진(秦)나라를 섬기면 당신의 나라가 잘 될 것이라고 의도적으로 속인 장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 이 시대의 국제질서는 장의와 같은 이들이 힘을 얻는 시대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여러 사상가들이 모두 부국강병을 주장했다.
지금 이 시대도 부국강병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다. 정말 그래야 하는가? 미국은 부국강병을 달성하였다. 하지만 그 나라의 젊은이들은 전장(戰場)에 있다. 이 점에 대하여 사람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국강병만이 해답인 것은 아닐 수 있다.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를 대표로 하는 도가(道家)는 부국강병을 반대하고 오히려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주장한다. 작은 나라, 적은 백성들을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대국다민(大國多民)을 주장하는 다른 학파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노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 수를 적게 하여 훌륭한 재능이 있을지라도 쓰이지 못하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을 두렵게 여기고 멀리 이사하지 못하도록 한다. 비록 배가 있어도 탈 사람이 없고 무기가 있어도 전쟁할 곳이 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새끼를 꼬아서 사용하도록 하고, 자기의 음식을 맛있게 먹도록 하고 자기의 옷을 아름답게 여기게 하고 풍속을 즐겁게 여기게 하며 이웃 나라가 서로 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을 지라도 백성들이 서로 왕래하지 못하도록 한다.”
간단히 말하면 백성들이 아주 작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도록 한다. 그리고 기술의 진보 같은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의 퇴보 그대로를 유지하도록 한다. 그 속에서 구하고 바라는 바 없이 사는 것을 노자는 행복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자는 큰 나라를 만들고 생산력을 극대화시켜서 대량으로 생산하고 대량으로 소비하는 것을 반대했다. 많이 알면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질 것이요,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할 수 없다면 허기(虛飢)질 것이다. 이에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면을 추구하기보다는 욕구를 감소시킬 수 있는 방면을 주목한다.
현대에도 개발과 성장을 비판하는 사상가가 적지 않다. 웬델 베리(Wendell Berry)는 희망의 뿌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경제의 승리는 공동체의 몰락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몰락은 공동체가 얼마나 귀하고 필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공동체가 몰락하면 노인공경, 어린이 보호와 교육, 가족생활, 협동작업, 기억의 대물림, 땅에 대한 애정, 자연과 야생 동식물 존중과 같이 공동체의 삶에서만 발생하고 보호받는 모든 것들이 함께 몰락한다. 이들이 모두 산업주의의 규칙으로 해를 입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귀중하고 가장 해를 입은 것은 남녀의 사랑이다. 남녀의 사랑은 공동체 삶의 핵심이다. 남녀의 사람은 우리의 육체적인 삶에서 우리를 창조하고 세계를 잉태시키며, 농업과 동물 보호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는 힘이다. 그것은 공동체를 결속시켜 그 지역에 뿌리내리게 한다.”
산업경제로 인하여 지역공동체가 망하면서 얼마나 큰 해가 발생하였는지를 잘 지적하고 있다. 또 진실한 사랑이 파괴됨을 걱정하고 있다.
그는 또 말한다. “만일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낭비를 줄이고 적게 소비하며 적게 사용하고 욕구를 줄이며 필요를 줄여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가장 놀라운 일은 우리 지도자들에게는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내보내 희생시키려는 용기는 있으나 탐욕과 낭비를 줄이라고 말할 용기는 없다는 사실이다.”
노자의 말과 너무나 닮아있지 않는가? 많이 소비하지 않아도 된다면 덜 생산해도 될 것이다. 욕구를 줄이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강대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보다 적은 나라, 또는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새로운 방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