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충주]석수민묘지명(石受珉墓誌銘)

작성자栢山|작성시간16.10.28|조회수115 목록 댓글 0

석수민묘지명(石受珉墓誌銘)

 

석수민(石受珉 : 1077~1160)은 본관은 충원부(忠原府 :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시)이나, 개성의 남부(南部) 안신방(安申坊) 제1리에 살았다. 아버지 신(信)은 벼슬이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이었다. 1105년(숙종 10) 판강신호위(判羗神虎衛) 제일대정(第一隊正)이 되었고, 1145년(인종 23)에는 예빈랑 응양군대장군(禮賓郞 鷹揚軍大將軍)으로 태자좌감문솔부솔(太子左監門率府率)을 겸하였으며, 3년 뒤에 치사(致仕)하였다. 1160년(의종 14)에 84세로 졸하였으며, 슬하에 2남 3녀가 있었으나 부인이나 어머니의 성씨는 밝히지 않았다.

 

 

 

공의 성은 석(石)이고, 이름은 수민(受珉)이며, 본관은 충원부(忠原府)이나 서울 남부 안신방 제1리(南部 安申坊 第1里)에 살고 있다. 건통(乾統) 5년 을유년(숙종 10, 1105) 6월 28일에 판강신호위(判羗神虎衛) 제1대정(隊正)으로 차영군(借領軍)에 제수되었다. 금(大金) 황통(皇統) 5년(인종 23, 1145) 말에는 예빈랑 응양군대장군(禮賓郞 鷹揚軍大將軍)과 태자좌감문솔부솔(太子左監門率府率)이 되고, 3년이 지나자 정묘년(의종 1, 1147)에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났다.

84세로 정풍(正豊) 5년(의종 14, 1160) 8월 8일에 돌아가시니, 성 밖의 영성사(迎聖寺)에 빈소를 마련하였고, 그 달 19일 병신일에 (유골을) 옮겨 대운사(大雲寺) 남산 기슭 서향(西向)의 무덤에 매장하였다.

증조는 광례(光禮)이고, 조부는 덕화(德和)이며, 아버지 신(信)은 관직이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에 이르렀다. 2남 3녀가 있는데, 장남은 별장동정(別將同正) 영기(令奇)이나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일찍 사망하였다. 차남은 위위승동정(衛尉丞同正) 원조(元碏)이다.

공인(工人)에게 명하여 돌에 새기고 석실에 합하여 안치하며, 그 묘를 세우면서 삼가 적는다.

 

公姓石名受珉本忠原府在京屬南部安申坊第一里乾統五年乙酉六月二十八日判羗神虎衛第一隊正除借領軍至大金皇統五年之末爲禮賓郞鷹揚軍大將軍並太子左監門率府率越三年丁卯致仕年八十四正豐五年八月八日卒殯于城外迎聖寺越是月十九日丙申移埋葬于大雲寺南山之麓西向之穴曾祖光禮祖德和父信官至檢校大將軍二男三女一男別將同正令奇不幸短命曾其沒矣二男衛尉丞同正元借命工刻石合安于石室以表其墓耳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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