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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순례

[스크랩] [시조 묘역]합천 이씨 시조 이개 묘

작성자도방장사(慶禹顯)|작성시간17.01.29|조회수750 목록 댓글 0

소재지: 경남 합천군 용주면 월평리

 

 

 

 

합천이씨의 유래

합천(陜川)은 경상남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으로 본래 신라의 대량주인데, 경덕 왕이 강양으로 고치고, 조선 태종때 합천으로 고쳤다.
합천이씨(陜川李氏)의 시조 이개(李開)는 신라 좌명공신이며 서라벌 6부촌장인 이알평(李謁平) 표암공(경주이씨의 시조)의 39세 후손으로 고려개국초에 가수 호장을 지냈고 강양(합천)으로 분관(分貫), 강양군(江陽君)이라 부르며 합천이씨의 시원을 이루게 되었다. 그후 가세가 번창하여 전객령공파(典客令公派)등 크게 11파로 갈라져서 많은 인재를 배출, 국가와 민족인륜 도덕을 위해 크게 공헌하여온 명족으로 오늘에 이르러 수십만명이 훨씬 넘는 대씨족으로 발전하여왔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합천이씨는 남한에 총 36,411가구, 115,46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무에는 뿌리가 있고 냇물에는 샘이 있듯이 우리 사람에게도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뿌리는 시조와 선조인 것입니다. 또 나라에는 국사가 있고 민족에게는 민족사가 있듯이 우리 씨족에게도 씨족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뿌리와 역사는 대를 거듭할수록 시간이 흘러 그 세계와 친족과 인척의 친소 관계를 알고 외워서 생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에 씨족의 계통과 분파 계승과 멀고 가까움을 알기 쉽게 기록한 씨족의 역사가 바로 족보인 것입니다.

족보는 고려때에 비롯되었다고 하나 그 시대에는 상층 귀족에게만 성과 이름이 있었고 일반 평민은 이름이 있었을 뿐 성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고려때에는 주로 명족에게만 가승이라는 문서의 형태로 세계(世系)를 이어 왔던 것이 보편이었습니다. 조선조에 들어와 유학의 숭상으로 주자 가례등에 의한 족보가 점차 보편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가계를 알지 못하거나 족보가 없으면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합천이씨는 경주이씨의 시조인 신라 좌명공신 알(謁)자 평(平)자를 비조로 하여 신라말 고려초에 강양군 휘 개(開)자로부터 합천으로 분관(分貫)하여 국가와 민족 인륜 도덕을 위해 크게 공헌하여온 명족으로 오늘에 이르러 십만명이 넘는 대씨족으로 발전하여 왔습니다.

* 장수(51), 진주(53), 금구, 덕은, 영천, 진위이씨는 기록이 애매하고 분명치 않으나 경주이씨에서 분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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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국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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