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육에 종사한 이래로 성묘도 못 하고 있다가 여러 해 만에 본 해주 본향에 가보니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첫째로 감개무량한 것은 나를 안아주고 귀애해 주던 노인들이 많이 세상을 떠나고 전에는 어린아이이던 것들이 이제는 커다란 어른들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기막히는 것은 그 어른 된 사람들이 아무 지각이 나지 아니하여 나라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었다.
예전에 양반이라는 사람들도 찾아보았으나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효몽한 중에 있어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라고 권하면 머리를 깎으니만 못한다 하고 있었다. 내게 대하여서는 전과 같이 아주 하대는 못하고 말하기 어려운 듯이 어물어물하였다. 상놈은 여전히 상놈이요, 양반은 새로운 상놈이 될 뿐, 한번 민족을 위하여 몸을 바쳐서 새로운 양반이 되리라는 기개를 볼 수 없으니 한심한 일이었다.
고향에 와서 이렇게 실망되는 일이 많은 중에 가장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준형 계부께서 나를 사랑하심이었다. 항상 나를 집안을 망칠 난봉으로 아시다가 내가 장연에서 오 진사의 신임과 존경을 받는 것을 목도하시고부터는 비로소 나를 믿으셨다.
나는 본향 사람들을 모아놓고 내가 지고 온 환등을 보이면서,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삼천리 강토와 2000만 동포에게 충성을 다하여라"
하고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안악에서는 하기사범강습소를 마친 뒤에 양산학교를 크게 확장하여 중학부와 소학부를 두고 김홍량이 교장이 되었다.
나는 최광옥 등 교육가들과 함께 해서 교육총회를 조직하고 내가 그 학무총감이 되었다. 황해도 내에 학교를 많이 설립하고 그것을 잘 경영하도록 설도하는 것이 내 직무였다. 나는 이 사명을 띠고 도내 각 군을 순회하는 길을 떠났다.
배천 군수 전봉훈의 초청을 받았다. 읍 못미쳐 오리정에 군내 각 면의 주민들이 나와서 등대하다가 내가 당도한즉 군수가 선창으로
"김구 선생 만세!"
를 부르니 일동이 화하여 부른다. 나는 경황실색하여 손으로 군수의 입을 막으며 그것이 망발인 것을 말하였다. 만세라는 것은 오직 황제에 대하여서만 부르는 것이요, 황태자도 천세라고밖에 못 부르는 것이 옛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일개 서민인 내게 만세를 부르니 내가 경황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군수는 웃으며 내 손을 잡고 개화시대에는 친구 송영에도 만세를 부르는 법이니 안심하라고 하였다. 나는 군수의 사제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