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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운명]성동격서(聲東擊西)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9.04.16|조회수135 목록 댓글 0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

聲 : 소리 성
東 : 동녘 동
擊 : 칠 격
西 : 서녘 서

성동(聲東)은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격서(擊西)는 서쪽으로 공격한다는 뜻이다.

동쪽을 칠 듯이 말하고 실제로는 서쪽을 친다는 뜻으로, 상대방을 속여 교묘하게 공략함을 비유한 말이다.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술(戰術)은 내가 공격(攻擊)하려는 목표(目標)가 서쪽이면 동쪽에서 소리를 질러 적(敵)이 동쪽으로 모여들 때 비어있는 서쪽을 향해 기습(奇襲) 공격(攻擊)하여 공격의 효과(效果)를 높인다는 것이다. 양동작전(陽動作戰) 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相對方)에게 나의 공격 공격목표(攻擊目標)를 엉뚱한 곳으로 오해(誤解)하게 하여 실제 공격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적(敵)의 지점(地點)으로 하여 작전(作戰)의 효과(效果)를 높이는 것이다.


예부터 이 전법(戰法)이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적(敵)으로부터 큰 피해(被害)를 받을 수 있으므로 특히 신중(愼重)해야 한다. 상대(相對)의 지휘계통(指揮系統)을 혼란(混亂)시키는 것이 이 책략(策略)을 성공(成功)시키는 비결(秘訣)이다.


[내용 1]

통전(通典) 병전(兵典)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由來)하였다.

중국(中國) 한(漢)나라의 유방(劉邦:BC 247?∼BC 195)과 초(楚)나라의 항우(項羽:BC 232∼BC 202)가 서로 싸우던 중 위(魏)나라의 왕표(王豹)가 항우(項羽)에게 항복(降服)하였다. 유방(劉邦)은, 항우(項羽)와 왕표(王豹)가 양쪽에서 쳐들어오는 위험(危險)에 처하자 한신(韓信:?∼BC 196)에게 적(敵)을 공격(攻擊)하게 하였다.


위(魏)나라의 왕(王)인 왕표(王豹)는 백직(柏直)을 대장(大將)으로 하여 황허강[黃河]의 동쪽 포판(蒲坂)에 진(陣)을 치고 한(漢)나라 군대(軍隊)가 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하였다. 한신(韓信)은 포판(砲板)을 쳐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병사(兵士)들에게 낮에는 큰 소리로 훈련(訓練)하도록 하고 밤에는 불을 밝혀 적극적(積極的)으로 공격(攻擊)하는 표시(表示)를 나타내게 하였다.


백직(柏直)은 이러한 한(漢)나라 군대(軍隊)의 작전(作戰)을 보고 어리석다며 비웃었다. 한신(韓信)은 비밀리(秘密裏)에 한(漢)나라 군대(軍隊)를 이끌고 하양에 다다라 뗏목으로 황허강을 건너서 매우 빠르게 전진(前進)하여 위(魏)나라 왕표(王豹)의 후방(後方) 본거지(本據地)인 안읍(安邑)을 점령(占領)하고 왕표(王豹)를 사로잡았다.


병법(兵法)의 한 가지로, 한쪽을 공격(攻擊)할 듯하면서 약삭빠르게 상대편(相對便)을 속여서 방비(防備)가 허술한 틈을 타 다른쪽으로 쳐들어가 적(敵)을 무찌르는 것을 비유(比喩)하는 말이다.


[내용 2]

제(齊)나라, 한(漢)나라, 위(魏)나라가 연합(聯合)하여 연(燕)나라를 공격(攻擊)했을 때의 일이다.

연(燕)나라를 돕기 위해 북진(北進)한 초(楚)나라 군사가 위(魏)나라의 중요한 성(城)을 함락(陷落)시키자 세나라는 모두 놀라서 도망을 갔다. 그런데 목적(目的)을 이룬 초(楚)나라 군사가 본국(本國)으로 돌아오려 하자 성(城)의 서쪽에 한(漢)나라 군사가 진(陣)을 치고 있고 동쪽에는 제(齊)나라 군사가 진(陣)을 치고 있어서 군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초(楚)나라 군사를 지휘(指揮)하는 경양(景陽)은 여러 가지로 궁리(窮理)한 끝에 우선 서쪽 성문(城門)을 열고 낮에는 전차(田車)와 군마(軍馬), 밤에는 횃불을 움직여 초(楚)나라의 군사(軍使)가 한(漢)나라 군사와 자주 연락(連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제(齊)나라 군사는 한(漢)나라가 초(楚)나라 군사와 은밀(隱密)히 연합(聯合)하여 자기를 공격(攻擊)해 오지나 않을까 의심(疑心)하고 군사를 이끌고 철수(撤收)해 버렸다. 놀란 것은 남아 있는 한(漢)나라 군사였다. 그들은 우세(優勢)한 초(楚)나라 군사가 반격(反擊)해 오면 큰일이라 생각하고 야음(夜陰)을 틈타 황급히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래서 초(楚)나라 군사는 유유히 귀국(歸國)할 수 있었다.


[내용 3]

전한(前漢) 경제(景帝) 때 오(吳)나라, 초(楚)나라 등 분봉(分封)된 왕족(王族) 7국(國)이 연합(聯合)하여 반란(叛亂)을 일으켰는데, 한(漢)나라 장군(將軍) 주아부(周亞夫)는 성루(城樓)를 고수(固守)하여 결코 밖으로 쳐 나가지 않았다.


오(吳)나라 군사가 성(城)의 동남쪽을 공격(攻擊)할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곧 성(城)의 서북쪽 수비(守備)를 단단히 하라고 명령(命令)했다. 이를 보고 수행(隨行) 군사가 의아(疑訝)하여 물었다.

“적(敵)이 동남쪽을 치려는데 장군(將軍)께서는 어찌하여 서북쪽의 수비(守備)를 명령(命令)하십니까?”

그러나 주아부(周亞夫)는 웃기만 할 뿐 대답(對答)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과연 오왕(吳王)은 주력(主力) 군사로 서북쪽을 공격(攻擊)해 왔는데 미리 준비(準備)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공격(攻擊)은 실패(失敗)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것은 지휘자(指揮者)가 침착(沈着) 냉정(冷情)하여 적(敵)에게 속지 않은 하나의 예(例)이다.


또 후한(後漢) 말기(末期), 주준(朱寯)이 완성(宛城)에 있는 황건군(黃巾軍)이 공격(攻擊)했을 때의 일인데, 그는 적정(敵情)을 살필 수 있도록 우선 성(城)밖에 작은 동산을 쌓았다. 그리고는 북을 치며 군사들이 성(城)의 서남쪽을 공격(攻擊)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라고 명령(命令)을 내렸다.


황건군(黃巾軍)이 당황(唐慌)하여 우루루 서남쪽 수비(守備)로 몰렸다. 이것을 바라보고 있던 주준(朱寯)은 친히 주력군(主力軍) 5천명을 이끌고 성(城)의 북쪽을 불의(不意)에 공격(攻擊)하여 완성(宛城)을 빼앗았다. 이는 겉으로는 서남쪽을 공격(攻擊)한다고 떠들썩하게 한 다음 실지로는 북쪽을 공격(攻擊)하였던 것이다. 즉, 가짜의 정보(情報)로써 적(敵)을 속여 적(敵)을 진멸(殄滅)하는 승리(勝利) 전법(戰法)이었다.


이 계(計)의 이름은 당(唐)나라 시대(時代) 두우(杜佑)가 편찬(編纂)한 통전(通典에 성언격동 기실격서(聲言擊東 其實擊西)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겉으로는 동쪽을 공격한다고 떠들썩하게 한 다음 실지로는 서쪽을 공격(攻擊)하는 것이다. 즉, 가짜의 정보(情報)로써 적(敵)을 속여 적(敵)을 진멸(殄滅)하는 승리전법(勝利戰法)이다.


이 계(計)는 주로 아군(我軍)이 진공(進攻) 태세(態勢)에 있을 때 주로 사용된다.성동(聲東)은 속임수이고 실지 공격(攻擊)하는 서(西)가 주공(主攻) 목표(目標)이다. 따라서, 서(西)가 적(敵)이 방비(防備)가 안 된 곳이거나 적(敵)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면 이 계(計)가 성공(成功)할 수 있는 확률(確率)이 높다.


성동격서(聲東擊西)는 동쪽을 치는 듯 하면서 서쪽을 치고, 공격하는 듯 하면서 물러 나는 등, 허상(虛像)을 만들어 적(敵)으로 하여금 판단(判斷) 착오(錯誤)를 일으키게 한 후, 기회(機會)를 틈타 적(敵)을 진멸(殄滅)하는 것이다. 적(敵)의 지휘계통(指揮系統)을 혼란(混亂)에 빠뜨리기 위해서는 재빠르고 융통성(融通性)있게 행동(行動)해야 한다.


즉, 본래 A 지역을 공격(攻擊)하지 않을 것이면서도 마치 공격하는 듯 꾸미고 본래 B 지역을 공격할 계획(計劃)이면서도 전혀 공격(攻擊)할 기미(幾微)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행동하는 듯 하면서 하지 않고 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행동을 취함으로써 적(敵)으로 하여금 아군(我軍)의 의도(意圖)를 전혀 추측(推測)할 수 없게 하여 가짜의 상(像)으로 적(敵)을 미혹(迷惑)시켜 판단(判斷) 착오(錯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송(宋)나라 인종(仁宗) 황우(皇佑) 4년, 남방(南方)의 의지고(依智高)가 반란(叛亂)을 일으키자 적청(狄靑)이 군대(軍隊)를 이끌고 토벌(討伐)하러 나섰다. 수 차례 패배(敗北)하게 되자 적청(狄靑)은 군사들에게 영채(營寨)를 굳게 지키기만 하라고 명령(命令)을 내렸다. 또한, 열흘 분의 양초(糧草)를 준비(準備)하라고 명령(命令)을 내렸다. 이 명령(命令)이 내리자 마자 적(敵)의 세작(細作)에게 알려져, 적장(敵將)은 가까운 시간 안에는 적청(狄靑)이 출전(出戰)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해 전혀 방비(防備)를 늘리지 않았다.


그 날은 바로 정월(丁月) 대보름이라 백성들은 집집마다 등(燈)을 달고 오색천으로 장식(裝飾)해 명절(名節)을 맞이하고 있었다. 적청(狄靑)은 명(命)을 내려 연회(宴會)를 크게 베풀어 전군(全軍) 장수(將帥)들을 불렀다. 첫날밤은 고급(高級) 장수(將帥)들을 청(請)하고, 둘째날은 중하급(中下級) 군관(軍官)들을 부르며 제 삼일에는 전체 사병(士兵)들을 위로(慰勞)할 것이라고 미리 선포(宣布)했다.


첫째날 고급장수(高級將帥)들의 연회(宴會)는 술내기가 벌어져 즐거웁기 그지 없었으며 격식(格式)을 따지지 않고 먹고 마셔, 날이 밝아서야 헤어졌다. 둘째날, 중하급(中下級) 군관(軍官)들과의 연회(宴會) 때에는 술이 거나하게 되었을 때, 적청(狄靑)이 갑자기 일어나“오늘 갑자기 몸이 좀 좋지 않아 잠시 쉰 다음에 다시 와서 술을 권하겠소”라고 말하고는 들어갔다.


잠시 후, 전갈(傳喝)이 오기를 적청(狄靑)의 병(病)이 아직 낫지 않은 관계로 부장(副將)이 와서 우선 술을 권하겠다고 했다. 모두들 마음껏 먹고 마시고 흥(興)이 극(極)에 달했다. 밤이 깊었지만 주인(主人)이 아직 나오지 않아 아무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해가 뜨고 나서 갑자기 군졸(軍卒)이 와서“원수(元帥)께서는 이미 곤륜관(昆仑关)을 공격(公格)해서 무너뜨렸습니다. 모두들 곤륜관(昆仑关)에서 아침 식사(食事)를 드시기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모두들 이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적(敵)의 세작(細作)이 헛소문을 퍼뜨리는게 아닌가 하고 의심(疑心)했다. 몇 차례 듣고 나서야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모두 곤륜관(昆仑关)으로 달려 갔다.


원래, 적청(狄靑)이 밤마다 연회(宴會)를 열어 장병(將兵)들을 청(請)한다는 소식은 이미 적(敵)의 세작(細作)을 통해 적장(敵將)에게 보고(報告)되었다. 적장(敵將)은 크게 기뻐하여 자기도 연회(宴會)를 열고는 부하(部下)들을 접대(接對)했다. 게다가 그 며칠 동안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크게 내려 날씨가 아주 추웠다.


적청(狄靑)은 이 때를 이용해 정예병(精銳兵)을 선발(選拔)해 적(敵)이 준비(準備)되지 않은 것을 틈타 갑자기 적진(敵陣)을 야습(夜襲)하였다. 적(敵)은 너무도 당황(唐慌)하여 옳게 저항(抵抗)도 해 보지 못하고 줄줄이 도망가기에 바빴고 투항(投降)한 자 역시 부지기수(不知其數)였다. 이렇게 적청(狄靑)은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계책(計策)을 이용하여 손쉽게 험난(險難)한 곤륜관(昆仑关)을 손에 넣었던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이런 종류(種類)의 전술(戰術)은 자주 사용된다. 화투를 칠 때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꾸 다른 것을 먹을 것 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것도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술(戰術)을 응용(應用)한 것이다.


사실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술(戰術)을 가장 잘 사용하는 사람들은 운동선수(運動選手)들일 것이다.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술(戰術)은 운동경기(運動競技)의 페인트 모션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蹴球)나 농구(籠球) 경기에서 페인트 모션을 반칙(反則)이라고 한다면 그 경기는 재미도 없을뿐더러 선수들 간에 실력 차이도 별로 나지 않을 것이다. 축구(蹴球)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오른 발로 찰 것 같이 하면서 왼발로 차는 것은 반칙(反則)이라고 심판(審判)이 휘슬을 분다고 상상해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다. 호나우드 같은 천재적(天才的)인 축구(蹴球)선수와 일반 선수의 차이점(差異點)은 얼마나 극적으로 상대방(相對方)을 속이는 가에 달려 있다.


기업(企業)의 경영(經營)이나 상업(商業)에서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술(戰術)은 다반사(茶飯事)로 사용하는 일이다. 회사(會社)가 지금 개발(開發)하려고 하는 기술(技術)을 좀 더 극적으로 발표(發表)하기 위하여 다른 기업들의 눈을 다른 곳으로 분산(分散)시키는 기술을 미끼로 흘리는 것도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응용(應用)이다. 이럴 경우 다양한 방법으로 상대방(相對方)의 주의(注意)를 돌려야 한다.


몇 가지 단계(段階)를 설정(設定)하여 상대방(相對方)이 추측(推測)하도록 유도(誘導)하는 방법도 있고, 적(敵)의 간첩(間諜)이나 아군(我軍)의 스파이를 통해 상대방(相對方)에게 거짓 정보(情報)를 흘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적(敵)을 유도(誘導)할 수도 있다. 모두 신중(愼重)한 분석(分析)과 세심(細心)한 행동(行動)으로 임해야 성공(成功)할 수 있는 일들이다.


결국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술(戰術)은 냉철(冷徹)한 이성(理性)과 뛰어난 판단(判斷)을 할 수 있는 리더들의 인식(認識) 태도(態度)다. 감정(感情)을 정제(精製)하지 못하고 아마추어적인 생각으로는 고도(高度)의 이런 전술(戰術)을 사용할 수 없다. 물론 남을 속이는 일에 대하여 거부감(拒否感)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떻게 상대방을 속이고 나의 목표(目標)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苦悶)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축구선수가 고민없이 상대방의 눈을 다른 속이고 공을 차는 것은 그가 개인의 자격이 아닌 어느 팀이라는 조직(組織)의 일원(一員)으로 뛰기 때문이다.


조직(組織)은 승패(勝敗)를 통해 부침(浮沈)을 거듭한다. 조직(組織)은 생존(生存)을 목표(目標)로 하기에 공격(攻擊)의 효과(效果)를 더욱 높이기 위하여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술(戰術)을 아무런 고민(苦悶)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認識)은 여러 조직론자들에게 자주 긍정적(肯定的)으로 표현(表現)되곤 한다.


마키아벨리는“전쟁(戰爭)에서 상대방(相對方)을 속이는 일은 비난(非難)받을 일이 아니라 칭찬(稱讚)받을 일이다.”라고 하고 있고,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도“전쟁(戰爭)은 상대방(相對方)을 속이는 일이다(兵者, 詭道也).”라고 선언적(選言的)으로 명시(明示)하고 있다.


손자(孫子)는 이 명제(命題)를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능력(能力)이 있어도 상대방(相對方)에게는 없는 것처럼 보이고, 전쟁(戰爭)할 의도(意圖)가 있어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내 의도(意圖)가 가까운 곳에 있으면 멀리 있는 곳에 있는 것처럼 하고, 반대로 내 의도(意圖)가 먼 곳에 있으면 가까운데 있는 것처럼 하여야 합니다.”

(能而示之不能 用而示之不用 近而視之遠 遠而示之近)

(능이시지부능 용이시지부용 근이시지원 원이시지근)


내가 수천명의 병사들을 살리고 그들을 금의환향(錦衣還鄕)할 수 있게 하려면 적어도 조직(組織)의 리더는 명분(名分)이나 도덕(道德)이 아닌 현실(現實)을 직시(直視)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이런 눈이 싫은 사람은 수많은 직원(職員)들의 목숨을 거느린 기업(企業)을 경영하는 사장이 되면 절대 안 된다. 차라리 어느 평범한 일반인으로 남아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좋다. 이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술(戰術)은 나의 작은 힘으로 상대방(相對方)의 강한 힘을 꺾을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다.


성동격서(聲東擊西)는 생활(生活) 중에 광범(廣範)하게 사용된다. 같은 뜻을 두 가지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누구는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언어예술(言語藝術)을 사용하지 않아 비난(非難)을 받는 가 하면, 누구는 교묘(巧妙)하게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언어예술(言語藝術)을 사용하여 칭찬(稱讚)을 받기도 한다.


아범제(阿凡提:중국 소수 민족 중 하나인 위구르 족의 전설 중의 전형적인 인물로 특정인이 아니라 교사 또는 지식인을 뜻한다) 고사(故事)에는 해몽(解夢)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용은 황제(皇帝)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꿈에 누군가에 의해 치아(齒牙)가 모두 뽑혔다는 것이었다. 황제(皇帝)는 깜짝 놀라 잠이 깬 후 무척 무서웠다. 다음 날 조회(朝會) 때 황제(皇帝)는 꿈 얘기를 중신(重臣)들에게 한 후 누가 해몽(解夢)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신하(臣下)가,“그 뜻은 폐하(陛下)의 온 가족(家族)이 폐하(陛下)보다 먼저 죽는다는 것이옵니다.”라고 아뢰었다. 황제(皇帝)는 그 말을 듣고 크게 화가 나 그를 참수(斬首)하라 일렀다. 그 때, 아범제(阿凡提)가 황궁(皇宮)에 도착(到着)했다. 황제(皇帝)는 꿈 이야기를 다시 그에게 들려 주고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아범제(阿凡提)는,“폐하께서 온 가족(家族)들 보다 오래 장수(長壽)하실것이옵니다.”하고 아뢰었다. 황제(皇帝)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아범제(阿凡提)에게 큰 상을 내렸다.


비즈니스란 본래 지력(智力)의 각축장(角逐場)이다. 비즈니스 경쟁(競爭) 중, 성동격서(聲東擊西)는 같은 업종(業種)의 경쟁 상대뿐 아니라 소비시장(消費市場)의 고객(顧客)들에게도 이용할 수 있다. 만약 익숙하게 운용(運用)할 수 있다면 그 결과가 상당히 볼 만 할 것이다.


1962년, 일본(日本) 경도요업공사의 도성화부는 미국(美國)으로 출장(出張)을 갔다. 이 번 출장(出張)의 목적(目的)은 미국시장(美國市場) 개척(開拓)이 아니라 일본시장(日本市場)을 확보(確保)하기 위한 것이었다.


3년전, 도성화부는 친구와 함께 공동으로 경도요업공사를 세웠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고, 자기 제품(製品)을 판매(販賣)하기 위해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전기회사(電氣會社)들에게 한 번 시험적(試驗的)으로 써 보라고 설득(說得)하러 다녔다. 그러나 당시는 미국제품(美國製品)이 일본시장(日本市場)의 과반(過半)을 점하고 있었으며 큰 전기회사(電氣會社)들은 미국제품(美國製品)만 신임(信任)하고 일본제품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도성화부는 일본시장(日本市場)은 철벽(鐵壁)같이 뚫고 들어 가기 어려우니 색다른 방법으로 도전(挑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方法)이 바로 미국회사(美國會社)들이 경도요업공사의 제품(製品)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일본(日本) 전기회사(電氣會社)들의 주의를 끌고, 그 후에 일본시장(日本市場)을 공략(攻略)하면 훨씬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미국회사(美國會社)들은 일본회사(日本會社)들과 달랐다. 그들은 과거(過去) 전통(傳統)에 구애(拘碍) 받지 않고 판매자(販賣者)가 누구이던지 간에, 제품(製品)의 품질(品質)이 좋고 그들의 시험(試驗)을 통과(通過)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도성화부는 희망(希望)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국(美國)에서 제품(製品)을 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성화부가 미국(美國)에 있은 근 한달여 동안 판매활동(販賣活動)은 매번 문전박대(門前薄待)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抛棄)하지 않았다.


노력(努力)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도성이 미국(美國) 서부(西部)로부터 동부(東部)까지, 수십 군데의 전기전자회사(電氣電子會社)를 방문(訪問)한 후에 드디어 텍사스 주의 한 회사(會社)를 만나게 되었다. 그 회사는 아폴로 로켓을 위한 전기(電氣) 저항기(抵抗器)를 생산하기 위해 강력(强力)한 재료(材料)를 찾고 있었다. 마침내, 엄격(嚴格)한 시험(試驗)을 거친 후에 경도회사의 제품(製品)이 독일(獨逸)과 미국(美國)의 유수한 큰 회사들의 제품을 제치고 선택(選擇)되는 영광(榮光)을 안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의 전환점(轉換點)이 되었다. 경도회사의 제품이 그 회사의 호평(好評)속에 채택(採擇)되자 미국 내 다른 회사들도 줄을 이어 그들을 찾아 왔다. 도성은 마침내 그 소원(訴願)을 이루게 되어 제품(製品)을 미국(美國)으로 수출(輸出)하게 되고, 미국에서 이름을 얻은 후 일본(日本)으로 돌아 와 다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경도회사는 이렇게 일본시장을 공략(攻略)했던 것이다.


[참고]
통전(通典)에 ‘말로는 동쪽을 친다 해 놓고 실은 서쪽을 친다’라고 하였다. 고대(古代) 병서(兵書)에는 이것을 말한 것이 아주 많다.

손자(孫子), 병세(兵勢)
‘그러므로 적(敵)을 잘 움직이는 자는 이를 유도(誘導), 유혹(誘惑)하면 반드시 적(敵)이 이에 따른다.’

육도(六韜), 병도(兵道)
‘서쪽이 필요할 때는 그 동쪽을 친다.’

무비적요(武備摘要)
‘이(利)는 동쪽을 놀라게 하여 서쪽을 치는 일이다.’

백전기략(百戰奇略)
‘동쪽에 소리질러 서쪽을 치고, 그쪽에 소리지르고 이쪽을 치면 적(敵)이 방비(防備)할 곳을 알지 못한다. 그때 방비가 없는 곳을 치면 된다.’

역대명장사략(歷代名將事略)
‘동쪽을 가려면 서쪽으로 유혹(誘惑)하고, 진격(進擊)하는 것 같으면 도망치는 채, 도망치는 것 같으면 이쪽에서 진격(進擊)하는 것처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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