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동국여지승람

[스크랩] [경상도편]신증동국여지승람 제21권/경상도(慶尙道)/장기현(長鬐縣)

작성자栢山|작성시간16.09.16|조회수110 목록 댓글 0

장기현(長鬐縣)

 


동쪽으로 해안까지 6리, 남쪽으로 경주부 경계까지 16리, 서쪽으로 영일현(迎日縣)의 경계까지 28리, 북쪽으로 영일현의 경계까지 55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8백 64리이다.
【건치연혁】 본래 신라의 지답현(只沓縣)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기립현(鬐立縣)이라 고치고 의창군(義昌郡)의 속현으로 하였으며,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경주부(慶州府)에 속하게 했다. 공양왕(恭讓王) 때 감무(監務)를 두었고, 본조 태종(太宗) 때 지형이 바다와 접했다 해서 무신(武臣) 가운데 벼슬이 높은 자만을 임명하여 진수(鎭守)하게 했는데, 드디어는 지현사(知縣事)가 되었고, 뒤에 다시 현감으로 고쳤다.
【관원】 현감ㆍ훈도 각 1인.
【군명】 지답현(只沓縣)ㆍ기립현(鬐立縣), 봉산현(峯山縣) 봉(峯)자는 봉(蓬)으로 쓰기도 한다.
【성씨】 본현 정(鄭)ㆍ오(吳)ㆍ안(安)ㆍ임(任)ㆍ신(申), 이(李)ㆍ최(崔)ㆍ배(裵)ㆍ김(金) 모두 내성(來姓)이다.
【산천】 거산(巨山) 곧 봉산현의 치소(治所)로서 옛 성에서 이 산의 마루에 옮겼다. 현의 서쪽 2리에 있으며, 진산(鎭山)이다. 묘봉산(妙峯山) 현의 서쪽 18리에 있다. 뇌성산(磊城山) 현의 북쪽 19리에 있다. 망해산(望海山) 현의 서쪽 19리에 있다. 시령(柿嶺) 현의 서쪽 16리에 있다. 천을이천(淺乙伊川) 현의 북쪽 12리에 있다. 동을배곶(冬乙背串) 현의 북쪽 66리에 있으며 목장이 있다. 양포(梁浦) 현의 남쪽 9리에 있다. 송길포(松吉浦) 현의 북쪽 24리에 있다. 바다 현의 동쪽 6리에 있다.
【토산】 뇌록(磊錄 회록색(灰錄色)의 도료(塗料)) 뇌성산(磊城山)에서 난다. 넙치[廣魚]ㆍ해삼(海蔘)ㆍ상어[鯊魚]ㆍ대구(大口)ㆍ방어(魴魚)ㆍ청어(靑魚)ㆍ송어(松魚)ㆍ전복[鰒]ㆍ홍합(紅蛤)ㆍ미역[藿]ㆍ김[海衣]ㆍ해달(海獺)ㆍ송이[松蕈]ㆍ마황(麻黃), 정분(丁粉) 동을배곶에서 난다. 방풍(防風).
【성곽】 읍성 돌로 쌓았으며, 둘레는 2천 9백 80자이고, 안에 4개의 우물과 2개의 못이 있다.
【관방】 포이포영(包伊浦營) 현의 북쪽으로 17리 떨어진 곳에 있다. ○ 수군만호 1인.
【봉수】 뇌성산(磊城山) 봉수 서쪽으로 영일현(迎日縣)의 사화랑산(沙火郞山)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대곶에, 남쪽으로는 복길(卜吉)에 응한다. 대곶(大串) 봉수 현의 북쪽 48리에 있으며, 남쪽은 뇌성산에 응하고, 북쪽은 사지에 응한다. 장곡(獐谷) 봉수 현의 북쪽 34리에 있으며, 남쪽으로는 사지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영일현 동을배곶에 응한다. 사지(沙只) 봉수 현의 북쪽 55리에 있으며, 남쪽으로는 대곶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장곡에 응한다. 복길(卜吉) 봉수 현의 남쪽 18리에 있으며, 남쪽으로는 경주(慶州) 독산(禿山)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뇌성산에 응한다.
【누정】 자봉정(紫鳳亭)ㆍ욕일당(浴日堂) 모두 객관의 동쪽에 있으며, 성화(成化) 신축년에 현감 최영(崔泳)이 지었다.
【학교】 향교 현의 남쪽 2리에 있다.
【역원】 봉산역(峯山驛) 현에서 남쪽으로 3리에 있다. 모이현원(毛伊峴院) 현에서 서쪽으로 23리에 있다. 평안원(平安院) 현의 남쪽으로 15리에 있다.
【불우】 석남사(石南寺)ㆍ평등사(平等寺)ㆍ영취사(靈鷲寺) 모두 묘봉산(妙峯山)에 있다.
【사묘】 사직단 현의 서쪽에 있다. 문묘 향교 내에 있다. 성황사 현의 남쪽으로 5리에 있다. 여단 현의 북쪽에 있다.
【고적】 옛 읍성 현의 남쪽에서 2리에 있으며, 돌로 쌓았다. 둘레는 4백 68자이고, 높이는 12자이며, 그 안에 샘이 2개 있다. 신촌부곡(新村部曲) 현에서 북쪽으로 12리에 있다. 팔오곡부곡(八於谷部曲) 현의 서쪽으로 7리에 있다. 허오리부곡(許於里部曲) 현의 북쪽으로 25리에 있다.
【인물】 고려 오방우(吳邦祐) 현의 아전으로서 과거에 급제하여 5도(道)의 안렴사(按廉使)를 역임했다.
【제영】 고헌압해의산성(高軒壓海倚山城) 홍일동(洪逸童)의 시에, “높은 동헌이 바다를 누르고 산성에 의지해 있는데, 피곤한 나그네 난간에 기대 서니 눈앞이 문득 밝아지누나. 비 개자 맑은 아지랑이 북악(北嶽)에 비껴 있고, 구름 걷자 아침 해가 동해에 솟네.” 하였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연혁】 고종 32년에 군으로 고쳤다.

《대동지지(大東地志)》
【방면】 현내 끝이 15리이다. 남면 처음은 10리, 끝은 20리이다. 서면 처음은 10리, 끝은 65리이다. 북면 처음은 10리, 끝은 65리이다. ○ 신촌(新村)부곡은 북쪽으로 12리, 팔오곡(八於谷)부곡은 서쪽으로 7리, 허오리(許於里)부곡은 북쪽으로 15리에 있다.
【진보】 혁폐 포이포진(包伊浦鎭) 북쪽으로 17리이며, 옛날 수군만호를 두었었다가 선조 25년에 동래부에 옮겼다.
【봉수】 발산(鉢山) 북쪽으로 60리이다. 복길(福吉) 남쪽으로 18리에 있다.
【목장】 동을배곶(冬乙背串) 울산 목장에 소속되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