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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운명]서시빈목(西施顰目)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9.04.17|조회수478 목록 댓글 0

서시빈목(西施顰目)

서시가 눈을 찡그린다는 뜻으로, 함부로 남을 흉내내다가 웃음거리가 됨을 말한다.

西 : 서쪽 서(襾/0)
施 : 베풀 시(方/5)
顰 : 찡그릴 빈(頁/15)
目 : 눈 목(目/0)

(유의어)
서시봉심(西施捧心)
서시효빈(西施效顰)
서시빈목(西施矉目)
효빈(效顰)

출전 : 장자(莊子)의 천운편(天運篇)


중국 월(越)나라의 유명한 미인 서시(西施)가 눈을 찌푸린 것을 아름답게 본 못난 여자가 그 흉내를 내고 다녀 더욱 싫게 보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분수(分數)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남을 따라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장자(莊子)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제도나 도덕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우화를 말했다.

공자(孔子)가 서쪽에 있는 위(衛)나라에 유세차 떠났을 때에 그의 제자 안연(顔淵)이 노(魯)나라의 악관(樂官)인 사금(師金)에게 선생님의 이번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사금은 공자(孔子)님은 곤경에 빠질 것이라고 하면서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사에는 짚으로 엮은 개를 쓰는데, 제상에 진열하기 전에는 대로 만든 상자에 넣고 수놓은 헝겊으로 싸서 소중히 다루네. 그러나 제사가 끝나면 내다 버리지.

그런데, 공자님도 옛날 성왕(聖王)이 쓰다 버린 짚으로 엮은 개를 주워다가 놀고 있네. 삼황오제(三皇五帝) 때의 예의와 제도는 오늘날에는 맞지 않으니 바꿔야 하네.

미인(美人) 서시(西施)는 가슴앓이병이 있어 언제나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네. 그러자 그 마을의 추녀(醜女)가 이 모양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자기도 가슴에 손을 대고 미간을 찡그리며 마을을 돌아다녔지.

그 흉한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 중에 부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처자를 이끌고 먼 마을로 도망(逃亡)쳐 버렸다고 하네. 이 추녀(醜女)는 무엇이 서시(西施)를 아름답게 했는지 몰랐던 것일세.

성인(聖人)이 한 일이라고 무작정 흉내내는 것은 이 추녀(醜女)와 같다고나 할까 하고 말했다고 한다.

옳고 그름과 착하고 악함을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을 비유하여 효빈(效顰)이라고 말한다. 서시봉심(西施捧心), 서시효빈(西施效顰)과도 같은 말이다.

이 고사는 장자(莊子) 천운편(天運篇)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말엽(末葉),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절세의 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그러나 월나라의 절세 미녀인 서시는 가슴앓이로 말미암아 고향으로 잠시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길을 걸을 때 가슴의 통증 때문에 언제나 미간(眉間)을 찌푸리고 다녔다. 이것을 본 그 마을의 추녀(醜女)가 그 어여쁜 데 감탄하여 자기도 눈살을 찌푸리고 다니면 예쁘게 보일 것으로 믿고 자기도 가슴에 손을 대고 미간을 찡그리며 서시의 흉내를 내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질겁을 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아무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은 이것을 보고 처자(妻子)를 이끌고 마을에서 도망쳤다.

이 추녀는 미간을 찡그린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만 염두에 두었을 뿐, 찡그림이 아름다운 까닭을 알지 못했다. 즉, 서시는 본래 아름다우므로 자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장자 천운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원래 반유교적(反儒敎的)인 장자가 외형에만 사로잡혀 본질을 꿰뚫어 볼 능력이 없는 사람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실로 의미심장하다.

춘추시대 말엽의 난세에 태어난 공자(孔子)가 그 옛날 주왕조(周王朝)의 이상 정치를 그대로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에 재현시키려는 것은 마치 서시빈목(西施顰目)을 흉내 내는 추녀의 행동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 고사는 원래 공자의 제자인 안연(顔淵)에게 노(魯)나라의 악사장(樂師長)인 사금(師金)이 한 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 장은 사금의 말을 빌려서 장자가 공자의 상고주의(尙古主義)를 외형에 사로잡혀 본질을 망각한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한 것이다.

장자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제도나 도덕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춘추시대 말엽의 난세에 태어난 공자가 그 옛날 주왕조(周王朝)의 이상정치를 그대로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에 재현하려 하는 것은 마치 추녀가 서시를 무작정 흉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빈정대어 말한 것이다

서시가 하는 일이라면 눈살을 찌푸리는 것 마저 흉내낸다는 뜻으로써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흉내내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요즘 잘나가는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흉내내는 빠순이, 빠돌이 들에게 썩 어울리는 고사성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시로부터 유래된 고사성어 중에는 당돌서시(唐突西施)라는 말도 있다. 이는 진서(晉書)에 출전(出典)되는 말인데 한자 풀이로는 꺼리거나 어려워함이 없이 올차고 다부진 서시가 된다.

진(晉)나라에 주의(周顗)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매사에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 자였는데 하루는 친구 유량(庾亮)이 찾아왔다. 유량의 말이 “친구들이 자네를 악광(樂廣)과 비교하고 있네.” 라고 하였다.

당시 악광(樂廣)은 진(晉)나라의 현인으로 죽어서까지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과 자신을 견준다는 말을 들은 주의(周顗)는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무염(無鹽)은 추녀이고 서시(西施)는 재색을 겸비한 미녀라네. 이는 갓난아이도 모두 알고 있거늘 당돌하게도 친구들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악광과 함께 나를 말한다면 이것은 무염을 서시와 똑같은 미녀라고 하는 것과 같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선녀와 같은 미모의 서시를 거스르는 일이 될 것이네. 그대들은 어찌 함부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이리하여 당돌서시(唐突西施)는 한자 본래의 직역과는 달리 즉 당돌하게도 서시와 비교하지 마라는 겸허한 뜻을 내포하게 되었다.

장자 천운편에 공자가 서쪽 위(衛)나라로 떠났을 때에 제자인 안연(顔淵)이 사금(師金=魯나라의 太師 즉 音樂長)에게 스승의 출행(出行)에 대해 묻고 답하는 내용 중에 월(越)나라의 미인인 서시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므로 서시가 그 고향에 있을 때에, 언짢은 일이 있어 눈살을 찌푸렸드니 그 마을의 못난 여자들이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하여 제각기 가슴을 안고 눈살을 찌푸르며 돌아다녔습니다.

그 마을의 부자들은 그것을 보고 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고, 그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처자를 거느리고 그 마을을 떠났다고 합니다.

저 못난 여자들은 서시의 얼굴에서 눈살의 찌푸림의 아름다움만 알았지, 어째서 그 눈살 찌푸림이 아름다운가의 까닭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애석하지만 당신 선생도 곤란을 당할 것입니다.

故西施病心而嚬其里, 其里之醜人, 見而美之, 歸亦捧心而 嚬其里.
고서시병심이빈기리, 기리지추인, 견이미지, 귀역봉심이 빈기리.

其里之富人見之, 堅閉門而不出, 貧人見之, 설妻子而去之走.
기리지부인견지, 견폐문이부출, 빈인견지, 설처자이거지주.

彼知美嚬, 而不知嚬之所以美. 惜乎! 而夫子其窮哉.
피지미빈, 이불지빈지소이미. 석호! 이부자기궁재.

위의 글은 사금의 말을 빌려서 장자가 공자의 상고주의(尙古主義)를 외형에 사로잡혀 본질을 망각한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하는 내용이다.

장자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제도나 도덕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춘추시대 말엽의 난세에 태어난 공자가 그 옛날 주왕조의 이상정치를 그대로 노나라와 위나라에 재현하려 하는 것은 마치 추녀가 서시를 무작정 흉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빈정대어 말한 것이다.

그러면 서시가 어떤 여인이길래 이토록 전설적인 대접을 받는 것인가. 일단 그녀는 영웅호걸을 녹인 중국 미인계의 원조이며, 중국 월나라의 절세미녀로써 미인계 전술로 오나라를 망하게 한 일등공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종종 역사서를 보면 미인계를 이용한다는 말이 등장한다. 미인계란 목적 달성을 위해 아름다운 여인을 이용하여 경쟁 상대가 되는 영웅을 유혹하여 뜻하는 바를 이루어 내는 것을 말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참 치졸한 방법이다. 더더군다나 대장부 다운 기개가 없다. 여기서 아름다운 여인이란 단지 무언가를 이루고자 할 때 쓰는 수단일 뿐 여인의 인격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이는 여성도 종중 회원으로 동등하게 자격을 인정하여 권리와 의무는 물론 상속에서 동등한 자격을 인정하는 소위 딸들의 반란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낼만큼 여권신장이 진전된 오늘날에 대접받기 더욱 어렵다.

옛 여인들은 단지 임무와 사명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유혹하거나 때로는 몸을 허락하기도 한다. 게다가 여자를 팔아 얻은 승리에 남성들이 취해 있을 때 정작 일을 성사시킨 여성들은 쓸쓸히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던 것이다.

미인계를 쓴 남성들도 스스로 영웅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연약한 여자를 이용하고 그것도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약한 감정인 사랑을 기만하는 치졸한 수법으로 승리하였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중국 역사 속에서 영웅호걸로 불리우는 남성들 중엔 뜻밖에도 미인계에 힘입어 일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공(功)은 모두 그들에게 돌아가고 미인들은 쓸쓸히 사라지곤 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몇 명의 여인들이 있으니 그 중 서시가 가장 유명하다.

때는 중국의 춘추(春秋) 말기(末期). 월(越)나라의 저라산(苧羅山) 근처에 사는 땔나무장수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서시(西施)로 원래 이름은 이광(夷光)이다.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그녀가 강으로 빨래를 하러 갔을 때 강속 물고기가 물에 비친 그녀의 얼굴에 반해 헤엄칠 생각도 잊고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이야기가 생길 정도였다. 이때 서시의 아름다움을 두고 침어(浸魚)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서시는 어렸을 때부터 가슴앓이 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늘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는데 그 모습조차도 너무나 아름다워 동네의 처녀들이 그 찡그린 모습을 흉내 내고 다녔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말이 효빈(效嚬)이라는 고사성어이다.

서시는 그 아름다움 때문에 훗날 월나라의 수도로 뽑혀 가게 되는데 월나라 사람들이 모두 서시의 얼굴을 보기위해 나와 궁전에 들어가는데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고 한다.

월나라의 재상이던 범려(范蠡)는 서시의 얼굴을 보는 값으로 백성들에게 1전씩 받아 그 돈으로 무기를 사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서시가 살던 월나라는 춘추(春秋) 말기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나라였다. 춘추시대는 주(周)나라를 명목상 모시면서 각지의 제후국들이 서로 힘을 겨루던 시기였다.

월(越)나라는 바로 인접한 국가인 오(吳)나라와 언제나 세력다툼을 하였고 오랜 분쟁은 두 나라를 원수의 나라로 만들었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어느 한쪽이 사라지지 않고서는 절대 전쟁을 멈추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다. 특히 서시가 살던 즈음에 오나라와 월나라의 사이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먼저 월나라와의 전쟁으로 오나라의 왕 합려(闔閭)가 죽자 그 아들 부차(夫差)는 월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가시나무 위에서 잠을 자며 그 원한을 되새겼다고 한다.

부차(夫差)는 오자서(伍子胥)와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저자(著者) 손무(孫武)의 도움으로 나라를 크게 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월나라를 쳐서 굴복시키고 월나라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월나라의 왕 구천(勾踐)이 쓰디쓴 쓸개를 옆에 두고 스스로 해이해지거나 흐트러질 때마다 그 쓸개를 맛보며 오나라에 당한 굴욕을 되새기며 복수를 다짐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말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이다.

서시(西施)는 바로 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시기에 굴욕당한 월(越)나라의 백성이었다. 월나라의 왕 구천(勾踐)은 오나라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이라도 감행할 만큼 원한에 젖어 있었다. 그러한 시기에 서시는 구천(勾踐)의 원한을 풀기위해 오나라로 가야만 했다.

월나라의 재상이던 범려(范蠡)는 임금 구천(勾踐)을 도와 오나라를 이길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그 중 그가 생각해낸 방법이 아름다운 여인을 통한 적의 무장해제였다.

범려(范蠡)는 월나라 각지를 돌아다니며 절세 미인들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월(越)나라를 위해 자신의 감정과 목숨을 내놓게 할 교육을 시켰다.

그 속에는 갖가지 기예(技藝)와 남성을 유혹하는 법, 그러면서도 절대 월나라를 저버리지 않을 사명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녀들의 임무는 오나라 부차(夫差)를 유혹하여 그가 정치를 돌아보지 않고 주색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몇 차례 월(越)나라 미녀들이 오나라에 공물로 바쳐지고 마침내 서시도 오나라로 가는 미인들 속에 끼게 되었다.

워낙에 출중했던 서시는 금새 오나라 왕 부차의 눈에 들었다. 부차는 충신 오자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시를 옆에 끼고 정치를 잊었다.

그는 서시가 연못에서 배타고 노는 것을 좋아하자 무리하여 인공 못을 만들게 하고 그녀를 위해 화려한 궁전을 새로 지었을 정도다. 그러는 사이 오나라의 국력은 급격히 떨어져 갔다.

충신이자 명장이었던 오자서는 심복지환(心腹之患)을 거론하며 간언하였으나 구천에게 매수된 백비(伯嚭)의 말을 철썩같이 믿은 부차에게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심복지환(心腹之患)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한 것이다.

부차(夫差)는 오자서(伍子胥)가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자 자결을 명령한다. 부차(夫差)의 명령에 분노한 오자서(伍子胥)는 스스로 눈을 파내 나뭇가지에 건 다음 죽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부차(夫差)가 월(越)나라에 패해 오(吳)나라가 망하는 꼴을 나뭇가지에 걸어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겠다는 것이었다.

오자서(伍子胥)의 우려와 범려(范蠡)의 계획대로 오나라의 힘은 약해졌고 그 기회를 노린 월나라는 오나라를 쳐서 이겼다. 부차(夫差)는 산 속으로 도망가 미인에게 속아 충신을 저버린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자결하였다.

월(越)나라의 임금 구천(勾踐)은 원수를 갚고 승리(勝利)하였지만 정작 오(吳)나라를 망하게 한 일등공신인 서시(西施)는 이후 그 행방이 묘연하다. 일설에 서시는 오나라가 망하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자 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도 전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원래부터 서시를 사랑하였던 범려가 오나라가 망하자 서시를 구해내 그녀와 함께 도주하여 신분을 감추고 살았다고도 전해진다.

무엇하나 자신의 사랑과 인격을 포기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공에 대한 처우로 마땅치 않다. 승리는 남성들에게 돌아가고 단지 미인이었던 죄로 불행하게 살아야 했던 서시(西施)는 소외되었던 것이다.

서시(西施)의 이야기는 이후 많은 중국의 문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누대(樓臺)에 걸쳐 시인과 문인들이 그녀를 기렸고, 중국 최고의 미인으로 그녀를 칭송했다.

미인계(美人計)라는 잔혹한 전술로 불행했던 서시(西施)는 결국 감상적인 중국 문인들 덕분에 고통스러웠던 삶을 조금이나마 보상 받은 셈이다.

서시(西施)는 양귀비((楊貴妃), 왕소군(王昭君), 초선(貂嬋)과 더불어 중국 고대 4대 미녀로 꼽히는데, 이들 중 으뜸은 단연 서시이며, 미의 화신이자 대명사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태백(李太白)의 오서곡(烏棲曲)을 읊으며 서시의 당대 모습을 회상해 보고자 한다.

오서곡(烏棲曲) / 이태백(李太白)

姑蘇臺上烏棲時(고소대상오서시)
고소대 위에 까마귀 깃들이려 할 적,

吳王宮裏醉西施(오왕궁리취서시)
부차는 궁중에서 서시에 흠뻑 취했었네.

吳歌楚舞歡未畢(오가초무환미필)
오가 초무의 환락 끝나지 않았는데,

靑山猶銜半邊日(청산유함반변일)
푸른 산은 어느 덧 지는 해를 반쯤 삼켰었네.

銀箭金壺漏水多(은전김호누수다)
은 바늘 세운 금 항아리에선 물 많이 새었고,

起看秋月墜江波(기간추월추강파)
일어나 바라보면 가을 달 물결 속에 빠져 있었네.

東方漸高奈樂何(동방점고내악하)
동녘 어느새 밝아 왔으니 못 다한 즐거움 어이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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