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양]용양위부호군 한양 조영 묘비문(龍驤衛副護軍 漢陽 趙楧 墓碑文)

작성자雲影(禹顯)|작성시간16.11.18|조회수94 목록 댓글 0

용양위부호군 한양 조영 묘비문(龍驤衛副護軍 漢陽 趙楧 墓碑文)

공의 성은 조씨(趙氏)요, 이름은 영(楧), 자는 경실(景實), 본관은 한양(漢陽)이라. 고려 첨의 중서사(僉議 中書事) 지수(之壽)가 시조가 된다. 그 아들 휘(暉)는 쌍성총관(雙城摠管)을 지냈고, 아들 양기(良琪)는 정벌의 공로로 원나라 황제가 금포와 옥대를 하사해서 격려했고, 용성군(龍城君)에 봉했다. 그 아들 돈(敦)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는데 봉호를 이어받았고, 그 아들 인벽(仁璧)은 용원부원군(龍源府院君)에 봉직되었다. 태조의 운세가 열리는 것을 보고 양양(襄陽)에 물러나서 늙으며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절개를 지켰다. 조선에 들어와 좌의정(左議政), 한산백(漢山伯)에 증직되고, 시호는 양열(襄烈)이며, 충현사(忠賢祠)에 제사지내고 있다. 그 아들 연(涓)은 조선에서 우의정(右議政)을 지냈고, 시호는 양경(良敬)이다. 그 아들 연(憐)은 동돈녕(同敦寧)을 지냈고, 그 아들 운종(云從)은 군수를 지냈으며, 그 아들 종(琮)은 현감을 지냈는데 문정(正公)의 기묘사화를 피하여 처음으로 영주땅에 살게 되었으니, 공에게 6대조가 된다. 증조는 (光先)이요, 조부는 빈(贇)이요, 아버지는 자한(自漢)이다. 어머니는 인동(仁同) 장씨(張氏)로 경훈(慶勳)의 여식이다. 공은 행실이 지극했고, 노인을 우대하는 은전을 입어, 통정대부(通政大夫)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에 임명되었고, 93세를 누렸다. 돌아가자, 율기산(栗技山) 을향(乙向)에 장사지내니, 선영을 따른 것이다. 부인은 야성(冶城) 송씨(宋氏)인데 욱(煜)의 여식이다. 아들은 하나이니, 원규(元規)요, 손자는 경택(敬宅), 명로(命魯), 성로(聖魯)가 있다.
경택(敬宅)의 아들은 석엽(錫曄)이요, 세 딸은 박사인(朴師仁), 권약천(權若天), 송력(宋櫟)에게 출가를 했다. 명로(命魯)는 두 아들이 있으니 석황(錫晃)과 석욱(錫昱)이고, 딸은 황서옥(黃瑞玉)에게 출가했다. 성로(聖魯)의 아들은 둘인데 석엽(錫曄)은 석민(錫旻)에게 양자들어갔고, 딸은 황치선(黃致善)에게 출가했다. 석엽(錫曄)의 아들은 둘인데 현주(顯周)이고, 현방(顯邦)은 양자 나갔다. 딸 셋은 김윤(金潤), 김낙서(金洛瑞), 권시도(權始度)에게 출가했다. 석황(錫晃)은 아들이 둘이니, 현봉(顯鳳)과 현룡(顯龍)이고, 석민(錫旻)은 아들이 둘이니, 현기(顯冀)와 현항(顯恒)이다. 증손, 현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어느 날 공의 8대손 연의씨(鍊義氏)가 와서 고하기를 “부군이 비록 사업과 공적의 실상이 없으나 덕이 있고, 행실이 있는데 후손이 부진해서 전래하는 문적을 보존하지 못해 보고 듣는 것이 미치지 못함으로써 그 아름다운 행적이 숨어 드러나지 않으니 자손된 사람으로 어찌 매우 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첩에는 다만 효행이라고 한 글이 있으나 효는 모든 행동의 제일 중요한 것이니 어찌 묘소의 비문을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함께 친척들과 상의해서 돌을 다듬어 비석을 세우니 이 일은 후손된 사람의 모든 집안이 참여를 했다. 그리고 문적을 참고해서 그 전말을 기록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아득한 후생으로 하물며 글재주가 없고 아는게 없는 사람이 어찌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고 누차 사양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아 삼가 이와 같이 세계를 서술한다.

종9대손 승희(承禧)는 삼가 글을 짓고, 계미(1943) 3월 의성(義城) 후인 김종호(金宗鎬)는 삼가 쓴다.

 

 

龍驤衛副護軍 韓陽 趙楧 墓碑文

公姓趙氏 諱楧 字景實 漢陽人 高麗僉議中書事 諱之壽 卽鼻祖也 子暉雙城摠管 子良琪 以征討功 元皇帝賜錦袍玉帶而獎之封龍城君 子暾門下侍中 襲封 子仁璧策保理龍源府院君 見太祖開運 退老襄陽 堅不事二姓之節 本朝贈左議政漢山伯 諡襄烈祠忠賢 子涓 本朝右議政 諡良敬 子憐同敦寧 子云從郡守 子琮縣監 避文正公己卯禍 始居榮川 於公六世 曾祖曰光先 祖曰贇 考曰自漢 妣仁同張氏 慶勳之女 公有至行 而以優老典 授通政大夫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 享年九十三 及卒 葬于栗技山乙向原 從先兆也 配冶城宋氏煜女 一男元規 孫敬宅命魯聖魯 敬宅嗣男錫曄 三女朴師仁權若天宋櫟 命魯二子錫晃錫昱 女黃瑞玉 聖魯二子 錫曄出錫旻 女黃致善 錫曄二子 顯周顯邦出 三女金潤金洛瑞權始度 錫晃二子顯鳳顯龍 錫旻二子顯冀顯恒 曾玄以下不錄 日公之八代孫鍊義氏 來告曰 府君雖無事功之實 有德有行 而孱孫不振 由來文籍莫保令之 見聞未逮 潛懿 無以發揮則爲子孫者 烏得不痛恨哉 譜牒只有孝行云 孝爲百行之首 豈可無隧道之表乎 與合族相議 令將伐石而堅碣 君則事孫一室矣 請參考而識其顚 末也 顧渺末後生 况無文蔑識者 何能泚筆於是役哉 累辭不獲 謹次世系如右
從九代孫 承嬉謹識 癸未三月日 義城后人 金宗鎬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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